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평화 (4)

그림자·2006. 10. 27. 오후 4:05:27

이야기 주인공은 나의 5년 선배이다.

선배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두명씩 5남매 중 맏이.

가정 형편상 바로 밑의 여동생과 같이 고교에서 중단, 둘 다 취직하여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다.

 

 

그러나 동생 3명을 대학까지 가르치기에는 크게 역 부족.

선배의 부모님은 재산을 모두 정리, 셋방으로 옮기면서까지 자녀들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는데....

 

 

그러나 막내 아들이 지방 대학에 입학하여 자취할 방을 얻던 날.

부모님이 직접 도배 장판을 하고 그 방에서 자다가, 한날 한시에 연탄까스 중독으로 돌아갔다.

 

 

당시 선배와 바로 밑 여동생은 결혼 적령기에 있었다.

그리고 셋째는 막 졸업을 했지만, 아직도 넷째와 막내는 대학을 다녀야 하는 상황.....

 

 

선배의 부친은 지방 공무원을 정년 퇴직했었다.

나도 잘 아는 분인데, 항상 온화하면서도 근엄해 보이는 참으로 좋은 분이었다.

그리고 선배 모친 역시 자상하면서도, 잘못에 대해선 엄히 나무라는 빈틈 없는 분이었다.

두분이 그랬던 만큼 자녀들 교육이 허술할 까닭이 없다.

 

 

매년 봄 학기마다 셋째 아들이 나를 찾아 왔다.

내가 배우던 책을 받아가기 위해서인데, 그 동생이 나 보다 한해 후배였기 때문이었다.

새 교과서가 약간 수정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냥 사용하겠다며 가지고 갔다.

그래도 그 동생은 공부를 아주 잘하여, 인근의 명문고 수석 졸업 후 서울 S대 공대에 합격했던 것.

 

 

당시 선배네 형편은, 내가 사용한 헌책을 사용해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자녀들에게 근검 절약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따라서 더 자세한 설명 없어도, 그 한가지만 보더라도 다른 일까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도 그 분들을 존경했으며, 선배는 그 분들의 장남이었던 것이다. 

 

 

선배는 부모님 장례와 삼우제를 치르고 나서 동생들에게 말했다.

나는 동생들을 믿는데, 너희는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만일 나를 오빠와 형이라 믿는다면, 앞으로 내가 하자는 일에 불평 없이 따라 줄 수 있는가.....

동생들은 평소 선배를 잘 따랐던 터이므로, 모두가 열심히 따를테니 계속 힘이 되어 달라고 했다.

 

 

부모님이 은근히 걱정한 것이 바로 밑 여동생 결혼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남자라 늦어도 되지만, 여동생은 늦으면 안 되므로 1년 탈상 후에 결혼을 시키자고.

오늘부터 셋이 열심히 일하여, 필요 비용 제외한 돈은 결혼자금으로 저축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또 학생들도 알바 일자리를 찾아, 최대한 등록금과 용돈에 보태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런데 당사자인 여동생이 뜻 밖의 말을 했다.

 

 

부모께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마당에, 자신만 생각하여 결혼하는 것은 절대 안될 일.

오빠가 이젠 집안의 어른이고 기둥이므로, 먼저 안정을 찾아야만 동생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자신은 동생들을 위하여, 앞으로 10년이내엔 절대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즉, 당시 26세였는데 36세까지 결혼을 미루고,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막 졸업한 셋째인 남동생이 말했다. 

장남인 형은 물론 누나도 결혼을 해야 하며, 제일 늦어도 좋으니까 자신이 동생들을 돌 보겠다고.....

그 셋째가, 국내 최고라는 S대 공대를 막 졸업한 상태였다.

 

 

그렇듯 서로 자신이 하겠다며 말하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바닥을 치며 울음바다로 변했다.

한참을 그렇게 부둥켜 안고 울고 난 다음, 선배는 동생들을 진정시키며 엄숙히 선언했다.

 

 

그러면 제일 먼저, 부모님 빈소를 모셔 둘 집을 장만하자고.

우리 때문에 없어진 집을 먼저 마련하여,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자고.

집 값은 해마다 급격히 오르기 때문에, 사실 제일 시급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이해를 구했다.

동생들이 선배의 말에 이의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이 이민을 간다며 팔려고 내 놓았다.

그 집은 비탈진 경사를 깎아 지은 낡은 목조 건물이었지만, 방이 여러개라서 지내기엔 편리했다.

게다가 몇년을 살고 있는 상태였고, 부모님의 체취가 살아 있는 집이기도 했다.

문제는 구입 비용이었는데, 장례식 때 부조금과 부담이 컸지만 은행 융자를 받아 해결했다.

 

 

그리고 바로 은행 융자 갚기 작전에 들어 간 것이다.

두 동생의 학비가 적지 않았지만, 그들도 알바를 하면서 어떻게든 비용을 아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대기업에 취직하여, 월급이 많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2년도 안 되어 융자를 갚았고, 낡은 집도 다시 말끔하게 수리할 수 있었다.

 

 

선배는 다음 목표를 여동생 결혼이라 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여 자신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는 넷째도 졸업하여 학생은 막내만 남아 있었다.

네명이 벌어 들이는 돈은 적은 것이 아니어서, 얼마 후 선배의 결혼자금이 왠만큼 되어 갈 즈음.

선배는 여동생들에게, 너희에게 맞는 올케 후보를 추천하라고 했다.

 

 

즉, 여동생들이 추천하는 여성과 무조건 결혼하겠다 한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들은 그건 안 된다며, 오빠 마음에 들어야 하니 오빠가 고르라고 사양했다.

선배는 집안이 화목하려면 너희 둘의 마음에 드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계속 이해를 시켰다.

남동생들은 별 문제 없으며, 그러나 시누이와 올케 관계는 가족 화목의 핵심이라고 설득한 것이다.

 

 

그래서 큰 여동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했는데, 선배는 가타부타 말 없이 결혼을 했다.

그 친구는 가끔씩 집에 놀러 온 일이 있어서, 동생들도 모두 잘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선배는 남동생들에게도 주문을 했다.

배우자를 최종적으로 확정 짖기 전에, 집에 여러번 데려와서 여자들에게 허락을 받는 게 좋다고.

 

 

가족의 화목은, 여자들에게 달려 있으므로, 그 점을 특별히 유의하자고.

선배의 결혼 방법과 그 이유, 또 목적을 잘 아는 동생들은, 선배의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집으로 여러번 데리고 와서 사전 검증?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 둘씩 동생들이 결혼할 때마다, 전체가 적극 도와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세월도 많이 흘러, 어느듯 남은 것은 큰 여동생과 막내 뿐.

결혼한 동생들은 독신 때와 다르므로, 남은 형제를 돕는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그래도 선배는, 밑의 여동생과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동생을 결혼시키고 나니, 큰 여동생의 나이가 34세 완전 노처녀가 되었는데.

 

 

그 동생은 자신을 희생하여, 사실상 동생들에게 엄마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동생도, 진작부터 배우자는 정해 있었는데.

여동생의 굳은 결심을 이해하고, 몇년간이나 조용히 기다려 준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막내는 봄에 결혼을 시키고, 그해 가을에 그 여동생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매월 한두번 정도 만난다는데, 부모 제사와 명절, 그리고 각자의 생일에 만난다고 했다.

지금도 그들 형제의 우애는 모두가 부러워 하는 정도이다.

선배 집에서 만날 때마다, 제일 먼저 부모님 영정 앞에서 다짐을 한다고 한다.

부모님 실망스럽지 않게, 잘살던 못살던 마음만은 함께 할 것이니 걱정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선배는 나에게 말했었다.

집안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은, 사실 여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그래서 그점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며, 다행히 여자들끼리 서로 잘 지내니 성공한 듯 하다고.

 

 

만나지 못하면 거의 매일 전화를 주고 받으며, 언제나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제 오래되어 선배 부모의 얼굴이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두분은 항상 웃고 계실 것이 틀림 없다......

 

 

다음 이야기는,

부모의 가정교육 중요성과, 어느 한 형제의 노력만으론 가족 평화는 달성되기 어려우며.

특히 맏이가 잘 못하면 어찌 되는지를.....

 

 

 

댓글 5

cosma·2006. 10. 27. 오후 7:51:13

훌륭한 선배님과 형제들이군요..정말 형제간의 우애가 부럽습니다. ^-^

방랑자·2006. 10. 29. 오후 1:06:54

역시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알 수 있는 감동 드라마이군요. 참 대조적입니다. 서로 돕는다고 하는 장면에 눈을 적시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다 보시며 기뻐하겠습니다....ㅠㅠ

그림자·2006. 10. 29. 오후 6:24:57

같은 동기간이라 해도, 위의 경우는 요즘 세상에 매우 드문 케이스일 것입니다. 전 선배도 잘했지만 큰 여동생을 더욱 칭찬하고 싶습니다. 물론 자신을 희생한 것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은, 비록 결혼이 늦었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거든요. 남편이 참으로 잘해 준답니다. 다만 애들이 어려서 좀 그렇긴 한데 요즘은 어차피 애들에게 기대는 시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림자·2006. 10. 29. 오후 6:28:33

대기업의 셋째가 오랜기간 해외근무를 하다가 지금은 사직후 사업을 한다는데, 돈을 잘 벌어 누나 아이들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구요...자식들이 그렇듯 화목하게 잘 지내니 하느님께서도 도우시는 것 같습니다.

방랑자·2006. 11. 2. 오전 10:07:14

어쩌면... 그림대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