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와 비신자 구분이 어려운 현실

외론 별·2009. 9. 18. 오후 9:30:24

9월 중순이 늦여름인가 초가을인가.
하늘은 가을처럼 맑고 푸른데 한 낮의 무더위는 아직도 삼복 중인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하긴, 신자와 비신자 구분도 모호한 현실이니 모든 게 이상하고 수상해야 정상 아닌가.  

수천년 존속해 온 삼한사온과 여름철 단골손님 장마가 슬그머니 없어진 일이 그렇고 
언제부턴가 부모와 스승 대통령을 비웃고 욕해도 전혀 이상한 일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교회 역시 신자들을 이끌지 못하고 반대로 이끌리고 있다 하면 잘못 말하는 것인가.

교회에게 신자들은 어떤 존재인가.
또 그들은 왜 신자가 되었고 어떤 목적으로 매일 또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교회는 그들의 목적을 위하여 매일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대장간..
요즘은 간판에 '공작소' 또는 '철공소'라 되어 있고 하는 일도 옛날보다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대도시에서 누가 무슨 필요로 저토록 많은 농기구를 구입하는 것일까.
매일 다니는 길가 공작소에는 언제나 낫 호미 괭이 삽 등 농기구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그리고 그래도 부족한지 주인인듯 한 중년 남자 얼굴은 매일 땀으로 얼룩져 있다.
옛날 대장간은 무겁고 큰 햄머를 힘센 장정이 두드렸는데 요즘은 기계 햄머로 바뀌었고
벌겋게 달군 쇠를 올려 놓고 두드리는 망치받이 큰 쇠덩어리 '모루'는 옛날 그대로다.

한쪽이 쇠뿔처럼 뾰죽한 원추형이고 가운데와 다른 한쪽이 직사각형으로 평평한 '모루'
허리 부분이 잘록해도 밑부분이 넓고 두꺼워 작업 중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대중소 세 종류에 전체가 무거운 강철이어서 옛날에는 무거운 물건을 대표하기도 했다.

이 글과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희한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그 모루가 나온다.
하데스 즉 지옥의 신이 있는 궁전이 땅속 깊은 곳에 있다 하고 그 깊이를 말하면서
그 무거운 모루를 떨어뜨리면 도착하는데 9일 밤낮이 걸릴 정도로 깊다고 하니 말이다.

대장간은 쇠덩어리로 낫과 호미를 만들지만 무디어진 낫과 호미를 벼르는 작업도 한다.
새로 만든 것은 말할 것 없고 헌 것을 벼른 낫과 호미 역시 새것과 다름없다.
물론 그 낫과 호미 등 농기구들은 대장간을 떠나야 비로서 각각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새삼스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그 낫과 호미의 기능이 우리 신자들과 비슷해서다.
우리도 교회에서 태어났고 매일 또는 주일마다 새롭게 벼르고 있지 않는가.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또 벼르는 이유가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한 일인 것도 흡사하다.

다만
낫과 호미는 본래의 기능 즉 풀과 농작물을 베고 김을 매느라 날이 망가지는데 반하여
신자들 대부분은 교회를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즉시 망가지는 점이 다르다.

낫과 호미는 날이 서야 제 기능을 할 수 있으며 또 한참 동안은 충실히 잘 해낸다. 
그렇다면 신자들도 본당을 나온 후 적어도 한 동안이라도 충실한 신자여야 마땅하다.
본당을 나오기 무섭게 망가지면서 약한 인간의 한계라며 계속 변명만 해서 될 일인가.

대장간 내에선 낫과 호미의 기능이 필요없다.
다시 말해서 낫과 호미가 들과 논밭에 필요하듯이 신자를 필요로 하는 곳도 세상이다.
따라서 세상에 나가자마자 망가져 버리는 낫과 호미는 세칭 짝퉁 농기구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뿌려진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도 하셨는데
날이 날카로워 어떤 일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낫과 호미처럼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교회는 대장간처럼 새 낫과 호미를 계속 만들고 또 망가진 날을 새롭게 벼르는 곳이다.
그리고 장인의 기술과 정성에 따라 수명과 사용기간이 좌우되듯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교회를 나서기 무섭게 다들 망가지고 있다면 뭔가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다..

처음 언급했듯이 신자와 비신자 구분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 원인은 신자들이 날카롭게 벼른 낫과 호미처럼 한 참도 제 기능을 못하는데 있다.
신자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이 가을에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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