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한송이 꽃을.....[C]
추억·2006. 9. 8. 오전 3:15:18
그대에게 한송이 꽃을! (3)
그해 일요일과 8월15일 연휴에, 고향에 다니러 내려 갔습니다.
매우 오랜만의 고향이어서, 친구들을 만나며 재미 있게 놀고 있었지요.
그런데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놀라신 듯 허겁지겁 나를 찾으셨습니다.
매우 오랜만의 고향이어서, 친구들을 만나며 재미 있게 놀고 있었지요.
그런데 형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놀라신 듯 허겁지겁 나를 찾으셨습니다.
삼촌 애인이라는 아가씨가 지금 집에서 기다린다고....?
깜작 놀라 집에 가 보니, 박양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
깜작 놀라 집에 가 보니, 박양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
그 뿐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동네 구경거리가 된 것이지요.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동네 구경거리가 된 것이지요.
동네 입구의 동구나무는 동네 어른들의 쉼터.
박양이 그곳에서 택시를 내려, 내 이름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누군이며 왜 찾느냐 물었더니, 서슴치 않고 내 애인이라고 하더랍니다.
박양이 그곳에서 택시를 내려, 내 이름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누군이며 왜 찾느냐 물었더니, 서슴치 않고 내 애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랬으니 동네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내 고향의 개념으로는, 박양의 그런 행동은 그야말로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생긴 모습과 차림새가, 도저히 나에겐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당시 내 고향의 개념으로는, 박양의 그런 행동은 그야말로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생긴 모습과 차림새가, 도저히 나에겐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그래도 제일 크게 놀란 사람들은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놀랐는데,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박양의 태도였습니다.
심지어 저녁을 안 먹었다며, 아무 것이나 주면 잘 먹겠다고.....
그리고 나 역시 놀랐는데,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박양의 태도였습니다.
심지어 저녁을 안 먹었다며, 아무 것이나 주면 잘 먹겠다고.....
난 너무도 어이가 없고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형수님은 안 쓰던 사랑방을 치우고 닦아내며 급히 청소를.....
형님은 그방은 누추해서 안 된다며, 인사가 아니니 아예 시내 여관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형수님은 안 쓰던 사랑방을 치우고 닦아내며 급히 청소를.....
형님은 그방은 누추해서 안 된다며, 인사가 아니니 아예 시내 여관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박양은 방이 많은데 왜 여관에 가느냐며 집에서 자겠다고.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이건 난리가 보통이 아닌 사라호급 큰 난리가 난 것이지요.
여하튼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온 동네가 들썩 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이건 난리가 보통이 아닌 사라호급 큰 난리가 난 것이지요.
여하튼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온 동네가 들썩 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고향에서의 내 혼인 길은, 박양 때문에 완전히 막혔는데.
그러나 박양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 거리며 웃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변명도 소용 없는 일, 그저 비위를 맞추어 다독이는 것이 최선일 밖에요.
그러나 박양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 거리며 웃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변명도 소용 없는 일, 그저 비위를 맞추어 다독이는 것이 최선일 밖에요.
난 서울에 도착하여 또 한번 놀랐습니다.
박양이 서울역에서 전화를 한 것은 아는데, 설마 대문 앞에서 가디리고 있을 줄은.....?
박양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박양이 서울역에서 전화를 한 것은 아는데, 설마 대문 앞에서 가디리고 있을 줄은.....?
박양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때까지 난 박양의 말이 거짓으로 알고 많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박양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이번의 여행은 엄마에게 허락 받았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난 도무지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양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이번의 여행은 엄마에게 허락 받았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난 도무지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양은 가방을 집에 들여 놓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허락을 받았으니, 집에 안 들어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이 지경까지 돌아 가는 이상, 이제는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허락을 받았으니, 집에 안 들어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이 지경까지 돌아 가는 이상, 이제는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양은 그 날부터 나의 애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타오른 불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아직 어린 때문에 결혼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것을 전제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타오른 불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아직 어린 때문에 결혼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것을 전제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꿈 같은 시간이란,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박양네 택시가 모두 11대였는데, 매일 3~4대씩 정기운휴로 쉬면서 정비를 합니다.
그 중에 이상 없는 차를 가지고, 가고 싶은 곳을 마냥 돌아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박양네 택시가 모두 11대였는데, 매일 3~4대씩 정기운휴로 쉬면서 정비를 합니다.
그 중에 이상 없는 차를 가지고, 가고 싶은 곳을 마냥 돌아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그 해가 저물며 추운 겨울이 왔는데.
그런데 돌아 다니길 좋아하던 박양이, 추위에 약한지 따뜻한 곳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겨우내내, 데이트는 거의 내 하슥방에서 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 다니길 좋아하던 박양이, 추위에 약한지 따뜻한 곳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겨우내내, 데이트는 거의 내 하슥방에서 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 어느날, 갑자기 약 보름쯤 시골 고향에 다녀 오겠다 하더군요.
가족들이 모두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매우 서운하긴 했지만, 그렇 수 있는 일이기에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매우 서운하긴 했지만, 그렇 수 있는 일이기에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찜찜한 것은, 시골이라 전화를 자주 못 할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숙집 아줌마에게 알아 봐 달라 했더니,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뭐, 달리 생각할 일은 없다 싶어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숙집 아줌마에게 알아 봐 달라 했더니,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뭐, 달리 생각할 일은 없다 싶어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랬지만 결국 한달만에 만났는데, 박양이 많이 초췌해 있었습니다.
마치 심한 병을 앓고 난 사람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박양은 전과 달리, 어딘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심한 병을 앓고 난 사람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박양은 전과 달리, 어딘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같으면 일찍 들어 가라는 말을 싫어 했는데, 이젠 먼저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내가 결정적으로 의심한 것은, 대학을 포기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는 명문이 아닌 대학들은, 등록금만 있으면 되므로 박양은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의심한 것은, 대학을 포기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는 명문이 아닌 대학들은, 등록금만 있으면 되므로 박양은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박양을 다구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이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 문제는 아니란 확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 어려워 하는 그 일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이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 문제는 아니란 확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 어려워 하는 그 일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난 전화가 없어도 참고 기다렸습니다.
난 처음부터, 먼저 박양 집에 전화를 한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래야 좋을 것 같았고, 박양 부모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한 것이기도 합니다.
난 처음부터, 먼저 박양 집에 전화를 한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래야 좋을 것 같았고, 박양 부모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아주 큰 것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혼자만 꿍꿍 거리며 앓고 지낼 밖에요.
하슥집 아줌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혼자만 꿍꿍 거리며 앓고 지낼 밖에요.
하슥집 아줌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지러운 생각과 걱정만 하기 보다는, 회사일에 푹 파 묻혀 열중하며 지냈습니다.
연락 할 형편이 되면 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박양은 며칠에 한번, 더러는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연락 할 형편이 되면 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박양은 며칠에 한번, 더러는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난 만나면 그저 순진하게, 박양의 변명에 속아 주는 척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능한 부담되는 말은 하지 않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양은 그런 나를 반신반의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가능한 부담되는 말은 하지 않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양은 그런 나를 반신반의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난 처음으로 박양이 화장실 간 틈을 타, 핸드빽을 열어 봤습니다.
내가 핸드빽을 열어 본 것은, 그날 그것이 처음이었고 한번도 만진 일 조차 없었습니다.
난 처음으로 박양이 화장실 간 틈을 타, 핸드빽을 열어 봤습니다.
내가 핸드빽을 열어 본 것은, 그날 그것이 처음이었고 한번도 만진 일 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했던 대로 무슨 약봉지가 있더군요.
약 이름은 알 수 없으므로, 병원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 번호를 암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박양 몰래 그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약 이름은 알 수 없으므로, 병원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 번호를 암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박양 몰래 그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그 병원은 종로 5가에 있었는데.
5층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병원이지만, 50대의 그 전문의는 유명한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박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묻기에 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5층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병원이지만, 50대의 그 전문의는 유명한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박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묻기에 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하더군요.
무슨 일 때문인지 한참 후에 돌아 온 그 의사는, 나에게 뜻 밖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박양 아버지와 친한 고향 친구라고.
무슨 일 때문인지 한참 후에 돌아 온 그 의사는, 나에게 뜻 밖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박양 아버지와 친한 고향 친구라고.
그리고 의사의 양심상 젊은이를 속일 수 없다고.....
그러나 친구 딸을 위해 부탁하고 싶으며, 선택은 내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말 해준 자기가, 앞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해 주면 좋겠다 말하더군요.
그러나 친구 딸을 위해 부탁하고 싶으며, 선택은 내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을 말 해준 자기가, 앞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해 주면 좋겠다 말하더군요.
박양은 그동안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이 의사가 치료를 맡고 있었습니다.
계속 약으로 처방해 왔는데, 얼마전 수술을 했지만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현재로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심리 불안은 더욱 악화 원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계속 약으로 처방해 왔는데, 얼마전 수술을 했지만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현재로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심리 불안은 더욱 악화 원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난 병원을 어떻게 나왔는지 모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마구 달리는 인도 난간 턱에 걸터 앉아 있더군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마구 달리는 인도 난간 턱에 걸터 앉아 있더군요.
그리고 집까지 그 먼길을, 오랜시간을 걸어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박양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박양이 나의 방문을 거부한 때문인데, 어떤 말과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 거의 미쳐 돌아가 방에 틀어 박혀 아무 일도....
박양이 나의 방문을 거부한 때문인데, 어떤 말과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 거의 미쳐 돌아가 방에 틀어 박혀 아무 일도....
하숙집 아줌마를 통해 들어 안 것이지만.
내가 병원을 찾아간 것을 원장이 박양 부모에게 알려 주었고.
그 사실을 박양 부모님이 실수하여 바로 박양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박양은 부모님이 일부러 나에게 알려 주었다며, 펄펄 뛰며 온갖 난리를 다 쳤다고.....
그 사실을 박양 부모님이 실수하여 바로 박양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박양은 부모님이 일부러 나에게 알려 주었다며, 펄펄 뛰며 온갖 난리를 다 쳤다고.....
사실 난 부모를 통한 것이 아니지만, 사실대로 빽을 열었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을 했다는데, 난 어느 병원인지 알 수는 없고.....
그래도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박양을 보고 싶었습니다.
여하튼 그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을 했다는데, 난 어느 병원인지 알 수는 없고.....
그래도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박양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를 찾아가 사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원 병원을 알려 주면서, 모든 병원을 다 뒤져 직접 찾은 것으로 하라 하더군요.
난 그 병원을 찾아 갔지만 박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원 병원을 알려 주면서, 모든 병원을 다 뒤져 직접 찾은 것으로 하라 하더군요.
난 그 병원을 찾아 갔지만 박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박양에게 한번 경을 친 엄마는, 먼저 박양에게 허락을 받고자 하더군요.
그리고 흉한 자신의 몰골을 보여주기 싫다며, 절대로 들여 보내면 안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다 하니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흉한 자신의 몰골을 보여주기 싫다며, 절대로 들여 보내면 안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다 하니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다 갈 무렵.
하숙집 아줌마에게 연락을 받고 박양 빈소를 찾았습니다.
하숙집 아줌마에게 연락을 받고 박양 빈소를 찾았습니다.
흐느끼는 박양 부모와 또 오빠와 언니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송이 꽃 밖에는....
♡ 끝까지 읽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댓글 4
맹나연·2006. 9. 8. 오전 9:20:13
아! 정말..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군요...
추억·2006. 9. 8. 오후 12:57:35
그러나 추억은 또한 아름답기도 합니다. 더러는 그것을 찬란한 슬픔이라고도 하지요...^^
방랑자·2006. 9. 14. 오후 1:36:52
실화를 이렇게 써놓은면 꼭 소설 같습니다. 소설은 정말 실화 같구요.ㅎㅎㅎ 좀 끝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그렇 수 있지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음 꿈이었나 생시였나... 이광수의 꿈이 생각나는군요. 한번 멋지게 살아 보고 깨실 것을...ㅠㅠㅠ
추억·2006. 9. 16. 오후 5:33:50
소설..ㅎㅎ 맞지요. 누구든 인생 자체가 한편의 긴 장편이 아닐까요? 편히 사신 분들에겐 재미없는 소설, 무수한 질곡을 거치며 산 사람의 그것은, 3자에게는 재미가 듬뿍한 그런..^^ 제가 오늘에 와서 매우 아쉬워 하는 건, 그 옛날 몇명의 여자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찍었던 사진들과, 서로 주고 받은 편지들 입니다. 제법 량이 많았는데 계속 가지고 있다가, 결혼하면서 고향의 형님에게 '비밀리' 에 맡겼던 것인데...그 형님이 몇차례 이사를 하면서 그만....위 내용은 그중 하나인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쓸 수 있는 내용을, 제 실력이 없는 바람에 그저 "슬프다" 라는 한마디 밖에 안 나오도록 쓰고 말았군요...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