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성삼재 → 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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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신 분들의 읽을 거리로 올립니다. 2004년 6월초, 저희부부의 지리산 종주 산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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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산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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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구례군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 2,0km. |
| 노고단 대피소에서, 경남 산청군 천왕봉까지 26,2km, |
| 천왕봉에서 산청군 중산리까지 5,6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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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거리 총 33,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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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25,5km의 능선구간에는 해발 1,000m급 이상 봉우리가 20여개. |
| 그 중에서 1,500m급 이상 16개. |
| 그래서 산꾼들, 메니아의 자격시험으로 통하는 코스! |
| 1박2일 이상 종주는 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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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내에 끝내야 메니아이며 산꾼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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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능선의 다른 이름 Dream road! |
| 사시사철 꿈 같은 환상의 경관을 연출한다 하여 불리는 별칭! |
| 벽소령엔 전국 제일의 아름다운 달빛이 있으며. |
| 세석평전에는 계절마다, 또 조석으로 변하는 환상적인 절경이 있다. |
| 그리고 지리산 아니면 볼수 없는, 일명 仙界라 불리는 연하선경(烟霞仙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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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의 고사목과 주목, 그 또한 지리산의 명물로서 다른 산에선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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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부부의 체력은 대체로 양호한 편. |
| 그러나 이틀간 메고 다닐 배낭 무게에따라, 체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 |
| 아니, 그 배낭 무게가, 사실상 종주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 이틀간 먹고 마실 먹거리와, 기타 필요장비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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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산행력은 5년이 넘어 나 보다 월등하다. |
| 따라서 준비에 있어, 내가 모두 배워야 할 점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
| 오히려 모든 준비를 내 의견과 주장으로 일관 했다. |
| 아내가 비록 대 선배이긴 하나, 숙박산행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
| 군시절에 경험 했듯이, 이틀간의 산악지대 강행군은 결국 체력과의 싸움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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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무게의 중요성은 의견이 같았지만, |
| 꼭 챙겨야 할 물품들이 어떤,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엇 갈렸다. |
| 난 최소한의 물품들을 주장한 반면, 아내는 만일의 대비까지 주장하여, 배낭의 크기와 |
| 무게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
| 결국 먹거리의 무게를 줄여, 최대한 가볍게 하는 쪽으로 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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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된 내용은, |
| 라면은 대피소에서 구입, 컵라면 4개와 햇반 4개, 캔반찬류 4통, 치즈와 초콜릿 2봉, |
| 그리고 200ml 소주 5병, 오징어 마른안주 2개, 생수는 작은 병으로 2병, 1회용 커피 |
| 약간.., 그리고 버너와 코펠 일부, 손전등2개, 카메라 필름, 우의와 속옷, 또 양말과 |
| 세면도구, 관절약품 2종과 붕대등..... |
| 아내는 과일도 약간 준비하자 했지만, 난 무거워 안 된다며 단호히 배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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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힘들고 체력소모가 많은 초장거리 산행이다. |
| 게다가 처음이라서, 이 정도의 준비로 이틀간을 버틸수 있을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
| 다만 배가 고프더라도, 무거워 빨리 지치는 것 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했고, |
| 대피소 매점에서, 라면과 햇반정도는 얼마던지 구입 가능하다고 하지 않던가? |
| 그렇다면 버너가 있고 물도 걱정 없다는데, 구테어 무겁게 하여 고생할 일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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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2,0km. |
| 우리가 그 대피소에 도착한 것은 04년 6월7일 오후 6시20분. |
| 대피소에 숙박신청을 해 놓고, 저녁을 간단히 지어 먹고나니 어두워 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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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피소 옆에 나가보니, 지붕도 없이 벽만 남은 흉물스런 석조건물이 있었다. |
| 아마도 6,25 때, 지리산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건물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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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건물은 뜻 밖에도, 조선말기 천주교 탄압을 피해 들어온 성당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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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오!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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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발 1508m의 노고단 정상부근이 아닌가? 그런데 누가 왜 이렇게 무참하게 파괴했을까? |
| 우리부부는 다 허물어진 건물 입구에 서서, 한참을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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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할 때부터 우중충 하던 날씨가, 끝내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
|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대피소로 돌아오니 21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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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인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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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뒤척 저리뒤척, 새벽 4시에 일어날 때까지 얼마나 잤을까? |
|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우리도 출발 준비를 했다. |
|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빗속을 출발한 것은, 아직도 깜깜한 04시 5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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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부의 지리산 종주는, 이렇게 새벽 빗속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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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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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여름의 새벽공기는 상큼 했다. |
| 빗속에 사방은 캄캄 했지만, 그래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은 다소 부드러운 느낌! |
| 시커멓게 다가오는 길가의 나무와 넝쿨들이, 렌턴 불빛에 파랗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
| 천왕봉 가는 길은 저 윗쪽으로 끝이 안 보이는데. |
| 노고단의 KBS 탑은 가물가물 작은 빛을 꺼질듯이 뿌리고..... |
| 우의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들으며, 너덜길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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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피소에서 노고단은 약 10분 거리. |
| 소리 내어 주모경과 성모송을 하다 보니, 노고단 돌탑능선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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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숙박한 사람들은 먼저 또는 아직 출발전이어서, 주룩주룩 찬비 내리는 노고단에는 우리부부 밖에 없었다. |
| 빗줄기가 제법 거센 깜깜한 새벽 해발 1,500m 능선! |
| 어디를 바라 보아도 보이는 것은, 굵은 빗줄기와 칠흑 뿐 아무것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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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무(無)! |
| 너는 無가 뭘 뜻 하는지 아는가? |
| 그리고 네가 산에 온 것은, 필시 버림은 없이 얻기만 하려고 온 것은 아닌가? |
| 그동안 제법 세상을 살았으니,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
| 오늘 이 지리산에서 무엇을 버릴 것인가? |
| 또 무엇을 얻어 가려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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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은 나를 끝 없는 상념으로 몰아 간다. |
| 내 솔직히 고백 하건데, 버림은 생각 못했고 뭔가 얻으려 한 것은 사실이다. |
| 그렇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
| 티끌 세상을 사는 모두가 다 어리석은 것을! |
| 그러나 난 오늘 이 시간부터, 우선 헛된 욕심과 집착을 버릴 것이다. |
| 그런 다음에 얻고자 할 것이니, 부디 그 정도로 용서 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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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턴에 비치는 길가 나뭇잎들이, 차가운 빗물에 떨고 있었다. |
| 그리고 지나가는 우리들 옷깃을 잡아 할퀴며, 바지에 사정없이 빗물을 털어 버린다. |
| 그 때문에 바지가 곧 흠뻑 젖었지만, 짊어진 배낭이 젖어서는 안될 일. |
| 그래서 우의 속에 배낭을 넣고 보니, 그 모습이 마치 꼽추와 같아 우스꽝스럽다. |
| 우리의 이 행색은 도대체..... |
| 비 내리는 새벽 산속에서, 이 무슨 청승이며 미친짓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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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미로를 헤치듯, 1시간쯤 숲길을 가다보니 무슨 팻말이 나타났다. |
| 돼지평전(平田). |
| 안내판에는 맷돼지들이 뛰노는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라 했다. |
| 아직 어두워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글쎄..? 이곳에 맷돼지들이... ? |
| 거참! 다람쥐라면 몰라도, 맷돼지는 커녕 산토끼 한마리 얼씬 하지 않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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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은 물론 평일도 사람이 많은데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이렇듯 탐방객들이 들 끓고 |
| 있는데, 겁 많은 맷돼지들이 이곳에 나와 뛰어 놀겠는가? |
| 전국 산꾼들의 지리산 산행은 주말도 평일도 없으며, 물론 밤 낮도 가리지 않는다. |
| 그렇듯 사시사철 주야로 사람들이 빈번한 곳인데, 무슨 맷돼지들이 뛰어 논단 말인가? |
| 하긴..옛날엔 그랬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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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전에서 20여분 더 가면 피아골 3거리가 나온다. |
| 그리고 저 아랫쪽 계곡에는, 6,25 때 남부군 빨치산 본거지가 있어서, |
| 피아간에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고. |
| 그거 참! 그렇더라도, 하필이면 이름이 으스스 하게 피아골인가? |
| 그래선지 아직 밝지 않아 어두운 숲속에는, 지금도 갈곳 잃은 많은 원혼들이 떠도는 듯 |
| 음산한 느낌이 들어 더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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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에서 약 5분쯤 가면 임걸령. |
| 그곳에는 제법 넓은 안부와 헬기장이 있다. |
| 그런데 고개 이름이 임걸령이라..... |
| 임걸령은 사람이름 아닌가? 여기 지명들은 참으로 '요상' 하다. |
| 아무튼 능선에는, 종주 전 구간에 걸쳐 물맛이 좋다는 샘이 흐르고 있다. |
| 해발 1,320m 고지대에, 그것도 수량이 풍부한 샘이 흐른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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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이라 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다. |
| 샘터는 매우 깨끗이 사용되고 있었고, 바가지까지 두개가 얌전히 놓여 있었는데. |
| 물맛이 차고 맛이 너무 좋아, 한 바가지를 그냥 후딱 다 마셔 버렸다. |
| 그런데 뭐가 잘못 된 것인지 갑자기 배가 싸르르...!! |
| 아마도 오면서 간식으로 먹은 것이, 갑자기 찬물과 만나면서 문제가 된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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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쩜 샘가의 나무들이, 맛 좋은 물만 먹고 그냥 가면 안 된다 그것? |
| 허허 참!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
| 그렇군! 너그들이 바라는 건 카드나 현찰은 아닐 터, 그래서 요것들이 물에다 약을? |
| 그렇더라도 이렇듯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내참! |
| 하지만 녀석들은 인정사정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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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어쩔건가? 젠장맞을! |
| 빗줄기를 무릎쓰고 큰 나무 아래로 냅다 뛰었다. |
| 결국은 찍소리 한번 못하고, 녀석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내어 주고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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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의 노루목에 도착한 것은 07:05분, |
| 이곳은 평범한 좁은 길목, 근데 노루목이란 뭔 뜻? 노루들이 논다고 붙여진 것일까? |
| 그게 아니고 앞에 우뚝한 산 형세가, 마치 노루를 닮아 그리 이름 했다고 한다. |
| 그리고 노루목은 주능선을 약간 벗어나, 1,732m 반야봉으로 가는 삼거리이기도 하다. |
| 반야봉은 지리산의 5번째 봉, 결코 빼 놓고 말 할수 없는 매우 높고 멋진 봉우리! |
| 노루목은 아마도 그 때문에, 산꾼들에게 더 널리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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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주봉은 천왕봉(1,915m). |
| 두번째가 중봉(1,874m). |
| 세번째는 제석봉(1,808m). |
| 네번째가 하봉(1,781m)이고, 다섯번째가 반야봉(1,732m)이다. |
| 그러나 우리는 반야봉을 옆으로 제치고 계속 전진. |
|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되어 다음으로 미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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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목에서 三道奉(1,550m)은 약 20분 거리, |
| 약간 오르막이지만 힘들지 않게 얼마를 가니, 앞에 크고 넓은 바위가 나타났다. |
|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삼도봉! |
| 여느 표지와 달리 특별히 제작된, 구리로 만든 삼각뿔 형의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
| 그래서 사람들이 그냥 가지 않고 한번씩 만지는 바람에, 삼각뿔의 끝 부분이 녹이 |
| 생길 겨를이 없이,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
(3) 가도가도 한없이 이어지는 길...
삼도봉을 내려서면 길가에 야광나무가 있다고 했다.
5월에 꽃이 피며, 밤에는 그 꽃이 멋지게 빛을 발산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지금은 아침이라 야광을 볼 수는 없다.
아무튼 그 나무 열매를 산새들이 무척 좋아 한다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음은 화개재(1,315m).
화개재에는 뱀사골 대피소 이정표가 있다.
옛날에 능선 양쪽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이곳에서 했다던가?
지금은 계곡아래 저편 화개장터로 옮겨 갔지만, 하필이면 이토록 높은 장소에서?
우린 가벼운 배낭하나 달랑 짊어지고도, 이 능선을 안간힘을 쓰면서 올라야 하는데.
옛 사람들은 무거운 장짐을 짊어지고 올라와, 이곳 능선에 장터를 세웠다고!
시간은 어느덧 08시.
물이 있는 뱀사골 대피소는, 까마득한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있는 모양.
내리막 입구 이정표에, 대피소까지 250m 라고 되어 있었다.
계단길은 등산객들을 매우 지치게 한다.
그리고 이 처럼 길고 턱이 높은 급경사 계단은, 초보자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산꾼들도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단길은 전문 산꾼들도 힘들게 마련이며, 아무리 경험이 많다해도 피로가 쌓이다 보면
뜻 하지 않게 관절을 다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지리산 장터목에서, 내가 발목을 접질러 고생을 한 것도 계단 때문이었다.
즉 사진을 찍다가 계단을 모르고 헛 밟아 넘어졌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다친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피곤했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삼도봉에서 뱀사골 대피소(화개재) 입구까지 약 25분.
그런데 뜻 밖에도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내려가는 계단길 250m 안내판을 보더니, 또? 하며 한숨을 내쉬지 않는가?
지나온 길에도 계단길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 계단들이 많이 힘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간 밤에 잠을 설친데다, 새벽부터 2시간을 계속 빗속을 걸어 왔으니....
그러나 지금은 아침 먹기 딱 알맞은 08시, 그런데다 약간 좀 출출했고 또 다음의
샘터까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계단은 급경사 수직으로 나 있었으며, 턱이 높아 잘못 하다간 관절 다치기 안성맞춤!
이왕 만들려면 갈지(之)자로 하던가, 턱을 좀 낮추어 쉽게 했으면 좋을 것을.....
하긴, 뭐 이런저런 산행길에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오지말라 그 말 아니겠는가?
비 안개에 묻힌 뱀사골 대피소는, 건물 윤곽만 흐릿하게 보였다.
뱀사골!
거참, 골짜기나 산장 이름들이 왜 모두가 칙칙하고 음산 할까?
이름만큼이나 지저분하고 깨끗치 못한 대피소, 정말 뱀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
어제밤 묵었던 노고단에 비교하면, 관리가 너무나 형편없어 한마디로 엉망 개판이었다.
식사준비를 위해 취사장에 들어가 보니 이건 도대체가?
그리고 밖에도 역시, 누군가 방금 버린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하지만 달리 장소가 없어, 그 쓰레기더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식사준비를 하는데, 그곳 직원인듯 싶은 남자가 와서 한마디 했다.
" 식사 후에 옆의 그 쓰레기를 꼭 가져 가셔야 합니다? "
마땅한 취사장소가 없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겨우 참고 있구만?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이 양반이?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우리보고 가지고 가라?
그럼 당신네들이 여기서 하는 일이 뭔가?
물론 버리지 말라는데 버리고 간 사람들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 다음에 온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벌컥 하려는 나를 아내가 제지 하면서,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여 겨우 무마.
기상급변과 조난자 구조를 위해, 능선 요소마다 세워진 대피소.
대피소는 모두가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직영하는 줄 알았는데, 일부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뱀사골 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튼 평소 필요한 소양교육은 받았을텐데, 힘 들게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그렇듯
앞뒤 확인 안 하고 성질나게 지껄이다니....
공원에선 관리비(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쓰레기를 각자 되 가져가라 하는 것은, 그건 정말 이해 하기 어려운 일.
필수 장비와 먹거리만 해도 어깨가 무거운 산행객들에게, 쓰레기까지 각자 며칠씩 갖고
다니다가 하산하여 버리라고!
만일 누군가 산에다 버리고 가면 어찌 할 것인가?
이건 아니다. 어떤 방법을 찾더라도, 그 일은 당연히 관리소측에서 해결할 일.
다시 계단을 올라와, 토끼봉(1,534m) 가는 길은 매우 험했다.
고도를 높이며 계속 올라가는 너덜길은, 한시간은 족히 소요되는 멀고 먼 길이었다.
대피소를 8시50분에 출발했는데, 토끼봉에 도착한 것은 약 한시간후인 9시45분.
그런데 토끼봉이란 이름의 연유가 희한했다.
들은바로는, 봉우리 위치가 12간지(干支)의 묘(卯:토끼) 방향에 있어서라고!
여하튼 정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바위가 매우 특이했다.
토끼봉에서 다음 명선봉(1,586m)까지는 약 30분 거리.
명선봉에서 휴대폰을 보니, 밧데리를 아껴 사용 안 했는데도 눈금이 한 개만 남았다.
고지대는 사용을 안 해도 밧데리 소모가 매우 많은 모양.
그래서 비상시를 위하여 아예 꺼 두었다.
총각샘은 명선봉 뒷편으로 20여m 내려가 있어서, 물 맛도 못 본체 지나치고 말았고.
烟霞泉(1,440m), 연하천이란 무슨 뜻일까?
명선봉에서 나무로 된 길고 긴 계단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넓고 아늑한 안부에 아담한
연하천 대피소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산장 앞에는, 수량이 매우 풍부한 약수가 흐르고 있는데.
그 물 맛이 매우 뛰어나며, 이 연하천 대피소 역시 어느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선지 연양갱 하나가 시중의 서너배가 넘어,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란 느낌....
연하천은 명선봉에서 거의 수직으로 한참 내려와 있는데, 어인 일인지 이건 하산길이
아닌가 할 정도로, 계속 한 없이 또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방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어, 아무리 불안 해도 방향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조금후 뒤 따라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니, 천왕봉 가는 길이 맞다고는 하는데.
젠장! 이렇게 많이 내려가면, 어딘가에서 또 그만큼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내려가는 길이 수월하다고, 희희낙낙 좋아 할 일은 하나도 없다.
(4)하느님! 도와 주소서!!
얼마 후부터 예상대로, 높은 삼각봉을 향하여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무릎이 이상하다고!
어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직 전체의 절반도 못 왔는데, 벌써부터 고장나면 남은 길을 어찌하나?
급히 물파스와 패취를 바르고 붙이면서, 하느님께 제발 도와 주십사 기도를 드렸다.
아내는 아직 대단치는 않다고, 너무 걱정말라 했지만 그래도 아닌 것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
종주구간 중간쯤이 벽소령, 우리는 아직 벽소령 도착전인 것이다.
벽소령은 아직도 1시간 이상, 거의 2시간을 더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이제 아쉽더라도, 우리가 세운 구체적 종주계획을 무시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최대한 속도를 줄여, 119구조대 신세를 지지 않고 자력으로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던가, 그것도 여의치 못 하면 하산길을 찾는게 현명하다.
그런데 아내는 아직은 견딜만 한듯, 속도는 느려도 그런대로 잘 걷고 있는데....
아무튼 무릎에 최대한 부담을 줄이며, 조심조심 돌 투성이 너덜길을 통과하여 형제봉에
도착 한 것은, 두 시간이 지난 오후 1시, 천천히 걸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무릎도 쉬게 하고 점심도 할겸, 형제봉(1,442m)바위 밑에 자리를 잡아 식사를 하는데,
어제밤부터 오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온 종일을 계속 내렸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무릎을 점검한 다음 벽소령을 향하여 출발 했다.
벽소령(1,340m)!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달과 별을 볼 수 있다는 곳!
그러나 벽소령 가는 길은, 우리가 지나온 코스중에서 제일 힘들고 가파른 난 코스.
특히 마지막 4~50분은, 빗물에 미끄럽기까지 하여 정말 힘 들었다.
게다가 빗줄기도 굵고 바람마저 세차서, 무릎이 아픈 아내는 얼마나 힘 들었겠는가?
벽소령 산장은 이름처럼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대피소 예약이 안 되어, 우리가 오늘 밤 숙박 할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예약한 곳은 장터목 대피소, 하지만 아내는 힘들다며 벽소령에서 숙박 하자고 했다.
그러나 오늘 밤 이곳에 사람들이 많아, 우리를 재워 줄수 없다고 거부하면?
비는 더욱 거세지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한기까지 느껴지는 상황인데 밤이 되면?
한참동안 쉬고 주님께 기도를 드린 다음, 숙박이 확실한 다음의 세석 대피소로 향했다.
벽소령에서 세석 대피소는 약 3시간 거리.
그 능선은 지금까지 어느 구간과 비교 안 되는, 조망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 올 턱이 없다.
선비샘까진 대체로 완만하여 쉽게 걸었으나, 다음의 덕평봉 길은 한마디로 지겨운 길.
비 안개와 숲으로 둘러 쌓인 바위 투성이 오르막 너덜길은, 조망은 커녕 한 낮인데도
한 밤중 처럼 어둡고 칙칙 하기만 했다.
덕평봉(1,521m) 다음은 칠선봉(1,558m).
그리고 칠선봉에서 영신봉(1,651m)까지 등로는, 정말 매우 가파르고 험 했다.
조망은 시원한데 비구름 때문에 보이는 것이 없고, 연속되는 오르막 너덜길은 너무나
힘 들어, 설사 구름이 없다 해도 구경할 형편이 못 되었다.
아무튼 가파른 바위 투성이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시간을 잊은 체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빗속에 흐릿하니 세석 대피소가 나타났다.
해발 1,545m 세석산장에 도착한 것은 6시20분.
건물이 매우 크다 해도, 자욱한 비구름에 묻혀 전체 윤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얼마나 고대하던 대피소인가, 이제는 살 것만 같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당사자인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던
터라,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또 드리고 몇번을 계속 드렸다.
아직 산행이 끝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후 문제는 그때 가서 또 풀어가면 될 일.
세석 대피소 역시, 우리가 사전 예약을 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크고 넓은 대피소인데다, 오늘은 비 때문에 사람이 적을 것 같아 애당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방 여유가 많아, 잠잘 방과 번호를 배정 받고나서 저녁준비를 시작 하는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식사를 하던 젊은 남자들 4명이 술 한잔을 권 해 온다.
그들은 오늘 오전까지,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 오후에 앞서 간 종주 동료들.
비가 많이 오시는데도, 정말 무사히 잘 오셨다면서 한잔 권해 오는데.
이젠 우리도 긴장이 풀어져 기분 좋게 그 잔을 받았다.
그리고 나 또한 가저온 술을 내놓아, 주거니 받거니 200ml 4병을 모두 비워 버렸는데,
그러다가 결국은, 그들에게서 저녁까지 얻어 먹게 되어 하려던 저녁은 취소.
마침 아내 몸이 불편한 상태라, 우리에겐 정말 다행이었고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몇잔 술에 거나 해지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건 지극히 당연.
그들은 인천공항의 직장 동료들이며, 연령은 대략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오늘 우리를 처음 보고서, 정상 커풀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자기네끼리 쑥덕였던 모양.
마신 술의 힘을 빌어 드디어 '과감하게' 그 궁금증을 풀고자 물어 왔다.
" 저..대단히 실례되는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흐흐...뭐, 그 '실례' 하겠다는 질문 내용은 들어 보나마나지만.
하지만 모르는체 하며, 괜찮으니 사양말고 뭐든지 말 해 보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양해를 해 주었는데도, 그는 그래도 진짜 너무 실례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사모님이 정말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헛참! 그 말이 뭐가 그리 대단한 실례인가? 오히려 기분 좋은 말 아닌가?
아마도 그건, 내 마음을 미리 좀 풀어 놓겠다는 심산일 터.
취중인데도 조심하여 사전에 초를 치는 것을 보니, 세상을 잘못 살진 않은 듯 하이!
이제 그 정도면 되었다 싶었는지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실례지만 두분 사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헛참? 어떻게 되긴?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렇지 우린 부부라고.
그리고 아예 말 꼬리를 줄이기 위해, 12살 띠동갑이라는 것까지 미리 말해 주었다.
"예 에,,! 아 그렇군요, 두분께서 같이 산행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좋고 또 부럽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뭔가 더 아쉬워 하는듯 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들과 기분좋게 마시고 대취하여 잠자리에 든 것은 21시경.
새벽에 좀 더 누워 있고 싶어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 때문에 더 자기 어려웠다.
게다가 무릎상태가 어떤지 걱정되어 둘러보니, 벌써 일어나 모포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난밤 한숨도 못잔 상태라, 피곤하여 충분히 잘 잤더니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고 했다,
아마 오늘 산행은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오! 하느님 감사 합니다, 제발 오늘도 도와 주소서!
(5) 비는 어제도 오늘도...
비는 오늘도 계속 내릴 모양, 빗줄기가 매우 세차다.
아침을 다음의 장터목에서 먹기로 하고, 06시05분에 빈 속으로 출발했는데.
세석에서 촛대봉(1,703m)까지는 약 20분 거리, 하지만 비 때문에 촛대봉이고 나발이고
보이는건 오직 자욱한 비구름 뿐, 따라서 가는 도중에 볼 것이 없는 상황.
참으로 애석한 일은, 세석에서 촛대봉과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경관이 천하제일이라
소문난, 일명 '연하선경(烟霞仙境)' 그 경관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촛대봉은 영신봉보다 50m 더 높다.
그리고 곳곳에 깔딱고개가 있었고 철계단도 많았다.
그까짖 짧은 깔딱이나 철계단은 문제가 아닌데, 오직 아내의 무릎이 걱정인 것이다.
물론 아내도 평소 같으면, 그 정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지금은....
촛대봉과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에 이른 것은, 약 한시간 반이 지난 07시40분.
대략 한 시간이면 되는 거리를, 우리는 지금 세월아 네월아 노래를 부르고 가고 있다.
연하봉(1,730m)!
출발전에 이곳은 지리산 10경에 속하는 절경이라 들었다.
그러나 오늘 본 연하선경은, 희미한 산 그림자와 자욱한 비구름 뿐… … …
그리고 걷기 힘든 돌계단과, 징검다리 너덜지대만 끝 없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능선을 넘어가는 비구름들 사이로, 가끔씩 살짝살짝 얼굴을 내미는 경관!
우린 그 정도만으로도 진정 감탄을 금 할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애타게 기다리는 건 장터목 대피소.
나타날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장터목, 그것 참, 3,4km가 이토록 먼길 일 줄이야!
기다리면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일까?
하여튼, 어찌어찌 겨우겨우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 건, 출발 후 두시간이 지난 8시10분,
이곳은 옛날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함안군 마천면 사람들이 서로 물물교환을 하던 곳.
화개재도 그렇던데, 글쎄...그들은 왜 이렇듯 높은 능선위에 장터를 세워야 했는지?
간단히 아침과 휴식을 한 다음, 9시에 다시 무릎을 다독이며 천왕봉으로 출발.
처음은 제법 가파른 급경사였지만, 곧 밋밋한 능선길로 변했다.
이곳부터 좌우로 펼쳐지는 장터목의 유명한 고사목 평전!
원래 이 평전은 아름다운 구상나무 숲으로,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했다고 하던데,
옛날 자유당시절, 어느 힘있는 고관이 벌목을 하고 그를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
그때 타고 남은 구상나무들이, 지금 이렇게 멋있는 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 참,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여하튼 주목과 죽은나무들이 한데 어울린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동양화였다.
게다가 운무까지 멋지게 휘장처럼 드리워져, 말 그대로 무릉도원 선경이 따로 없었다.
나는 정신없이 셔터을 누르고 또 눌렀다.
비록 사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처럼 아름다운 경관들을 놓쳐서 될 일인가?
능선의 세찬 바람에 춤추는 운무(雲舞)! 넋을 잃어버려 한참동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제석봉(1,808m)!
멋진 주목군락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큰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이 암봉은 높이와 생긴 모습 모두가, 사람들이 홀대를 해서 좋은 봉이 절대 아니다.
천왕봉과 중봉(1,874m) 다음,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바로 제석봉이니 말이다.
따라서 충분히 유명세를 타야 할 멋진 암봉이건만, 애석하게도 제석봉 바로 옆에는
최고봉인 천왕봉이 있어 빛을 잃고 있었다.
통천문(通天門)!
제석봉을 지나면, 소위 하늘로 '통' 한다는 커다란 바위문이 있다.
천계로 들어가는 거창한 바위 문!!
그러니까 저 문을 통과하면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나라가 된다.
그런가? 그럼 어서....
정신 없이 서둘러 천계에 들어서 보니?
천상은 사시사철 꽃이피고 새가우는 아름다운 낙원이라고 들었는데?
아니다 여긴! 하늘나라가 뭐 이런가?
내가 본 그곳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짙은 구름과 희뿌연 운무(雲霧) 뿐 ………!!!
아! 그런가?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구름속에 흐릿한 좁은 저 계단길을 더 올라야!
그래? 저 길이 천계로 가는 마지막 계단?
여기까지 온 이상, 천계든 지옥이든 연옥이든 끝까지 갈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좀 이상하다? 이 길이 혹시 지옥길 아닌가?
멋지고 아름다운 꽃길이 아니지 않은가?
젠장! 울퉁불퉁 검으틱틱.... 험악한 바윗 길이라니!
그래도 이제 어쩌겠는가?
끝장을 보기로 이미 작정한 것을.
오히려 바위 계단길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천왕봉(天王奉)!
이름하여 하늘의 임금님! 즉 하느님께서 계신 봉우리!
오! 여기가 바로 그 천....상!
그럼...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거 참!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으음!
아아! 그런가...? 어쩜 그럴지도,,, 그래,, 그렇군!
맞아! 그럴꺼야! 틀림 없이 그것이다!
천상세계는,
인간들이 생각하듯, 당초부터 그런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1년내내 형형색색의 꽃들로 어우러진, 그런 꿈속의 무릉도원이 아닌 것이다.
무릉도원은 하찮은 인간들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허상일 뿐.
하느님은 원래부터 미추(美醜)를 초월하신 분이시다.
천상은.
이곳 천왕봉 처럼 언제나 운무(雲霧)에 가려진 곳!
그 분은 항상 이 처럼 보이지 않는 무(無)의 공간에 거 하시며.
당신의 형상 또한,
당신 허락 없이는 볼 수 없는 무형(無形)으로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주의 창조주,
이 세상의 절대자로 영원히 현존하시며.
모든 삼라만상을 섭리(攝理)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
우리부부는 정상 표지석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 때문에 구름이 자욱하여 사방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리는 두터운 구름속에 서 있는 것이다.
모자를 벗으니 이마에 곧 이슬 방울이 맺힌다.
그리고 곧 차고 강한 바람에 한기를 느껴야 했다.
하느님은 어쩜 우리더러 그만 빨리 이곳을 떠나라 하시는 것인지도!
그러나 우린 바로 떠나지 않았다.
정상 표지석을 끌어 안고 멋지게 사진을 찍어야 갈 것 아닌가?
그렇듯 고집 부리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가벼운 장난을?
계속 강한 비바람을 몰아와, 모자와 머리칼을 마구 날려 버리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욱 옹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생떼를 쓰고 억지를 부렸더니, 결국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주셨다.
원래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가?
지리산 종주!
돌아보면 정말로 힘 들었던 1박2일이었다.
뜻 하지 않았던 무릎 고장으로, 더욱 괴롭고 힘 들게 마친 구십리길 종주....
아무튼 우리부부는, 지리산 능선 전 구간을 완주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목표점 천왕봉 표지석 앞에 선 우리부부에게.
하느님께서 축하의 꽃비를 내리시며 환영해 주신 것이다.
정상 도착 오전 10시10분.
종주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리는 비는 우리를 많이 힘들게 했다.
그러나 초여름의 더운 날씨에서, 종주길을 덥지 않게 도와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또한 하느님의 배려가 아니셨는지?
아내의 무릎 문제도 있었던 만큼, 우리부부는 그렇게 믿어 조금도 의심않는다.
우리는 정상에서 약 20분쯤 머물다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정확히 5,6km.
비는 계속 그치지 않고 내리는데, 그런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리막 길은 빗물에 젖어 매우 미끄러웠다.
결국 앞에 가던 아내가 주루룩 넘어졌는데, 아마도 다리가 많이 아파서 일 것이다.
그래도 배낭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우리는 법계사에 들려 잠시 쉬어 가기로.....
법계사는 해발 1,600m급에 있는 작은 사찰.
따라서 전국에서 제일 높은 위치의 절이고, 몇 안 되는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절은 보잘 것 없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있다는 그 자체로서 유명한 절이다.
우리는 절 앞에 있는 샘물을 마신 다음, 다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발을 씻었던 계곡에서, 이틀 동안 못 했던 세수도 깨끗이 하고.
종주 성공을 자축하여, 하이 화이브를 하면서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지연 되었지만, 그건 아내의 무릎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오히려, 그 큰 고통을 참으며 자력으로 끝까지 완주하여, 지리산 종주를 성공시킨
의지와 집념에, 더 할수 없는 고마움과 찬사 그리고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 장장 90리의 장거리 산행을 무사히 마칠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중산리 이후의 귀가 경로는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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