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평화 (5)
그림자·2006. 10. 29. 오후 5:55:06
본문의 주인공은 수십년의 친구이다.
그는 6남매 중 막내인데, 맏형 바로 아래가 누나라서 5남1녀였다.
친구가 어렸을 때는 집안 형편이 좋았었다는데, 자식들이 결혼하면서 어려워졌다고.
그러니까, 형님들이 분가하면서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친의 자식들 교육은, 옛날식으로 매우 엄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른 흐름을 거부하며, 옛 법식만을 고집한 고지식한 분이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는, 6남매 모두가 매일처럼 야단과 꾸중속에서 지내다시피 했다고.
자식들이 뭔가 힘들고 어려워 할 때,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은체 무조건 꾸지람으로 일관했다는데....
그것은 자식들이 결혼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남은 부친의 그것에 진저리를 쳤으며, 매일처럼 아내 앞에서 야단 맞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반발하면, 부친의 노성이 온 동네를 찌렁찌렁 울렸다던가.....
장남 성격도 부친을 닮아 만만치 않은지라, 가끔은 동네 어른들이 말린 일도 많았다고 했다.
장남이 부친에게 과격하게 반발한 이유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분가를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으며, 둘째 아들의 그 주장에 동네사람 거의가 공감했다는데....
아무튼 그 진위여부를 떠나, 그 후의 결과는 장남에게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장남은 자신만 생각했을 뿐, 부모 봉양은 물론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에도 관심없었다고 밖에는....
그리고 그 역시 부친을 닮아 고지식했던 탓일까?
설령 분가를 결심했더라도, 남은 가족들 생활을 고려하여 도시로 나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아는 것이 농사 뿐이라며, 자신 몫을 상속 받아 다른 지역에서 농사지을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빨리 상속해 달라고, 성질을 부리며 매일처럼 모친을 달달 볶았다.
모친은 결국 장남에게 굴복하여, 부친과 친한 우체국장에게 부탁한 것인데.....
그러나 부친은 우체국장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우체국장은 부친에게, 상속분을 다 주지 말고 일부만 주어, 그래도 좋다면 분가시키라 한 것이었다.
부모와 집을 지키는 자식에게 더 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이 불만스러워 할 것이라고.
장남 몫이 많은 것은, 부모를 잘 모시라는 뜻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설득했다.
우체국장의 조언은, 당시에는 다소 이례적인 것이었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더 이상 장남과 불화가 싫었다.
그리고 또 멀리 객지로 분가한다 하므로, 아는 사람이 없는 타관에서 고생하는 것을 걱정했다.
결국 고심 끝에 장남의 청을 들어 주었는데....
장남은 즉시 상속 재산을 처분하여 먼 지방으로 떠나 버렸다.
그런데 부친의 그것은, 분가는 자신이 해야 한다는 둘째 아들의 주장을 무시한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우체국장이 우려했던대로, 곧 바로 심각한 가족 불화가 시작된 것이다.
시집 온지 얼마 안된 둘째 며느리가 불평했다.
자신이 그 집에 출가해 온 것은, 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되는 차남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정상 부득이 하다면 몰라도, 장남의 이유없는 분가와 그것을 허용한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 차남인 자신들도 분가를 하자며 남편을 졸랐다.
둘째 역시 크게 불만이었던지라, 자신의 몫 상속과 분가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 때 셋째와 넷째는 군생활 중이었으며, 학생인 내 친구는 어리다 하여 발언권이 없었다.
부모는 정당한? 둘째의 분가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남아 있는 농토가 얼마 안되어, 부모와 남은 자식들은 곤궁한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셋째가 제대하여 집을 지키며 부모를 모시게 되었다.
농사거리가 얼마 없었으므로, 그는 공사판을 찾아 다니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몇년을 보내며 결혼도 했는데, 열심히 한 때문에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막내인 친구가 입대할 무렵에는, 넷째도 제대하여 도시로 취직하여 나갔다.
하지만 그런데로 평온했던 기간은 불과 몇년.
도시로 나갔던 넷째가, 부모에게 사업자금을 요구하면서 깨졌다.
아이들 때문에 월급이 적어 생활이 안 된다면서, 작은 가게라도 해야겠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에게 도울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넷째는 정말 형편이 어려웠던지, 어느날 갑자기 부모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와 버렸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어려울 것은 뻔한 일.
겨우 부모를 모시고 있던 셋째는, 부모와 분가한 두 형님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셋방을 얻어 빈손으로 나가버렸다.
넷째는 험한 시골 일을 할 사람이 못되었다.
따라서 셋째처럼 부모를 모시지 못해, 부모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보다 못한 장남과 둘째가 나무라며 타 일렀지만, 절대 빈손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왜 자신만 아무것도 없느냐며 크게 싸운 바람에.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
부모가 늙고 힘이 없다고, 그렇듯 제멋대로인 자식들을 보는 마음은 어떠 했을까?
그 당시 장남은, 뜻하지 않은 부인의 오랜 지병으로, 막대한 병원비를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들째의 형편이 그중 나은 편이었지만, 모든 불화의 원인이 분가한 장남과 부모 책임이라며 냉정했다.
특히, 얌체 같이 재산만 챙기고, 부모 봉양을 외면하여 분란을 일으킨 장남을 용납할 수 없었다.
셋째는 또 그런저런 이유들을 들이대며, 똑 같이 부모를 외면하는 장남과 둘째를 맹비난했다.
그렇듯 4형제의 심각한 갈등과 불화는, 결국 늙은 부모의 하루 세끼 식사마져 어렵게 만들었다.
옛날의 단란했던 생활은 간데 없이, 불과 몇년만에 생각지 않았던 비참한 생활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출가한 누나 또한 별거와 다름 없어, 자형이 돌 보지 않아 매우 어렵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부모는, 딸과 외손주들 걱정까지 해야 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에다 엎친데 덮친 격, 젖은 옷에 물벼락이 아닌가?
그 때문일까..... 항상 수심에 잠겨 지내던 모친이, 갑자기 발병하여 몇달 후 돌아갔다.
그 때 친구는 월남에 파병되어 있었는데, 걱정을 염려하여 모친상을 숨겨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장남의 부인도 결국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돌아갔다.
친구는 그런 사실들을 모른체, 제대 후 현지 회사에 취직하여 2년을 더 머무르다가 귀국했다고.
그는 당시, 항공회사인 H사에서 일하여 약간의 돈을 벌었다는데....
그 친구가 이야기의 주인공, 이해를 돕기 위해 집안 배경 설명을 길게 했다.....
댓글 1
방랑자·2006. 11. 2. 오전 10:13:54
상당히 골치아픈 집안 이군요. 어떻게 풀리려나.. 아님 안풀리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