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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요셉 빌 신부 The Late Father Joseph Bill, V.C., M.A.
빌 신부는 인도 케랄라와 아프라카에 있는 빈첸시오회 소속의 사제로서 매우 헌신적이고 재능 있는 설교가였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추기경 및 주교,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에게 치유미사와 대중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빌 신부에게 주신 치유 은사를 통해서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유 받았다. 그는 1928년 2월 23일 태어나 1958년 사제로 서품 받았고, 그의 고향인 케랄라 교구에서 오랜 기간 교회의 고위 행정직을 맡아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48세 때 두 번의 심각한 심근 경색을 앓고 45일간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의 주치의는 층계를 오르는 등의 무리한 활동과 설교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병이 회복되는 동안 그는 163명의 사제와 2명의 주교가 참가한 케랄라의 성령쇄신봉사회가 주관하는 첫 번째 피정에 초대되었다. 피정 끝에 한 주교가 빌 신부에게 손을 얹고 치유 기도를 하였다. 바로 그때 빌 신부는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치유하신 그 예수님이 자신에게 손을 얹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 안에서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의 믿음도 강해졌다.
그 후 의사들이 여러 검사를 하여 그가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 그는 자신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까운 산에도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의 장상에게 행정소임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후 그는 믿음에 의한 치유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피츠버그로 갔다. 그의 수련 말기에 보스톤의 한 성당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던 한 마비 환자가 그의 기도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는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쓰고자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인도의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치유은사를 나누었다.
이후 빌 신부는 전 세계를 다니며 6일간의 침묵치유피정과 함께 치유미사와 대중설교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피정은 성령쇄신피정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께 마음을 열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 육체를 모두 치유 받도록 도움을 주는 피정이라고 강조했다.
요셉 빌 신부의 아프리카 선교
빈첸시오회는 8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지역으로 진출하여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빌 신부는 90년대 후반 처음으로 탄자니아로 가서 엠바갈라 성령 센터(Mbagala Spiritual Centre)에서 피정을 시작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우간다, 케냐, 수단로 초대되어 대중설교와 치유미사를 하였고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이후 카메룬,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등지까지 초대되었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치유 은사를 강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의 권위 있고 역동적인 가르침과 그리스도와의 진실한 대면으로 이끌어 주는 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톨릭 신앙의 교리와 실천에 대한 그들의 약속을 쇄신할 수 있도록 하게 해 준다.돌아가시기 전 몇 주간의 행적
“나는 우간다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 죽고 싶습니다.”그는 엔테베에서 약 450킬로 떨어진 굴루(Gulu) 교구의 로사리오 본당에서 대중 선교를 하고 있었다. 그날 엔테베에서 비행기가 취소되어 그는 안토니오 신부와 함께 자동차로 그곳에 도착했었다. 피정은 2008년 3월 10일에서 15일까지 하기로 되어있었다. 굴루에 오기 전에 그는 탄자니아에서 두 번의 피정을 했는데, 하나는 음바갈라 성령센터였고 하나는 카투부카 본당에서였다.
그는 2008년 3월 13일에 비정상적 가스 팽창과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검사를 받은 후에 곧 퇴원하였다. 의사는 이틀 동안 완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밤에 그는 가슴의 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의 상태가 밤 11시 반부터 나빠지기 시작하여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기계는 그가 오는 도중에 숨이 멎은 것으로 나왔다. 응급조치를 위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심장 소생을 위한 의사들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정확히 2008년 3월 14일 새벽 2시 10분 ‘심근 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2008년 3월 19일 수많은 주교와 사제, 수도자들, 전 세계에서 온 수천 명의 영적 아들딸들이 보는 가운 데 기적의 패 성지 안에 묻혔다.안토니오 신부 Fr.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아프리카 선교 Mission of Vincentians in E.Africa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루카 4,18)
성 빈첸시오 드 폴 (1581~1660)
빈첸시오 드 폴 성인에게 큰 감화를 받았던 복자 카타라스 주교(Varkey Kattarath)는 1904년 인도 케랄라 지방에 빈첸시오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현재 본 수도회는 550명 이상의 수도자들이 있으며, 인도와 동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아프리카 선교의 간략한 소개
1979년 7월 10일 빈첸시오 수도회의 복음 선교의 두 선구자가 탄자니아의 음베야(Mbeya)에 도착하여 사목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1990년까지 이 지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사목활동을 펼쳤다. 이후 본 수도회의 또 다른 수도자가 합류하였지만, 그는 1986년 1월 말라리아로 죽었다. 본당을 돌보도록 맡길 인력이 부족하여 남은 선교사제들은 음베야에서의 사목을 접고 1990년 9월에 키고마(Kigoma) 교구로 옮겨야 했다. 그러는 동안 열정과 헌신을 가진 더 많은 선교사제들이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마침내 케냐와 우간다의 주교들이 도움을 요청을 해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故 요셉 빌 신부(본명:Joseph Kuruppamparambil)가 동 아프리카로 오면서 수도회의 동 아프리카 선교 사업은 더 빨리 그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고 상당히 성장하였다. 한편, 빈첸시오 수도원의 분원이 설립되었고 탄자니아와 케냐의 주요 신학교에 신학생들을 보냈다. 아프리카 선교 지역은 2006년 1월 6일에 독립된 구역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본 수도회의 15명의 선교사제들이 동 아프리카의 8개 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5명의 신학생들이 케냐의 나이로비에 있는 탄가자 대학에서 신학 과정을 수학 중에 있다. 본토에서의 훈련은 그들이 실전에 섰을 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본토의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동 아프리카에서의 4년간의 경험이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 모두는 이미 본토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연휴기간에는 이들은 기숙사에서 학생들을 위한 피정을 진행한다. 우리 신학생들이 조직한 이러한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위한 피정 프로그램을 “Jesus Mission"이라고 부른다. 故 요셉 빌 신부는 이 부분에서 그들에게 큰 감화가 되었다. 그들이 신학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1년간의 사목 코스를 거치는데 이것은 동 아프리카의 선교 센터 중에서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신학생들은 모두 인도의 케랄라 출신이다. 이들은 3년간의 입문과정과 1년간의 수련과정, 3년간의 철학학위 과정으로 구성된 7년간의 육성기간을 거친 후 돌아온다.
탄자니아 키고마(Kigoma)
후일 키고마 교구의 주교가 되신 Alphonse Nsabi 주교는 키고마 교구에서의 선교 활동을 요청하였는데, 키고마 근처의 카투부카(Katubuka)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건물을 제공하면서 이 지역의 사목 책임을 맡겼다. George Manalel 주교(후일 빈첸시오 수도회의 장상이 됨)는 1986년에 탄자니아를 방문하는 중에 Nsabi 주교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동아프리카의 첫 번째 빈첸시오 수도회가 1988년 7월3일 카투부카에서 발족되었다.
1989년 2월, 카투부카 본당이 설립되어 그 관리는 빈첸시오 수도회로 위임되었다. 이후 본당 건물의 개축이 착실히 진행되어 2000명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 성당이 세워져 2000년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 현재 대략 300에서 400명의 신자들이 매일 미사에 온다.
일요일에는 세 대의 미사가 진행되며 매 미사 마다 성당이 꽉 찬다. 이러한 영적 부흥의 주요 원인은 故 요셉 빌 신부가 1992년 동 아프리카로 왔을 때 시작한 대중 선교 피정이었다. 본당 외 세 개의 따로 떨어진 지소가 있는데 각각 200에서 300명의 신자들이 있다. 약 만 오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탄자니아의 카투부카와 키고마에서 우리 선교사들의 활동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1992년 요셉 빌 신부에 의해 동 아프리카에 뿌려진 대중 선교 피정의 씨앗은 방방곡곡으로, 세계로 매우 빠르게 그 뿌리를 뻗어나갔다. 2008년 3월 첫째 주에 요셉 빌 신부는 26년 만에 키고마로 돌아와 예수님에 대한 신자들의 사랑에 다시 불붙였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KIGOMA, TANZANIA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교구
요셉 빌 신부에 대한 뉴스가 점점 멀리 퍼져갔다. 그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축복을 받고자, 또 개인적인 삶이나 가족들의 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관구의 대주교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요셉 빌 신부는 대중 선교 피정을 통한 영적 각성을 위해 다르에스살람에 초청되었다. 음바가발라 성령센터(Mbagabala Spiritual Centre)에 기반을 두고 다르에스살람에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치유의 은혜를 경험한 후 많은 사람들이 다르에스살람 여기저기에서 피정 센터를 시작하려고 왔다.
비킨두(Vikindu)의 지저스 타운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설교 활동의 영적 열매이다. 비킨두는 탄자니아의 해안지역의 킬와(Kilwa)의 무크랑가(Mukranga)에 있는 낙후된 지역이다.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에서 35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은퇴한 선장인 요셉 음타한가와(Joseph Mtahangarwa) 씨가 피정 센터를 세우기 위해 비킨두의 8 에이커의 땅을 기부하였다. 서거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1977년을 예수의 해라고 선포하면서 이 마을의 이름도 지저스 타운이라고 지어졌다. 1998년 3월에 빈첸시오 수도회가 공식적으로 인가되어 1999년 3월 18일에 다르에스살람 교구의 대주교인 펜고 추기경(Palycarp Cardinal Pengo)에 의해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비킨두는 무쿠랑가 본당의 지소 중 하나였다. 2001년 1월에 본당으로 승격되어 같은 해 빈첸시오 수도회로 위임되었다. 빈첸시오 수도회 내의 성당에서 신자들을 위한 매일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수가 급증하여 새 성당 건물을 지을 필요가 생겼다. 다시 한 번, 요셉 빌 신부의 확고한 말씀과 실천이 성당 건립 과정에서 명백히 눈에 드러났다. 새 성당은 2006년 9월 26일에 펜고 추기경에 의해 축성되었다. 빈첸시오 수녀회와 CMC 수녀회, 그리고 새로 지어진 성전이 지저스 타운을 더욱 빛나게 한다.
故 요셉 빌 신부는 다르에스살람에 신자들의 영적 고양을 위한 피정 센터를 세우는 계획을 오랜 동안 간직해 왔었다. 그의 사제 서품 금경축의 해인 2008년이 그의 꿈을 실현하는 적기인 것 같았다. 다르에스살람의 음바갈라 성령센터에서 사제와 수도자를 위한 일주일의 피정을 마친 후, 2008년 3월2일에 비킨두로 왔다. 비킨두 본당에서 장엄한 미사를 드린 후,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피정센터를 위한 주춧돌을 축성하였다. 그는 신자들에게 완전한 희망을 주는 피정센터 건립에 적극적이어서 2008년 말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꿈을 완성할 책임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DAR-ES-SALAAM, TANZANIA
케냐 나이로비 교구
故 요셉 빌 신부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오순절의 사도들과 같이 되었다. 그의 설교에 대한 소문이 故 오툰가 추기경(Maurice Cardinal Ottunga:나이로비 교구의 대주교)의 귀에 들어갔다. 요셉 빌 신부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를 위한 피정을 위해 1998년 나이로비로 초대되었다. 그가 가는 곳 어디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결국 그의 설교 활동을 계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피정센터가 나이로비에서 구상되었다. 한편, 매일 미사가 임시의 불편한 시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가 의도한 영성에 맞는 부지를 찾던 중에 2004년에 1.5 에이커의 땅을 작은 건물과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토요일 미사가 임시 건물에서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딱 감실과 제대, 사제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크기였다. 신자들은 비가 오는 날이나 맑은 날이나 나무 그늘 밑의 맨 땅에 만족해야만 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가 신자들의 자세였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합니다.”(시편 72,17) 주님은 영구적인 경당과 신학생들의 거처와 피정 회관을 위해 고 요셉 빌 신부와 함께 많은 기부자들을 활용하셨다.
이 경당은 약 80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매일 오전 7시에서 6시까지 성체를 현시하고 있다. 신자들은 새벽 6시 반부터 성체 조배를 위해 오기 시작한다. 오후 예식은 3시에 묵주기도로 시작한다.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사제의 설교가 있고 이후 고백성사가 있다. 미사는 5시 반에 시작한다. 매일 250에서 300명의 신자들이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매주 토요일에는 약 1500명의 신자들이 일일 기도 예식에 참석한다.
피정 회관은 약 600석의 좌석을 가지고 있다. 보통 토요일에는 이 회관은 만원이 된다. 토요일 프로그램은 10시 반에 고백성사를 준비시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최소 12명의 사제가 고백성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한편 저녁에 미사를 마치고 이곳을 나갈 때는 신자들은 모두 각자의 가정에서 평화와 용서의 메신저가 되고자 하는 강한 결심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편안해 보인다. 으레, 다음번에 올 때 그들은 활동적인 선교사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센터에 데려온다. 이 센터에 오는 사람들은 매일 늘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은 나이로비 교구 안에는 이런 식의 가톨릭 피정센터가 또 없기 때문이다. 수백 마일을 여행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회관 안에 앉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밖에 서 있어야 하더라도 불평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그들 모두에게는 “오늘 이 하느님의 집에 중요한 것이 있다.” 기도의 집이 위로와 영적 영적양식의 중심이 되었다. “이 기도의 집에 오기시작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라고 나이로비의 부주교인 카마우(David Kamau) 주교가 말했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NAIROBI, KENYA
동 아프리카의 우간다
故 요셉 빌 신부는 우간다를 그의 설교 활동을 위한 가장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다. 캄팔라의 대주교인 와말라 추기경(Emmanuel Card. Wamala)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위한 피정 프로그램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우간다의 여러 지역에서의 그의 설교 일정은 곧 매우 바빠졌으며 그만큼 우간다 국민에 대한 그의 사랑도 커져갔다.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우간다 국민들의 단순하고 개방되고 존경하는 태도는 모두를 매료시킨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열려진 마음은 요셉 빌 신부를 매우 감동시켰다. 그래서 그는 엔테베를 그의 영적 전투를 위한 가장 좋은 근거지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사람들은 그를 우간다에 묶어두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착한 사마리아였던 Margaret Keyeyune 씨가 그에게 엔테베에서 땅을 제공하여 빈첸시오 수도회를 위한 최고의 자리가 되었다. 22명의 순교자에 의해 강해진 우간다의 가톨릭 교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왕성한 가톨릭 공동체가 되었다.
우간다 엔테베(Entebbe)
우리의 선교 사업은 우간다 전역의 교권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헤아릴 수 없는 지원과 축복을 누리고 있다. 엔테베의 빈첸시오 수도회는 2004년 6월 19일 축성되었는데, 빅토리아 호안에 있는 엔테베 국제 공항 근처의 가장 좋은 지역에 세워져 우간다의 선교 사업의 허브가 되었다.
故 요셉 빌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열성적인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영적 말씀 중에 그는 항상 묵주기도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강조하였다. 기적의 패에 봉헌된 성지 계획이 오래 동안 그의 마음 속에 잠겨있었다. 그의 꿈은 2007년 9월8일 키지토 르완가 대주교(Cyprian Kizito Lwanga)와 캄팔라 대주교에 의해 축성되고 시성되었을 때 이루어졌다. 우간다 전체의 마리아 순례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그의 열망이었다. 상담과 고백성사, 미사 등의 예식이 매일 행해지고 있다. 약 200 명의 신자들이 매일 미사에 참석한다. 매달 둘째 토요일에 일일 피정이 행해진다. 성지의 정해진 예식 일정이 아닐 때에도 사람들이 기도와 묵상을 위해 꾸준히 찾아온다. 이 성지가 그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ENTEBBE, UGANDA
우간다의 마사카(Masaka) 교구
마사카 교구의 주교 세레자요한 카그와 주교는 고 요셉 빌 신부의 설교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었다. 요셉 빌 신부에게 설교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빈첸시오 수도회를 열도록 요청했었다. 마사카에도 빈첸시오 수도회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은 한 독지가가 요셉 빌 신부에게 그의 78세 생일에 카불라소케(Kabulasoke)의 3.45 헥타르의 땅을 기부함으로서 이루어졌다.
카불라소케는 엔테베에서 약 180킬로 떨어진 곳으로 남서 우간다로 향하는 캄팔라-음바라라 도로에 있다. 2007년 9월 6일 주춧돌이 故 요셉 빌 신부에 의해 축성되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23일 마사카 교구의 카그와 주교에 의해 축성되고 토마스 은자락칼(Thomas Njarackal) 주교에 의해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빈첸시오 수도회는 언덕 꼭대기에서 있어서 마사카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사제관 외에도 경당과 피정 회관 200여 명 피정참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주거동과 기적의 패 성모님께 봉헌될 성전이 계획 중에 있다. 현재 이곳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다. 사제들은 빗물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 이곳의 예식은 약 50에서 60명이 참석하는 매일 미사와 매주 토요일의 일일 경배와 설교, 고백성사, 상담 등이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MASAKA, UGANDA
우간다 음바라라(Mbarara) 교구
[음바라라의 샬레 르완가 성당] 음바라라 교구는 故 요셉 빌 신부가 우간다에서 좋아한 장소중 하나다. 이곳에서 빈첸시오 사제들이 피정센터를 시작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그의 생전에는 이 계획이 실현되지 못했지만, 2008년 9월 음바라라 교구의 대주교인 Paul K Bakyenga 주교의 공식적인 초청에 의해 이 성당을 지속적인 성체 조배와 믿음을 심화시키는 교육을 위한 기도센터로서 활용하고자 한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요셉 빌 신부가 바랐던 대로 이 성당은 음바라라 교구에서 설교 활동을 위한 중심이 될 것이다.
최근사진:Vincentian Mission, MBARARA, UGANDA
탄자니아 유빈자(Uvinza)
키고마에서 103킬로 떨어진 유빈자는 소금 광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카슐루 본당의 지소 중 하나였고 2004년 10월 22일에 완전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같은 날 10개의 지소와 함께 빈첸시오 수도회로 공식적으로 위임되었다. 이 본당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소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소금 광산의 일은 계절을 타기 때문에 그들의 수입도 한철벌이에 불과하다. 이곳에 현재는 성당과 사제관만 있으며, 사제관은 유빈자의 빈첸시오 수도회의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의 선교 활동은 2004년 11월에 유빈자로 진출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대 문명에 대한 무지로 사람들은 선교사들을 매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의 안내자로 우러러본다. 현대 문명에 따라가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함이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성적으로 열등하게 만든다.
최근 몇 년간 우리가 진행해온 타당성 검토 결과 이 지역의 가장 긴급한 것은 가톨릭 재단 하의 학교(영어를 사용하는)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곳 주민들의 한결같은 요구였다. 그들에게는 기본적이고 양질의 교육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갈증이 있다. 그래서 이런 배경 하에 우리 수도회가 관리하는 영어 학교를 설립하자 하는 견해가 나왔다. 불행히도 영어를 사용한 교육은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영어는 이제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탄자니아 사람들은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이웃 나라의 비싼 교육기관으로 보내고 있다. 나머지는 그들의 숙명에 남겨져 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이 그의 삶에서 보여줬듯이 인간의 전인적인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故 요셉 빌 신부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영어 교육 학교를 시작하고자 하는 영감이 그에게 생겼다. 결국 이러한 목적을 위해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빈첸시오 수도회에 제공된 넓은 땅에서 2008년 3월 6일에 이를 위한 주춧돌이 그에 의해 축성되었다.
한편, 드 폴 영어 보육원이 성당 근처의 임시 건물에서 시작되었다. 유빈자의 주민들은 가톨릭에서 관리하는 학교를 열성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가톨릭 아이들에 대해 매우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 가톨릭 아이들은 이슬람 학교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실천할 자유가 없다. 또한 가톨릭 교육기관은 학습방법과 가치기반의 교육으로 유명하다. 故 요셉 빌 신부의 작은 기여로 학교 건물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사는 아직 기초 단계이다. 겨우 먹고 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는 어떤 경제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최소 600명의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이 이 학교의 혜택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이 아이들이 그리스도 환경 안에서의 가치기반 교육을 중등 교육까지 받을 수 있는 캠퍼스를 짓는 것이다. 중등교육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목공 기술이나 석공 기술, 제봉기술 등의 실용 교육을 받을 것이다. 학교의 지성적 영적 형성과 함께 현태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삶 속의 자립심을 키우는 것을 기반으로 할 것이다. 故 요셉 빌 신부의 이러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사진:Vincentian House, UVINZA, TANZANIA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코린2 5,14)." 동 아프리카의 우리 빈첸시오 수도회는 수많은 독지가와 기부자들의 영적, 물적 지원으로 하느님 말씀에 정말로 굶주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매우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지원이 동아프리카에 대한 故 요셉 빌 신부님의 꿈의 실현을 위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