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7]

외로운 별·2006. 10. 2. 오전 10:00:59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내가 여기에 도꾸가와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것이었다.

옛날에 읽은 책이지만, 인상 깊었던 교훈적 내용 일부를 한 두편 소개한다는 것이 길어졌다.

그리고 내친 김에 달리다 보니 어느 듯 7편까지 왔는데.....

 

 

요즘은 여러 체널을 통해 일본을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 최소한 중세 이후의 그들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그들의 오늘은, 결코 과거를 뛰어 넘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크게 다른 그들만의 것을, 이왕이면 재미를 느끼며 이해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그래서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그들의 것을 음미해 보는 지혜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는, 어떠한 편견과 편향된 사고를 전재하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내 어렸을 때 어른들은, 일본이라면 무조건 손을 저으며 치를 떨었다.

그렇게 박통전까지 멀리 하며 지냈지만, 그 결과 얻은 것은 좀처럼 좁히기 힘든 격차 뿐 아니던가?

난 옛 어른들을 이해 할 수는 있어도, 현재는 그들을 멀리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중세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며, 그들 특유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를 살았다.

따라서 우리의 시각과 관점으로, 오늘의 일본을 보거나 판단하면 절대 안 되는 이유가 그에 있다.

내가 이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런 점에서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이다.

 

 

도꾸가와를 말하면서,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를 빼면 원래 이야기가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노부나가를 제외했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쉽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미흡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노부나가 역시, 소국인 미까와 성주 오다 노부히데의 장남으로 태어 났다.

그의 부친 노부히데는 호탕하면서 성격이 급하고 난폭했어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자나 깨나 칼 들고 싸워야 하는 난세에서는, 평범한 무장이어선 살아 남기 어렵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래서 첫 아들 노부나가가 태어나자, 유능한 중신을 사범으로 붙여 오직 훈육에 전념시켰다.

그의 유별난 훈육방식은, 기존 관행의 틀을 모조리 깨고, 듣도 보지도 못한 파격적인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성주 아들의 옷 차림을 거부하고, 천민처럼 맨발에 배 잠방이를 즐겨 입는다는 식이다.

 

 

그는 그렇듯 관행과 형식들을 모조리 무시하여, 얼핏 기인 같은 행동을 즐기고 좋아 했다. 

당시 보기 어려운 흑인을 구하여 어깨에 무등을 타고, 그에게 고삐를 만들어 말 처럼 타기도 했다.

결국 그의 탈선은 극에 달하여, 부친 노부히데 장례식 때 향초 한 주먹을 영정에 확 뿌리기까지....

 

 

그의 상례를 벗어난 기행은 수 없이 많은데, 머리 회전이 빨랐으며 성격은 부친 보다 훨씬 격했다.

그의 면면들이 그렇고 보니 가신들은 항상 긴장했으며, 그의 시동들 또한 그를 닮아 갔다.

그 결과는 당연히 그를 무서운 성주로 만들었고, 부친은 그런 성주를 원했으므로 잘못된 게 아니었다.

 

 

노부나가가 소년일 때, 도꾸가와는 그의 부친 노부히데의 미까와 성에 인질로 있었다.

도꾸가와 보다 노부나가는 8살이 더 많았는데,  가끔씩 놀러 왔었고 처음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그 때의 만남이, 훗날 노부나가 시대에 도꾸가와를 적대시 않는 계기가 된듯 하다.

 

 

도꾸가와는 노부나가의 왕도 진출 축하연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히데요시와 대면했다.

그러니까 세명 모두 동시대를 살았으며,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노부나가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 축하연 초대에 응하지 않은 영주들은, 그의 왕도 진출 반대로 간주하여 정벌 대상이 되었는데....

 

 

그런데 소국 영주들만 참석하고, 가문의 체면을 중시한 대국 영주들은 무시하여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에 크게 분노한 노부나가는, 불참 대 영주들을 하나씩 정벌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노부나가가 미까와 성주가 되어 왕도 진출에 성공하고 난 한참 훗날의 일.....

 

 

도꾸가와가 인질 당시 아버지 오까가끼 성주는, 순뿌의 대 영주 이마가와 요시모도 관할 속국이었다.

노부히데의 미까와 성은 오까가끼와 국경을 접했고, 대영주는 오미의 겐신?이며 요시모도의 적이었다.

즉, 도꾸가와 부친과 노부히데는, 국경을 서로 마주하며 각각 다른 대 영주 보호 아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당시 대 영주들이 자신의 영토 지키기 숫법을 보면. 

전 일본이 여러 개의 대 영주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고, 국경을 접한 주요 지역마다 수비 성을 두었다.

그리고 여러개의 수비성들을 감독하며, 성마다 유능한 장수를 두고 국경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대 영주 자신은, 영토내에 제일 튼튼하고 안전한 성을 본거지로 하여 전체 성주들을 지휘했다.

 

 

만일 국경지역 성주인 장수가 시원치 않아, 적국 성주에게 밀리면 가차 없이 성주를 교체했다.

대 영주 입장에선 영토 보호가 최 우선이었고, 그 때문에 성주들은 가문의 명예와 목숨을 걸었다.

도꾸가와 가신들이 성주인 부친을 암살한 것도, 허약한 그를 제거하여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성주들은 1만석 이상일 때 영주로 대우했으며, 대 영주들은 10만석에서 20만석이상도 있었다. 

도꾸가와 부친의 오까가끼와 노부히데 미까와 성주는, 2~3만?석의 작은 영주였다고 난 기억한다.

노부히데는 대 영주 오미?의 겐신? 휘하에, 오까가끼 성은 순뿌의 이마가와 요시모도 휘하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뿌의 이마가와 요시모도가 왕도 진출을 위해 출병한 것이다.

그때도 도꾸가와는 인질이었고 부친이 죽어, 요시모도의 가신이 오까가끼 성주대리로 있을 때였다.

왕도 진출은 요시모도의 숙원이었으며, 그 꿈 실현을 위해 드디어 대군을 움직였던 것이다.

 

 

왕도 진출에 대한 목적과 의미는, 전편 다께다 신겐에서 소개했으니 여기선 생략한다.

다만, 다께다 왕도 진출시에 도꾸가와가 풍전등화였듯이, 요시모도 진출시는 노부나가가 꼭 그랬다.

다시 말해서 노부나가는, 요시모도에게 굴복하던가 싸우다 망하던가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 노부나가 소속의 대 영주 겐신은 그에게 장인이었는데, 가문내에 문제가 생겨 도울 수가 없었다.

요시모도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겐신 가문의 분란을 알고 왕도진출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 때 도꾸가와는 노부히데의 미까와에서, 다시 요시모도에게로 넘겨져 인질국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요시모도에게 굴복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양쪽 편의 군사 비교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터무니 없는 열세....

그런데도 노부나가는 가문 사람들의 걱정을 비웃으며, 전혀 걱정이 없다는 듯이 태평했다.

 

 

남들이 웃으면 화를 내고, 남들이 걱정할 땐 오히려 크게 껄껄 거리며 웃는 노부나가 아니던가?

설령 그의 성격이 그렇다 해도, 바닷물 처럼 밀려 오는 요시모도 군에게 어떤 수단이 있다는 것일까?

요시모도는 제 까짖 게 뭣을 할 것이냐며, 뚱뚱한 몸을 가마에 얹고 흥얼흥얼 콧노래 하며 진격했다.

 

 

그들이 국경을 넘어섰을 때 점심으로 먹으라고, 인근 마을에서 푸짐한 떡과 술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래서 요시모도는 잠시 쉬면서, 장수들과 함께 떡과 술을 배 부르게 먹고 마셨다.

중신들은 갈 길이 바쁘다 했자만, 음식이 쉬면 미안한 노릇이고 적군도 약하니 걱정말라며 꾸짖었다.

 

 

때는 무더운 여름 한낮.

요시모도는 성을 나온 이후, 모처럼 정성을 기울인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마시다가 대 취했다.

그리고 군사들이 겹겹이 둘러 싼 시원한 장막 안에서, 잠시 눈 붙이고 가자며 낮잠을 잤다.

 

 

그런데 갑자기 후두둑 거리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위 사방이 웅성웅성 시끄러운 것은, 아마 군사들이 급히 비를 피하느라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왠 소란들이냐 호통을 치려는데, 옆구리가 뜨거운 인두에 덴 듯 뜨끔하더니 숨이 콱 막혔다. 

 

 

그리고 또 목이 뜨겁다 느껴진 순간, 번갯 불이 번쩍 눈 앞을 스치면서 아무 느낌이 없었으리라.....

당대의 대 영주 이마가와 요시모도는, 그렇듯 치욕스럽게 무명의 졸개에게 그의 목을 내 주고 말았다.

잠시 후 검게 물들인 이빨의 그의 머리는, 이름도 없는 말단 졸개의 창 끝에 꽃혀 전장을 달렸는데.....

 

 

노부나가의 기습전인 이 전투를, 일본에선 덴가꾸 전쟁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시모도의 허무한 죽음에 이어, 그의 큰 대국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 나며 멸망해 갔다.

도꾸가와가 14살 인질생활을 끝내고 도망친 것도, 그런 혼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잘 훈련된 정예군 3천을 데리고, 국경 입구 덴가꾸 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한 사람 이마가와 요시모도, 

그는 골짜기 입구 덴가꾸 분지에, 넓게 진을 친 2만5천 군사들 가운데 장막 안의 요시모도를 노렸다.

 

 

그런 일을 말하여 천우신조라 하는가?

때 마침 퍼 붓듯이 쏟아진 굵은 소나기가, 노부나가의 기습작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적군이 코 앞에 밀어 닥친 것도 모르고, 소나기만 피하려고 정신 없었던 요시모도 군들.....

 

 

용이 아무리 크고 무서워도, 머리가 잘린 용은 죽은 용이라 두려울 것이 없는 일.

요시모도 목을 배었다는 함성이, 댄가꾸 벌판에 울려 퍼지자 요시모도 군들은 도주하기 바빴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극적으로 승리했으며, 여세를 몰아 대국 영주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전국 영주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노부나가의 미까와 성보다, 10배나 되는 요시모도를 괴멸시켰으니 그게 어디 예사로운 일인가?

노부나가는 그 때부터 승장구하며, 전국 영주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왕도 진출의 꿈을 이루었다.

 

 

물론 그 때는, 노부나가의 신발지기부터 시작한 히데요시도, 쟁쟁한 장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 전쟁은, 너무나 재미 있는 일이어서 즐겁기까지 했다.

노부나가의 명으로 출전할 때마다, 적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이 바로 그랬다.

 

 

전투에서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손금을 들여다 보듯 훤히 예상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전략은, 항상 상대의 예상을 깨고 뒷통수 치는 숫법으로 일관했다.

즉, 적이 내일 오전까지 도착 불가능하다 장담한 일을, 히데요시는 전날 저녁에 도착을 시켰다.

 

 

대군이 대오를 지어 먼 길을 행군하면, 끼니마다 밥을 먹어야 하고 진을 치고 잠도 자야만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으므로, 그 이전 도착은 불가능하다 믿은 적을 그날 당일 밤에 쳐 부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먹밥 몇개씩만 주면서, 각자 능력껏 뛰어 저녁까지 도착하라고 명령한 것.

 

 

그렇듯 히데요시에게는 어려운 적이 없었으며, 패전이란 치욕스런 말도 없었다.

노부나가 시동 출신 장수들이 시기할 정도로, 그는 싸우면 이겼고 그 때마다 녹봉은 올라 갔다.

그런데 하필 모처럼 난적을 만나 고전하는 때에, 갑작스런 노부나가 암살 비보가 날아 들었다.

 

 

댓글 2

외로운 별·2006. 10. 4. 오후 12:20:29

이 내용은 일개 작은 성주에 불과했던 노부나가가 어떻게 대영주가 되어 왕도 진출을 했는지? 즉, 일본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는지...그리고 그렇게 겨우 전국을 장악한 것이, 또 어떻게 히데요시에게로 천하가 넘어 가게 되었는가...다음 편으로 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방랑자·2006. 10. 8. 오후 1:30:51

알겠습니다, 계속 공부하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