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숫자의 현실

전하는소식·2007. 8. 13. 오전 11:25:15

통계숫자의 현실

  한국교회 교인 수는 얼마나 될까, 한 1천여만명 정도, 그러지 말고 1천2백여만 명쯤으로 해두자. 언제부턴가 1천2백만 명은 이미 공식(?)화된 통계쯤으로 알고 또 그렇게 통용하고 있는 숫자다. 전체인구의 4분의 1정도라고 말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다종교국가에서 개신교인수가 이 정도면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개신교인수가 861만 6천명으로 지난 10년간 14만4천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타종교(천주교, 불교 원불교 유교 등)가 한 자리 수 이상으로 성장한 반면, 개신교만이 유일하게 하향곡선을 그렸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주교의 경우 10년 전보다 무려 74%(현재 514만6천명)의 증가추세를 보여 개신교와 대조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교인수 1천2백만명은 그동안 버블(거품)에 불과했던가. 아니면 희망숫자였던가. 무엇보다 861만 6천명 수치가 향후10년 간 어떻게 변해갈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상향, 하향 중 하나 일게 분명하다.


   지금상황에서 섣부른 진단이겠지만, 숫자증가를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에 드러난 중진목회자의 도덕적 타락실태, 해외선교사의 성 추태, 부자교회 목사의 횡령사건, 목회세습 등 일련의 사태만 보더라도 쉽게 감지된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발뺌을 하거나 감추기에 급급해 한다는데 있다. 걸핏하면 교회에 덕스럽지 않은 일이니 덮어둬라, 심지어 전도의 문을 닫게 하려는 악한세력의 음모니 귀담아 듣지 말라, 라고 밀어부치는 데에 원인이 있다.


   현재 처지에 뼈아픈 회개와 자성을 갖지 않으면서 한국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냉철하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꼭 지켜본다. 그리고 평가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 때마다 대개 감추거나 우물쭈물 넘기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누구하나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이가 없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회자는 많지만, 불미스런 일에는 나 몰라라 등한시했던 게 사실이다.


   체면세우기 좋고 얼굴 내밀어 인기 끄는 자리는 남에게 뒤질세라 뻔질나게 다녔던 것 부정할 수 없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한 복음의 소리는 결국 내부문제에 얽혀 힘을 잃은거나 마찬가지다. 복음에 무슨 설득력이 있고 어떤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기독인수 감소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죽하면 정부여당이 당사를 찾은 기독교대표 인사에게 푸대접했겠는가.


   노선과 정책사안이 다르다고 그렇겠는가. 그래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들인데.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것은 이미 기독교계를 별볼일 없는 종교단체로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이렇게 외면당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와 개혁, 환골탈태한다는 각오가 없으면 기독교가 추락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다면 먼 훗날 사회로부터 하나의 종교기관쯤으로 기억될 게 뻔하다. 한 예로 천주교의 폭발적 성장 배경에 대해 한 학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의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과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춰 사회적으로 집중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타종교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감을 얻었다는 평도 있었다. 이에 비해 기독교(개신교)는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 부분이 미약한 수준이다. 통계숫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인수의 감소는 기독교를 평가하는 사회의 바로미터일 수 있다. 그만큼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861만여명의 성도를 지키위해서라도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살을 도려 내는 아픔의 개혁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전용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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