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꾸가와 이에야스 [6]

외로운 별·2006. 9. 29. 오전 1:08:58

중신들의 충성과 마지막 대 청소

 

 

그 당시 도꾸가와는 해외 문물을 많이 접하고 있었는데.

그의 가문 살림살이 일체를, 그가 젊었을 때부터 거의 도 맡아 챙겨주는 상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도 자연스레 상권을 주름 잡는 거상이 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당시 거상들은 큰 배를 띄워 해외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듯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야소교 선교사들 덕분이다.

야소교는 지금의 가톨릭을 말 하는데, 당시 영주들 대부분은 그들의 전교를 억압하지 않았다. 

 

 

다만, 히데요시 시대에 크게 탄압한 일이 몇번 있었다.

그러나 일부 영주들 부인까지 신자였던 관계로, 그의 억압 명령은 영주들을 매우 곤란하게 했다.

그래서 암암리에 쉬쉬하며 은폐하느라 바빴고, 신자임을 숨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영주들이 야소교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선교사들 본국의 훌륭한 신무기 욕심 때문.

히데요시도 그래서 처음에는 억압하지 않았던 것인데, 모른체 두었다가 큰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창 칼과 활 뿐인 일본을 우습게 본 선교사들이, 본국의 군함을 불러 히데요시를 위협했다.

목적은 물론 선교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히데요시를 겁 주려고 한 행위는 문제였다.

아무튼 군함이 들어 왔고, 그 배후에 선교사들이 있음을 안 히데요시가 가만히 둘 까닭이 없었다.

 

 

선교사들도 폴투갈 등 멀고 먼 곳에서, 군함을 오도록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결국 전화위복이 되어, 군함과 함장등을 대우해 주면서 일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집과 여자를 주어 눌러 살게 하고, 그들의 앞선 조선(造船)기술을 배웠던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매우 아쉬운 것은.

입교할 줄 알았으면, 야소교 내용을 좀 더 관심 깊게 읽었을 것을... 별로 기억이 없으니....

하여튼 조선 시대의 지독한 탄압에 비교하면, 일본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그것은 물론 야소교를 위한 때문은 아니었으며.

그래서 영주 가문을 돕는 거상들은, 그들을 통해 남 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려 많은 노력을 했다.

상인들은 또, 피폐한 일본 보다는 해외 무역이 돈벌이가 훨씬 더 좋았다.

 

 

영주들과 중신들은 돈에 초연했으며, 재물을 밝히는 무사들을 혐오하여 무사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시 사회 계급을 士農工商이라 했고, 상인을 제일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전쟁에는 군비가 필요하므로, 영주들은 몇몇 돈 많은 거상들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도꾸가와 가문에도, 오랜 선대부터 큰 힘이 되어 주는 상인이 있었다.

지금은 그 상인이 죽고, 서양 말을 잘하는 영리한 큰 아들이 대를 이어서 도꾸가와를 도왔다.

그는 일반적인 생할 물품들을 챙기면서, 비밀리에 외국의 무서운 신식 무기도 몰래 들여 왔었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그들의 조총 때문에 곤욕을 치렀음은 잘 아는 일.

조총은 옛날 노부나가 시절에 들어 왔지만, 도꾸가와는 비밀리에 대포라고 하는 무기를 들였는데.

그 대포는, 난공불락 히데요리의 오사까 성을 부수는데도, 그저 눈 한번 깜빡만 하면 된다던가....

 

 

그 상인은 대포의 위력을 직접 목격했다지만, 그러나 도저히 믿지 못할 거짓이고 허황된 말이었다.

그런데 그는 절대 헛소리 할 사람이 아니었으며,  무사 이상으로 심지가 굳은 젊은이인 것이다.

그런 그가 도꾸가와에게, 미친자나 할 수 있는 뻔한 거짓말을 사실이라며 고집하는 것이 이상했다.

 

 

만일 상인의 말이 사실이면,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튼튼한 성을 쌓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또 구태어 돈 들여 조총을 구입할 일도, 도대체 창과 칼은 물론 활 따위도 필요치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수 많은 군사들 조차 필요 없다고 하니, 그말을 어찌 제 정신의 말이라 하겠는가?

 

 

당시의 오사까 성은 일본 제일의 견고한 성으로서, 히데요시가 심혈을 기울인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런 만큼 그 성을 함락시키려면, 수만명의 군사들이 엄청난 희생과 날짜가 걸릴 것이 당연한데도.

이 미친 상인은 그까짖 성이라 깔 보면서, 눈 한번 깜빡할 사이 성벽을 허물 수 있다며 큰 소리 쳤다.

 

 

그러다가 자신을 의심하는 그들이 속상한 듯, 시험해 보자는 그의 주장을 도꾸가와는 제지시켰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대포알을 아끼자는 이유였지만, 그 보다는 비밀유지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절대 비밀을 지키라며 함구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모르는 히데요리 측 중신들이, 또 다시 도꾸가와를 적대시 하기 시작한 것인데.

실은 히데요시 생전의 애첩 요도기미, 즉 히데요리 생모가 약속이행을 주장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이제 히데요리가 약속한 14세가 되었으니, 천하를 돌려주고 도꾸가와는 손을 떼고 물러 가라고.

 

 

요도기미가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낭인들이 그녀를 들쑤신 때문이다.

도꾸가와에게 망한 영주들의 가신들이, 낭인이 되어 그녀를 찾아가 계속 꼬드기는 것이었다.

전쟁 후에 망한 영주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생활터전을 잃은 낭인들이 전국에 들 끓었던 것이다.

 

 

그들의 말이 옳다 생각한 요도기미는, 튼튼한 오사까 성을 믿고 공공연하게 도전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낭인들을 끌어 모아 세력을 키워, 더 이상 모른체 둘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들 무리 중에는,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바쳤던 현직 일부 영주들도 동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포가 아니라도 싸움이 될 수 없는, 말 그대로 어린애 팔 비틀기 정도의 장난거리.

한갖 옛날의 화려했던 영화를 잊지 못하는, 어리석은 과부의 욕심이고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대로 굳어져, 더 이상의 야망을 접어야 하는 소국 영주들은 솔깃해 했다.

 

 

도꾸가와 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소문들이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평화를 바라며 히데요리를 지켜 주고 싶은 것과 반대되는 소식들 뿐이었다.

이 때도 가또는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동료 중신들과 같이 요도기미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의 충정어린 고언을 듣기 싫다며, 온 방을 펄펄뛰며 오히려 크게 나무라고 욕을 해 댔다.

배신자 소리가 듣기 싫으면 지금 당장 도꾸가와를 치라고.

히데요리가 약속한 나이가 찼는데도, 그대들은 중신이면서 왜 다시 뺏으려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요도기미를 꼬드기는 낭인들은, 히데요시 생전시부터 그녀와 잘 알고 지내던 중신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또 한번 난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입지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들 일부는 운 좋게 현직 영주에게 의탁은 했지만, 힘 없는 말단에서 평생 썩어야 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낭인들에게는, 난리가 계속 되어야 어떤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을 떠 돌아 다니며, 각종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불안을 조성하기에 바빴다.

그중 일부는 제법 큰 무리를 지어 약탈도 했으며, 그 때문에 관할 영주들이 골치를 앓기도.....

 

 

그러나 도꾸가와는, 누가 어떤 소문을 전해도 무관심 한 모양.

중신들이 이대로 놔 두어선 안 된다며 난리를 쳤지만, 그는 꿈쩍도 않으며 못 들은체 했다.

그러나 그는 내심으로, 세끼가 하라 전쟁 후 만난 고승을 생각하며, 그의 혜안에 혀를 차고 있었다.

 

 

그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며, 진짜 마지막 전쟁이 곧 있을 것이니 방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은 결국, 말썽의 씨앗인 히데요리를 놔 두고선, 일본 평화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뜻....

그러나 일본 최고의 무장 대 무장으로서, 히데요리를 꼭 지켜 달라 또 지켜 주겠다 약속한 것이다.

 

 

그 약속은 이제 둘만의 것이 아니며, 전국 영주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약속한 나이가 되었으므로, 이제 그 약속을 지키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 인심들도, 도꾸가와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옳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무장의 약속, 그것도 일개 무사가 아닌 일국을 호령하는 대국 영주의 약속은 곧 법이었다.

그래서 이유야 어떻든 일단 한번 약속을 했으면, 목숨을 버리더라도 지키는 것이 무장의 도리였다.

그 도리가 무너지고 무시되면, 휘하 부하들의 군기를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도꾸가와는 고민 끝에 고승을 찾았다.

그 고승은 사실 고승이라 하기 보다, 괴상한 승려 즉, 괴승이라 하는 것이 옳았다.

자신은 괴승도 언감생심 한갖 돌승일 뿐이라 했지만, 아무튼 여간 내기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는 도꾸가와 보다 다소 젊어 보였는데, 나이를 잊었다며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누덕한 헤어진 옷을 입었으며, 그래서 거지라고 본 부하들에게 쫒겨난 일도 있었다. 

좋은 옷을 주어도 마다 하고, 괴팍한데다 방약무도하여 도꾸가와에게 항상 꾸짖으며 야단을 쳤다.

 

 

그랬던 그가 하늘을 쳐다보고 목 젖을 보이며 한바탕 웃더니, 마치 어린 동생을 달래 듯이 말했다.

부하들을 시켜 오사카 성에 대포 한방만 먹이라고, 그 다음은 술 한잔 먹고 푹 자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한 나절만 푹 자고 나면, 모든 걱정은 안개 걷히듯이 말끔이 사라질 것이라고.....?

 

 

그가 대포를 알고 있는 사실도 매우 놀라웠지만, 도대체 그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런데 며칠 후, 뜻 밖에도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왔다.

마에다 도시이에, 그는 히데요시 시동 출신의 대국 영주로서, 도꾸가와와 친하게 지내는 장수였다.

 

 

오랜만에 만난지라 즐겁게 담소하다가 대취하여,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다음 날 아침.

그런데 밤새 오사까 성에 큰 난리가 났었고, 그 통에 히데요리와 요도기미가 죽었다는 보고였다.

그리고 또, 히데요리를 추종하던 잔존 세력들 모두가, 한 사람 남지 않고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다.

 

 

또 그들을 따르던 영주들도 모두 일망타진 되었으며, 낭인들 우두머리들도 모두 죽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그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굴던 무리들이, 밤사이에 말끔히 청소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이 무슨 날 벼락, 그는 어이 없어하며 흥분한 듯한 마사스미의 입만 멀뚱히 바라 볼 뿐이었다.

 

 

그때 마사노부는 은퇴하여, 그의 아들 마사스미가 측근을 지키고 있었다.

마사스미 또한 매우 영리하여, 도꾸가와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그가 지금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이나서 죽겠다는 듯, 대포 딱 두 방에 성이 무너졌고 모두 넋을 잃어버려 체포가 쉬웠다고.....

 

 

그런 구구한 사실이야 어쨌던, 대체 누가 누구의 명령으로 그들을 그렇듯 대청소를 했단 말인가?

너무나 뜻 밖의 일이라 멍해 있는 그에게, 마사스미는 방의 큰 문들을 활짝 열어 제쳤다. 

도꾸가와는 그제서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와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코 흘리게 시절 시작된 인질생활부터 함께 한 시동 출신 장수들,

즉, 평생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최고 장수들이, 할복할 준비 태세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의 명령 없이, 자신들 멋대로 처결한 죄로 할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뜨락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위옷을 벗은 체 눈을 감고 소도를 무릎 앞에 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 한 사람도, 침통한 얼굴은 없고 한결 같이 밝았다.

그들 뿐 아니라 가문내의 모두가, 심지어 일하는 여인들까지도 얼굴색들이 밝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수십년 앓던이가 빠졌다는, 마치 그런 표정들이요 모습들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일본 역사가들은 저마다 다르게 말한다.

도꾸가와가 직접 주도했다는 주장과, 부하들의 그 계획을 알면서도 모른체 했다는 등등이다.

그러나 전혀 몰랐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나는 도꾸가와의 인품상 본문을 사실로서 믿고 싶다.

 

 

당연히 도꾸가와는 대노하였으며,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할복시킬 수는 없으므로, 하옥하라는 명과 함께 영지 몰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모두 꼴도 보기 싫다 하며 그 날자로 은퇴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조치에 일체 불평하지 않았으며, 또 자신들이 한 일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모든 것은 주군의 것이었으며, 그래서 언제라도 주군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그가 노환으로 죽을 때, 순사 할복(저승길 동무)하려는 것을 괴승이 겨우 말린 일까지 있다.

그들이 히데요리 일파를 처단한 것은, 일본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며 주군을 위한 충성이었다.

 

 

주군의 남은 소원이, 평화의 쓰레기 청소인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호미로 막을 것을 꼭 가래로 막도록 키우는 것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군을 위한 마지막 충성으로, 비밀리 청소를 해 치우고 모두가 죽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도꾸가와는 당연히 괴승을 의심했다.

그러나 괴승은 시침을 딱 떼고, 주군의 말도 안 듣는 그들이 내 말을 듣겠느냐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것은, 도시이에가 그 계획을 알고 자기를 찾아 왔었는가 였다.

 

 

그러나 그에게 물어 볼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에, 아들에게 가문을 물려 주고 은거에 들어 갔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먼 훗날 들려 온 소문에 의하면, 그 일을 모른체 괴승의 부탁으로 방문했었다고....

그렇다면 충성만 알 뿐 고지식한 도꾸가와 장수들에게, 괴승이 귀뜸을 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그 중신들은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하고 죽었지만, 영지 몰수는 도꾸가와 사후 곧 원상복귀 되었다.

당시 그들의 영지를 받은 영주들은, 애초부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도꾸가와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차마 거부를 못하고 임시로 맡아 관리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도꾸가와는 새로운 일본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가또들에게는 후하게 영지를 주었지만, 누대의 가신들에게는 모두 작은 영지를 주었다.

물론 그것은 가신들을 믿었기에 가능했으며, 세간의 쓸데 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영지 조정을 끝낸 도꾸가와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성 쌓기에 들어 갔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하나씩 놓으며, 유능한 행정관들과 괴승에게도 역할을 주어 일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그 후 몇 백년간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던, 도꾸가와 막부시대를 출범시킨 것이다.

 

 

난 괴승의 이름을 잊었는데, 아마 덴까이 라고 기억된다.

덴까이는 도꾸가와 말년에 시작된 평화의 성 쌓기 작업에, 그야말로 엄청난 도움을 제공했다.

전국을 떠 돌며 보고 들은 세상 인심들과, 각 지방의 사정들을 누구 보다도 잘 알았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겨우 그림만 그린 아버지 뒤를 이어, 히데다다는 유지를 충실히 받들어 진력을 다 했다.

2대 쇼군 히데다다의 그것도, 덴까이의 조력에 의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도꾸가와의 숙원이었던 평화의 성은,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에서 훌륭히 완성되었다.

 

 

도꾸가와는 히데요시의 50세 보다 훨씬 많은,  당시로선 드믈게 70세까지 살았다.

그는 노환으로 죽었으며,

그의 장례는 덴까이의 주장에 따라, 입식(서 있는 모습)으로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댓글 9

방랑자·2006. 9. 30. 오후 5:31:46

이제 도꾸가와가 통일을 하고 죽었음으로 이 이야기는 끝난 것인지요? 공부 열심히 하며 따라오느라고 다시 뒤로 가서 확실히 이해 하느라고 저도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기억으로 쓰신다니까 저도 기억으로 삼국지를 쓸 수 있으니 그런신것 이해가 갑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도꾸가와와 원숭이 히대요시 (풍신 수길이 제게 더 익숙합니다만...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가등 소서행장등의 익숙한 일장들은 이순신 충무공의 일기에서 비롯한 충무공에 관한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 정작 일본에서는 무었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는 배운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랑자·2006. 9. 30. 오후 5:35:07

정말 이 이야기들은 긍정적으로 평가 하면 마치 현대의 기업 (회사)들과 비슷합니다. 킅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 독점하기는 힘들고 많은 군소 기업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거래를 하며 흥망성쇠를 격는 듯한 인상을 주며 그 판매전략을 짜는듯한 인상을 줍니다. 여러 변수도 많구요. ㅎㅎㅎ 여기 까지는 좋게 보아 주었다는 뜻입니다.

방랑자·2006. 9. 30. 오후 5:53:36

그래서 일본인들은 기업과 과거 그들의 사회체제와 유사한 것을 느끼며 우리 한인들이나 중국인보다는 기업 문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제 충무공 전기를 읽던 그것과 비교 해보고 또 삼국지와 잠시 비교하는 것으로 장문을 쓰시느라 수고 하신 별님께 보답하렵니다. 혹 실례가 될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간단히 할게요.

방랑자·2006. 9. 30. 오후 6:09:43

충무공 전기를 읽어보면 임진왜란을 맞은 선조의 사회에서도 몇몇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공을 세우지요. 유성룡 그리고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은 일개 무장이면서도 전략상으로 엄청난 실력을 보유하여 그분이 대적하면 거의 틀림 없이 승리를 거둔다는 데에 중요한 점이 있지요. 일군이 조총을 앞세우고 준비가 안된 조선을 침범 파죽지세로 몰고 갔지만 충무공을 당할 수는 없어 내부 질투 견제세력을 부추겨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하는 잔꾀를 씁니다

방랑자·2006. 9. 30. 오후 6:10:27

그러나 충무공의 인격이나 전략상의 우위는 소서행장이나 가등 등 여러놈들을 묶어 놓아도 전쟁에서는 그를 당할 도리가 없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의를 사랑하고 충효에 죽을 수 있으며 가족을 사랑한 한 자연인으로도 담백한 그 성품하며 우리는 그가 통일을 하고 막부같은 것을 이루지 않았어도,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를 존경하고 훌룡한 분이라고 쉽게 동감이 가는 것이죠. 말하자면 영웅인 것이지요

방랑자·2006. 9. 30. 오후 6:15:08

삼국지를 보면 많은 제후와 장군들과 작은 사건들과 큰사건들로 점철 되어 있지만 이야기의 촛점은 결국 제갈 공명인 것이지요. 공명이 전략 상으로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을 구사 하지요. 그에 아울러 그는 현명하고 담백하고 의를 사랑하고 충효를 가르치는 전쟁능력을 떠난 아주 멋진 성품과 인격을 보여 주지요. 다시한번 이분은 영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으로 이 원숭이들 재갈거리고 자기내들ㄲ

방랑자·2006. 9. 30. 오후 6:26:24

자기내들끼리 이도 잡아먹고 빠나나 하나가 나면 그것으로 쌈박질도 하고 하는 것을 연상한다면 실례가 되겠지요? 아마 그중 예외는 도꾸가와가 그래도 우리가 정의하는 영웅에 가깝다고는 하겠습니다만... 그의 인격이나 전략이나 일생의 이야기가 그는 비록 성공은 하였지만 영웅 축에 끼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워낙 왜놈이라며 안티한 눈으로 보아서인지요....???ㅎㅎㅎ

방랑자·2006. 9. 30. 오후 6:31:27

그래서 그들의 소리만 있는 네자 혹은 여섯자 여덟자 이름을 보며 혼란 스럽기도 하고 선뜩 호감이 가지 않고 이질감을 느끼며 두어 페이지를 못 넘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 또 계속 보았더라면 그런데로 그 매력이 있는 이야기 일텐테요. 간단하나마 ?? 소감을 마치고 따로 일본인그리고 일본문화와 만난 사연을 짤막하게 감사하는 의미로... 답례로 올려 봅니다. 정말 大望 다이제스트 감사했었습니다.

외로운 별·2006. 10. 2. 오전 9:29:01

ㅎㅎㅎ 방랑자님, 야그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