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해가 높이 떠 오르기 전에
외로운 별·2007. 4. 1. 오후 9:04:35
이른 아침!
차가운 이슬이 바지를 적시는 야산의 오솔길
아직은
붉은 해가 나무 사이에 끼어 있지만
잠시 후면 높이 떠 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길 섶의 이슬들은......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믿으며 교회에 열심입니다.
미사 참례와 신심단체 활동
또 가끔씩 시간 내어 불우한 이웃들도 돕고......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하여, 그래야 한다 확신해서 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가 결과에 따라서
구원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영역
그래서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야만 한다고.....
과연, 그럴까요?
전 아닙니다.
전 그렇지 않다 배웠습니다.
그건 마치
숙제를 내신 선생님 지시에 충실한 학생들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선생님의 진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진실로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항상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숙제를 주지 않아도 말입니다.
대개 보면, 그런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 역시
학교 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란 제 생각이 무리일까요?
즉,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름도 옳지만
스스로 죄를 미워하며, 아예 일상을 선한 생활로 즐긴다면.....
그런 이들에게는
힘들고 복잡하게 말씀과 가르침을 외우라 할 게 없겠지요.
어느 길인지, 방향만 알려 주고 인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삶은 은총 없이는 안 되며.
그래서 당신께선 모두가 은총 안에 들기를 원하시는 게 아닌지.....
그 분께서 바라시는 삶을 사는 자체가 바로 은총이고.
모든 것은
오직 그 은총 안에서만 가능하므로
구원 역시
인간들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린 죽을 때까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겠다는 건 당치 않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즉, 은총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자신을 진실로 온전히 그 분께 의탁함 자체가 순명이며..
순명은 곧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을 뜻합니다.
즉,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그 분에 의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 받음을 의미합니다.
되 찾은 아들...(루가15:11)
흔히들 돌아 온 탕자라고도 합니다만.
그 아들은
자신 스스로, 그의 능력으로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를 도저히 없앨 수 없었습니다.
더러운 몸과 손, 그리고 옷과 신발
그는 그 냄새들을 어쩌지 못했는데.
그런데다 먹을 것도 없어
돼지들의 것을 빼앗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굶어 죽기에 이르러
그 때서야 비로서 아버지에게 돌아 갈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엄청난 죄와 그에 따른 죄책감.....
죄가 너무 크고 많아 망설임을 거듭하다가
실낱 같은 기대....신뢰....
비록 악취가 진동하는 못된 자식이지만
혹시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
그 겨자 씨 같이 작고 희박한 믿음과 희망이
그의 발길을 아버지께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전 처럼 아버지의 아들로 돌아 갔으며
목욕과 함께, 더러운 옷과 신발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에 반지도 끼고. 새 아들로 거듭 난 것입니다,
그건 당연히, 그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한 것이지요.
그가 한 일은, 씻기고 입힐 때 응한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집에 갈 결심을 한 것도
절박한 사정과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한 때문입니다.
그 신뢰가 그를 다시 살린 것이지만
절망적인 그에게
무서운 아버지인데도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그런 믿음과 용기를 준 것이 바로 은총인 것입니다.
그는 재산 탕진 후 흑심한 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돌아 갈 결심과 용기가 없었습니다.
방탕한 못된 자식이라 크게 꾸짖어 내 쫒으실 거라고.....
절대 용서받지 못하리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돼지치기가 된 것이고.
결국 그렇게 지내다 절망 끝에 죽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 새 자식이 되기까지
그가 아버지께 해 드린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허구헌날 걱정만 끼쳐 드렸을 뿐입니다.
그래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시며 기뻐하신 것은
당신께서 바라신 대로 돌아 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안에서 모든 것을 그 분에게 맡겨 드리고
온전히 의탁하여 무조건 순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총 안에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회생활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라거나
또는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온당치 않습니다.
순명의 삶!
오늘까지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망설일 시간없습니다.
지금
저 나무들 사이의 해는 곧 떠 오릅니다.
아침 이슬이 말라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란 말씀입니다.
아!아!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게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일이기에......
차가운 이슬이 바지를 적시는 야산의 오솔길
아직은
붉은 해가 나무 사이에 끼어 있지만
잠시 후면 높이 떠 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길 섶의 이슬들은......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믿으며 교회에 열심입니다.
미사 참례와 신심단체 활동
또 가끔씩 시간 내어 불우한 이웃들도 돕고......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하여, 그래야 한다 확신해서 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가 결과에 따라서
구원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영역
그래서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야만 한다고.....
과연, 그럴까요?
전 아닙니다.
전 그렇지 않다 배웠습니다.
그건 마치
숙제를 내신 선생님 지시에 충실한 학생들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선생님의 진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진실로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항상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숙제를 주지 않아도 말입니다.
대개 보면, 그런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 역시
학교 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란 제 생각이 무리일까요?
즉,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름도 옳지만
스스로 죄를 미워하며, 아예 일상을 선한 생활로 즐긴다면.....
그런 이들에게는
힘들고 복잡하게 말씀과 가르침을 외우라 할 게 없겠지요.
어느 길인지, 방향만 알려 주고 인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삶은 은총 없이는 안 되며.
그래서 당신께선 모두가 은총 안에 들기를 원하시는 게 아닌지.....
그 분께서 바라시는 삶을 사는 자체가 바로 은총이고.
모든 것은
오직 그 은총 안에서만 가능하므로
구원 역시
인간들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린 죽을 때까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겠다는 건 당치 않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즉, 은총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자신을 진실로 온전히 그 분께 의탁함 자체가 순명이며..
순명은 곧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을 뜻합니다.
즉,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그 분에 의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 받음을 의미합니다.
되 찾은 아들...(루가15:11)
흔히들 돌아 온 탕자라고도 합니다만.
그 아들은
자신 스스로, 그의 능력으로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를 도저히 없앨 수 없었습니다.
더러운 몸과 손, 그리고 옷과 신발
그는 그 냄새들을 어쩌지 못했는데.
그런데다 먹을 것도 없어
돼지들의 것을 빼앗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굶어 죽기에 이르러
그 때서야 비로서 아버지에게 돌아 갈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엄청난 죄와 그에 따른 죄책감.....
죄가 너무 크고 많아 망설임을 거듭하다가
실낱 같은 기대....신뢰....
비록 악취가 진동하는 못된 자식이지만
혹시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
그 겨자 씨 같이 작고 희박한 믿음과 희망이
그의 발길을 아버지께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전 처럼 아버지의 아들로 돌아 갔으며
목욕과 함께, 더러운 옷과 신발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에 반지도 끼고. 새 아들로 거듭 난 것입니다,
그건 당연히, 그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한 것이지요.
그가 한 일은, 씻기고 입힐 때 응한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집에 갈 결심을 한 것도
절박한 사정과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한 때문입니다.
그 신뢰가 그를 다시 살린 것이지만
절망적인 그에게
무서운 아버지인데도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그런 믿음과 용기를 준 것이 바로 은총인 것입니다.
그는 재산 탕진 후 흑심한 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돌아 갈 결심과 용기가 없었습니다.
방탕한 못된 자식이라 크게 꾸짖어 내 쫒으실 거라고.....
절대 용서받지 못하리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돼지치기가 된 것이고.
결국 그렇게 지내다 절망 끝에 죽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 새 자식이 되기까지
그가 아버지께 해 드린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허구헌날 걱정만 끼쳐 드렸을 뿐입니다.
그래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시며 기뻐하신 것은
당신께서 바라신 대로 돌아 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안에서 모든 것을 그 분에게 맡겨 드리고
온전히 의탁하여 무조건 순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총 안에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회생활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라거나
또는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온당치 않습니다.
순명의 삶!
오늘까지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망설일 시간없습니다.
지금
저 나무들 사이의 해는 곧 떠 오릅니다.
아침 이슬이 말라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란 말씀입니다.
아!아!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게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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