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평화 (1)

그림자·2006. 10. 24. 오후 2:59:51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녀들 간의 우애와 화목....

그것을 통 털어 가족 평화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서고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부모들의 소망이며 바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많은 가정들이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데, 그 이유와 원인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 가족의 화목과 불화는,

자녀들 수의 많고 적음, 그리고 부자 또는 가난과 큰 상관은 없는 듯 하다. 

자녀들이 적은데도 불화하거나, 반대로 형제들이 많지만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들을 얼마던지 볼 수 있다.

또 어느 재벌급 가정들이 불화한데 반해, 산골 마을의 가난한 삶에서도 화목과 우애는 꽃 피고 있다.

 

 

결혼을 하면 누구나 자녀들을 낳고 양육하게 된다.

요즘은 모두가 힘들다며 적게 낳는다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개 두 세명의 자녀가 보통이지만, 5~6명이상 자녀를 두는 경우도 드믈지 않으니 말이다.

 

 

요즘은 또 자식들에게 노년을 기대지 않는 추세지만, 그럴 형편이 되면 매우 다행스런 경우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자식들끼리의 우애와 화목은 별도의 문제.

부모가 죽거나 또는 자식들과 떨어져 살더라도, 형제간끼리 화목하게 잘 지낸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평소 자녀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자녀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부모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그대로 실천하는 부모 또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내가 그에 대한 몇가지 사례를 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모두가 나름으로 잘 하고 있겠지만, 남들의 예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서이다.. 

 

 

 

딸 5자매.

다섯 자매의 아버지는 가까운 집안 형님이다.

그 형님은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았었지만, 헛되이 없애버려 형편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아들을 꼭 낳겠다고 고집 부리다가, 딸만 내리 5자매가 된 것이다.

결국 6번째로 아들을 얻긴 했는데....

 

 

형편이 그렇고 보니, 딸들의 나이 차이가 한 두살이라 가르치기 힘 들었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딸들의 결심이 대단하여, 불가능할 것 같았던 대학을 모두가 무사히 졸업했다.

그 중에는 교육대학을 나와 선생인 딸도 셋이나 되는데,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잘 살고는 있다.

그러나 그 형님은 근래에 가족들의 불화로 고통 속에 지낸다.

 

 

딸들은 엄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엄마는 당시로선 매우 드문, 소위 인텔리라 할 수 있는 명문 여고 출신이었다.

딸들은 어떻게든 대학을 다니고 싶은 마음에, 엄마 말에 적극 순종하여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랐다.

고교 때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으며, 틈 나는 대로 엄마를 도와 거친 농사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시절에는, 도시의 친척 도움으로 알바를 하여 학비를 보탰다.

 

 

당시 딸들은, 한푼 쓰지 못하고 무조건 엄마에게 입금시켰으며.

그리고 필요한 용돈은 엄마에게 받아 썼다는 것.

아무튼 요즘 말로 지독했던 모양, 다 큰 처녀들이 화장을 모르고 졸업했다면 알만하지 않은가.....

그 뿐만 아니라, 그 흔한 써클활동이나 데이트도 아예 외면했다고.

그런 일들은, 대학 진학에 따른 엄마의 조건이었고, 꼭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었다. 

 

 

생각하면 좀 지나친 감이 있지만, 당시 형님의 형편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동네 어른들 모두가, 딸들이 너무 착하다며 칭찬들이 자자했다.

그리고 그렇듯 엄하게 딸들을 키우는 형수님의 방식을 모범적이라 하여 칭송 또한 매우 높았다.

나도 그 형수님을 좋아 했는데, 당시 고정관념을 깨고 딸들을 대학에 보내는 일에 크게 박수를 보냈다.

당시는 왠만큼 부자들도, 여고에서 중단시키는 것이 보통이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내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해가 안 되었다.

중학생이면 코흘리게가 아닌데도, 딸들에 비해 무조건적으로 지나치게 후하기 때문이다.

물론 늦게 얻은 외아들임을 감안해도, 딸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비교가 안 되었다.

자녀들 일은 전적으로 형수님 몫이었는데, 그래도 그에 말 없이 동조하는 형님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들은 성적이 저그 반에서 꼴찌였다.

만일 딸들이 그랬다면, 몽둥이에 다리가 부러져도 몇번은 부러졌을 일.

그런데도 딸들은 먹어 보지 못한 귀한 군것질을, 녀석은 항상 입에 물고 다녔다.

어린 동생을 봐 주다가 짜증 난다고 살짝 손찌검 했다 하면, 그 딸은 그날 온종일 굶어야 했다던가....

딸들에게 그 동생은, 한마디로 웬수 덩어리였을 것이다.

 

 

당시는 외아들을 둔 부모들 대개가 비슷하여,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키우면서, 아들이 훌륭히 되길 바랬을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아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 아니라, 망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도 형님 내외는 더 크면 다 괜찮아 진다며, 그저 감싸기 바빴고 원하는 건 다 들어 주었다.

 

 

중고교 시절 내내 말썽을 부렸음에도, 나무란 일은 거의 없었다 하니 결과는 뻔한 일.

결국 못된 녀석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는 바람에, 변상과 그에 따른 비용 등으로 큰 돈을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몇번의 변호사 비용만 해도 엄청 났을 것이었다.

옛날 시골에서 재산이라는 것이, 팔아 봐야 얼마 안 되는 전답 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서 형님은 많은 전답을 팔아 없앴다.

그리고 대학을 돈으로 나왔던 어쨌던, 졸업장을 얻었으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전혀 관심 없고, 여자들만 쫒아 다니느라 바빴다.

결혼할 마음도 없으면서 여자를 사귀어, 경찰에 고발을 당한 일도 여러 건 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럴 때마다 출가한 딸들이 도와 주었고, 모자라는 것은 전답을 팔아 해결했다는데.

그 결과 형편이 어렵게 된 것은 당연한 일.

그동안 딸들의 결혼 혼수도, 부모가 해 준 것 없이 저들 스스로 거의 빈몸으로 하다시피 했다고.

어느 땐 한 해에 두딸을 시집 보내기도 했는데, 그러다 막내 딸만 남은 상태에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출가한 딸들이 모두 도시에서 살아, 남어지를 정리하여 그곳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이 부족하여, 변두리 개발지의 작은 아파트를 융자받아 간신히 장만했다.

그런데 출가전인 막내딸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할은 했지만 그 딸도 결혼을 해야할 나이.

진작부터 애인이 있었어도, 그 형편에 어떻게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래서 형수님은 딸들의 도움으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다는데.....

 

 

그러나 아들은 계속 놀았다고 했다.

누나들과 매형들이 주선하여 여러번 취직시켰지만, 그는 길어야 3개월이고 아니면 며칠이었다.

젠장....그 녀석에 대해선, 열이 받혀 더 이상 쓰고 싶지가 않다.

아무튼 현재 그 녀석이 40대 중반.

지금도 뚜렷한 직업이 없어, 직장에 다니는 마누라에게 용돈을 얻어 쓰며 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형수님이 갑자기 돌아간 것이다.

 

 

 

댓글 1

방랑자·2006. 10. 29. 오후 12:44:06

애물 단지내요. ㅉㅉ 그냥 아들이 팔자에 없었던 것인데... 불화의 싹이 트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