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없이 용서해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스텔라 수도원의 복자 이사악 아빠스의 강론에서]

2022. 9. 9. 오전 7: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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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수도원의 복자 이사악 아빠스의 강론에서(Sermo 11: PL 194,1728-1729)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없이 용서해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느님께만 유보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즉, 죄를 고백함으로써 바쳐지는 영예와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죄의 고백을 해야 하고 그분에게서 죄 사함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느님만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에 그분에게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분이 약한 이와, 지존하신 분이 겸손한 이와 혼인하셨을 때, 노예였던 이를 여왕으로 만드시고 그분의 발 밑에 있던 이를 자기 늑방의 위치로 올리셨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늑방에서 나와 그분과 혼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드님은 본성상 하나이시므로 아버지의 모든 것이 아드님의 것이고 아드님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인 것처럼, 신랑도 신부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신부를 당신 자신과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심으로 신부의 모든 것을 공유하셨습니다. 아드님은 신부를 위해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와 제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러므로 신랑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시는 것이고 신부와 하나가 되시는 것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본래의 것과 조화되지 않는 것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제거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녀의 죄를 걸머지시어 그 죄를 십자가 위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또 본성상 신부에게 속하는 것을 취하여 옷 입으셨고 당신이 본성상 하느님으로서 지니고 계신 것을 신부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부의 것은 신랑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아드님은 마귀의 것을 없애 버리시고 사람의 것을 취하시며 하느님의 것을 주셨습니다. 이 때문에 죄가 조금도 없고 그 입에 간계가 조금도 없으신 분이 “내 힘이 다하오니, 주여, 가엾이 보아주소서.”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부의 나약성을 취하신 신랑은 그의 슬픔도 취하시고 모든 것이 신랑과 신부의 것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죄를 고백함으로써 바쳐지는 영예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권한도 신랑과 신부의 것이 됩니다. 따라서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없이 죄를 용서해 줄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없이 용서해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는 회개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손을 대주신 사람 외에는 아무도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멸시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몸에서 갈라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는 완전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 없이 완전치 못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 없이 완전치 못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 완전한 그리스도는 머리와 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고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이분만이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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