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나는 그저 심심풀이 읽을 거리로 이 글을 쓰면서도.
하느님의 심오하신 섭리를 새삼 느끼며,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옛날 20대에 그의 전기를 읽을 때는, 당연히 하느님의 그것을 알지 못했다.
몇 백년의 중세 일본의 전란을 종식시킨 도꾸가와는, 이스라엘의 다윗왕과 비슷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선 어떤 민족이든 필요하실 때 시련을 내리시는데.
옛날 중세의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그리고 그들의 시련을 끝내 주시려고,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보내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왕이 이룬 평화는 짧았는데, 도꾸가와의 평화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이다.
그 차이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단련 방법, 즉 다윗과 도꾸가와가 겪은 시련과 고통의 차이가 아닐런지?
다윗이 겪은 그것을 난 성경 이상은 모르지만, 도꾸가와에게는 비교 자체가 안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는 소국 영주 아들로 태어나 2살 때 어머니와 생이별, 정도 없고 허약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대국 영주가 아버지를 의심하여, 8살부터 6년? 8년간? 비참한 인질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급변한 상황에 의해 인질에서 도망친 것이 14? 16살? 극적으로 돌아 왔지만 폐허 뿐이었다.
대국 영주에게 인질 생활하면서 강제 결혼을 했는데, 나이가 위인 아내는 영주의 조카 딸.
남편을 거지라 깔 보는 악처 중에서 최 악처였으며, 도중에 인질 생활이 바뀌어 그나마 떨어져 살았다.
여하튼 부하들이 더 볼 수 없다고 암살해 버렸으니, 그 얼마나 형편없는 악처였는지는 알만한 일이다.
그 악처에게서 얻은 첫 아들 또한, 대국 영주에게 할복 명령을 받아 할복을....
아버지가 힘이 없어, 첫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던 뼈 아픈 고통을 과연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리고 도꾸가와 아버지도 결국 영주 자격이 없다 하여, 가문을 걱정한 가신들이 암살해 버렸다.
그러니까 도꾸가와의 아버지와 아내 모두, 가문의 존속을 걱정하던 중신들에게 암살을 당한 것이다.
그렇듯 일본의 과거 1,500년대는, 그야말로 난세(亂世) 중의 난세.
전국이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영주들로 나뉘어, 매일 같이 오직 영토싸움으로 날이 새고 밝았다.
당시에 천황이 있었지만 아무 실권이 없었고, 천황이 있던 지방 영주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존재만 했을 뿐 능력이 전무하여, 그 지방 영주의 도움이 없으면 단 하루도 지탱할 수 없었다.
그래도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어서, 전국 영주들은 천황 때문에 그 지방을 차지하려 안간 힘을 다했다.
하지만 설령 그 지방을 차지 했더라도, 일본 전국을 장악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천황을 자신의 수중에 두는 그것이, 천하통일에 필수이므로 모두가 욕심을 냈다.
백성들의 근황 정신을 이용하여, 동조 세력을 규합함에 더 없이 좋은 명분과 힘이 되었던 때문이다.
즉, 그 지방 영주의 욕심이 천황의 뜻이 되고, 따르라 명령하여 거부하면 정벌 핑게가 되었다.
그러나 왕도를 장악했더라도 천황 즉, 중앙 왕도와 멀리 떨어진 변방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변방 국가들도 어떻게든 힘을 길러, 천하통일 야심을 이루기 위해 왕도 진출을 도모했다.
하지만 변방국들은, 왕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중 소국들을, 모두 굴복시켜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항복하여 스스로 길을 열어 주면 다행.
그러나 소국들 입장은 저들 나름의 사정과 야망이 있으므로, 죽자살자 대항하는 것이 예사였다.
소국 영주는 대국 영주에 의해 바뀔 수도 있으므로, 항복은 곧 소국 영주가문의 멸망과 다름 없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기업 합병시, 피합병 회사 직원들이 당하는 수모와 똑 같은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선조 대대로 영주가문에 목숨과 충성을 바쳐 온 가신들도,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국 영주들은 자신 가문은 물론, 그러한 가신들 의리 때문에도 쉽게 항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항복은 무사로서 죽음보다 못하다 하여, 뻔한 전쟁을 하다가 멸망해 간 영주도 수 없이 많았다.
그런 난세에서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대국 영주 다케다 신겐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그는 지략이 매우 출중하였으며, 주변의 소국들을 서서히 굴복시키며 세력을 크게 확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중앙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천하통일을 노리고 왕도 진출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도꾸가와는 조그만 소국의 영주였는데.
하필이면 다케다의 왕도 진출 길목에 있어서, 다케다에게 항복하던가 싸우다 망하던가 해야만 했다.
그런데 도꾸가와의 가신들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용맹하면서도 완고한 고집장이들 뿐.
당시 아내 친정인 대국 영주의 속국으로 있었지만, 마침 어려운 사정으로 도움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도꾸가와 군은 대대로 이어 온 가문의 명예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모두 죽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의 청년 도꾸가와는, 사리분별이 뛰어나진 못했어도, 매사에 신중함은 결코 잃지 않았던 무장.
그러나 참모격 중신들의 위세와 고집들을 꺾지 못하여, 멸망의 길 결정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도꾸가와 군의 그것을 잘 아는 다케다는, 마지막 결사적인 그들의 맹열함을 극도로 경계했다.
다케다는 그들 도꾸가와 말고도, 그 이후의 길에도 만만치 않은 소국들이 많았던 것이다.
즉, 이제 막 왕도로 출발했으므로, 초장부터 큰 전력 손실을 입어선 안 되는 처지에 있었던 때문이다.
중년의 다케다는 모든 면에서 훌륭했는데, 그중 제일 큰 장점은 신중과 때를 기다리는 인내였다.
도꾸가와가 평생동안 신중과 인고의 삶을 산 것도, 그 당시 다케다에게 배운 영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케다는 도꾸가와를 어렵지 않게 보고, 전력 손실 없이 항복시키기 위해 지구전을 펼쳤다.
도꾸가와의 본진 코 앞에 포진하여, 그들의 동맹군을 차단하고 위협을 가하는 전략인 것이다.
그들은 빙 둘러 싸 포위만 해도, 언젠가는 식량이 고갈되어 버틸 능력을 잃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유유자적하며, 깐죽 거리듯 부분적 도발만 하면서 시간만 끌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꾸가와 군은 모두 싸우다 죽기로 결심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필연.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 성 밖에 개미 때 처럼 우글거리는 수 많은 다케다군들을 어찌 당한단 말인가?
식량사정이 어려워 지면서, 강경파 장수들 외에 하급무사들은 항복하자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 식량이 떨어지자, 병사들의 사기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도꾸가와는, 전체 장수들과 무사들을 모아 소위 마지막 회의를 열었지만.
전략전술을 무시하며, 무조건 용맹스럽기만 한 무장들은, 끝까지 싸우다 죽자며 고집을 부리는데....
다만 몇몇 중신만이 항복을 주장, 즉 명예롭지 않더라도 대를 끊어선 선조들에게 죄송해서 안 된다고.
그러나 그 주장은, 금방 죽일 듯이 달겨들며, 호통을 치는 용맹한 장수들 때문에 맥을 못 추었다.
도꾸가와는 일단 가문을 구한 후, 후일을 도모하기를 바랬지만 분위기가 그 모양이면 말하기가 어렵다..
그때, 최하 말단의 한 책임자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평소 같으면 회의에 얼굴 내밀기 어려운 하급 무사였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말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하 두명을 데리고 와서, 말을 하게 해 달라고 했다.
부하 두명중 한명은 총을 잘 쏘는 총수이고, 한명은 피리를 잘 부는 피리 명수라고 했다.
피리 명수는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낙성 운명을 슬퍼하며 밤마다 피리를 불었다는 것인데.
마침 달 밝은 밤이라, 총수는 다케다 진영의 움직임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피리를 불던 성 누각 기둥에 편지화살 한개가 꽃혔다던가.
다케다 진영에서 온 편지는, 피리를 그토록 잘 부는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묻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대의 유명한 누구누구에게 사사 받은, 아무개라고 답장 화살을 보냈다는 것이다.
총수는 처음엔 몰랐는데 며칠을 다케다 진영을 살펴보니, 밤마다 이상한 움직임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다케다 본진인 듯한 진막 옆에, 가지 무성한 나무 달빛 그늘에 앉아 누군가 피리 소리를 듣고 있더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많은 부하들이 따르는 게 분명 이름난 장수가 틀림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리를 부는 밤마다, 총수는 그곳을 자세히 살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자기 상사에게 말하면서, 잘 보이는 낮에 그곳을 겨냥해 두었다가 밤에 쏜다면.....?
거리가 멀어 화력이 강한 큰 화승총으로 쏜다면, 누군지 몰라도 적군 장수 한사람을.....?
별로 손해 볼 일은 아니기에 그렇게 하라 했는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피리 명수도 모르게 하라고.
그리고 조금 전에, 그곳을 향해 화승총으로 한방 쏘았다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금방 웅성웅성 하며,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무슨 아이들 장난 같은 해괴한 망발인가?
지금은 도꾸가와 가문 모두가, 어떻게 죽을 것이냐를 고민하며 심각한 회의를 하는 중이 아닌가?
성질 급한 용맹한 장수 하나가, 즉각 큰 칼을 빼어 내리치려는 것을 도꾸가와가 손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곧 조용히 하라며, 그들 3명을 당장 옥에 가두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리고 충복 중신 한사람을 불러, 다케다에 심어 둔 첩자에게 동정을 살피라는 지령을 은밀히 내렸다.
그들을 하옥시킨 것은, 그 소문으로 군 사기를 염려한 것이며, 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그들 주장이었는데, 하지만 다케다 진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은 분명했다.
그들도 비밀리에 조치한 관계로, 첩자는 정확한 정보를 케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케다 신겐에게, 어떤 중대한 일이 생긴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사실 다케다는, 그때 총을 맞아 중상을 입고 다음날 죽어, 아무도 몰래 자신의 성으로 보내진 것이다.
보통 총알의 몇배인 큰 화승총알은, 다케다의 두터운 갑옷을 뚫고 가슴 깊이 박혀 끝내 살지 못했다.
여하튼 갑작스런 다케다의 죽음은, 그의 생전 신중을 기하며 공들인 왕도 진출 꿈 무산은 물론.
수 많은 다케다 속국 영주들의 배반과, 도요토미의 공격을 버티지 못해 후손도 없이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꾸가와는, 풍전등화의 멸망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다음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던 것....
모든 전쟁이 다 그렇지만, 한 국가를 책임진 자의 결단은 그야말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다케다는 왕도 진출 꿈만 버렸으면, 오래토록 그 지역의 대 영주로서 부러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케다와 도꾸가와의 위 역사에서, 무엇 어떤 점을 취해야 하며 또 무엇 어떤 점을 버려야 하는가?
하느님의 뜻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시기 위해, 다윗왕을 보내 주심에 있어 오랜 기간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또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기 위해 30년의 긴 세월을 기다리셨다.
하느님께서는 또, 일본의 난세를 끝내시기 위해, 도꾸가와를 보내셨다고 난 믿는다.
그리고 그에게, 필설로서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시련과 고통으로 단련시키신 것이다.
위 내용은, 도꾸가와가 겪은 수 많은 시련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을 몰랐었지만, 하느님을 알고 나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 수록, 그 뿐께서 하시는 일이 너무나도 완벽하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이글 후속 편으로.
저의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도꾸가와의 교훈을 올릴 예정이다.
그 교훈은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댓글 9
일본 역사 잘 모릅니다. 공부한 적이 없으니까요. 열심히 보고 배우겠습니다. 글 넘 잘쓰시는 것 반측입니다.!!
사실 중세 일본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만. 일본 국민들 치고 3대 영웅을 모르면 일본인이 아니라고들 한답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풍신수길,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잘 알아도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에선 히데요시 보다 도꾸가와를 더 큰 인물로 본다 하구요. 제가 봐도 무척 부러운 인물이라 생각합니다.그리고 그분 때문에 사실 임진왜란이 7년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또한 고마운? 분이기도 합니다..^^
덕천가강. 대망이라는 책이었던가요. 고등학교 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울지 않는 새를 어떻게 하는가?"라는 물음에 덕천가강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었다는데...
대망..그렇습니다. 그책 20권을 읽으려면 공부하는데 장애가 많으셨을텐데요..^^ 노부나가는 새를 잡아 족쳐 울게 하고, 히데요시는 훠이훠이 하며 쫓아 울게 하고, 도꾸가와는 스스로 울때까지 기다린다는...세명 영웅들을 단적으로 인물평하는 말로 기억됩니다. 근데 제가 맞게 말했나 모르겠군요..^^ 암튼 그분들 세명을 잘 아시는 분들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우스게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각 기업들이 간부들의 경영교육 소재로 인기리에 활용했더랬지요. 매우 유익하고 좋은 책입니다.
예, 장애 많이 됐었지요.^^ 그런데 그 책 읽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1권을 읽기 시작하면 20권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재밌는 책이지요. 저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덕천가강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 것은 확실하고, 다른 한 사람은 새가 울지 않으면 목아지를 비틀러서라도 울게 만들고 다른 한사람은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과 불리한 상황을 강제로라도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불리하면 과감히 버린다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요. 당시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처세술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먹이가 코 앞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처럼 기다림의 명수 이창호와 기다리지 못하고 승부수를 띄워 상황을 만들어 가는 유창혁과 시원시원하게 발빠른 행마로 유명한 조훈현과 같다고 할까요.
어쨋건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가신문화... 몇 대에 걸쳐 주군을 모시며 주군 가문의 흥망과 함께 하는 가신들의 모습.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도 바치는 일본인들의 명분보다는 실리를 쫓는 모습. 우리는 실리보다는 명분에 목숨을 바치지요.^^ 영웅들이 활거하는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등... 지금도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읽기를 권장하는 대하 역사소설입니다.
맞습니다.내용을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전 처음에, 회사 도서실에서 빌려 오랜기간 걸려 읽고나니, 무지 재미는 있는데 복잡한 등장인물 이름도 그렇고 전체 내용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아, 바로 그 책을 사서 두번째 읽었더니 겨우 알겠더군요? 그러다 몇년후 한번씩 두번을 더 읽었습니다. 그러니 4번을..^^ 그만큼 그 책에 매료된 거지요. 마지막 읽은 게 30대후반? 그래서 지금은 거의 다 잊었는데.. 책도 누굴 빌려주고 받지 못해 잃어 버렸구요..^^
그 책을 잃어 버리고 그후 다시 도꾸가와 전기를 샀습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한데 문체라던가 구성등이 대망보다 못하다는 생각이고. 내용도 각 가문마다 전해오는 자료들을 그대로 인용한 듯 뻥이 많더라구요. 가문의 전승 자료들은 명예등을 고려하여 미화시킨 것이 많거든요. 대망은 야마오카 스루하찌가 흑가이도 지방신문에 전후 직후부터 18년간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어 발행한것으로 압니다. 당시 패전으로 침체된 국민들에게 용기와 의욕을 고양시켜 대단한 인기였다구요..참으로 좋은 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