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요시 여인들 [終]
히데요시의 짝사랑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군졸 시절, 내내 라는 상급자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녀는 상민 출신이었지만 품성이 매우 훌륭하여, 많은 부하들에게 항상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노부나가의 노공주 처럼,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흠이라 할까....
그런데 그 일에 내내 부인을 탓할 수 없는 것이, 그후 수 많은 측실들도 낳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원인은, 히데요시에게 있었음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측실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모두가 알 듯이 천민 출신인 관계로, 장수가 되고 영주가 되었어도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은근히 언감생심, 당치 않게도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다마 공주를 흠모했는데.
오다마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 미인이라고 소문난 너무너무 예쁘고 멋진 공주였다는 것이다.
우선 그 이름부터가 그렇지 아니한가?
다마란 예쁘고 귀한 옥구슬인데, 공주가 말만 하면 그 입에서 예쁜 구슬이 굴렀다던가 어쨌다던가...
아름다운 달 조차 그 공주를 시기하여, 보름인데도 뜨지 않는 바람에 어두워 휏불을 피웠다니 내원.....
거참! 젠장맞을....아무튼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 대국 아사노 가문에, 당대 최고의 미남이라 소문난 나가마사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사노 가문은 누대에 걸친 명문으로서, 노부히데 가문 따위는 아예 비교가 안 되었다.
그렇듯 걸맞지 않은데도 혼사가 이루어진 것은, 소문을 들은 아들이 부친을 졸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노부히데는 딸 오다마를 지극히 사랑하여, 절대 전쟁에서 질 수 없는 가문으로 출가시키고 싶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비록 망하더라도, 큰 대국인 아사노 가문은 절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소국이므로, 유사시에 대국인 아사노의 도움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히데요시는 그 혼사에 냉가슴 꿍꿍 앓으며,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괴로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가슴에서 활활 태우다가, 조용히 사그러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오다마 공주 흠모는, 그야말로 당치도 않은, 천부당 만부당 얼토당토에 터무니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아사노 가문이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지 않은 때문이다.
불 같은 성격의 누부나가는, 옛날 깔 보던 투로 지금의 자신을 무시하는 아사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누이가 있다하여 배짱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는 더욱 본보기가 필요했다.
자신에게 불복하는 영주들은, 피도 눈물도 소용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하간에, 내심이야 피를 나눈 누이를 죽이고 싶은 오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진작부터 히데요시의 그것을 눈치채고 있던 노부나가는, 아사노 정벌을 히데요시에게 명했다.
누이 오다마와, 그녀의 두딸을 살려야 한다는 비밀한 주문과 함께.....
다른 장수들은 상황에 따라 죽게 할지 모르지만,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살리려 할 것임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확실한 약속은 아니지만, 만일 살려 낸다면 측실로 줄 수도 있다고 했다던가....
아무려면 원숭이에게 오다마를 줄까마는, 그만큼 노부나가의 마음이 절박했음을 말하는 증거이리라.
높은 산 꼭대기에, 내성과 중성 또 외성으로 견고히 쌓은 아사노의 성은 이른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원숭이 히데요시가 누구인가?
노부나가는 물론 가문 전체가 걱정하는 가운데, 히데요시는 무사히 세 모녀들을 구출해 내었다.
물론 아사노 가문은 그 전쟁에서 패망하여, 일본에서 그 이름이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오다마 부부의 사랑이 매우 지극했던지라,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알고 자살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녀 곁을 지켜야 했는데, 그랬더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굶어 죽으려고 했다.
히데요시는 공격 초기에, 아사노 나가마사의 마음을 알고 밀사를 보냈다.
그대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죽게하지 말고 아무도 몰래 내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그 때 그는 성을 배개 삼아 죽을 각오였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은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도 꼳 항복할테니, 부인 먼저 안전하게 싸움터를 나가라고 거잣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살렸고 마음도 간신히 돌렸지만, 그 결과는 히데요시를 크게 실망시켰다.
하필이면, 자신이 제일 미워하는 시바다 곤로꾸에게 측실로 준 것이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그 일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전공을 크게 치하하고 대신 후하게 영지를 늘려주었다.
히데요시로선 심혈을 기울여, 온갖 지혜를 다 짜낸 결과였지만 주군의 명령인 것을 어찌하랴...
다시 또 냉가슴 꿍꿍 앓으며, 오다마 부인을 잊을 수 밖에 없었다.
시바다는 가문내 일등 중신이었는데, 괘씸하고도 언감생심이라며 원숭이를 더욱 비웃고 경멸했다.
그런데 운명은 또 오다마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갑자기 죽고 히데요시가 권력을 쥐자, 볼것 없이 제일 먼저 시바다가 표적이 된 것이다.
시바다 곤로꾸와 히데요시가 앙숙이 된 그 이면에는, 남 모르게 오다마 부인이 관련돼 있었던 것이다.
시바다 멸망에 대한 내용은 전편에 썼으며, 그렇다면 그 때 오다마 부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날의 아사노와 달리, 용맹한 시바다는 성도 견고한데다 군사들도 강했다.
게다가 시기가 추운 겨울철이라서, 눈이 많이 쌓여 낙성 작전에 애로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히데요시는, 교묘한 작전으로 시바다를 패망시켰지만 오다마는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여, 그녀가 스스로 시바다를 따라 자살한 것이다.
전 남편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겨우 달래며, 시바다에 의지하는 중에 또 남편을 잃어야 한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돌아가라는 시바다의 권고를 뿌리치고, 어린 두 딸만을 보낸 후 자결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한번 또 크게 낙심천만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린 두 공주만 구출하여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다마에 대한 연정을 두 공주에게 쏟으며, 극진히 보살피고 돌 봐 주었다.
그 때 두 공주의 나이가 어렸는데, 큰 공주가 13살?로서 곧 요도기미이다.
그러니까 오다마 부인을 취하려다 실패한 그는, 그녀가 낳은 공주를 대신 취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의 요도기미에 대한 정성이란 말 할 수 없었고, 요도기미의 콧대는 오사까 성탑을 넘었다.
그에게는 요도기미 이전에, 귀족 가문 여인에 대한 일화가 또 있다.
히데요시 막하 참모 중에, 간베라는 권모술수에 능한 중신이 있었는데.
그가 볼 때 주군 히데요시는 딱하게도, 처다 보지 말아야 할 나무들만 계속 연연함이 너무 답답했다.
그 때 오래전에 아사노 가문과 자웅을 겨루다가, 아사노에게 패망한 명문 교고꾸 가문이 있었는데.
그 가문의 공주가 남동생을 데리고, 쓸쓸히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히데요시에게 권했다.
교고꾸 공주 또한 재색을 겸비한 뛰어난 처자였는데 아직 출가 전이었다.
간배는 히데요시에게, 그 공주를 취하고 오다마 부인을 그만 잊으라 권했던 것이다.
그 공주는 과연 명문의 딸 답게, 어디에 내 놓아도 영주가문 규수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런만큼 혼사 말도 많았지만, 아사노를 공격하여 원수를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모두 거부했다.
그러던 차에 히데요시가 아사노를 멸망시켰으므로,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를 섬기겠다고 했다.
문제는 히데요시가 그 공주를 원하는가?그것만 남은 상태에서 간배가 대면을 주선한 것이었다.
그는 공주를 보자 한 눈에 반하여, 그날로 데려 왔으며, 남동생 또한 막하에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오다마가 그에게 첫사랑도 아니건만, 그는 그래도 오다마를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저렇게 귀족 출신 공주들을 여러명 측실로 들였어도 누구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요도기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다.
하지만 뭐가 잘못 되었는지, 초이례를 넘기지 못하고 바로 죽어버려 그의 슬픔은 하늘을 찔렀다.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너무도 애통한 일이었다.
당시로선 노년이라 할 수 있는 불혹의 나이에, 천우신조로 난생 처음으로 얻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도기미는, 그에게 두번째 아들을 또 낳아 주었다.
그 아들이 결국 많은 풍파를 야기시키고, 요도기미와 함께 참살 당했던 히데요리이다.
그는 늙어 말년에 아들을 얻었다며,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실은 그 보다 더한 비극이 없었다.
아무튼 여담으로, 그렇듯 많은 측실들이 낳지 못한 아들을 요도기미는 어떻게 낳았을까?
그것은 지금까지 추측만 무성할 뿐, 그 누구도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라고 전 한다.
히데요시가 늙은 말년일 때, 요도기미는 한창인 20대 초였다.
다만 요도기미는, 여느 중신들 보다 젊고 미남이었던 미쓰나리를 자주 불렀다는데.
그 때문에, 히데요리 아버지는 미쓰나리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글쎄....미쓰나리가 어쩜....그래서였을까?
히데요리가 천하를 꼭 되 찾아야 한다며, 충성을 내세워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킨 이유가......
만일 가또들 처럼 가문만 유지하려 했다면....멸망하지는....않았을지도......
그러나 히데요리가 태어나고 죽은 오사까 성은, 그후 300년이 지난 오늘도 말이 없다.
<終>
댓글 6
오랜 기억을 더듬어 썼기 때문에, 이름과 내용에 다소 착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자료로 활용될 일은 없고, 그저 재미로 읽으면 되는 일이므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졸필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메...잘 공부하다가 중간 시험후 시기를 놓쳐 하마트면 권총 찰번 하였네요... 그래도 학기말 고사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공부하여 독후감으로 학점 딸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왜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들이 많은지...ㅎㅎㅎ
일본 여성들은 아무리 예뻐봤자 한국여성들 근처에도 못 옵니다..^^ 일본의 최고 미인이라는 여배우를 보면, 우리 옆집 아가씨도 그 정도는 되니까요..제 딸은 그 배우 보다 더 이쁘고..ㅎㅎ
가끔 티비에 '오우꾸'? 인가를 봤는데, 그에 등장하는 내노라 하는 일본 여성 탈랜트들 거의 다 나오는데 보면 뭐 별로에요..^^ 그래서 진짜 미인을 보지 못했던 넘들이라, 논개을 보고 미쳐 정신을 잃고 죽기까지 했겠지요..^^
한마리 휘파람새를 울게하기 위하여 명 정치를 한 원동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 일본 명치유신때에 세 명장이 있었다고 이십년전 지금의 에버랜드근교에서 교육받은 것입니다. 하나는 그 새가 울지 않으면 즉시 죽이는 정치를 했고 / 하나는 얼르고 달래는 정치를 했고 / 하나(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울때까지 기다리는 정치를 했다고 합니다.
한마리 휘파람새를 울게하기 위하여 명 정치를 한 원동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 일본 명치유신때에 세 명장이 있었다고 이십여년전 지금의 에버랜드근교에서 교육받은 것입니다. 하나는 그 새가 울지 않으면 즉시 죽이는 정치를 했고 / 하나는 얼르고 달래는 정치를 했고 / 하나(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울때까지 기다리는 정치를 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