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성지

김혜경

2010. 10. 6. 오후 7:28:51

"어떤 순교자는 죽은 뒤에도 얼굴 색이 변하지 않았고, 어느 순교자는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으며, 또 어떤 순교자가 죽은 뒤에는 한강에서부터 무지개가 떴다.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신자는 곧 그들의 뒤를 따라 순교자가 되었으며, 이를 목격한 외교인은 무서운 박해의 위협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순교자들의 씨는 복음의 터전이 되었고, 복음에 대한 믿음은 다시 순교자를 탄생시킨 것이다."(한국의 여러 ''''''''순교사기'''''''')

이 때부터 이곳은 양화나루나 잠두봉 등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불려진 이름이 절두산(切頭山),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탓에 애닯은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행렬은 이후로도 3-4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절두산은 이제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사 100년을 대변해 주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교회측에서는 순교자 현양 운동의 일환으로 1956년 5월 20일에 이 일대를 매입하였고, 6년 뒤에는 순교자 기념탑과 노천 제대를, 1967년에는 순교 기념 성당과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명동 대성당 등 여러 곳에 안장되어 있는 순교 복자들의 유해를 옮겨다 안치하였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절두산이란 이름은 그렇게 순교자들의 혼과 넋을 담은 곳으로 우리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또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순교자 현양 대화도 자주 열리는 곳이 되었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공경하올 순교자들의 유해, 한국 성인들이 남긴 유품과 유물 등은 복음의 가르침과 함께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 신앙 후손들이나 그 자손들 또한 이를 통해 내면의 양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100여 년 전에 이곳에서 일상의 영욕을 버린 채 천국이라는 영원한 본향(本鄕)을 찾아간 그들의 신앙을 되새겨 보아야만 한다. [출처 : 차기진, 사목 242호]

서울대교구...자료실

노현서님...성모님께 무엇을 빌어달라 하셨나요?^^

예비자 및 신영세자들은 촘촘한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셨습니다.

많이 피곤하고 힘드셨을텐데도, 잘 따라주시어 무사히 성지순례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을거라고, 우리 예비자분과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주임신부님과 인창동 성당에 감사드립니다.

 

댓글 3

  • 2010년 10월 18일 오전 10:11

    홈피에 한참만에 들어와보니 성지순례 다녀오신 사진이 게시되어 있네요... 덕분에 좋은 공부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0년 10월 19일 오전 6:56

    사진과 설명 올리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세여...

  • 2010년 10월 25일 오후 5:19

    좋은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깊어진것 같아요*^^*

본당행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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