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라이스의 노무현 혹평

외론별·2011. 11. 9. 오후 5:40:07

회고록에서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 괴상한(bizarre) 운운.


 콘돌리사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엔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여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2003년 3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6자 회담을 중국에 제의했을 때 강택민 주석은 거절했다. 화가 난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강 주석이 과거 여러 번 말했던 대로 미국이 북한에 보다 신축성 있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시는 말을 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는 강경파로부터 군사력을 사용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제어하지 못하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통화 직후 중국은 6자회담에 동의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안을 통과시킨 직후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중일을 방문했다. 그때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라이스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혹평을 했다. 필자는 최고위 외교관이 동맹국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이런 표현을 한 책을 읽은 일 없다.

 그는 노 대통령을 '(생각을)읽기 힘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때로는 반미성향을 보여주는 말들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그 전의 방한 때 노 대통령은 나에게 강의를 했는데 남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적(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중립을 선언해야 할 수 있다. 그러한 말도 되지 않는 균형자론 강의를 들어야 했던 학자 출신 라이스의 울분이 회고록에서 묻어나온다.

 그는 또 <다음 해에는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을 집약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미국인이 상대방에게 'erratic nature'란 표현을 한다면 주먹다짐이 일어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여 부시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북관계를 정상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2005년 9월19일의 6자회담 합의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부시는 기자회견에서 충실하게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부시 대통령께선 지금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언급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 그렇게 말했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참견에 다소 놀랐지만 앞의 설명을 반복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만 미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또 요구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싶어합니다."

 라이스는 회고록에 '모두가 당혹스러워 했다'고 썼다. 충격을 받은 통역이 통역을 멈추고 있으니 노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계속하라고 밀어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국전쟁을 끝낼 것을 학수고대합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그의 핵무기를 없애야만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한국측 통역이 끝나자마자 부시는 어색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생큐, 서!"라고 말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노 대통령은 웃으면서 대통령에게 감사했다. 라이스는 '그(노무현)는 그 순간이 얼마나 괴상했는지(bizarre) 모르는 듯했다'고 썼다. 라이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를 알고 난 이후엔 솔직히 말해서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 처음 2년간은 반기문 외무장관을 통하여 노 대통령을 '통역했다'(interpret)고 썼다. 노 대통령의 언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반 장관이 해설을 해주었다는 뜻인 듯 하다.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옮긴 뒤엔 송민순 장관을 상대했는데, '그는 능력이 있고 폭 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비정통적인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시드니 정상회담은 노무현-김정일 회담(10월4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그때 노무현 정권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란 이벤트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해 12월 대선에 이명박 후보를 꺾기 위한 카드였다는 의심도 샀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호의적 논평을 끌어내려고 무리를 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4일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10.4 선언에 합의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포기' 이후에만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은 그 조건에 대한 언급 없이 즉, 핵포기와 상관 없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만한 합의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기존 입장을 견지하여 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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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럼스펠드와 한국 여기자의 우문현답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가장 젊은 나이에 국방장관이 된 기록(포드 대통령 시절)과 가장 늙은 나이에 국방장관이 된 기록(부시 2세 시절)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과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했다.

  그가 작년에 내어놓은 회고록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에는 한국과 관련하여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에 집무실 벽에 한반도의 밤을 찍은 인공위성 사진을 붙여놓았다. 휴전선 남쪽은 환하고 북쪽은 캄캄했다. 평양에서만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럼스펠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 덕분에 그런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2003년 방한 때 있었던 일을 소개헸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헌화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을 같이 한 딕 오키퍼의 이름을 전사자 명단이 적힌 벽면에서 확인했다고 했다. 오키퍼는 한국전선에 참전했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 하루 전에 전사했다.

  당시 한국 국회는 이라크 파병 문제로 토의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 꼭대기 층에서 럼스펠드에게 다가온 한 젊은 한국 여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왜 우리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이라크에 한국의 젊은 남녀들을 파견하여 죽고 다치도록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이 자신의 감정을 건드렸다고 했다. 친구 오키퍼 생각도 났다. 그는 여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다고 했다.

  "50년 전 미국은 왜 지구 반 바퀴나 돌아서 이 나라에 그들의 젊은 남녀들을 보내야 했나요?"

  <우리는 화려하고 높은 서울의 빌딩숲, 자유 한국인의 근면성과 기술을 보여주는 증거물을 내려다 보았다. 저 풍요는 다른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을 통하여 한국인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나는 생동하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도시가 보이는 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게 바로 나의 답입니다.">

  이 여기자에게는 다행하게도 럼스펠드는 멍청한 질문을 한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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