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빳따(몽둥이)......

외론 별·2006. 10. 8. 오후 4:26:53

바둑 빳따 12대.....

              대마(大馬) 12마리.....

 

 

바둑 빳따... 그것이 무슨 뜻?

야구 빳따와 같은 의미이니 바둑으로 빳따를 즉, 누군가에게 몽둥이질을 했다는 말 아니겠는가?

왠만큼 바둑을 좋아하여 오래 둔 사람들도, 아마도 나의 이 말은 쉽게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잊지 못할 추억이 있으니.....

 

 

나는 전에 영원한 라이벌에서 바둑 이야기를 했다.

당시는 회사 근처 하숙집에서 지냈던 관계로, 퇴근 후에 시간이 많았는데.

그 때는 술을 전혀 못할 때여서, 대부분 시간을 책을 보거나 기원에서 바둑으로 소일했다.

그러다 골목입구 구멍가게 주인을 알게 되어, 퇴근하면 그와 바둑을 두며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 주인의 기력이 많이 약했지만, 비슷한 연배라서 편히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저녁 8시경이면, 거의 매일 그 가게에 들리는 아가씨가 있었다.

나이는 매우 어려, 대략 스물 아니면 한 두살쯤 되었을까.....

구멍가게라 과자 종류가 별로 많지도 않은데, 그런데도 한참씩 두리번 거리면서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맛도 없는, 그 중에도 제일 싸구려 과자 부스러기 한두 봉지를 사가곤 했다.

 

 

그 아가씨가 무엇을 사든 말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다른 손님들과 달리 그 아가씨가 올 때마다, 가게 주인과 두던 바둑이 장시간 중단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일방적으로 이것저것 한아름 챙겨 주면서 무조건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과자 값은 걱정말고 먹기만 하면 된다며, 우격다짐으로 내 쫒듯 보낸 일이 있었다.

 

 

난 그 아가씨와 대화는 없었지만, 거의 매일 보는 터라 낯은 충분히 익은 상태.

갑작스런 일이라 어리벙벙해 하는 그녀에게, 예쁜 아가씨는 맛 있는 것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것들만 왕창 챙겨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자 값은 필요 없으며, 그래도 부담된다면 차 한잔 사주면 좋고 물론 안 사도 된다고 했다.

 

 

가게 주인이 그 아가씨가 마음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 무슨... 나이 차가 10살이 넘는 것을, 그래서가 아니라 바둑을 빨리 두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실 좀 짜증이 났으므로, 그래서 잠시 그녀를 놀려 주고 싶은 마음에 재미와 장난으로 한 것이었다.

그녀는 예쁘장 했지만, 당시 설흔이 훨씬 넘은 나에게 걸 맞는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다음날 왠일인지 가게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 후 며칠은, 마침 일 때문에 내가 그 가게에 들리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날이 지난 다음, 골목길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결국 하찮은 과자 몇봉지 때문에, 즉 차 한잔의 의무를 지키려다가 내 아내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의 결혼에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어야 당연하고 정상일 것이다.

당시 아내는 부모님을 떠나, 조그만 사업을 하는 사촌 오빠 공장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빠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 집이 나와 같은 골목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결혼을 극력 반대한 사람이 작은 오빠였고, 그도 큰 오빠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러 형제중에 장녀인데, 친 여동생이 없던 작은 사촌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던 모양.

작은 오빠는 동생이 너무 어린데다, 내 나이가 너무 많다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적극 반대를 했다.

그러면서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 절대로 허락하지 말라고 집요하게 고추가루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 봄에 하려던 결혼을 가을로 연기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작은 오빠의 반대를 이해했다.

아내에 비해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 그러나 친 부모 보다 더 심한 반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본인이 이미 확고하게 결정한 상태에서, 계속 끝까지 훼방한다는 것은......

그 오빠는 나 보다 한살이 더 많았는데, 나중에는 성질이 나고 매우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말고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결혼 전에 처가 어른들을 찾아 모두 인사를 드리면서, 하지만 그 오빠에게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래선지 그 처남 역시, 우리 결혼식에 왔어도 가족사진에는 찍히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처남인지, 사진이라도 보려고 했더니 가족찰영을 않고 가 버렸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것이 마음에 걸린 듯,  결혼 후 처남과 화해시키려 했는데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 오빠가 아무리 좋더라도, 나로선 제일 몹쓸 오빠였고, 괘씸하기 짝이 없는 처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혼 몇달이 지나 년말이 될 때까지,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일체 무시하고 지냈다.

그런데 마침 년말연시에 눈이 많이 내려, 교통 사정이 안 좋아 연휴에 고향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장을 하는 큰 처남이 모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 처남은 아내를 친 동생처럼 데리고 있었던 만큼,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따라서 작은 처남이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그 집에 가면 부득이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쨌던 피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형제들 모두가 바둑을 좋아한다 하니 몇판 두다가 오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작은 처남은 조카와 바둑을 두면서 얼굴도 돌리지 않아 나도 모른체 해 버렸다.

큰 처남이 그런 어색함을 풀고자, 너스레를 떨며 덕담을 하는데도 그는 계속 바둑만 두며 외면했다.

안 되겠다 생각한 큰 처남은, 바둑 잘 둔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나에게 한판 두라며 권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바둑이 안성맞춤, 난 사양 않고 조카가 양보하여 물러난 자리에 앉았다.

 

 

나와 바둑.....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내를 만난 것도 바둑이 고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당시 나의 직장도, 바둑과 아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데다 또 처가의 여러 형제들이, 모두 바둑을 좋아하리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느 집이든 바둑판이 있다면, 그집 주인은 분명 애기가(愛碁家)이다.

그리고 바둑을 얼마 만큼 좋아 하는지는, 소장하고 있는 바둑판을 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다.

큰 처남은 훌륭한 바둑판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둔 흔적 또한 역역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흔하디 흔한 하급 기력은 아닐 것 같아 다행......

 

 

큰 처남 말에 의하면, 처가에서 기력이 제일 강한 사람이 바로 원수?인 작은 처남이었다.

그 처남은 시간만 있으면, 공장 근처 무슨 대리점 사장과 가게 등에서 매일 내기 바둑을 둔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오늘 이 원수 처남을 단단히 혼을 내고 망신을 주리라 적정했다.

큰 처남이 별 소리를 다해도, 나는 그가 조카와 둘 때 잠시 훑어 보고 기력 파악을 이미 끝낸 것이다.

 

 

그의 기력이 약한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의 내 바둑엔 어림 없었다.

훨씬 그 뒤에 바둑 붐이 크게 일었고, 늦은 나이에 모두가 배우려고 애를 쓰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난 언젠가 아내에게, 오빠 형부들이 바둑을 잘 둔다 말을 들었어도, 그들의 기력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고 그럴 것이라 무시하여 관심두지 않았었다.

 

 

그래도 처가의 모두가 바둑 애호가였으므로, 우리 둘의 대국에 온 식구들의 관심이 큰 것은 당연했다.

물론 그 때까지 우리 두사람은 인사가 없는 상태.

대국을 시작하면서, 그 처남은 아무 말 없이 백통을 내 앞으로 내밀며 흘낏 내 눈치를 보았다.

아마도 예의상 백통을 내가 사양하리라 보고, 형식적으로 양보하는 척 했을 것이었다.

 

 

원래 서로의 기력을 모를 때는, 연장자 또는 손위 사람에게 백을 양보하는 것이 예의이고 관례이다.

그러므로 처남 입장의 경우, 당연히 내가 자기에게 백을 양보해야 맞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는 듯 백통을 받았으며, 어서 빨리 흑돌을 놓으라는 자세를 취했다.

나의 그런 태도가 뜻 밖이라는 듯 잠시 머뭇하더니, 흑돌 한개를 큰 소리를 내어 화점에 딱 두들겼다.

그것은 원래 그의 습관인지? 아니면 좀 열 받았다 그 뜻인지?

 

 

그러나 나의 진짜 무례한 행동은 그 다음부터였다.

즉, 나는 초반 포석을 하지 않고, 그가 방금 '딱' 소리를 내며 놓은 흑 한점을 즉각 공격했다.

바둑에서 그것이 반칙은 아니지만, 상대를 몹씨 깔보고 무시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수인 것이다.

바둑을 아시는 분들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순간 처남의 얼굴색이 굳어지면서, 오기가 확 뻗혀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도 기력이 약하지 않아, 공장 근처에 즐비한 가게 주인들이 내기 바둑을 기피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적수를 만나기 어렵다 하는 입장인데, 이 무슨 건방지기 짝이 없는 짓이란 말인가?

이건 대학생이 초등생 정도에게나 두는, 아주 깔 보지 않으면 둘 수 없는 엄청 기분 나쁜 수....

 

 

"어? 그렇게 두면 안 될텐데?"

 

 

내가 첫수를 그렇게 두었더니 큰 처남이 한 말.

그건 나의 수가 무례하지 않느냐 보다는, 작은 처남 실력이 강하여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

예기치 않았던 대국 형태에, 동서들과 조카도 흥미로운 듯 침을 꼴깍 삼키며 관전에 열중하기 시작.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냐면서, 바둑을 모르는 여자들까지 합세하여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에 대답 않고, 그가 흑돌을 놓기 무섭게 즉시 따라서 두었다. 

약이 잔뜩 오른 처남은 감정을 간신히 누르며 열심히 도망쳤지만, 그 큰 대마는 잡히고 말았다.

바둑판 거의 1/3 이나 되는 대마가 죽었으니, 그 판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처남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짖더니, 안 되겠다 궁시렁거리면서 한점을 더 접어 두점바둑이 되었다.

 

 

난 역시 포석을 않고 계속 따라 붙으며 공격을 했다.

결과는 한점 더 붙이나마나 똑 같아서, 결국 흑은 또 큰 대마가 되어 잡혔다. 

그 처남은 이번에도 머리를 설래설래 두번 흔들더니, 한점을 더 늘려 3점 바둑으로 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3판을 연달아 거대한 왕대마를 죽였던 것이다.

 

 

내가 화장실 가려고 잠시 일어 났을 때, 아내가 비밀히 다음엔 져 주라는 뜻의 싸인을 보내 왔다.

그만큼 집안 분위기가 냉각되었다는 뜻, 그러나 나는 머리를 저었다.

아내도 내심으로 크게 놀라는 모양이지만, 그동안 바둑에 대한 나의 이력을 몰랐을테니 당연한 일.....

바둑에 관심 없어 하는 아내에게, 난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었다.

 

 

처남은 4점이나 깔았는데도, 오히려 두는 속도를 늦추며 계속 장고(長考)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가 돌을 놓기 무섭게 즉각 손 따라 두었다.

그가 장고하는 시간에, 나 또한 충분히 대응할 수를 생각하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계속되는 나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대마를 또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자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묵묵히 밥만 먹는데, 그것이 답답했던지 큰 처남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바둑을 언제 배웠는데 그렇게 잘 두느냐고.....

그리고 지금 몇급이냐고 물었지만, 난 좀 오래 되었다며 그러나 정확히 몇급인지는 모른다 대답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나서 또 바둑판 앞에 앉았다.

처남은 온 종일을 바둑 두면서 가끔 뭐라고 궁시렁거렸지만, 난 한마디 댓꾸 없이 바둑에만 열중했다.

나는 그 때, 단순히 바둑을 이기기 위해 신경을 쓴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꼬드기고 약을 올려 대마가 되도록 유도하면서, 그 대마를 잡으려는 작전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인데다, 가족내 최강자 체면이 걸린 만큼 그 작전은 아주 잘 먹혀 들었다.

처남은 당초부터 나의 적수가 아니므로, 오늘 크게 혼을 내 주겠다고 벼르는 입장.

그리고 망신스럽게 연속 패하여, 집안 분위기가 착 가라 앉다가 급기야 무거워서 무널질 지경이었다.

큰 처남이 보다 못해 한번 훈수를 했는데,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훈수하지 말라 신경질을 부렸다.

 

 

그렇게 7번째 판이 끝났을 때는 자정 무렵, 식구들은 밤참거리를 챙기고 모두 쉬쉬하며 잠자러 갔다.

나는 계속 밤새도록 깐죽깐죽 약 올리 듯 두었고, 그에 흥분한 처남은 번번히 대마를 만들고 죽었다.

신정날 오전 10 반쯤 시작된 바둑이 끝난 것은 다음날 이른 아침.

그러니까 꼬박 거의 하루를 두었으며, 그리고 13점까지 올라 갔으니 12판을 두었던 것이다. 

 

 

그것도 큰 처남이 야단치듯 한마디 하는 바람에, 마지 못하여 억지로 끝난 것이었다.

그래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 가까운 시간.

세면을 하고 식탁 앞에 앉으려는데, 그 처남이 그 때서야 비로서 먼저 악수를 청하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껄껄거리고 크게 웃으며, 자기에게 아주 대단히 서운 했던 모양이라고.....

 

 

나도 물론 혼쾌히 응하게 되니, 집안 분위기는 급격히 화기가 돌면서 확 풀어졌다.

밤새기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는 큰 처남에게, 그는 빳따로 사정 없이 12대나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그의 대답은 사실이었으며, 아주 적절하고도 정확한 표현이었다.

나는 쌓였던 그에 대한 괘씸한 감정을, 그야말로 빳따를 치듯 바둑으로 12대나 줘 패 버렸던 것이다.

 

 

처남도 바둑을 아는지라,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화해한 다음, 13점은 있을 수 없다면서, 정확히 몇점을 접으면 되겠는가 깎자고 했다. 

그렇다면 그 절반인 6점부터 시작하여, 내리 3연승시마다 한점씩 올리고 내리자 했다.

그래서 그 날밤 역시 밤새워 두었는데,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음은 물론이다.

 

 

그날밤 처남은 6점도 힘들지 않았지만, 그러나 3판에 한번은 져 주었다.

그래서 그 처남과의 칫수가 6점이 된 것인데, 그 바람에 그는 나에게 내깃돈을 많이 잃어야 했다.

처남은 바둑을 배우기 위해, 우리집에서 자주 밤새며 바둑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장 근처 가게 주인들과의 내기에서 많이 이기고 있었으므로 별 손해는 없노라고.....

 

 

나는 그 후 10여년을, 주말은 물론 공휴일까지 그 처남을 위해 비워 두었다.

그리고 올 때마다 내깃돈을 후하게 잃어 주었으므로, 아내는 불평은 커녕 쌍수 들어 환영했다.

하마터면 앙숙이 될뻔한 그 처남과 나를, 막역한 친구처럼 친하게 만들어 준 것은 물론 바둑이었다.

그 일이 벌써 27년이 넘었는데,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처남에게 놀리곤 한다.

 

 

"처남! 옛날 그 빚은 갚아야지? 13점 깔고 한번 두어야 하는 거 아냐?"

 

"흐흐흐... 창피하게 그 무슨 쓸데 없는.... 하지만 그날의 빳따 맛은 절대 잊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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