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게임 [2]

외론 별·2006. 8. 12. 오후 8:03:14

바둑이 도(道)인 이유!

 

 

사실 4점 바둑에선 정석이 없다.

나는 그의 성격이 치밀하지 않음을 고려하여 물래방아를 돌렸다.

물래방아는, 바둑판 네귀와 네변을 매 수마다 빙빙 돌며 집중력을 흐리는 전법이다. 

 

 

마구 놓는 듯한 그 수에는 함정수가 있으며,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초석도 된다.

그것을 눈치 체지 못하도록, 별것 아닌 듯한 수를 고르느라 신중에 신중을 더 했다.

또 최대한 시간을 끌어 지루하게 두었는데. 그는 돌을 놓기 무섭게 순식간에 두었다.

 

 

어쨌던 아무래도 양심상 조금은 미안했던 모양.

가끔은 일부러 실수를 가장하여 헛수를 두는 여유도 부렸다.

물론 그만큼 여유가 있고 자신만만 하다는 뜻이다.

 

 

그가 그동안 대충대충 두는 듯 했어도 그건 아니었다.

요소 요소 중요한 곳은 빠짐 없이 다 챙겼음은 당연.

하지만 성곽 안에 고공침투한 특전단 요원들만은 '웃기네?'하고 비웃으며 무시했다.

 

 

판이 중반에 들어서고 보니, 바둑판 중앙은 넓은 신병훈련소 연병장!

또 높고 웅장한, 견고한 성곽으로 철옹성을 구축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서, 고립무원의 일단의 부하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형세.....

 

 

여건상 성내의 독립진지는 어렵다고 판단, 성문을 열어 부하들을 탈출 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취약한 성벽 한쪽을 부수려 하는 것으로 오인토록 유도.

난 폭파 전문가 닌자(刃者) 4인을 선발, 성벽아래 묻어 둔 것들을 폭파하라 명령했다.

 

 

장고(長考) 끝에 내린, 필생필사(必生必死) 옥쇄작전!

그만큼 대비가 철저하고 엄중하여, 전략이 탄로나면 작전실패는 물론 살 길이 없다.

4인의 닌자를 침투시켜, 한개씩 폭파시키면서 주의를 끌고 혼란을 유도해야 한다.

 

 

그 다음 5번째와 6번째 닌자! 즉, 5번째 6번째 수가 작전 승패를 가르는 수.....!

5번째 그의 임무는,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밖으로 유인하는 것. 

즉, 암수이며 함정수인 5번의 '짱돌' 에, 수문장'이 누군가 하며 밖으로 나와 주면!

하지만 진정한 강자들은, 절대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난 전 병력을 성곽 허물기에 계속 집중시켰다.

그러다 생각난 듯, 슬쩍 성문쪽을 가볍게 한번 두들겨 보고.....

이윽고 작전대로 5번과 6번닌자가 목표지점에 가까스로 안착.

수문장의 암살은 곧 팻싸움을 의미, 팻깜은 나에게 많아서 승리를 뜻함은 물론이다.

 

 

어느 듯 사람들이 바둑판 주위를 빙 둘러 관전하는데.

꽁도 상대와 게임이 끝났는지, 아까부터 조용히 내 옆에서 관전하고 있었다.

관전시 훈수는 절대 금물, 잡담도 금지며 조용히 보기만 하는 것이 기본 예의.

 

 

갑자기 꽁이 내 옆에서 상대 옆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로서, 누구도 그와의 신채 접촉을 차단했다.

그건 은밀한 훈수를 막기 위한 조치, 자기 상대였던 그를 경계함은 물론이다.

혹시라도 등을 꾹꾹 찌르거나, 발끝으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는 일.

 

바둑은 일종의 심리전.

말 없이 손끝으로 나누는 수담이라 하지만, 실제는 감정의 영향을 무시 못한다.

닌자가 수문장 막사에 '짱돌'을 던지자, 유리창이 깨지며 그가 머리를 내밀었다.

 

 

5번 닌자 임무 성공!!!

그 순간 6번 닌자 '면돗날' 표창이, 그의 이마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가 깜짝 놀랄 큰 소리로 꽁이 탄성을..!!!

 

 

관전자들은 모두 꽁의 친구, 또는 후배들이나 다름 없다.

그 기원의 단골로서, 꽁의 친구인 내가 승리하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을 터.

하지만 그때 그들은, 꽁이 왜 큰 소리를 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표창을 맞은 그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금방 사색이 되어, 꼼짝 않고 바둑판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꼼짝 않은체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해괴한, 기괴망칙한 일이 벌어졌다.

그 친구가 내 앞에, 두 무릎 팍 꿇고 용서를 비는 게 아닌가?

3판까지 잃은 것으로 끝내고, 마지막에 걸었던 것은 봐달라며 사정을 했다.

 

 

너무도 뜻 밖의 일이라 난 처음엔 당황.

관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욕하는 소리들이 시끄러운데.....

특히 나이 지긋한 주인의 호된 야단이 찌렁찌렁 울렸다.

 

 

난 물론 깎아 주거나 봐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턱 없이 여러 급수를 속인 짓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약간 속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같은 뻔뻔한 사기는 나도 처음인 것이다.

 

 

보기도 싫어 카운터로 가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이 바둑판 밑에 넣어 둔, 내가 딴 것 모두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계속 텅빈 지갑을 보이며, 집에 갈 차비도 없다며 제발 봐 달라고....!

 

 

꽁도 상대할 가치도 없다며 그만 집에 가자고 했지만.

그러나 조금 후 평상을 찾은 나는, 그에게 일어 나라 하고 모두 돌려 주었다.

그리고 기료와 기타 비용등을 내 돈으로 계산했다.

 

 

그 때까지 있던 사람들이, 절대 그러지 말라 했지만 난 듣지 않았다.

만일 내가 땄다고 저 더러운 돈을 받으면, 내 지갑이 나를 욕할 것이라고!

내가 한 말을, 그들은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늦었다면서 주인이 맥주 몇병을 사 왔는데.

그리고 주인은 계속 나를 나무랬다.

왜 알지도 못하는 그런 못된 놈과 내기를 두었느냐고......

 

 

난 주인의 어떤 말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꽁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내 대답까지 대신하면서 계속 떠들었다.

꽁도 역시 제의를 받았다는데, 처음 본 사람들이라서 거부했다고.

 

 

우리는 늦게 돌아 와 꽁과 둘이서 한방에 잤다.

잠 들기 전에 꽁이 말했다.

 

 

"서울 가서도, 오늘 같은 내기는 다신 하지 마!"

 

 

나는 대답했다.

 

 

"글쎄.....

 아마...그건 장담 못해! 어떤 놈이 또 내 자존심을 건들면...."

 

 

"너도 바둑을 왜 도(道)라 하는지 알잖아?"

 

 

"알지 물론, 근데 바둑이 정말 도 맞나?"

 

 

"암만, 그렇잖아! 그 사람이 왜 너에게 4점이나 깔고 졌냐?"

 

 

"....자만이지! 자신있다고 여유를 부리며 까불다가 당했으니까..."

 

 

"바로 그거여! 암튼 너도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어..."

 

 

이번 여행 목적은 두가지였다.

첫째가 꽁과의 재 대결, 다른 하나는 꽁 부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꽁은, 이번에는 나와의 바둑 대결을 원치 않는 듯 했다.

 

 

"난 너하구 만나는 것이 엄청 어렵잖어?

 그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바둑으로 다 보내냐? 그건 안돼!"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리고 배가 터지도록, 이곳저곳 맛있는 식당으로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은 집들과, 건물들을 구경시키고 소개하느라 바빴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참았다.

꽁이 왜 이렇듯 구경과 소개를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열차로 상경.

역전까지 배웅나온 꽁이 열차표를 끊어 주었다.

물론 꽁의 부인도, 어린 아이와 함께 나와 주었음은 물론이다.

 

 

-----------------------------------

 

 

<후일담>

 

기원에서는 오랜기간 두고두고 화재가 되었다는데.

그 이야기만 나오면, 꽁은 무조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난 두번 다시 갈 기회가 없었다.

ndefined

댓글 2

박요한·2006. 8. 12. 오후 9:18:36

기보까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멋진 해설로 상황을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바둑이 나와 예전의 그런 분위기로 두는 경우가 드믈지요. 바다건너 기우와 시공을 건너띄고 버둑을 편하게 둘 수 있어요. 다만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가끔 들어가 보기는 하는 데 18줄은 엄도가 않나고 기껏 9줄로 마음이 맞으면 12줄로 두지요. 주로 중국사람들이 많지요.^^*

외론 별·2006. 8. 12. 오후 10:03:28

기보...저도 그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사실 당시는 명국 기보 두세국은 항상 암기하고 있었는데...그정도 암기력이 잇었음에도 그 생각을 못했어요...근데 9줄바둑 12줄은 순장바둑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전 19줄외엔 그런 바둑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런 바둑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요.. 당구도 4구와 3쿠션다마만 쳤지, 포켓이니 뭐니 하는 것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