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강정동·2011. 9. 7. 오전 8:23:54
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작성자   이병렬(ybr21)  쪽지 번  호   179629
 
작성일   2011-09-07 오전 1:23:41 조회수   57 추천수   
 

강우일 주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포기하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어둠이 있고 실패가 있어도 그 기억을 통하여 다시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다짐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결단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으로 세상에 온 사명을 완수한다. 과거의 죄악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다시는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에, 인류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노예제도를 극복하고, 신분의 차별, 빈부의 차별, 남녀의 차별, 직업의 차별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온갖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오늘날 지구 어느 대륙에서나 인간의 존엄한 인권이 조건 없이 존중받고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과 상처 속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후손들이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의 과오를 망각의 장막 안에 묻어버리고 그 과오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성과 윤리를 갖춘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과거의 기억을 포기하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어둠이 있고 실패가 있기에 그 기억을 통하여 다시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다짐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결단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으로 세상에 온 사명을 완수합니다. 과거의 외세로부터 겪은 침탈과 굴욕을 잊지 아니하고 뼈에 새기며 굿굿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시는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에, 인류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노예제도를 극복하고, 신분의 차별, 빈부의 차별, 남녀의 차별, 직업의 차별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온갖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지구 어느 대륙에서나 인간의 존엄한 인권이 조건 없이 존중받고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쟁의 상처 속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후손들이 되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의 허약함을 망각의 장막 안에 묻어버리고 그 어리석음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강우일 주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문맹자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또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들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그런데 공적 사적인 낭비, 국가나 개인의 허영된 지출, 치열한 군비 경쟁이 웬 말이냐? 본인은 이 사실을 명백히 지적할 중한 책임을 느낀다. 너무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3항).


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약골 민족들이 전쟁의 참혹 속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죽음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까? 또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들을 얼마나 바라고 있습니까? 그런데 공적 사적인 낭비, 국가나 개인의 허영된 지출, 치졸한 시위와 데모가 웬 말입니까? 저는 이 사실을 명백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너무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강우일 주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의 역대 교황들은 한결같이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를 호소해 왔다. “건전하지 못한 군비 경쟁은 각국의 경제 발전과 후진국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재원을 탕진해 버린다. 인간의 복지에 기여해야 할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발전은 전쟁의 도구로 변했다. 과학과 기술은 점점 더 완성된 파괴적 무기의 생산에 적용되며, …새로운 전쟁의 정당화를 요청한다. 그리고 전쟁은 예측되고 준비될 뿐 아니라,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18항)


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강대국을 향해 군비 축소를 강조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약하디 약한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고자 최소한의 대비책을 갖추고자 하는 것조차 포기하라 하시니 언제 올지 모르는 외세에 오직 맨손으로만 대적하라는 것인지 그저 답답합니다.


강우일 주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주의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들의 억울한 희생을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죽음이 되고 만다. 수많은 무고한 피에 물든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은 그 희생자들의 무덤을 짓밟는 행위요,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다. 이 수많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에서 이념과 폭력을 뛰어넘는 평화를 창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절호의 도약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는 제주도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하여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평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주를 군사기지로 만들지 말고 평화의 바위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길만이 하느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는 길이다.


강우일 주교님께 말씀드립니다.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주도에는 4.3사건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다시는 있어서 안될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주교님의 기억 속에는 4.3사건만이 온통 차지하고 다른 수많은 치욕의 역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우리 5천년 역사에는 임진왜란도 있고 일제 36년도 있고 중국 대륙의 오랑캐들이 한반도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마음껏 유린한 그 치욕의 역사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4.3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36년의 치욕과 임진왜란의 암울함과 이 나라의 임금이 머리를 세 번이나 땅에 박는 아픔을 또다시 행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왜 그리 못마땅하십니까? 제주는 제주도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하여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평화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평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혜의 요지 제주의 한 귀퉁이에 방어기지를 만들어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만이 하느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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