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평화 (7)
그림자·2006. 10. 29. 오후 5:59:17
친구는 출근하자마자, 잘 아는 후배직원을 찾았다.
외국어에 능통한 그는, 의학용어라 잘 모르겠다면서도 안 좋은 내용 같다는 것이었다.
독일어 사전을 들추며 읽은 후배가, 내용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차마 말하기 어려웠으리라....
병원에선 미리 연락이 있었던지, 잘 찾아 왔다면서 정밀검사부터 하자고 했다.
그리고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며, 그때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다시 찾아 갔을 때, 그 박사는 둘째 형수가 있는데도 친구를 찾더라고 했다.
폐암이 너무 진행되어 치료가 불가능하다면서, 앞으로 2~3개월 정도 밖에 살기 어렵겠다고....
그래도 치료를 원한다면 하겠지만, 기대는 전혀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그 형은 40대 중반.
환자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어 좋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 가족들이 알아서 하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는 친구에게, 박사는 알지도 못하는 검사자료들을 놓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때의 형은, 누가 봐도 환자는 아니었다.
아직은 말짱하여, 전형적인 건강한 시골 농사꾼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너무 늦어었다고, 간과 위 등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박사는 환자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 준비를 한 다음에 방을 나가라고 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가려는데 간호사가 불렀다.
사실대로 말해 주려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좀 더 충분히 안정을 취한 다음에 나가라고....
친구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간호사가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참을 더 앉았다가 나왔다는데....
다행히 완치할 수 있는 초기지만 오랜기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많은 치료비 문제는, 맏형과 형제들이 상의하여 방법을 찾을테니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날로 입원하여 치료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면서 맏형과 다른 형들에게 전화하여, 둘째 형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했다.
이튿날 형제들 모두가 병원을 찾아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불필요한 소문을 염려하여, 맏형 외에는 죽음을 앞둔 폐암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맏형은 막내에게, 형제들은 알아야 한다며 이해가 되도록 다시 설명하라고 했다.
친구는 자세히 설명한 다음, 우리는 아직 많이 젊은데도 불행하게도 한 형제를 잃게 되었다고....
그동안의 갈등들은 살아 있을 때의 일, 형제의 죽음 앞에서 이제 안 좋은 과거들은 털어버리자고 했다.
모두가 침통해 하며 말이 없었는데, 맏형이 막내 말이 맞다며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자고 동조했다.
병원에서 어렵다 해도, 이대로 집에 가서 죽을 날짜만 기다릴 수 없노라고.
병원에서 더 이상 안 된다 할 때까지, 우리 모두에게 여한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자고 했다.
그 말에 모두 좋다고 했지만 막대한 병원비가 문제였다.
그때 둘째 형은 맏이인 아들이 군에 입대한 상태였는데, 그 밑으로 고3과 중3의 딸이 둘 있었다.
아들은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대학입학 등록만 해 놓고 입대를 했다고.
그리고 요즘처럼 의료보험이 일반화 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친구는 회사에 당분간 양해를 얻어, 출근 후 바로 병원으로 갔으며 환자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입원실에는 형수가 있었지만, 박사와 간호사들은 걸핏하면 친구만 찾았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몹씨 허약해졌는데, 집에 데려가 원기회복을 시켜 다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번째 치료를 위해 상경하면서, 그 형은 포도나무 몇그루를 가지고 왔다.
담장 밑에 심어 놓으면 아마 죽지않고 잘 살아, 시원한 그늘도 되면서 열매도 맺을 것이라면서....
막내 집에 포도나무를 심고 싶어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친구는 포도나무를 담장 밑에 심으면서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 3번째 입원과 치료를 하고 나니 어느덧 3개월이 지났는데....
박사는 친구를 불러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없다고 했다.
친구는 물론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혹시나 하는, 실낱 같은 기적과 희망을 가졌던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부질 없는 꿈으로 끝나고, 냉혹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전화하여 형제들을 모두 불렀다.
저녁 늦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친구는 박사가 한 말을 전했다.
앞으로 잘해야 보름 정도라 하면서, 그동안 마지막 하고 싶은 일들을 하라 하더라고....
계속 더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것인지, 박사 권고대로 하는 것이 좋을지를 상의한 것이다.
그런데 환자인 둘째가 형수와 같이 회의중인 형제들을 찾아 왔다.
그리고 자신도 이제는 사정을 다 알겠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애써 주었지만, 자신의 운명이 여기까지인 것을 어쩌겠느냐고....
걱정하여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진작부터 치료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고, 조금 일찍 가는 것 아니냐며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다 키우고 가르치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친구는 아이들 학교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 말은 매우 고맙지만, 부친을 모시는데다 여러가지로 힘들고 어려울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그러니까 맏형도, 나도 함께 도울테니 애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막내 혼자는 어렵겠지만, 형이 돕는다면 마음이 놓인다며 고맙다고 웃었다.
그리고 어차피 안 된다면, 병원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막내 집에 들러, 마지막으로 부친에게 인사드리고 가고 싶다고....
부친은 지식들 모두가 갑자기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적당히 둘러 대었다.
연노하신 부친이라, 그때까지 둘째의 일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난 후, 둘째는 담장 밑에 심어진 포도나무들을 하나하나 둘러 보았는데....
친구는 그날 밤차로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음날 상경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일요일에 또 내려갔다.
다녀와서 나에게 하는 말이, 다음 일요일까지 살아 있을지 걱정된다고.
그리고 걱정한 대로, 토요일 밤에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장례식에 나는 3일간 휴가를 내어 참석했었다.
댓글 4
방랑자·2006. 11. 3. 오후 5:33:30
제 작은 누나도 폐암으로 발병한지 2개월만에 떠나 갔습니다. 암은 병이 아닌 것 같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 불러가시는 한 방법?? 생전에 담배는 커녕 매형도 담배를 안피우는 가족이었는데... 온갖 어려움 다 겪고 남매 훌륭히 잘 키웠는데... 7남매중 첫번째로 떠나 갔습니다. 이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갈 차례가 오는 듯 합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방랑자·2006. 11. 3. 오후 5:36:06
은퇴하신 본당 신부님께서 신학교에서 조신하게 지내시다가 당신이 암이신 것을 아시고는 이제 내차례구나 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림자·2006. 11. 3. 오후 9:29:28
암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방법....어쩜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르시는 방법은 물론 다른 방법도 많습니다만....불혹을 넘으신 분들은 당연히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신 주님께 매일 감사드리라 하겠지요...
그림자·2006. 11. 3. 오후 9:34:37
꼭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셔야만 폐암이나 간암에 걸리는 건 아니더라구요. 본문의 환자도 담배를 피긴 했지만, 그 형제들 모두가 골초들인데 지금까지 모두 잘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둘째만 그리 된 거지요. 말씀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주님께서 둘째는 일찍 불러야겠다 하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