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성지순례 - 갈매못성지(2)

김학수

2012. 3. 29. 오후 12:27:05

다섯분의 순교 성인

聖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1818-1866)

프랑스 아미엥 출신. 1841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후 1845년에 페레올주교, 김대건신부와 함께 조선으로 입국하였다. 그 후 21년 동안 모진 박해를 감내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었다. 1857년에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그의 ''조선순교자비망록''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1866년 3월 3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聖 위앵 민 루카 신부 (1836-1866)

프랑스 귀용벨 출신. 1861년 사제로 서품된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64년에 입국하여, 다블뤼주교에 배속되어 조선말을 배운 뒤 충청도 내포지방에서 사목한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로 그의 짧은 사목활동도 끝을 맞이한다. "나는 젊어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나 저 불쌍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 일도 못하고 죽는 것이 괴롭다". 30세의 나이에 다블뤼 주교와 함께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聖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1837-1866)

프랑스 에제크 출신. 1862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1863년에 조선으로 입국. 경기도 수원 샘골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인해 조선교구 4대교구장인 장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자 계승권 주교인 다블뤼주교가 있는 충청도 합덕신리로 내려왔다.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수하여, 다블뤼, 위앵, 황석두, 장주기와 함께 갈매못에서 순교한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聖 황석두 루카 회장 (1812-1866)

충북 연풍 출신의 양반. 20세에 과거를 보러 가다가 한 천주교 선비를 만나 입교한다. 선교사들의 한문선생으로, 공동체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오랫동안 다블뤼 주교님을 보필하였고 그의 저술과 번역을 도왔다 ''성찰기략'',''신명초행'',''회죄직지''등은 황석두 성인의 문장으로 번역된다.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나도 함께 천주님을 증거하겠다"고 말하며 따라 나섰다. 성인의 원대로 다블뤼주교와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聖 장주기 요셉 회장 (1802-1866)

경기도 수원의 양간 출신. 현 수원교구 요당리 성지. 1826년 영세.입교. 모방신부에 의해 전교회장으로 발탁될 정도로 뛰어난 신앙심과 풍부한 교리지식을 갖고 있었다. 1845년 충청도 제천의 배론으로 숨어 들어 공동체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최초의 신학교인 요셉 신학교의 집주인으로서 신부님과 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체포되었다. 1866년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62세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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