싱가폴 체류기 (4) 모범적인 해외 한인 공동체?

방랑자·2006. 9. 19. 오후 1:44:05

+찬미 예수님

아무래도 이곳에는 리포터의 지루한 사회 제도 관습.. 또는 무딘 필체의 여행이야기보다는, 하루 하루 살아가며 공감이 가는 절실한 삶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어울릴 성 싶은 듯 합니다만...,
아무 곳에도 올릴 수 없었던 싱가폴 이야기. 기록에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힘닫는 데 까지 잠시 두어 제목 더 계속해 보겠습니다. 기왕 칼을 뽑았으니….ㅎㅎㅎ  될 수 있으면 돌아 돌아 가지않고 직행길로 단칼에…


방랑자 생활 30여년에 많은 교회를 거쳐 보았습니다.

저는 오리지날 "딴다라" 였지만서두, 개신교회부터 시작, 미국의 한인 개신교와 천주교회를 거쳐

서울에서 한국 천주교회를 8년 열심히 개근하다가 싱가폴에 도착하였습니다.

 

싱가폴 당시 한인 공동체는 싱가폴 최고로 역사가 깊고 주교님이 계시는 까데드랄 (대성당?)에 겹살이를 (셋방살이 아닙니다.) 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서울에서 나와 계시는 미국 대도시의 한인 성당과는 아주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 연유가 있지요.


싱가폴에서의 한국 교포는 아주 손꼽을 정도이고, 거의 모두 건설회사 직원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짧게는 3년 길어 보았자 5-6년이면 떠나가고 또 새로 오니,

공동체의 주축은 붙박이로 사는 몇 안되는 교포님들이 이끌고 계셨지요.

다만 이분들은 태생 교우라든지 2-30년씩 신자 생활을 한 분들아니라, 

수원 교구의 라자로 마을 故 이경재 신부님께서 다녀 가시면서 개인적으로 세례를 주시고

"공동체를 이루거라" 하시며 돌보아 주셔서 두어명이 씨앗이 되고 점차 점차 자연스레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제가 도착한 당시에는 120 여 가구를 넘어, 아이 어른 할것 없이 총인원 400명 정도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50명이면 개신교 교회가 선다는데 이정도면 무시못할 규모이고 정점 불어 나고 있었습니다.

이 경재 신부님께서 일년에 한두번 다녀 가시니까, 미사는 주교좌 성당 본당 신부님 (싱가폴인)께서

9시 교중 미사, 10시 반부터 한인 미사, 그리고 12시에는 필리핀 교우들의 미사를 따로 집전해 주시는 덕분에,

한인 공동체만이 따로 미사를 드리고 마치 한인 성당이 따로 있는 것처럼 모이는 "한인"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이지요.


마침 성당이 도심의 한가운데 있었음으로.

그래도 주변의 공간이 많아 공원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지만, 마침 아파트가 있는 주거지역이 아니어서,  

싱가폴 현지 공동체라는 것이 거의 없었고, 여행온 관광객,외국인 교우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성당이었지요.

한인들도 그틈새에 모였다가 점차 교우들이 모이면서 공동체가 이루어 진 것이구요.

외국인 신부님과 미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신부님께서는 영어로 하시고...
(싱가폴은 영어의 나라인지 이미 아시지요? 아직도 모르시면 빨리 3편 읽고 오세요)
해설자는 한국어로 받아 드리면서 우리 교우들은 따라 하는 것이지요.

해설자가 선도하는 부분등 모든 전례는 전부 우리 미사 하드시 한국어로 하고
말씀의 전례는 그날 당번이 한국어로 함으로, 정말 신부님께서 꼭 하셔야 할 부분만 영어로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지요.

성찬의 전례에 들어서면 신부님 부분이 많지요^^*

신부님이 성찬 시작기도글 드리시고...

신부님: Pray, brethren, that our sacrifice may be acceptable to God, almighty Father.

해설자와 교우: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신부님: The Lord be with you.

해설자와 교우: 또한 사제님과 함께

신부님: Lift up your heart.

해설자와 교우: 주님께 올립니다.

신부님: Let us give thanks to Lord our God.

해설자와 교우: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
.
.
.
.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계속하다 보면 정말 어디가 영어고 어디가 한국어인지 모를만큼
신부님께서도 천연덕스럽게 영어로 말씀하시고 교우들은 한국어로 응답하며
미사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됩니다.

강론 말씀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간단히 해설자가 신부님께서 앞 미사에서 하셨던 말씀을 전해 주시던지 아님 그냥 생략하고 진행되지요.


엄숙하고 진지한, 그리고 화목한 미사였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공동체들이 뒷뜰 마당에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않고 교육관에서는 주일 학교 또 저쪽에는

자매님 레지오등의 모임이 시작 되지요.

미주에 있을때 한인들은 한인들끼리만 모이는 속성이 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현지 성당에 한부분을 차지하고 현지 본당 신부님을 마치 우리 공동체 신부님처럼 모시고,

현지인들과, 그리고 또 필리핀 공동체와도 교류하며 (주로 가정부로 일하러온 아가씨 아주머니가 대부분)

오손도손 화합해 나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한인성당이나 교회를 가 보았지만 이렇게 한인들만이 모여
꼭 우리는 헤어지면 죽는다식으로 우리끼리만의 공동체가 아닌 공동체는 처음 보았고
또 저는 그런 모습이 해외 한인 성당이 至向해야할 모델이 아닌가 생각했지요.



현지의 사정을 전혀 모르시는 신부님께서 서울에서 파견 나오시면 간혹 (아주 간혹입니다!!) 

생활 감각이 다른 교우님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현지 교구와도 본의 아니시게
오해를 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 본적이 있고,

 

또 교우들끼리도 가난하고 셋방살이 할때는 화목하게 지내지만
일단 성당이나 교회를 짓고 살만하게 되면 그때까지 공동체를 이끌어 왔던 구교우와
새로 들어온 (이교회가 너희들의 것이냐라는... 맞지요) 신참 교우들이 갈등을 일으킨다든지

(신부님은 당근  신참편을 들기 일수이구요. 또 그것이 정당하게 보입니다. 그렇지요?)...


개신교회는 백발백중 장노 집사들까지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두 교회 세 교회로 살림을 가르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찬주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토론토든가 한번 격심하게 싸운 적 기억납니다. 제가 불지르는 것이 아님 좋겠네요.)

신부님께서도 보통 고생이 아니십니다.

식사 불편하고 식사일을 거들어 줄 사람의 손은 있을 수가 없고..

사제관에서 서양 신부님과는 음식도 맞지않고 함께 지내시기 어려윱고…

또 혼자 아파트나 사저를 장만하시게 되면 외로움에 몸살을 앓고 한국을 그리워 하는 분도 많지요.

 

정말 해외 사목 쉽지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싱가폴 공동체의 모델,

해외 성당은... 특히 교포가 많은 미주에서는 한번 심각히 고려해 볼 만 하다 생각합니다.

후담: 그후 춘천 교구 장주교님이 다녀가시면서 딱하게 보시고 좋은 신부님을 보내 주셨지요.
춘천교구 김 도밍고 신부님...
활기있고 공동체를 한인 성당으로 한차원 높여 주시며 ME, 성령 세미나. 나중에는 말레이지아 인도네지아를

연합하여 꾸르실료피정을 갖는등 역시 신부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며

활발히 공동체를 이끌어 주셔서 역시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래도 인구가 많지않은 소공동체일때, 신부님이 계실 수 없는 조그만 지역에서는

이룰 수 없는 한인 신부님만 그리워 하지 말고 역동적으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그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ㅎㅎㅎ




싱가폴 현지 천주교 이야기는 5편으로 넘깁니다.
이 부분만도 넘 길어서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싹둑^^*

-계속-

댓글 9

cosma·2006. 9. 20. 오전 10:10:33

싱가폴 주교좌 성당인 Good Shepherd 성당<BR><BR><img src="http://church.catholic.or.kr/kccgs/images/goodsheperdchurch.jpg"><BR><img src="http://church.catholic.or.kr/kccgs/images/goodsheperdchurch-2.jpg">

cosma·2006. 9. 20. 오전 10:20:39

<a href="http://church.catholic.or.kr/kccgs/body/introduce01.htm" target="_blank">싱가폴 주교좌 성당인 굿셰퍼드성당</a> &lt;== 바로가기</p>

방랑자·2006. 9. 20. 오후 12:43:13

사진 고맙습니다. 고스마 형제님, 이 주교좌 성당 이름은 착한 목자의 대성당 Cathedral of Good Shepherd. 150년이 된 오래된 건물이지만 한국교회와 또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명하신 성 앵베르 주교님 (한국명 범주교님: 구노의 아베 마리아곡의 사실상 주인공이 되신ㅠㅠㅠ)께서 중국과 조선 땅에 오시기 전 이 성당에 머므시고 계셧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교우들이 힘써 벽에 성인의 유해를 봉헌하여 교우들의 현양 대상이 되고 늘 외부 교우들이 오시면 경건하고 슬픈 마음으로 성인님을 기리어 드리곤 하지요

외로운 별·2006. 9. 20. 오후 1:25:20

이렇듯 그곳 교회 활동 이야기를, 방랑자님을 통해 듣게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 개념으로 보면 많이 불편한 여건인데도, 그 불편을 편하게 만들며 노력해 가시는 그곳 형제자매님들께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정말 그곳의 모든 분들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로운 별·2006. 9. 20. 오후 1:34:31

그리고 제가 특히 존경해 마지 않는 성 앵베르 주교님께서 머무셨던 그 성당이라구요...갑자기 목이 메어 옴을 느낍니다...그리고..엥베르 주교님의 권고(순교)에 기꺼이 순명하신 모방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도...세분 모두 우리 땅에서 우리를 위해 기해박해시에 순교하셨지요..

외로운 별·2006. 9. 20. 오후 1:39:06

이제까지의 그곳은 어딘지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는데...지금부터는 조금씩 좋아지려고 하는군요..^^ 다음 글을 보면 더욱...??? 기대됩니다.

외로운 별·2006. 9. 20. 오후 1:43:40

그리고 고스마님에게 해설을 곁들인 좋은 사진을 올려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방랑자·2006. 9. 20. 오후 2:46:07

외로운 별님 평을 들으니 한가지 일화를 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성당에 성모님 상이 없어 늘 아쉬워하다가 우리 교우들이 힘을 모아 건설회사 요원들이신 교우들이 수송하여 서울에서 성모님상을 지금 저 사진에 형제님 계신 자리쯤이라 생각되는데 큰 성모님 상을 모셔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모의 밤도 열고... 필리핀 자매님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시고 그랬지요. 그당시 거의 전교우들이 레지오 단원이었으니까요. 성인 신부님... 아베마리아의 사연, 성모님상... 우리의 신앙적인 정서를 우러나게 하였고. 성모님께서도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외로운 별·2006. 9. 20. 오후 4:44:58

저도 구노의 아베마리아에 따른 내용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뭉클한 슬픈 사연이지요.. 근데 그건 뜻 밖이군요.. 그토록 오랜 성단에 성모님 상이 없이 오늘까지?? 당시 성당 건축시에 왜 세우지 않았을까? 그 성당을 어디의 누가 지었는데 그랬을까요.. 혹시 파리 외방 선교회의 지원으로 지은 게 아니었나요? 얼핏 이해가 안 되어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