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들의 애국가와 안익태 죽이기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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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들의 애국가와 안익태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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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공식행사의 심볼(symbol)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애국가가 흔들리고 있다. 애국가의 애국적 작곡가인 안익태선생의 친일논란에 이어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로 인한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교체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우울하고 어두운 멜로디가 싫다는 사람들 그리고 해묵은 불가리아 민요의 표절설에 이어서 최근에는 독일에서 유학한 사회주의 사상 음악학자들이 필사적으로 안익태 선생 까대기 작전에 돌입했다 이런 사실은 허황된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죽이기 작전인 것이다.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백과사전 위키페디아에서 안익태(Ahn_Eak-tai) 항목의 영어 표준판을 보면 그의 전기(biography)와 작품 , 활동사항, 업적, 기타 관련지식이 수록되어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Ahn_Eak-tai 참고) 그리고 한국어판을 보면 (왼쪽에 있는 외국어 번역판에 각국 언어로 조회가 가능한 란) 마치 친일주의자로 일본을 위해 태어나고 충성한 작곡가로 묘사되어 있다. 이 번역판은 한국인 자원 봉사자에 의해 꾸며지는 항목으로 번역과 내용을 올리는 자들이 안익태의 어두운 친일행각에만 촛첨을 맞춘 것이다. 영어판 원문과 달리 친일행각에만 집중된 공정성을 잃은 지식에 어린 학생들이 앞으로 안익태에 관한 인식, 지식, 이미지(image)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면 누가 이런 글들을 올렸을까? 소위 진보, 민주, 연합을 자처하는 친북좌파 용공세력들일 것이다.
그들은 왜 이런짓들을 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먼저 안익태라는 인물을 친일(親日)로 몰아 쓰레기통에 처넣는 것이다.
그러면 안익태의 역작이자 분신인 "애국가"도 같이 죽게 된다. 자동적으로 애국가가 흔들리고 국가정체성(identy)의 상실과 혼란을 야기시킨다. 꼭 물리적으로 촛불을 켜고 난동을 부려야 되는것은 아니다 . 이것이 이른바 그들의 인민해방전술(People liberation tactic)의 한 분야임을 알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고도로 계산된 심리전 전략(Psychological warfare) 인 것이다. . 우리의 애국가는 1935년 센프란시스코에 유학차 도착한 안익태선생이 어느 한인교회에서 아일렌드 민요 "올드랭 사인" (페로디곡 찬송가336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참조)에 맞춘 곡을 부르는 것을 보고 현 애국가의 멜로디를 스케치해서 주었고 당시 미주교포와 연계 되어있던 상해임시정부 그리고 만주의 독립군 애국투사들에게 전하여졌으며 새 국가로 불리워졌다.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과 정통성을 이은 자유와 조국해방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와 싸운 나라이다. 하지만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는 어떠한가? 그는 한마디로 조폭이다. 당시의 무장 조직 범죄자(organized crime)들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마적단 출신이며 해방 후에 단지 도피처로 소련 군대에 들어간 정통성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물론 그는 일본군과 조국의 광복을 위헤 싸움을 한 일이 없다 . 단지 마적단 시절 민가를 털어먹고 도주하다가 우연히 일본군과 조우하여 몇번 전투를 한 것이 전부다. 이것을 침소봉대하여 떠들면서 민족의 대단한 영웅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애국가를 부를 자격도 부를수도 없는 처지였다. 애국가는 1945년 해방 이후 우익인사들과 정부에 의해 공식 국가(official anthem)로 지정되게 된다. 그처럼 애국가는 광복의 염원과 애국지사들의 한(恨)이 담긴 눈물겨운 노래인 것이다. 북한의 <애국가>는 어떠한가.
북한의 상징깃발이 만들어지기 전인 1947년 6월에 이미 만들어졌으며 착수는 훨씬 그 이전이다.
김일성은 1946년 9월 27일 "우리는 빨리 <애국가>를 지어서 불러야 하며 머지않아 창건될 우리 군대의 행진곡도 지금부터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라고 국가제정을 지시했다.
김일성은 <애국가>를 새로 제정하는 이유로서 지금까지의 <애국가>는 가사가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고 보수적이며 곡도 "남의 나라 것을 따다 만든 것이라 시원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일성은 사랑받는 노래,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애국가> 창작 방향으로 지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시인들과 작곡가들은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심의회에 올려진 여러 개 가운데서 박세영(朴世永) 작사, 김원균(金元均) 작곡의 작품이 김일성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의 나라 것을 따다 만든 것인데 곡 자체가 시원치 않다" 라는 김일성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64년 안익태선생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연주를 하였던 불가리아 출신의 작곡지휘자인 피터 니콜로프 의 폭탄선언
그리고 주요 일간지 신문기자들을 초청하여 폭로로 이어졌다. 강직한 성격의 안익태선생과 불화를 운운하며 북한의 지령을 퍼트린 것이다. "애국가는 불가리아 민요인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의 카피이다." 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서울에서 받은 대우가 좋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상대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 애국가의 가락이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 (불가리아어 :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곡은 첫소절이 서로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1960년대 북한과 불가리아의 정치, 문화등의 연계를 보면 서로 공산형제국으로서 친선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제는 게편이라 하지 않는가? 당시 냉전(cold war)체제의 긴장감을 이해하면 휠씬 수궁이 가는 이야기다. 그로선 북한이 더 영양가가 있으면 있었지 굳이 국교가 없는 상이한 체제의 대한민국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피터 노콜로프의 주장대로 불가리아 민요의 모방곡인 카피(copy)라 한다면 음악에서 모방.카피의 정의를 내려보자. 일반적으로 모티브나 테마를 이루는 8마디정도가 같으면 창작이 아닌 모방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애국가와 불가리아 민요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마디에 못미치는 3박자정도가 같은 음으로 시작된다.
숫자로 따지자면 4/4박자 기준으로 보면 4x8=32 박자이다. 그려면 3박자와 32박자는 약 10%에도 이르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안익태 선생이 이곡을 의도적으로 모방하였다 해도 카피인 저작권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론 1. 불가리아 민요의 후반부는 단조(minor)로 전조되지 않는가? 2,1935년에는 안익태 선생은 불가리아나 유럽에 가본적이 없다. 3.그 당시 교통이나 방송등의 구조로는 불가리아의 음악을 들을수도 볼수도 없었다. 4. 앞마디의 3개음의 일치는 우연의 일치이다. 모은 음악은 장조(major)와 단조(minor)로 분류 할수 있다 . 수학적으로 보면 장조는 도(1).미(3.) 솔(5)의 한음으로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3개의 원소(element)를 가진 셈이다.
여기에 7개의 음인 (도1. 레2. 미3. 파4. 솔5. 라6. 시7.)음과 조합할수 있는 숫자는 수열이나 수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한번 분석해 주시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피터 니콜로프의 애국가 모방설은 불가리아 주제 북한외교관, 공작원들을 통한 김일성의 음흉한 대한민국 정통성을 죽이기 위한 사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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