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부나가와 도꾸가와의 부인들 [9]
영주의 정실부인과 측실들
노부나가의 첫 부인은 노희매 공주.
노부나가 보다 몇살 위의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그가 소속된 대 영주 겐신의 딸이었다.
노공주는 소국이라 하여 노부나가를 얕 보았으나, 나중엔 그를 매우 사랑했으며 아이는 낳지 못했다.
아무튼 그녀의 부친은, 괴상한 행동으로 미쳤다고 소문난 노부나가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당시 영주들은 아들을 많이 낳아야 유리했으므로, 정실 부인 외에 측실이라 하여 첩을 여러명 두었다.
그리고 그녀들 신분에 따른 위험성 때문에, 가문내의 중신들 딸을 측실로 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정실은 측실을 많이 두어도 질투를 해선 안 되었으며, 오히려 가문을 위해 권해야 했다.
대부분 정실들은 가문의 엄한 교육을 받았으므로, 측실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며 순종하여 살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멋대로 자란 일부 영주들의 딸은, 크게 질투를 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노부나가는 아들을 낳아 주지 못한 노공주를 매우 사랑했다.
그리고 노공주 역시 그에 만족하여, 여러 측실들을 잘 다스려 집안 관리를 잘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친정 집 가문에 상속자 승계문제로, 정실과 측실 소생들간에 유혈참사가 일어났다.
그 때문에 대 영주인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오빠들이 모두 죽는 변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가문을 차지한 오빠가 자신과 배 다른 태생이라며, 노부나가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 했는데.
하지만 그 때는 요시모도와 덴가꾸 전투 직전인데다, 소국이라 힘도 없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참 훗날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잊지 않고 부인의 원수를 갚아 주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를 암살한 미쓰히데는, 그 때 노공주 가문을 정리하며 받아 들인 다른 측실 소생의 오빠였다.
그러니까 미쓰히데는, 자신의 배 다른 여동생과 주군이며 매제인 그를 참혹하게 태워 죽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여자들은, 오직 남편의 아들을 낳고 기르는 일만이 본분이었다.
대개 10세에서 12~3세에 결혼을 했는데, 대부분 신랑들은 한두살 어린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남편의 아이를 낳고 키워 주며 봉사하다가, 33세면 액년이라 하여 남편의 곁을 떠나야 했다.
즉, 젊은 측실들에게 온전히 양보하고,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이 미덕이고 관행이었던 것이다.
도뚜가와의 어머니 오다이는, 13 ?세에 시집을 와서 14세에 그를 낳았다.
그리고 그가 겨우 2살 때 그의 부친은, 대 영주 요시모도 의심을 염려하여 오다이와 헤어져야 했다.
친정으로 쫒겨 온 오다이는, 노부히데 휘하의 작은 성주에게 다시 시집을 갔고 그와 평생 살았는데.
오다이는 그 정도로 끝났으니, 어쩜 당시로선 매우 행복한 편이었다고 해야 할까.....
남편이 노부나가 부하였던 관계로, 남편도 싸움에 패한 일 없어 수명대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다이의 친정 어머니 운명은, 그녀에 비하면 너무나도 기구했다.
매우 빼어난 미모 때문에, 전쟁에 진 남편은 상대 영주에게 그녀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영주는, 또 다른 영주에게 지는 바람에 다시 빼앗기곤 했으니 그게 무슨 팔자란 말인가....
그러면서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을 여럿 낳았으며, 오다이도 그 자식들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그렇게 나이 33세가 될 때까지, 숫한 여러 성주들을 전전했던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남편이 패전하여 전사하자, 그때는 나이가 많아 절에 들어가 여승이 되었는데.
그 절이 요시모도 영지에 있어서, 도꾸가와가 요시모도의 인질로 있었을 때 남 몰래 도울 수가 있었다.
당시 그의 생모 오다이의 남편은, 요시모도의 숙적 오다 미쓰히데 휘하의 작은 성주였기 때문이다.
인질로 글 공부는 불가능한 일, 그러나 그녀는 손자에게 선생을 붙여 글과 무예를 익히도록 주선했다.
그리고 오다이는, 남편의 배려로 아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몰래 국경을 넘어 어머니에게 보냈다.
당시 오다이는 2살 때 아들 밖에 기억 못했지만, 그것을 마음 아파하며 매일 신불에게 축원을 빌었다.
그 때는 물론 재혼 남편의 아들들도 낳았는데, 그 3형제는 어쨌던 품안의 자식들이 아니던가?
그렇듯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때에, 상황이 변하여 도꾸가와가 노부히데의 인질로 바뀌었다.
그렇다 하여, 두 모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적국의 인질이므로, 자칮하면 남편이 노부히데의 의심과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한 물품을 전해 주는데 있어, 전 처럼 적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덜한 것 뿐이었다.
그리고 변방에 있는 남편의 성과, 도꾸가와가 있는 미까와 성은 거리가 멀었다.
그런 사정들 때문에, 요시모도에게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나지 못한체 슬픈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당시 그에게 보내는 물품 심부름꾼은 오다이 친정 오빠였는데, 훗날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내가 필력이 약하여, 도꾸가와에 대한 오다이의 지극한 모정을, 다 표현하지 못함이 매우 유감스럽다.
난세의 한 가운데 어린체 홀로 버려져 있는, 자신의 혈육에 대한 애절한 어머니의 마음.....
그렇게 수십년을 보낸 후 그녀가 아들을 처음 만난 것은, 도꾸가와가 중년이 되어서라는 기억이다.
그 당시 도꾸가와는 비교적 자유롭게 되었지만, 그 때는 또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도꾸가와 역시, 어머니를 잊지 않았음은 말할 것이 없다.
생각하면 한점 친 혈육도 없이, 그 무수한 질곡과 인고의 생할을 하면서 왜 생모가 그립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계속되는 냉혹한 난세는, 한번도 그에게 만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오다이의 어머니, 즉, 그의 외할머니 죽음을 전쟁터에서 들었다.
그 할머니는 사실상 고난의 인질생활에서 어머니와 다름 없었는데, 그는 부하들 때문에 울지도 못했다.
그래도 기억에는 없지만, 생모가 아직 생존해 있음에 그 얼마나 마음 든든해 했었던가?
그러나 생모 오다이는 그에게 그늘이었고 그림자였다.
언제나 자신의 주변 어딘가에 항상 느껴지긴 하는데, 그러나 그 때마다 찾아 보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느낌과 마음은, 그가 계속 승승장구하여 대 영주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의 작은 성 오까가끼 때도 그랬고, 지금은 옛 요시모도 영토 보다 더 넓은 대 영주인데도 그랬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당연히 그럴 일이었다.
두 모자는, 서로가 조석마다 드리는 신불 참배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오다이는 집안에 불상을 모시면서도, 정한 기간이 되면 별도로 큰 신사에 가서 또 축원을 드렸다.
그녀의 일생은, 사실상 아들에 대한 걱정과, 안위에 대한 노심초사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아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오다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들의 신분이 매우 높아져, 행여 누가 되거나 흠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에게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한 일을 항상 미안해 했다.
하지만 한시라도 그 아들을 잊어 본 일이 없었으며, 그러면서 그의 안위와 무운을 부처님께 축원했다.
어쩜 생사를 알수 없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전투 전날 밤.
도꾸가와는 밝은 달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다가, 비밀리 시동만 데리고 잠시 진을 떠나 생모를 찾았다.
그 때 그가 진치고 있던 곳은, 생모가 사는 지역과 그리 멀지 않았었다.
사실 갖난이 때인 2살에 헤어졌으니, 피차간에 어떠한 기억도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불혹의 중후하고도 늠늠한 풍체의 아들, 꿈으로만 그리던 아들을 만났을 때의 오다이.....
오다이가 본 아들의 모습은, 그의 부친 보다 용맹스러웠던 외할아버지 기요야스를 더 닮았다고....
한참동안 두 모자는, 그저 손만 잡은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치 가신 처럼 저만치 뒤로 물러 앉아, 두 손을 짚고 머리 숙여 흐느끼는 오다이였다.
할머니를 닮아 미인이었다 소문은 들었는데, 과연 아직도 미색이 다 가시지 않고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인데도 조심하는 몸짖들이, 그의 가슴을 사뭇 져미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상상만 했던 생모를 만난 것이 꿈만 같은데 어쩜 이것이 마지막일까?
생모의 여생이나마 자신이 편히 모시려면, 어떻게든 이번 전쟁을 꼭 이겨야만 할 것이었다.
그 때 그 전쟁 목적 중에는, 생모가 속한 성을 휘하에 넣으려는 속샘도 있었다.
물론 그 일은, 노부나가의 양해하에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뜻이 이루어져, 생모 남편을 중신으로 받아 들였고, 생모를 직접 모시게 되었다.
또 오다이의 아들들, 즉, 그에게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 3형제 역시 측근 무사로 거두었다.
그런 다음 전장에 나갈 때 외에는, 그는 매일 같이 문안을 드리며 극진히 효를 다 했다.
도꾸가와의 첫 부인이며 악처였던 쓰루?희매 공주에 대해선 처음에 잠시 언급했었다.
걸핏하면 요시모도의 조카라며, 그에게 오까가끼의 거지라고 얕 보고 깔 보았던 꺽달졌던 그 공주.
그 부인은 도꾸가와에게, 장남 노부다다를 낳아 주고 가신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쓰루희매 공주의 죽음은, 요시모도의 패전과 그에 따른 멸망과 무관치 않다.
요시모도를 죽인 노부나가에게, 철천지 원수라고 계속 욕을 하는 통에 그 소문을 두려워 한 결과였다.
당시 도꾸가와가 노부나가의 부하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굴복하여 협조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 상태에서 말을 함부로 했을 때,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 잘 알면서 계속 저주를 퍼 붓는 것이었다.
더구나 노부나가의 딸이, 도꾸가와 장남인 노부다다에게 출가하여 며느리로 있던 때라 더욱 그랬다.
그 결과는 또 그 아들도 어머니 원수의 딸이라며, 홀대하고 구박하다가 할복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뭘 모르는 정신나간 어머니요 그 아들이었다.
그런 일을 겪은 도꾸가와는, 그 이후 여러 측실들을 두면서, 귀족가문의 정실 부인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후 사실상 그의 정실이었던 차아 부인은, 농부와 살다 과부가 된 상민 출신이었다.
그녀는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니었고, 그가 어딘가 다녀 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농가집의 과부였다.
어떻게 그런 천한 여자를 측실로 하느냐는 중신들의 반대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 여자를 측실로 맞아 들이면.
"우선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고 하니까, 또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좋고."
"그 아들 둘은 내가 잘 키워 주면 내 아들이 아닌가? 그래서 힘 안 들이고 자식 둘을 얻어서 좋고."
"가문을 내세울 것도 콧대가 높을 일도 없으며, 나 만을 고마워하며 모실테니 그 얼마나 좋은가?"
"그 뿐만이 아니다.... 내가 다른 여자를 또 여럿 들인다 하여 질투도 없을 것 아닌가? 흐흐흐....."
"그것으로 다 인 줄 아느냐? 돼 먹지도 않은 친척들 득세가 없는 일이 어떤지는 그대들도 잘 알텐데?"
"또 있다, 각각 자식들 교육 잘 시키라고 경쟁시키는 거야. 제 자식이 시원찮으면 말을 못하겠지...."
도꾸가와가 차아 부인에게 바랬던 그것은 정통으로 들어 맞았다.
비록 농부의 아내였지만, 옛날 어느 가문인가의 후손 답게 예의 범절이나 심지가 반듯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낳아 준 아들 셋 중에서 첫 아들이, 그의 상속자 2대 쇼군 히데다다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측실 소생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영민치 못한데다 누부나가에게 인질로 가 있었다.
오랜 인질생할 때문인지 싸움은 잘했지만, 성격이 과격한 등 여러가지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먼 훗날 큰 성을 주어 대 영주로서, 히데다다의 가신으로서 동생에게 충성하도록 조치했다.
아무튼 차아 부인의 내조는, 매우 훌륭하여 도꾸가와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33세가 되자 스스로 그에게서 물러 났는데, 다른 젊은 측실들 거의 모두를 그녀가 천거했다.
도꾸가와로선 당연한 일로 측실들이 많았는데, 차아는 그녀들을 시끄럽지 않게 잘 관리했다.
차아 부인은 도꾸가와 말년까지 언제나 옆에서 조용히 내조했다.
도꾸가와에게 딸렸던 많은 측실들은, 그가 죽은 후 중신들에게 시집가거나 측실로 하사 되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받은 가신들은, 주군 도꾸가와의 측실들을 대단한 영광으로 알고 맞아 들였다.
여성들 이야기는, 사실 히데요시 여인들 사연들이 더 재미있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 히데요시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 편쯤 더 써야 할 듯.......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