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친일파 장관을 임명한 이유
"러시아는 민주주의에 지게 돼 있어. 그러나 일본은 다릅니다. 일본이 장사를 가장하여 다시 몰려올 때 당신네 친일파들이 나서서 나라를 지켜야 해."
1951년 초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총독부 관료 출신인 임문환 씨를 농림부 장관에 임명했다. 임 씨는 차관에 일본 고등문관 시험 동기인 이태용씨를 임명했다. 임 씨는 국회에 인사차 갔다. 국회는 그가 친일파라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국회에서 돌아온 그를 이 대통령이 불렀다.
"군(君)은 오늘 국회에 갔다가 인사를 거절당했다면서?"
"그렇습니다. 친일파라고 거절 당했습니다."
"그런 걸 알면서 차관까지 친일파를 임명하여 세풍(世風)을 거스른 건 신중하지 못했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요. 이태용(李泰鎔)은 성명(姓名)을 보니 우리 문중 사람인 듯한데, 그건 별개 문제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의 표정은 손자를 타이르는 자상한 할아버지 같았다. 자존심이 강한 나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격한 얼굴로 돌아온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하와이에 있는 내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건 적이 있지. 그래서 내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듯해. 그러나 그런 개인 문제는 옛날에 잊었습니다. 지금 내가 일본과 러시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장래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공산당이기 때문에 어떻든 민주주의에 지게 돼 있습니다. 그 정도로 알고 주의만 하면 돼. 그러나 일본은 다릅니다. 미국에 밀착하여 민주주의와 함께 번영할 것입니다.
일본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 보니 산 꼭대기까지 저수지를 만들고 산비탈도 논입니다. 밤에 지날 때 내려다 보니 전등불이 끊어지지 않고 산과 평야에 이어졌어. 저렇게 좁은 땅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살면, 오래는 잘 살 수가 없지. 머지 않아 장사나 다른 이름으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로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일본을 잘 알고 있는 당신들 친일파가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자중하여 일단 시험대에 오른 군(君)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는 데 전념해야 해."
임 장관은 그 때를 이렇게 술회하면서 대통령의 앞을 보는 혜안에 놀랐다고 썼다.
<그때 근엄하기 짝이 없던 노인의 자세와, 저 멀리 바라보던 노인의 안광은 지금도 나의 기억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일본인과의 대결에 친일파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일제시절 그들이 맡았던 곡예사로서의 노고를 알아주며 부탁하는 것 아닌가? 이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처럼 친일파를 일본의 개(犬)라고 보았다면 일본인이 다시 올 때 그들이 원(原)주인에게 다시 꼬리를 흔들 것이 분명한데 그런 중요한 직책을 맡길 리 없다.>
임 씨는 회고록에서 가까이서 본 이 대통령을 이렇게 평했다.
<노지사(老志士)라기보다는 백수(百獸)를 호령하는 노사자(老獅子) 인상이었다. 위엄이 몸에 붙은, 철의 의지를 가진 달인이었다. 가까이 가면 나보다 키가 작아 보였는데, 떨어져서 보면 뼈대가 굵어 백발의 몸이 나보다 훨씬 커 보였다. 악수를 해보니 굵은 손아귀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듯했다.>
만군(滿軍) 장교 출신 박정희는 정권을 잡자, 일제 관료와 군인 출신들을 요직에 등용하여 경제개발과 국가 근대화 사업을 맡겼다. 이들이 일본을 줏대 있게 잘 상대했고 일본도 이들을 믿고 한국을 적극 도왔다. 이 대통령이 기대했던 대로 지일파로 변신한 친일파들이 한국을 일본에 예속시키지 않고 발전시키는데 중심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 5년 정도면 한국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능가한다고 한다(IMF 예측). 식민지였던 나라가 종주국을 따라 잡는 것이다.
임문환 씨처럼 식민지 관료 생활을 하면서 일제와 동족 사이에서 곡예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음 고생을 이해해 주면서 이들이 그때 익힌 기술을 국가 발전에 사용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이승만과 박정희의 위대한 안목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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