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요셉 말에 놀란 외대용인분교 교수 누구인가?
이기종·2012. 6. 9. 오후 11:06:26
임수경에게 '변절자' 폭언을 들은 탈북 대학생 백요셉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수업시간에 '북에서 왔다'고 하자 그 교수가 갑자기 '그만, 너 누구야?'"
"탈북하여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한국행 요청하자 대사관 측이 '대한민국은 좋은 곳 아니다. 북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기자가 외대용인분교의 그 교수에게 확인하자 그는 "그런 강의 안 했다"고 했다.
지난 1일 임수경(44)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들' 이란 폭언을 들은 탈북자 대학생 백요셉(28)씨가 휴대폰을 끄고 잠적한 지 닷새 만에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백씨는 여러 말 대신 지난 6년간 자신의 탈북과정과 탈북 후 한국에서의 감회를 기록한 일기장 14권을 내놓았다. '나의 일생, 나의 하루(我的一生, 我的一天)'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일기에는
"남한은 지금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경제불황보다 위험한 건 이념적 불황"이다.
"종북주의자 비판을 매카시즘이라고 하는 그들은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가?"
"임수경 폭언사건에 대하여 쇼라는 얘기까지 들어... 천안함 사건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백씨는 2003년 2월 두만강을 건너 처음 탈북했다. 19살 때였다. 3번의 북송과 베트남 등 10여개 나라를 거쳤다. 지난 2005년 8월에는 베트남 한국대사관을 힘들게 찾아갔지만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곳이 아니다. 북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들었다. 백씨는 2008년 10월 러시아에서 유엔난민신청을 통해 간신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날 백씨는 임 의원을 비롯해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여러 종북론자들을 떠올리면서 "주사파와 종북주의자 비판을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으로 매도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백씨는 "탈북 후 학교에서 주사파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외대)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이었다. 학생 22명이 수강했다. 한 남성 교수가 들어와 간단히 자기소개와 앞으로 수강 일정 등을 얘기했다. 이 교수는 시작부터 자신이 얼마나 북한에 정통한 사람인지를 강조했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루트는 4가지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 탈북자, 미국에서 나오는 정보다"라고 했다. 백씨는 손을 들고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뭡니까?"라고 묻자, 그 교수는 "가장 확실한 건 노동신문, 가장 못 믿을 것이 탈북자"라고 말했다.
백씨는 "이 말을 들은 순간 피가 끓었다"며 "수업을 드롭(포기)할까 하다가 순간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대용인분교의 그 교수는 본 기자와 통화에서 "전혀 그런 내용을 강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아래는 백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수업을 받으면서 탈북자란 사실을 얘기했나.
"두 번째 수업시간에 발표하면서 '내 고향은 함경북도...' 라고 말하는 순간 교수가 '그만! 너 누구야?'하고 외쳤다. 지난 1일 임수경 의원에게 들은 말과 똑 같은 말이었다.”
―그 교수의 수업 내용은 어땠나.
"종북사상이 뚜렷했을 뿐더러 말도 거칠었다. '북한 정부는 괴물이다.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남한과 미국이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예로 들면서는 '니들이 생각해 봐. 자기네 앞바다에서 포탄 쏴대니까, '이런 시발X들' 하고 쏜 거 아니냐? 응당한 징벌이다'라고도 했다.
한 번은 '김일성은 총을 쥐고 만주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이승만이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카바레서 블루스나 추고 양키 기생들하고 춤이나 추면서 '마이 컨트리(My country) X됐다'하고 있었겠지?' 라는 말을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그 교수를 '나꼼수'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교수가 나를 향해 침을 뱉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한국에 살면서 한국 정부를 흔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정말 용감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한 판사가 페이스북에 '각하 빅엿'을 올린 것처럼, 그들이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한 번이라도 말할 용기가 있을까?”
<2009년 2월17일 일기에서“남한은 지금 너무도 심하게 기울어져 가고 있다. 경제불황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남한의 이념적 사상문화, 제도적 불황이다”고 적었다.〉
―임수경 의원 폭언사건과 관련해 음모론도 나온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봤다. 내가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얘기서부터 정치적인 쇼라는 얘기까지 난무했다. 천안함 때도 미국 9·11테러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을 몰고 갈 수 없다고 본다. 치졸하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정치에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응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어 자신이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한국 외교 당국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탈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언제인가.
"2005년 8월 걸어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들어갔을 때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 때이고 김정일과 정상회담이 성사된 시점이었다. 나는 이미 3번 북송당한 터라 이번에도 걸리면 참형을 각오해야 했다. 간신히 성사된 한국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에서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나라 아닙니다. 환상을 갖지 마세요. 중국말 알면 중국에 가서 사시고 아니면 북으로 돌아가세요. 탈북자들이 자꾸 찾아오면 우리가 곤란합니다.'
그날 일을 일기에 적어 또렷이 기억한다.”
<백씨의 2005년 7월 27일 일기에는
"한국 정부까지 우리를 배척하면 우리는 정말로 국제 고아가 되어버린다”
고 적어 있었고, 8월 3일 일기에는
“이제는 하늘처럼 믿었던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우리를 배척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고 적혀 있었다. 백씨는 당시 베트남 정부가 내가 북한으로 송환되면 처형된다는 걸 알고 나름으로 배려하여 중국으로 추방했다고 말했다.〉
=============
위와 같은 백요셉 씨에 대하여 지어낸 소설이라거나 쇼라며 믿지 않는 글이 여러 편 올라온 것을 읽어보면
ㅡ 한번의 탈북도 어려운데 19살 나이에 처음 탈북하여 24세까지 5년 동안 무려 3번이나 탈북할 수 있는가?
ㅡ탈북자가 북송(송환)되면 특별 격리수용하여 감시가 심한데 어떻게 두 번을 더 탈북할 수 있었나?
ㅡ 10여 개국을 탈북자 신분으로 떠돌아 다니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숙식 문제가 어려워 불가능한 일이다.
ㅡ 탈북과 송환을 거듭하면서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해 일기장을 갖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14권을 뺏기지 않고 있었는지, 또 탈출하고 잡히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일기를 썼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ㅡ 배트남 한국대사관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ㅡ 백 씨가 기자를 만나러 나올 때 요구하지 않은 일기장을 가져와 대답 대신 읽으라고 준 일과 임수경과 교수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당당하게 탈북자라고 말한 행동이 여느 탈북자들과 다르고 14권이나 되는 책을 계속 갖고 다녔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기장은 한국에 들어와 쓴 것으로 의심된다.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이고 현실성 없다면서 백 씨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며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어떤 넷티즌은 위 내용이 사실이면 백 씨는 북한이 보낸 첩자라고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옛날 이중간첩 이수근도 그랬었다며 북한이 첩자로 보낸 경우가 아니면 이야기가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 씨 이야기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도 있는데 현재의 북한 사정을 잘 몰라서 의심한다며 백 씨 이야기는 약간만 운이 따라 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3번 탈북 불가론이 잘못인 이유는 지금은 수용소가 포화상태이고 수용소를 늘릴 형편이 못돼 탈북자들은 수용소에 넣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탈북이 아닌 혼자면 식량 구하러 나갔다고 변명할 수 있고 탈북 후 생활에도 훨씬 수월하며, 대사관 직원도 사실상 좌익들 세상인 노무현정권이 탈북자를 홀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이상과 같은 부정론과 긍정론 모두 탈북자 츨신이 올린 글로 보이던데 이런 문제에는 나 같은 사람은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외대용인분교 교수라는 자가 했다는 말은 본인은 안 했다고 부인했다지만 나는 한 것이 사실이라는 쪽에 자신있게 올인하겠다.
백 씨의 이야기에 전혀 꾸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골수 좌익인 그 교수가 문제가 되니까 오리발 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수가 반대로 그렇게 말했다고 시인했으면 백 씨의 다른 이야기들을 의심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했다면 그 교수는 골수 좌익이 분명하고 기자가 확인할 때 오리발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좌익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자신에게 불리하면 교묘한 거짓말로 속이거나 마땅한 거짓말이 없으면 엉터리 변명과 핑계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얼굴에 철판깔고 잡아떼며 절대 승복하지 않는 행태다. 그리고 그런 행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높을 수록 더 두드러진다는데.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일 있다.
의식화(좌익)교육, 즉 주체사상교육을 시킬 때 꼼짝 못하고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도록 올가미를 씌워버리는데 한번 그 올가미에 걸려들면 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올가미는 쉽게 말해서 그 사람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치명적인 약점을 잡히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에 올리기 곤란하여 생략하지만 꼭 알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쪽지나 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다.
"수업시간에 '북에서 왔다'고 하자 그 교수가 갑자기 '그만, 너 누구야?'"
"탈북하여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한국행 요청하자 대사관 측이 '대한민국은 좋은 곳 아니다. 북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기자가 외대용인분교의 그 교수에게 확인하자 그는 "그런 강의 안 했다"고 했다.
지난 1일 임수경(44)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들' 이란 폭언을 들은 탈북자 대학생 백요셉(28)씨가 휴대폰을 끄고 잠적한 지 닷새 만에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백씨는 여러 말 대신 지난 6년간 자신의 탈북과정과 탈북 후 한국에서의 감회를 기록한 일기장 14권을 내놓았다. '나의 일생, 나의 하루(我的一生, 我的一天)'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일기에는
"남한은 지금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경제불황보다 위험한 건 이념적 불황"이다.
"종북주의자 비판을 매카시즘이라고 하는 그들은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가?"
"임수경 폭언사건에 대하여 쇼라는 얘기까지 들어... 천안함 사건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백씨는 2003년 2월 두만강을 건너 처음 탈북했다. 19살 때였다. 3번의 북송과 베트남 등 10여개 나라를 거쳤다. 지난 2005년 8월에는 베트남 한국대사관을 힘들게 찾아갔지만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곳이 아니다. 북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들었다. 백씨는 2008년 10월 러시아에서 유엔난민신청을 통해 간신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날 백씨는 임 의원을 비롯해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여러 종북론자들을 떠올리면서 "주사파와 종북주의자 비판을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으로 매도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백씨는 "탈북 후 학교에서 주사파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외대)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이었다. 학생 22명이 수강했다. 한 남성 교수가 들어와 간단히 자기소개와 앞으로 수강 일정 등을 얘기했다. 이 교수는 시작부터 자신이 얼마나 북한에 정통한 사람인지를 강조했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루트는 4가지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 탈북자, 미국에서 나오는 정보다"라고 했다. 백씨는 손을 들고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뭡니까?"라고 묻자, 그 교수는 "가장 확실한 건 노동신문, 가장 못 믿을 것이 탈북자"라고 말했다.
백씨는 "이 말을 들은 순간 피가 끓었다"며 "수업을 드롭(포기)할까 하다가 순간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대용인분교의 그 교수는 본 기자와 통화에서 "전혀 그런 내용을 강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아래는 백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수업을 받으면서 탈북자란 사실을 얘기했나.
"두 번째 수업시간에 발표하면서 '내 고향은 함경북도...' 라고 말하는 순간 교수가 '그만! 너 누구야?'하고 외쳤다. 지난 1일 임수경 의원에게 들은 말과 똑 같은 말이었다.”
―그 교수의 수업 내용은 어땠나.
"종북사상이 뚜렷했을 뿐더러 말도 거칠었다. '북한 정부는 괴물이다.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남한과 미국이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예로 들면서는 '니들이 생각해 봐. 자기네 앞바다에서 포탄 쏴대니까, '이런 시발X들' 하고 쏜 거 아니냐? 응당한 징벌이다'라고도 했다.
한 번은 '김일성은 총을 쥐고 만주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이승만이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카바레서 블루스나 추고 양키 기생들하고 춤이나 추면서 '마이 컨트리(My country) X됐다'하고 있었겠지?' 라는 말을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그 교수를 '나꼼수'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교수가 나를 향해 침을 뱉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한국에 살면서 한국 정부를 흔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정말 용감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한 판사가 페이스북에 '각하 빅엿'을 올린 것처럼, 그들이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한 번이라도 말할 용기가 있을까?”
<2009년 2월17일 일기에서“남한은 지금 너무도 심하게 기울어져 가고 있다. 경제불황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남한의 이념적 사상문화, 제도적 불황이다”고 적었다.〉
―임수경 의원 폭언사건과 관련해 음모론도 나온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봤다. 내가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얘기서부터 정치적인 쇼라는 얘기까지 난무했다. 천안함 때도 미국 9·11테러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을 몰고 갈 수 없다고 본다. 치졸하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정치에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응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어 자신이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한국 외교 당국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탈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언제인가.
"2005년 8월 걸어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들어갔을 때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 때이고 김정일과 정상회담이 성사된 시점이었다. 나는 이미 3번 북송당한 터라 이번에도 걸리면 참형을 각오해야 했다. 간신히 성사된 한국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에서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나라 아닙니다. 환상을 갖지 마세요. 중국말 알면 중국에 가서 사시고 아니면 북으로 돌아가세요. 탈북자들이 자꾸 찾아오면 우리가 곤란합니다.'
그날 일을 일기에 적어 또렷이 기억한다.”
<백씨의 2005년 7월 27일 일기에는
"한국 정부까지 우리를 배척하면 우리는 정말로 국제 고아가 되어버린다”
고 적어 있었고, 8월 3일 일기에는
“이제는 하늘처럼 믿었던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우리를 배척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고 적혀 있었다. 백씨는 당시 베트남 정부가 내가 북한으로 송환되면 처형된다는 걸 알고 나름으로 배려하여 중국으로 추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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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백요셉 씨에 대하여 지어낸 소설이라거나 쇼라며 믿지 않는 글이 여러 편 올라온 것을 읽어보면
ㅡ 한번의 탈북도 어려운데 19살 나이에 처음 탈북하여 24세까지 5년 동안 무려 3번이나 탈북할 수 있는가?
ㅡ탈북자가 북송(송환)되면 특별 격리수용하여 감시가 심한데 어떻게 두 번을 더 탈북할 수 있었나?
ㅡ 10여 개국을 탈북자 신분으로 떠돌아 다니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숙식 문제가 어려워 불가능한 일이다.
ㅡ 탈북과 송환을 거듭하면서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해 일기장을 갖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14권을 뺏기지 않고 있었는지, 또 탈출하고 잡히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일기를 썼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ㅡ 배트남 한국대사관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ㅡ 백 씨가 기자를 만나러 나올 때 요구하지 않은 일기장을 가져와 대답 대신 읽으라고 준 일과 임수경과 교수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당당하게 탈북자라고 말한 행동이 여느 탈북자들과 다르고 14권이나 되는 책을 계속 갖고 다녔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기장은 한국에 들어와 쓴 것으로 의심된다.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이고 현실성 없다면서 백 씨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며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어떤 넷티즌은 위 내용이 사실이면 백 씨는 북한이 보낸 첩자라고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옛날 이중간첩 이수근도 그랬었다며 북한이 첩자로 보낸 경우가 아니면 이야기가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 씨 이야기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도 있는데 현재의 북한 사정을 잘 몰라서 의심한다며 백 씨 이야기는 약간만 운이 따라 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3번 탈북 불가론이 잘못인 이유는 지금은 수용소가 포화상태이고 수용소를 늘릴 형편이 못돼 탈북자들은 수용소에 넣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탈북이 아닌 혼자면 식량 구하러 나갔다고 변명할 수 있고 탈북 후 생활에도 훨씬 수월하며, 대사관 직원도 사실상 좌익들 세상인 노무현정권이 탈북자를 홀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이상과 같은 부정론과 긍정론 모두 탈북자 츨신이 올린 글로 보이던데 이런 문제에는 나 같은 사람은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외대용인분교 교수라는 자가 했다는 말은 본인은 안 했다고 부인했다지만 나는 한 것이 사실이라는 쪽에 자신있게 올인하겠다.
백 씨의 이야기에 전혀 꾸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골수 좌익인 그 교수가 문제가 되니까 오리발 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수가 반대로 그렇게 말했다고 시인했으면 백 씨의 다른 이야기들을 의심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했다면 그 교수는 골수 좌익이 분명하고 기자가 확인할 때 오리발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좌익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자신에게 불리하면 교묘한 거짓말로 속이거나 마땅한 거짓말이 없으면 엉터리 변명과 핑계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얼굴에 철판깔고 잡아떼며 절대 승복하지 않는 행태다. 그리고 그런 행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높을 수록 더 두드러진다는데.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일 있다.
의식화(좌익)교육, 즉 주체사상교육을 시킬 때 꼼짝 못하고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도록 올가미를 씌워버리는데 한번 그 올가미에 걸려들면 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올가미는 쉽게 말해서 그 사람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치명적인 약점을 잡히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에 올리기 곤란하여 생략하지만 꼭 알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쪽지나 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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