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생활말씀

2008. 3. 1. 오전 10:37:09

글자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요한 4, 34)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되풀이하고 실천한다면, 이는 성덕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많이 진보하게 해 주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그곳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가까운 도시에 가서 일을 보고 돌아온 제자들이 스승께서 한 여성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는 자못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여쭙지 않았으며, 사마리아 여인이 떠나자 그분께 식사하시도록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읽으시고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물질적인 양식이거니 생각하며 그들이 오기 전에 누군가가 예수님께 음식을 갖다 드렸는지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양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부정하지 않으시며 양식의 자연적인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는 더 중요하며 모자람이 없는 다른 양식이  있고, 또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언하시기 위해 이 점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실행하고 그분의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아니라 성부의 생각과 계획을 갖고 계시며, 예수님의 말씀과 해내시는 사업들은 성부의 것으로, 예수님 자신의 뜻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고, 이렇게 사심으로써 허기를 충족시키시며 양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응답하시는 것은 그분 전 생애의 특징이 되었으며, 바로 이 십자가에서 성부께서 그분께 맡기신 과업을 참되게 완수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을 하는 것이 곧 자신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서, ‘이에 동화되면서’, ‘이를 먹으면서’, 이와 하나가 되면서, 이로부터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완성하셔야 하는 성부의 뜻, 그분의 과업은 무엇인가요?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것, 죽지 않는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화와 사랑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생명의 씨앗을 선포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머지않아 이 생명의 싹이 트고 확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다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자기가 발견했고 받았던 풍요로움을 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시면서 성부이신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 보이셨고, 이로써 모든 사람이 그분 생명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완성하셔야 하며, 훗날 그분의 제자들과 교회에 맡겨질 과업인 것입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주 특별하게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사명과 그분의 열정을 반영할 만큼 예수님의 전형적인 이 말씀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생명을 통해 성부의 자녀로서 살아야 하며, 그분의 뜻으로 우리 삶의 양분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하면서, 마치도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완전하게 이를 수행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매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으로 양분을 취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이렇게 하면서 충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평화와 기쁨, 행복을 맛보며, 참된 행복, 곧 진복(眞福)을 앞당겨 체험할 것입니다. 이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매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의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부활을 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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