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머물며 낙타 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 정도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요한의 살림살이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낙타 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끼니 정도를 해결하며, 광야를 집 삼아 살았습니다. 단출한 살림살이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외침은 세상에 ‘사자후(獅子吼)’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부근의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몰려와 세례를 받고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요한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 질문해 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사라져 버릴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구하며 살았으니, 그의 말과 행동이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창세기처럼,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을 지어내셨고, 특히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모상(模像)으로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 안에는 그분의 거룩하심과 고결하심, 선하심과 귀하심이 담겨져 있고, 그러기에 인간은 누구나 귀하고 소중합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진실은 ‘존재하는 것 모두가 하느님의 작품이기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면서 인권주일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인권의 소중함과 함께,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권리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하느님 안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그 길에 대해 모색해 보는 한 주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김규봉 가브리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