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저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1, 본문 서두에 가톨릭 신자가 된 유다인 이야기를 하면서
"가톨릭 교회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탱해 주는 '다른 어떤 존재' 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어
그러한 일이 '가톨릭 교회가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 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주님께서 노여워 하실 행위를 계속 하는데도 망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흥하고 있는 일들이 많고 흔합니다.
우선 우상을 섬기는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에서 수천년의 여러 토속신앙들이 건재함은 물론 점점 더 세를 확장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자신 밖에 모르는 부자들이 많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재한 이들이 대부분이며
또 높은 자리에 있다 하여 권력을 마구 휘둘러 힘없는 약한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들은 언젠가 가난해 지고 권력을 잃을 수 있는 일이므로 논 외로 하더라도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과 각국의 전통적 무속신앙들이 가톨릭 교회보다 더 오래인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즉 '다른 어떤 존재'는 가톨릭교회만 특별히 사랑하시지 않으신다는 근거가 된다는 거지요.
그 분은 언제나 당신의 창조물 모두에게 비(雨)를 내리시듯 사랑과 자비를 배푸시며 선(善)으로 이끄십니다.
또한 당신의 그 뜻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인간에게 주시고 따르고 따르지 않고는 자유의지에 맏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가톨릭 교회에 문제가 많은데도 '다른 어떤 존재가 돕고 있음' 에 대해 예를 들려면
'교회의 그러한 상황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예를 말해야' 설득력이 있고 모든 이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2,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거룩한 인물들'이 출현했는 데
반대로 태평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면 그때 그 인물들이 필요없으므로 출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출현했더라도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어 거룩한 인물이 될 수 없었겠지요.
교회 역사가 말하고 본문도 언급했듯이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주님께서 거룩한 인물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가톨릭 교회만 사랑하시어 보내신 것이 아니라 다른 일들에도 똑 같이 보내 주셨음을 말하는 것이며
그 한 예이고 대표적인 인물이 풍전등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입니다.
위대한 순교자와 신앙선조들이 그랬듯이 이순신 장군도 몸과 마음으로 간구했고 들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사례는 가톨릭교회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외국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사랑이시고 선이신 분이시므로 당연한 일이며 세상은 그 분의 그것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던 옛날 선인들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면서 온 힘과 정성을 다 하라고 했지요.
그 때문에 주님께서 가톨릭을 특히 더 사랑하신다는 예로서 유다인 이야기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는 항상 정화(淨化)되어야 한다.'(교회헌장 8항)고 고백한 것은
지도부 뜻도 물론 있었겠으나 교회의 주체인 신자들 염원을 지도부가 수용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교회 최고 지도부가 추기경으로 구성돼 있고 추기경은 각국 또는 주요 지역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국가 및 지역 교구와 신자들 신앙생활을 도우며 여러 교회쇄신 건의도 들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을 비롯한 교회 최고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하고 선언을 했다면
신자들의 염원을 지도부가 검토하고 검증하여 결정한 것이지 지도부 몇몇이 결정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정화' 선언도 전 세계 신자들의 염원이 받아 들여진 것으로 봐야 하므로
신자들의 건설적인 비판과 건의를 항상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이 헌장8항에 더 부합한 자세일 것입니다.
3, 물론 곧 바로 쇄신되지는 않아도 개울물도 계속 흐를 수 있어야 강물을 만나고 바다물이 되는 것입니다.
'비판정신이 있어야 사회든 교회든 정체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고 하면서 비판을 막으면 안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회는 어떤 비판도 겸허하게 듣는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가려서 들으면 개울물이 흐르지 못하게 막아 중간에 고여 썩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멋지고 아름답게 또는 쓸모있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런 나무가 되도록 가꾸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흐르는 물도 그냥 놔 두면 낮은 곳만 찾아 제 멋대로 흐릅니다.
나무가 자라고 물이 흐르는 것이 저들 스스로 자라고 흐르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하신 말씀을 교회 정화와 쇄신을 위한 일에 적용하면 무리일까요.
또 '예 해야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해야 할 때 아니오 하라' 말씀도 상대가 교회면 안 되는 말씀일까요.
전 교황님의“다른 어떤 존재” 말씀도 주님께선 가톨릭 교회만 사랑하신다는 의미가 아니시리라 믿습니다.
교회가 신자들의 쇄신 건의 또는 비판의 소리가 듣기 싫으면 보다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합니다.
본문의 제목 '역설적 진리'와 교황님의 '다른 어떤 존재' 말씀은 보편적 진리라 별로 감동스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은 공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들 마음을 움직이시어 새로운 변화를 이끄심도 믿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자들의 쇄신 건의와 건설적인 비판을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름없는 평범한 신자들을 통하여 변화되도록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 신자들의 건설적인 정화 건의를 단순한 불만으로 치부하여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가 그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많은 신자들이 가톨릭 특히 한국교회의 쇄신을 바라는 건 결코 우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자들의 그러한 요구를 교회가 들어 주었고 그것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인도가 아니겠지요.
신자들의 쇄신요구가 주님의 인도인지 아닌지는 교회가 마음만 열면 얼마던지 알 수 있는 일이고요.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길은 그분 뜻을 깨닫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일부 신자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정화와 쇄신 건의가 바로 '작은 것'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거듭 말해서 신자들의 정화 요구가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는 교회가 열려 있어야 판별 가능합니다.
손신부님은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 평신자들은 교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듯한 말씀을 계속하면서
흔히 있는 불평불만자들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며 함부로 교회 쇄신을 말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성직자들의 그러한 권위적인 태도가 문제이고 쇄신해야 한다는 건의인데도 말입니다.
설사 그들 주장이 헛소리라 하더라도 신자들은 몸을 낮추고 귀기울여 듣는 성직자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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