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연합과 경기동부연합은 종북세력의 뿌리

이기종·2012. 5. 22. 오후 8:06:48

통합진보당은 진보, 좌파 아닌 종북주의와 반미주의를 이데올로기화한 집단

                                                                                                                                                                                       조갑제닷컴   

통진당은 민통당(민주통합당)과 연대하여 2012년 정권을 잡은 뒤 2017년 단독정권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4·11 총선 기간 중 이정희 통진당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으로 실체가 드러난 경기동부연합은 그동안 종북좌파 운동권에서는 '금기어'였다.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경기도 성남과 용인을 중심으로 노동운동 등을 해 온 NL(National Liberation)계로 정의된다.
 

NL계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반미 자주화를 표방한 주사파(주체사상파)로 불렸다. NL주사파의 목표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다. 이는 경기동부연합을 포함해 통진당의 주류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의 강령, 주장, 활동을 보면 명확하다.
 

통진당은 곧 '전국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민통당이 작성한 '야권연대' 문건에 따르면, 주요협상 선거구 19개 중 11개 지역의 후보가 전국연합 계열이다(경기동부 7명, 울산연합 3명, 인천연합 1명). 전국연합 외에는 PD계로 분류된 심상정, 노회찬과 유시민 계열의 참여당 6명 뿐이다.
 

전국연합은 빨치산 후예와 1980년대 NL주사파 계열이 1991년 합세해 조직한 연합체였다. 전국연합은 전문 시위꾼으로 알려진 오종렬이 16년간 조직을 이끌며 국내 반미집회를 주도했다. 오종렬이 공동대표를 맡았던 단체는 ▲2002년 효순·미선이추모여중생범대위, ▲2004년 노무현탄핵무효범국민행동, ▲2005년 10월 반부시국민행동, ▲2005년 평택범대위, ▲2005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2008년 한국진보연대 등이다.
 

2005년 9월 인천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파괴 시도 역시 오종렬의 전국연합과 한상렬의 통일연대가 주도했다. 미국 관련 이슈가 터지면 "양키고홈(Yankee, Go home)"으로 이끌고 간 단체가 전국연합이다. 전국연합의 활동은 극렬했다. 2005년 자료집(15기)에 2005년 한 해 780번의 집회와 시위, 기자회견 등 행사를 치렀다고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쇠파이프, 죽창, 쇠창, 밧줄과 갈고리 등이 동원되고 지휘부의 격렬한 선동이 가미돼 유혈폭동으로 끝났다.
 

이 단체는 2007년 10월 광우병 난동을 주도한 한국진보연대로서 소위 발전적 해체를 했다. 그후 전국연합 지도부는 2007년 한국진보연대를 다시 조직하고 2008년 5월6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만들어 예전과 같은 극렬 난동을 벌였다.
 

전국연합은 연합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지역조직이 있으며 경기동부연합도 그 중 하나다. 예컨대 2004년 13기 전국연합은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한총련 등과 함께 서울연합, 강원영서연합, 경기동부연합, 경기남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대전충남연합, 대구경북연합, 부산연합, 서부경남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이 소속됐다. 다양한 파벌이 있지만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 통일이라는 NL주사파 노선에는 차이가 없다.
 

전국연합의 지도노선인 NL주사파는 "미제국주의가 한미FTA체결로 한국경제를 완전히 장악하여 식민지 지배체제를 강화, 통일된 민족경제 형성을 가로 막는다. (중략) 미국과 사대매국세력은 한반도를 영구히 지배하려는 음모를 진행 중(2006년 3월11일 한양대에서 결의된 대의원대회 결의문)"이라는 주장에 나오듯, 반미가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사회주의혁명역량에 가세 결집이 목표


전국연합의 최종목표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단절시켜 북한정권과 연방제 통일을 하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 부분이다. 이 단체는 2000년 6·15선언 이듬해인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소위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연방제 통일을 결의했다.
 

당시 자료집은 친북인사 한호석의 글을 통해 연방제 통일은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편집자 주: 종북세력)의 반제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편집자 주: 북한정권)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반제전선에 가세하여 결집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 자료집 p54)"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를 위해 "친미수구세력을 척결(剔抉)", "친미수구세력의 생명줄을 끊어 놓을 것", "친미수구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것(2005년 14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등을 주장해 왔다. 요컨대 연방제 통일은 남한 내 대한민국 세력을 척결한 뒤 북한정권에 가세 결집하는 북한식 흡수통일인 것이다.
 

"군자산의 약속을 잊지 말자"는 주장은 전국연합 문건에서 흔히 발견된다. 오종렬은 2006년 3월11일 전국연합 대의원대회에서 "군자산의 약속을 동지들은 이 해 안에 기필코 이행할 것"이라며 "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선 단 하나의 이유"라고 다짐했다. 전국연합은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을 장악했다. 이미 2004년 6월 실시된 민노당 대회에서 선출된 12명의 최고위원 중 전국연합 출신이 원내대표 천영세를 비롯하여 김창현, 최규엽, 이영희, 하연호, 박인숙, 김미희, 이정미 등 9명에 달했다.
 

전국연합 전 현직 간부들은 국회의원 등 공직자로 다수 진출했다. 이정희 의원(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해 최루탄 김선동 의원(경기동부연합), 공중부양 강기갑 의원(전국연합 대의원 출신), 천영세 전 민노당 대표(전국연합 공동의장 출신) 등이 그들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 결집"하는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전국연합 출신들이 장악한 통진당과 그 들이 연대하여 끌고 가는 민통당. 그리고 대응능력을 상실한 박근혜 의원의 새누리당, 중도노선을 고집하는 이명박 대통령, 2012년 권력교체를 통한 대한민국 국체변경은 이미 가능성이나 우려 수준을 넘어 눈앞의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는 오늘이다.
 

통진당은 진보나 좌파 정당이 아니다.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종북주의, 반미주의를 이데올로기화한 집단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국가라는 역사적인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골자로 한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도 부정한다. 이 때문에 통진당이 민통당과 연대하여 집권하거나 단독으로 집권한 미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계속 그들 세력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정권의 지지기반인 국가 안위를 걱정하는 보수 계층들이 거의 다 등을 돌렸다. 그들이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에 표를 주었지만 박근혜의 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마땅한 대안 정당이 없어 지지한 것인데 박근혜의 행보를 보면 그것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통진당의 한총련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


4·11총선 당선자 13명 중 이상규(서울 관악을), 김미희(경기 성남 중원), 김선동(전남 순천 곡성), 이석기(비례대표), 김재연(비례대표), 정진후(비례대표) 등은 주사파(김일성 주체사상) 계열의 '경기동부연합' 소속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통진당 주류 자체가 주사파 출신인 탓에 이 같은 분석은 의미없다. 예컨대 주사파 계열로 보도되지 않은 통진당 비례대표 1번 윤금순 씨(5월4일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사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대표이고, 윤 씨는 골수 종북 인물인 오종렬, 한상렬 등과 함께 활동해 온 반미집회 선동꾼이다.
 

윤 씨는 2005년 인천 맥아더동상 파괴를 주도한 '통일연대' 공동대표였고, 그녀가 소속된 전여농은 주사파 본산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소속이었다. 통일연대와 전국연합 상임대표(의장)는 각각 한상렬, 오종렬이었다.
 

통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2008년 광우병난동 주역이었다. 그는 2008년 5월24일 촛불시위 무대에서 "오늘 우리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간다"며 소위 청와대 진격을 선동했다. 이날 이후 시위대는 광화문 우체국 앞 차도를 점거하는 난동으로 전환했다. 그는 이후 경찰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조계사에서 농성을 계속하다 2008년 11월 강원도 동해시 모텔에서 검거됐다.
 

통진당 비례대표 당선자 김재연 씨는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출신이다. 김 당선자는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총련 대의원(2002년 10기)이었다. 그녀는 4월10일 한국대학신문(http://news.unn.net/)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안에서 3년 간 수배자 생활을 했다"며 '한총련 탈퇴서'를 쓰지 않을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자가 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한총련은 잘못한 것이 없는 단체라고 판단했다. 그 단체를 통해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가 "사회정의 실현단체"로 표현한 한총련은 북한 대남적화노선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다 1998년 이적단체로 판시되었다. 한총련은 온갖 이슈가 터질 때마다 불법폭동을 이끌며 김정일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 예로 2003년 8월7일 한총련 소속 12명은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의 국내 훈련 반대"를 명목으로 경기 포천군 미8군 종합사격장에 기습 진입, 장갑차를 점거했다. 이날 이들은 미군의 성조기를 빼앗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총련은 2005년 9월11일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에 가담했는가 하면 2005년 5월15일 다른 반미단체들과 함께 광주 공군전투비행단 정문 앞 철조망을 뜯어내고 진입을 시도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단대 촛불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2009년 7월 77일간의 쌍용자동차 공장점거 농성에도 가세했다.
 

대법원은 "한총련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해 왔다(2004도 3212)"고 판시한 바 있다. 한총련 의장은 김정일 찬양구호인 "결사옹위"를 혈서로 써 지니고 다니다 입건되기도 했다(2003도 6, 4). 당시 대법원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김정일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 천에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한총련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김일성 선전 지침서'에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였던 외교전 등의 위엄스런 업적에 대해 선전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김일성이 일으킨 6·25에 대해서 "통일을 위한 미국과 한민족의 전쟁이므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한총련 출신이 간첩 행위를 하다 구속된 사례도 많다. 지난 해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 배준현)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한총련 전 간부 김 모(36·여)씨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 씨는 2005년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수령님의 유훈인 조국통일을 위해 일꾼이 되겠다”는 방명록을 작성했고, 국내 각 대학 총학생회 성향을 분석한 '한국대학생연합 현황' 문건 등을 작성해 북한에 전달한 혐의로 2010년 11월 불구속 기소됐었다.
 

남파간첩 김동식이 밝힌 '통진당의 정체'


남파간첩으로 활동하다 총격전 끝에 체포된 후 남한에 정착한 김동식 씨는 2012년 4월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 때부터 통진당의 궤적을 보면 지도부 중 일부가 북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며 "그런 게 아니라면 통진당 인사들이 북한 문제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가 북한 대남공작기관에 있었을 때 "1990년대 초 남한 내 지하세력으로부터 '동유럽이 무너지고 북한 국력은 약해지면서 북한에 대한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무작정 버티기가 난감하다. 어느 정도까지 북한 비판에 동참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보내왔다"며 "당시 북한 노동당은 내부 토론 끝에 '북한의 경제난을 포함해 일반적인 것은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부자세습, 주체사상, 정치체제, 북한인권, 북한 지도자 등 5가지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지령(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진당을 보면 김정은 3대 세습 문제나 탈북자 북송 등 북한 인권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북한에선 1990년대 초반 지하조직은 유지하되 노동당의 지시를 받는 대중혁신 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며 "폭동, 쿠데타, 전쟁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한 번에 정권을 바꾸는 일이 힘들어지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여 서서히 정권을 뒤집자는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렇게 만든 대중혁신 정당이 '민중당'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1차 남파됐을 때 포섭했던 사람도 민중당의 주요 당직자였다"며 "그러나 민중당이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해산됐고 혁신정당지도과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두 번이나 남파됐던 김 씨는, 두 번 다 제주도를 통해 침투했다고 한다. 그는 "제주도는 경비가 취약해 침투하기 손쉬운 루트"라며 "북한이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도 중요한 침투 루트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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