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생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2024. 5. 10. 오후 11:34:35

글자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Tract. 124,5. 7: CCL 36,685-687)

두 가지 생활

교회는 계시를 통해서 알려지고 권고된 두 가지 생활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을 통한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생활입니다. 하나는 현재의 순례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삶의 생활입니다. 하나는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휴식의 생활입니다. 하나는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본향에서 실현되는 생활입니다. 하나는 행위와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관조라는 보상을 받는 생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번째 생활을 나타내 주고 사도 요한은 두번째 생활을 나타내 줍니다. 첫번째 생활은 지상에서 진보하여 이 세상 마지막까지 지속되고, 두번째 생활은 세말에 완성되고 후세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고, 반면 요한에게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베드로, 너는 잠시 동안 고통을 당하는 데 있어 나를 본받아 따라야 하고, 요한 너는 내가 영원한 축복을 가지고 올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완성을 지향하는 활동은 내 수난을 본받아 또 나를 따름으로 되는 것이고, 시작한 관조는 내가 올 때까지 지속되어야 하고 내가 올 때 완성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죽기까지 인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완전한 지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죽음의 땅에서는 세상의 고통을 겪고 저 생명의 땅에서는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라는 말을 “남아 있다” 또는 “살아 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기다리다” 또는 “기대하다”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지금 성취되지는 않고 다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성취되겠다는 것을 뜻하고, 베드로에게 하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기대하는 것이 성취되려면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두 사도들을 지나치게 분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두 사도 모두에게서 실현되었고, 요한에게 하신 말씀도 두 사도에게 모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실제 신앙 생활을 보면 두 사람 모두 이 비천한 생활의 고통을 겪었고 또 후세 행복의 은혜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두 사도들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배인 거룩한 가톨릭 교회도 그러합니다. 온 교회는 내세의 기쁨을 이루려고 현세 생활의 유혹을 견디어 이겨 나가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각각 이 두 가지 생활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둘 다 신앙 안에 현세 생활을 거쳐 지나갔고 또 둘 다 영원한 행복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모든 사도들의 죄를 묶고 풀 권리를 받아 이 현세의 폭풍우 속에서 그들을 인도해 나갈 책임을 맡았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품에 머리를 기대어 모든 성도들에게 그 신비스러운 생명의 안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묶고 푸는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온 성교회입니다. 태초부터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시었던 그 말씀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 일체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된 사람도 요한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거울처럼 희미하게 들여다보고 하느님 나라에서 눈으로 직접 바라볼 그 신비들을 주님 품의 샘에서 마신 사람은 요한만이 아닙니다. 주님 친히 전세계로 복음을 전파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그것을 마시도록 하셨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오늘의 말씀 묵상

목록 전체보기 →
당신이 나에게 준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아가에 관한 강론에서]24.05.12조회 92023년5월11일- 신앙과 사랑의 계명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12조회 10두 가지 생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24.05.10조회 92024년5월10일-형제들에 대한 사랑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10조회 11주님의 승천은 우리의 신앙을 북돋아 줍니다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24.05.09조회 112024년5월9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09조회 9주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날들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24.05.08조회 102024년5월8일-그리스도의 적에 대하여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08조회 9그리스도는 우리를 일치시키는 끈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24.05.07조회 82024년5월7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07조회 7성령은 세례로써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무스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24.05.06조회 102024년5월6일- 새 계명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24.05.06조회 11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셨고, 또 화해의 직분을 주셨습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의 ‘고린토 후서 주해’에서]24.05.05조회 112024년5월5일- 생명의 말씀과 하느님의 빛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의 시작]24.05.05조회 9파스카 축제의 알렐루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24.05.04조회 82024년5월4일- 우리 희망의 달성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24.05.04조회 8사도들의 복음 선포 [테르툴리아누스 사제의 저서 ‘이단자들에 대한 규정’에서]24.05.03조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