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기도문과 성가 *그 개정을 비판하며,, 원상회복을 촉구합니다 !
[출처] * 신앙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기도문과 성가|작성자 푸른산맥
*그 개정을 비판하며,, 원상회복을 촉구합니다 !
<머리말>
새로운 세기, 도전과 희망에 직면하고있는 교회는
급변하는 변화안에서 잘못된 구습은 바로 잡고, 필요한 전통은 되살리며
진취적인 사고는 북돋아, 교회 구성원 모두가 보다 밝고 넓고 깊은 영성으로 거듭 태어나
하느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더 잘 살아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끊임없는 지적과 만만찮은 재개정의 요구를 아직도 받고있는
기도문과 성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촉구하면서, 문제점을 다시한번 제기,
관심있는 성직자. 수도자. 교형자매님들의 적극적이고 폭넓은 동참과 의견개진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1. 미흡한 준비
교계제도상 상명하달식 관습에 의존한 철저하지 못한 준비와,
의견수렴의 부족, 융통성없는 기준과 적용사례,
개정 후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한 신속한 대비책의 전무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계의 권위자는 물론 평신도 전문가, 실제 사용자의 대부분일 평범한 교우,
일선 본당 사목자인 신부님들과 수사.수녀님들,
특별히 교회 전통의 오랜 보존자 역활을 해온 구교우(이 용어와 그 풍기는
보수적인 색깔에, 오해 없기를,,,) , 다양한 계층의 열정적인 신입교우,
나아가, 교회내 여러단체 ㅡ 중에서도, 일반 교우 대중과 늘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 생활한 ㅡ 신앙인들과 오랜기간을 두고 자문을 구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깊이있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활발한 교감을 가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 자체는 아예 없었거나 극히 미미하였다.
일단의 선별된 성직자와 극소수의 평신도로 구성된 조직안에서 외부 전문가의
형식적인 자문만 시늉삼아 받아, 겨우 가톨릭신문 지상에 잠깐 시안을 올린 뒤,
일부 수도원에서 그저 조금 시연해본 것이 준비과정의 다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2. 모호한 기준.
30년전의 개정에는 공의회가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주는 설득력과 함께,
古, 死, 卑, 俗語 등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기준이 명확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까닭으로, 어떤 시대적인 요구가 있길래 개정을 하나 ?
1985년쯤에 미사경본이 (일반적인 미사통상문이나, 기도서 아닌) 바뀌어
당시로써도 적지않은 금액을 주고 새로 구입하면서
속으로 "이제 한참은,, 죽을 때까지 잃지만 않으면 되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더라도 심심하면 이리저리 자꾸 바꾸어가며
발행되어 나오는 교회 공식 , 비공식 간행물에 조금은 짜증도 나 있는 터였다.
그런데 얼마안가서 誤.脫字를 보완한 수정판도 아닌 개정판이 나와 그 두껍고 비싼 경본을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리더니, 급기야 완전히 폐기처분치 않을 수 없도록
또 개정을 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여러분야에서 두서없이 찍어내는 개정판들로하여
경제적인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3.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강행해버린 뒤, 천연된 시일로 정착되기만을 기다린다면 ------
혼란의 종국은 급기야 인준권위를 훼손케하고, 교회일치를 와해시키며,
전례생활의 저급화와 세속화를 부추겨, 교회의 정체성마져 위태롭게 할 것이다.
때마다 부딪히는 거부감은 고사하고, 실무진의 취향따라 자주
변동될 이런 식의 개정작업과, 이를 바라보는 일반 교우대중들의
심리는 마침내, 고귀하고 성스러워야 할 전례등을 하찮게
여기게 되고,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쉽게 무시해 버리는
경향으로 반드시 이어지게 될 것을, 지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 우리 국어는 학자들 사이에도 대립과 이설이 많고,
특히 종교어휘에 있어서는, 딱부러지게 이거다 하고
내세우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다.
학설은 학자들께 맡기고 표준문법을 따르되, 너무 예스런 표현만
피하고, 민족고유의 종교적 신심에 부합되면서, 교회 전통을
거스러지 않는, 오히려 교회 일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살아있는 말본을 활용한다면, 국민 정서에도 맞고, 국어를
살찌우는 계기도 될터이다.
(개신교 일각에서는 古文도 아니요, 현대어도 아닌 독특한 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 실로 개정이 필요한곳은 여긴데,,,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200년전 창립때 부터, 훌륭한 신앙선조
덕분에, 우리 말과 글을 잘 갈고 다듬어 아름답게 써왔기에,
교회밖에서 조차 그 공을 널리 인정하고 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새삼 벗어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
5. 各論에 들어가 사례별로 몇가지 짚어볼까 한다.
(1) {주의 기도}를 비롯하여 전 기도문에서, "우리"를 모두 "저희"로 바꿈.
"우리"가 교만한 말투인가?
5000년 한민족사에서 이보다 더 한국인의 심성에 꼭 들어맞는 말이 어디 있나 !
일치와 소속감, 게다가 겸손스럽기까지 한 말이 바로 "우리"이다.
오죽하면 [내 집, 내 가족, 내 나라, 내 땅,,]등 가장 사적인 말들 조차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땅,,]이라 말하겠는가 ?
어찌하여, 이런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정말 기가막힌다.
도대체 누가, 왜, 무슨 의도로 이런 안을 내었는지 한번 해명이라도 해줬음 좋겠다.
무릇 말이란 그 쓰임새에 따라 같은 뜻이라도 이 단어를 쓸 때가 있고, 저 단어를
쓸 때가 있다. 앞 뒤 문맥에 맞춰 꼭 "저희"가 필요한 곳만 바꿔도 될 일을
무조건 모두 다 바꿔 버렸다.
개정후의 결과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여기에 대해 가타 부타 말없이,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우리는 끌려가는 양처럼,,"
맞습니다. 그러라면 그러죠 뭐, 어련히 잘 알아서 고쳐주셨을까요,
우리 교우 본분은 무조건 순명 아닙니까, 허허,,,
이러고만 있으니, 너무 통탄스러워 말이 나오질 않는다.
국민 정서에 가장 민감한 경제 주체의 하나인 은행같은 곳에서
그 말이 얼마나 좋으면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우리"를 상호로 택했을 것이며,
한표가 아쉬운 집권 여당에서 그 뜻이 얼마나 국민 감정에 파고든다 느꼈으면
새로운 당명으로 "우리"를 내세웠을까 !
이 좋고 아름다운 말, 우리 말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랄 수도 있을 이 "우리"를
천주교회의 제일 기본기도인 {주의기도}에 일부러라도 많이 넣어 쓰야 할 것을,,,
<지금까지는 그러하였다.>
딴에는 겸손을 강조하려고, 일사분란하게 "우리"를 몽땅
"저희"로 바꾼 것 같은데,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닮아버렸나,,,
낱말풀이보다 어휘의 감정전달이 더 중요한 "화답송"의 "시편"같은 詩語에서조차
무지막지하게 통일시켜 버렸으니 참 가관이 따로 없다.
<註 : 미사 독서후 바치는 '화답송'은 거의 성서 '시편'의 기도이고,
그 번역은 저 유명한 사제 시인이신 고 최민순 신부님께서 하신 것으로
문장의 수려함과 훌륭함에 국어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는 물론 교계 안팍
많은 이들의 찬탄과 흠모가 끊이지 않는 "불후의 명작"이다.>
게다가 여기 저기서 무조건 "저희" "저희" 하다보니, 너무 비굴한 느낌마저 든다.
현대인의 교만의 높이를 모르는 바 아니나,
하느님께서도
지나친 굴신(屈身)의 강요가 주는 과공(誇恭)의 비례(非禮)는
결코, 즐겨 흠양치 않으시리라 본다. 하느님 안에 한 자녀인 우리 교우들 상호간,
듣고 말하고 느끼기에도, "우리"가 훨씬 낫다.
성직 일방주의, 성직자 특권의식, 자기네 스스로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잠재된
오만의 발로가 아니기만을 빈다.
(2) "~여" 와 "~님"
지금까지 써온 주여, 성모여, 等 간절한 바램으로 읍소하는
기도나 호칭문을 아주 사무적이고 도식적으로 , 주님 . 성모님.
해버리니 냉냉하기 그지없고 ,
더욱 공동으로 (교송) 계.응이라도 할라치면, 여간 딱딱하지않다.
"~여" 라는 말은 호격 조사 어미로써
아무리 높은 분께도 쓸수있고,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며
리듬을 태워 시적인 감흥까지 불러 일으키는 말이다.
이 역시 교만한 어법으로 치부하였나?
{성모송}을 놓고 살펴보자.
성자 예수께서 하느님과 꼭 같으신 분임을 모르는 천주교우는 없다.
다만, 인성으로는 분명히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 되시기에,
성모님을 기리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모송에서 구태여 그 어머니
앞에서 아들을 따로 대접치 않고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하여도 무방하며, 어쩌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3) 그 밖에 "복되시도다"와 "복되시나이다"
"빌으소서"와 "빌어주소서" 는 무슨차이 ?
일일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 것도 없다.
부러 여기저기 조금씩 뜯어고쳐 봄으로써, 개정을 위한
개정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4) 위와 동일한 내용의 실제 예, 하나 더.
{사도신경}에서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동정마리아"
미사때 거의 예전처럼 "저는"은 빠트리고, "녀"는 넣는다.
기도책을 쥐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똑똑한 젊은 교우들 조차 깜빡하기 일쑤다.
오래전서 부터 연세 높으신 분들이 "그 외아들" 을 "그의 아들" 로 잘못 발음해온 것은
사실 내용상 엄청난 논란을 가져 올 수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 무슨 차이 있나 ?
오랜 습관따라
새로 바뀐대로 읽거나, 외지 못했음을 당황해 하며
얼굴 붉히게 만드는 개정자의 잘못밖에는 없다.
나는, 우리는, 우리 본당은, 우리 교구는, 안 그런데,,,,하지 마시기를
그런 곳, 그런 분들은 좀 과장해 말하면
매일 바뀐다해도 너끈히 따라할 수 있을 터이다.
(5) 그리스도님, 이라니 !
christ 의 우리말, "그리스도"는 "메시아" 즉, "구세주"시라는 말 아닌가?
사실은 과장(課長)에 님을 안 붙혀도 결례 아니고, "그리스도"나 "마리아"等은
토착 종교어로 벌써 굳어져 비신자들도 외경심을 품고 있는 말이다.
뒤에 님을 붙힘은 어색키가 짝이 없다.
멀쩡히 "엄마, 아빠"하면서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을 친밀하게
잘 표현해 온 아이에게 갑자기 나타난 집안어른이
엄숙한 예절을 가르친다고, 이제부터 "아버님, 어머님" 하라면
지켜보는 친부모가 흐믓다 할 것인가? 묻고싶다.
대통령 다음의 각하도 떼 버린지가 언제인데
공연히 덧들여 고상한 전례문을 천박한 흉으로 ,
스스로 책잡는 처사이다.
이런 어투와 말본새는 이단이나 사이비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 영성체전, 사제의 "보라, 천주의 어린 양,,," 할 때의 "보라"는 말은
교우들에게 , 살아계신 예수님을 의식하고 사모하여,
열정적으로 그 분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전 존재도
함께 들어올리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뜻이 담겨있다.
더우기 수난때 빌라도, 예수를 군중앞에 세운 뒤 "보라, 이 사람을,,"
하던 역사성도 띄고 있으니, 그 상징성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말이다.
아니더라도, 이즈음 제대를 공연히 외면하고 딴전피우며
고개만 무단히 숙이기를 즐겨하는 교우들을 여기선
친절히 도와 " 보라 !"는 말을 아예 빼 버렸다.
200년이 넘는 한국천주교회 역사안에서,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나갈때 , 새로짓고, 고치고,
다듬어 오면서 이루어진, 오늘날의 기도문과 성가는 ,
단순히 , 교회당국자 일방이 자신들의 생각과 편의만을 위해
쉽게 뜯어 고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님을 제발 유념해 주기 바란다.
(7) 아시는 분들도 있고,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옛 주의 기도, 즉 {천주경}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신 자여, 네 이름이 거룩하시며,,,,,"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의 눈으로 보자면, 무례.방자하기가 이를데 없고,
실소를 금치 못하겠지만, 당시로는(지금 역시도) 전혀 틀리지도 않고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긴 세월을 바쳐져 왔다.
그런 윗분들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순박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그 바탕위에서
이웃사랑을 실천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에 감화되어 입교한 새교우들 역시,
라띤어나 고어(古語)중 아는건 아는대로 , 모르면 또 그대로
배우기도 하고 어림짐작도 하면서, 유.무식과는 하등 상관없이
오손도손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재미나게 해왔다.
신앙은 생활이고 실천이다.
전례는 이를 보조할 뿐이요, 전례문은 신앙인의 생활이나 실천과 동떨어져
존재치 못한다.
워낙이 급변하는 현 세태속에서, 호랑이 담배필 적 아득한
시절 얘기가 혹 다른 우를 범할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교회내의 넘치는 힘과, 재능과 정열을 , 시의적절하지도
잘 마무리 되지도 않은, 기도문과 성가의 개정이라는
엉뚱한 곳에다 허비해버림이 못내 안타까워 꺼낸 이야기이다.
(8) 이번에는 성가를 살펴보자.
" 아 언제나 그리운 내 본향 찾아가, 사랑하오신 천주
영원히 모시리, 우리의 모든 원이 이뤄지는 그 곳.
날개를 내게 주사 오르게 하소서." <가톨릭성가 68장>
가사는 그대로 詩가되고 기도가 되어 우리의 천상 아버지께로 향한다.
뜻과 정감이 참으로 절절하여, 우리 마음을 적시고
부를 때의 감격과 가슴벅참은 , 정말로 나의 어깨에 날개가 돋아
천사처럼 저 하늘나라로 날아 오를 것만 같다.
그 아름다운 정경을 그려볼 때마다, 눈시울은 늘 젖어들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 가사는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로만 부르라 한다.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나?
"고향"보다 더 진하고 적확(的確)한 뜻을 가진 "본향"이란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
[본향]은 이 가사, 이 성가에 있어 [핵심]단어이다.
본향은 그렇다치고 다른 말은 무슨 문제가 있나?
전체적인 뜻이나 문맥에 혹은 교리상 어떤 오류가 있길래
한국 천주교우들이 대를 이어 바쳐 온 이 아름다운 성가 가사를 일거에
짓뭉개버리는가?
깡패나 독재자도 할 수 없는 일을 서슴없이 해 치우고 태연스럽게
시침만 떼고 있을 일이 아니다.
"기쁨과 평화 넘치는,,"도 참 좋다. 성가로 쓰여질 어느 곡, 어느 가사가
고약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성가는 이미 다른 성가이다.
성가는 기도문과도 또 다르다. 가사가 여간 난해해도 바꾸기가
쉽지않을 뿐더러 사투리나 옛말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바꾸지 못한다.
노래말은 그대로 시(詩)이고 정서이기 때문이다.
애국가 가사가 100년이 지난 구닥다리라고 쉽게 바꿀 수 있나?
소월의 시에 있는 비표준어를 누가 함부로 손댈 수 있나?
아리랑이 어떻게 해서 한민족의 노래가 되었나 ?
년륜을 따라, 세대를 타고, 時空을 초월해서 , 그 곡과 가사에
우리 민족의 원과 한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영혼의 깊은 숨결이 된 아리랑.
이제 우리 민족도, 슬픔을 그만 접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아리랑 가사를 제멋대로 고친후 이리 불러라 하는
위정자가 있다면, 그 정신상태를 누가 의심치 않으리오 !
성가도 똑 같다. 아니 아리랑을 능가할 수도 있다.
세상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신념을 품고, 잘 이해받기 힘든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교우들이기에,,,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히고, 슬픔과 고통이 엄습해오는 순간에도,
그 심정 , 그 속내, 그 내밀한 사정들을
혼자의 가슴 속에만 간직한 채, 남몰래 흘려야 할 눈물이 있기에,,,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알아 주시기에,
그 분께만 온전한 희망을 두는 공동체이기에,
그 집단이 부르는 노래 --- 성가는, 어떤 부류가 마음 내키는대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요, 결단코 그렇게 취급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유행가 가사라 할지라도 본인이 고치지 않는 한,
본인이 고쳤더라도 대중이 이미 그렇게 부르면 그 원형은 영원히 간다.
괜찮은 가사가 있고, 음률이 있다면, 새로 창작.채택.유통
시키는 길을 찾거나 만들든지, 여의치 않아 천상 기존 성가의
신세를 질 양이면, 앞의 가사에 이어 새 절로 추가하면 될 일이지
결코,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예술의 본령과 저작권에 대한 시비마져 불러 올 수도 있는 ,
(이미 죽었거나, 작자미상이라 할지라도)
너무도 생각없는 짓이요, 명백한 잘못이다.
(9) 이 밖에도 무수한 성가가 비틀어지고 망가져 신음하고 있다.
심지어는 무리하게 가사를 고치다보니 박자가 맞지않아 곡도 손을 대고, 그래서 결국은 가사도 어색하고
곡도 어색한 이상한 성가로 만들어 버린 헤괴한 경우도 꽤 눈에 띈다.
성가나 기도문이나, 오늘에 와서 대다수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표현이거나, 아주 엉뚱한 혹은
오해를 일으킬 부분에 대해 국한적으로, 조심스럽게 고쳐,
조금 사용하여 그 추이를 지켜본 뒤, 개정을 하든지
수정을 하든지 할 일이지, 함부로 밀어부칠 일이 아니다.
(10) 이 나라의 병폐중에 하나가,
당대에 뭔가 눈에 확 들어나는 일을 꾸미기를 즐기는 것인데,
설마하니 , 교회내에까지 이런 풍조가 스며들지는 않았으리라 믿어본다.
마음을 합해 기도드리고, 조용한 가운데 영신의 유익을 도모할 때,
기도서를 펼치고 성가책을 들고 미사며 각종 전례에 임해서
분심을 물리치기 힘듦을, 공연히 개정작업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6 . 맺음 말
(1)
괜한 풍파를 언제나 염려하시면서, 새로운 기운이 교회안에
널리 퍼져, 하느님 나라가 어서 도래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교회 장상들의 뜻을 받들어 시작한 이 개정작업이
더 좋은 결실을 맺기를 절절히 염원하며 이 글을 작성하였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고, 능력도 부치며, 주장이 무조건
다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히 고쳐야 할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고,
교회의 근본정신이 왜곡된 점조차 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회의 권위로만 밀어부치는 처사를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안타까움이 너무 컸다.
교회밖의 잘못은 지적하면서, 내부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요 위선이다.
그럴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교회안에도 비주류가 있고, 답답함을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는 이들이 있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위에서 잠시 언급한 최민순 신부님께서야 벌써 작고하셔서 그렇다쳐도(그래도 안되지만)
아직 멀쩡히 살아계시는 분의 작품을 훼손하거나 작자 미상이라 해서 함부로
다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정된 기도문과 성가를 대할 때마다,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는 정녕 없을까?
왜 ?
누가 ?
무엇때문에 ?
공식 기도문과 성가를 그토록 자주 바꾸고 혼란을 야기시키나 !
(2)
근자에는 또 상.제례(연도) 예식서의 개정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주옥같은 명문과 아름답고 멋스럽기까지 한 음률(운율)의 옛 연도를 취합,보충,발전시킴이
아니라, 옛 연도는 아주 흔적도 없이 말살시켜 버리고, 듣도 보도 못한 헤괴하기 짝이 없는
음률로 슬프고 엄숙해야 할 초상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망측한 일이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강압적으로(?) 지방에까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듣자하니, 옛 음률은 아주 교만하게 들려 바꾼단다.
하, 기가차서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끼겠다.
옛 연도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기도와 성가는 거의 3. 4 혹은 4. 4조의 가락으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서정을 그대로 닮아 간직하고 있기에,
교회의 유산임과 동시에 민족의 문화유산으로,
그 자체가 "무형문화재"나 다를바없다.
이 연도를 바꾸고자하는 이들의 귀와 머리에는 건방지게 들리고 언잖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신앙선조들은 그 연도 하나만으로도 혹독한 박해 가운데서 이웃과 동화하고 이웃을 감화시켜
무수한 입교자를 내면서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를 만들어 왔다.
어쩌다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자신의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을 누가 존중할 것이며
스스로의 정신을 뽑아버리는 종교를 누가 믿을 것인가 !
연도의 내용이 어렵고 낡았다면 그런 면만 적당히 손을 보면 된다.
그 가락마져 훼손함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500년이 넘는 성가를 원형 그대로 아직 부르고 있는 독일 등, 선진 제국의 예를 굳이
들 필요가 있을까 ?
왜, 우리는 그렇게도 옛 것은 싫고, 단숨에 없애버려야 할 것이고, 새로운 것만 찾는지,,
새로운게 그리도 좋은가 ?
세속이 그러해도 교회가 말리고 보존해야 할 것을,,,
제발,
주교회의와 전례위원회 당국자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책임있는 평신도 제 단체의 교우들에게 무릎꿇고 비노니,
원래대로 복원해도 아무 문제없는 것은 그대로 살리고,
한 때의 취향보다, 많은 이들이 아끼고 애송, 애창해온
기도의 문구와 성가 가사는 오히려 발굴, 보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를 간곡히 간곡히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문과 성가는 , 단순한 말과 글과 노래가 아니라
거룩한 순교자들과 선조들에게서 피로써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요,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또 다시 넘겨줘야 할 다시없는 신앙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 희년을 지난 기쁨으로 되 살아난 기도와 성가가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끊이지 않고, 조국의 곬 곳에서 메아리치게 하소서 ! 아멘."
#
졸렬한 글 ,
끝까지 봐 주시어 고맙습니다.
이 소고가 개인의 비방이나 독단적인 주장이 아닌
신앙과 교회를 생각하는 "여론"및 "토론"文化의 거름 역활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막연히 교회나 단체,혹은 개인을 모함하거나
자신의 이익과 허명을 도모키 위해
(대안)이나 (근거)없이 올리는 글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하찮은 글이지만, 몇 년을 두고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다듬은 후에
망설임을 보태어 작성한 글입니다.
특별히, 막 영세 입교한 교우분들이나 예비자 여러분, 사심없는 마음으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화목하고 평화로운 우리 천주교회를 좋아하고
성원하며 아껴주시는 미신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보시고 혹 <오해>는 말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미 오래 전서부터 성직자를 비롯한 많은 교형자매님께
나름대로 검증은 받았지만,
이번에 새로이 손질하여 다시 한번 여론을 환기코자 합니다.
보신뒤, "으~ㅇ 그래,,," 하시며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贊成이든 反對이든 의사표시를 해 주시거나,
소감을 피력해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가톨리시즘"의 열린 마음에 '참여'가
보태질 때, 우리 교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자모(慈母)이신 "성모 마리아"의
가이없는 사랑이,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듬뿍 내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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