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2015. 2. 23. 오전 7: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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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1475~1564, 이탈리아)가 시스티나성당 제단화로 그린 <최후의 심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높이는 17m이고 폭은 13m가 넘는 이 거대한 그림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미켈란젤로는 61세부터 66세까지 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은 노인의 작품이 아니다. 힘이 넘치고 역동적이며, 혁신적이고 신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1523~1534)였다. 1527년에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의 침략으로 로마는 약탈을 당했다. 수많은 미술가들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미술품들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로마교회에 닥친 더 심각한 위기는 종교분열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1,500년간 유지해온 가톨릭의 단일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노를 상기시키고,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주문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는 오로지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의 영묘작업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클레멘스 7세가 죽고 나서 뒤를 이어 바오로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는 미켈란젤로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워 다시 한 번 시스티나 성당작업을 위임한다. 첫째는 그를 ‘교황청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임명한 것이다. 둘째는 그에게 장려금으로 매년 금화 1,200에퀴를 평생 지불하기로 약속한다. 셋째는 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작품내용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면서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그림을 갖기 위해 교황이 되기를 30년 동안이나 기다렸소.”

  교황의 감동어린 말 한마디가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노인임을 잊게 했다. 그래서 천지창조를 그린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그는 시스티나성당으로 다시 오게 된다. 그는 새 프레스코를 제작하기 위해 다섯 점의 작품을 없애야했다. 자신이 그린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두 점의 루네트화(반달모양의 그림)를 비롯하여,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승천>과 다른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탄생>과 <모세의 발견>을 없앴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이 작품은 도식적으로 네 개의 띠로 이루어졌다. 꼭대기에 있는 첫 번째 띠에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사용된 도구들을 들고 있다. 왼쪽 루네트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중심으로 천사들이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있고, 일부 천사들은 가시관을 들고 간다. 오른쪽 루네트에는 천사들이 “책형기둥”을 일으켜 세우고, 한 천사가 채찍을 들고 온다. 이것으로 수난에 사용된 도구들이 바로 구원의 도구임을 천사들은 말하고 있다.

 


 

  그림의 중심에 해당되는 두 번째 띠에는 심판자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있다. 한복판에는 오른팔을 치켜든 심판자 그리스도가 선택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를 갈라놓으려한다. 그분의 동작은 물과 육지를 가르는 하느님의 동작을 닮았다. 그분은 성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분의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사면을 요청하는 변호인석에 앉아 인간의 죄를 경감해 줄 것을 간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랑의 색인 붉은색 상의와 천상의 색인 푸른색 치마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천상심판의 잣대를 사랑의 잣대로 보아달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주변에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중 중심인물은 왼쪽에 있는 세례자 요한과 베드로 사도이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생활을 상징하는 낙타털옷을 망토처럼 걸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를 낙원에서 추방되어 황무지를 일구어야 했던 아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베드로는 두 개의 열쇠를 들고 있다. 왜 두 개의 열쇠를 쥐고 있을까? 하나는 과거의 열쇠요, 다른 하나는 현재의 열쇠 아닌가? 그래서 그를 바오로 3세 교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세례자 요한과 성모님 사이에는 안드레아 사도가 십자가를 들고 뒤돌아 서 있고, 베드로 사도 위에는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 요한이 예수님과 비슷한 동작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아래에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석쇠를 들고 있고, 바르톨로메오 성인이 살가죽을 들고 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석쇠 위에서 화형을 당하면서 재판관에게 이런 농담을 했다. “다 구워졌으니 이제 뒤집어서 잡수시오.” 그의 일화는 전설이 되어 그는 로마의 가장 유명한 순교자가 되었다. 또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는데, 산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았다.

  원형을 이루는 성인들의 왼쪽에는 여선지자들과 구약의 여인들이 있고, 동정녀와 순교자와 성녀들이 모여 있다. 무릎을 굽힌 어린 소녀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여인은 보통 하와 혹은 가톨릭교회로 불린다.

  또 오른쪽에는 구약의 예언자와 성조들이 있고, 성인들이 서 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키레네 사람 시몬이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선한 도둑 디스마도 작은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있다. 그 사이에 블라시오 성인이 강철제 소모기를 들고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는 부셔진 칼날바퀴를 들고 있으며, 세바스티아노 성인은 화살을 손에 들고 있다. 블라시오는 강철제 소모기로 찢겨서 순교했고,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칼날을 박은 바퀴로 찢어 죽이려고 했으나,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고문도구를 부수자 결국 칼에 맞아 순교했으며, 세바스티아노는 화살에 맞아 처형될 뻔 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가 다시 발각되어 영웅적으로 순교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띠의 중앙에는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들이 일곱 나팔을 불고 있고, 구원자들의 명부를 든 대천사 미카엘이 구원의 명부를 펼쳐들고 있으며, 반대쪽의 천사는 지옥의 명부를 펼쳐 들고 있다. 그런데 구원의 명부는 작고 지옥의 명부는 크지 않은가? 또 왼쪽에는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복된 사람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천벌 받는 자들이 그려졌다.  묵시록에 보면 심판의 날에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 무덤이 열리고, 사람들은 덕행과 악행의 무게를 잰 다음 구원받는 영혼과 저주받는 영혼으로 나뉘어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불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진다. 왼쪽의 모습을 보면 선행한 영혼들이 자력으로 천국으로 오르는 것을 힘겨워하자 천사들이 위에서 당겨주고 끌어올려 주고 있다. 그러나 왼쪽의 모습을 보면 천국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영혼에게 천사들이 난폭하게 주먹질을 하지 않는가? 또한 악마들도 소리 지르는 영혼들을 붙잡아 끌어 내리고 있다. 악마와 뱀에게 사로잡혀 있는 절망의 천벌을 받는 영혼은 내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 고통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고통과 유사하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절망과 회의를 느꼈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반대자들에 의해 그림 전체를 없애야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야했다.

 

 



  네 번째 띠 왼쪽에는 무덤에 갇혔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고, 오른쪽에는 영벌을 받은 영혼들이 카론의 배에 실려 지옥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지옥문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고 있고, 교황청 의전 담당관인 체세나 추기경은 미노스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체세라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논평했다. “이처럼 거룩한 장소에 부끄러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 수많은 나체를 그린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며, 이 작품은 교황의 소 성당이 아니라 목욕탕이나 매춘굴에나 어울린다.” 미켈란젤로는 지옥의 망령들 속에 체세나의 초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에게 복수했다. 체세나는 다리에 꽈리를 튼 큰 뱀과 악마의 한 가운데 있으며, 큰 뱀이 그의 성기를 물고 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자신은 바르톨로메오 성인 손에 들려진 가죽위에 노년이 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그의 표정은 마른 걸레처럼 일그러졌다. 말라서 구겨진 살 껍질에 산 자의 초상을 새겨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이로써 육신의 희미한 그림자 속에 예술의 고귀한 영혼이 깃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초상은 과연 어디에 새겨넣을 것인가?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만 그린 게 아니고, 수 많은 화가들이 그렸답니다.

 

이 그림은 지오토라는 화가가 그린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림 중앙에는 천사  들에 둘러 싸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양쪽으로 각각 6명씩 12 제자가 있습니다.

 

그림 왼쪽에는 하늘나라로 오르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옥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  

시커먼 털이 난 괴물들이 고문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오토(1266 ?~1337.1.8)는 죠토라고도 하는데 이탈리아의 화가·조각 

가·건축가로 치마부에의 제자라고 합니다.

1920년부터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상당에 그려진 벽화제작에

참여하였으며, 그후에는 성 죠반니 교회회랑 벽화를 제작하였답니다.

 

 피렌체파 회화의 창시자로서 그 명성은 동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

곡》 <연옥편 제11가>에서 G.치마부에와 대비, 찬양되고, F.페트라르 

카나 보카치오 등의 저작에서도 나온답니다. 그러나 초기의 미술활동 

에 관한 확실한 문헌은 없고, 소년시절 양(羊)을 사생하고 있을 때 치 

마부에에게 발견되어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답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파도바의 산타마리아 아라 아레나성당(별칭 스크로베 

니예배당)의 내부를 장식한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37도,  

의상(寓意像) 14도,《최후의 심판》등의 벽화군(1305년경)이랍니다.

화면의 간명한 합리적 구성, 인물상의 조형성, 극적 내용의 심리적 표 

현 등에서 획기적인 기법을 보였답니다.

 

그 직후의 걸작은 피렌체의 온니산티성당에 그린 제단화 《장엄한 성 

모》(우피치미술관 소장)랍니다. 그의 미술사적 의의는! ! , 선배 치 

마부에의 비잔틴주의를 극복함과 동시에, 조각가 N.피사노나 로마화파  

카발리니 등의 영향을 발전시켜, 그림을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그림 

해석으로부터 해방, 인간성과 종교성이 융합한 예술적 표현의 세계로  

높인 데 있는데, 거기서는 주제로서 필요한 것만이 파악, 단순화되어  

있답니다.

 화면은 인물과 공간과의 합리적인 연관으로 무대적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인물상은 조형적으로 형태화되어 각각 마음의 움직임이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답니다.

이탈리아 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며, 정신성과 현실성과의 종합으로 고딕 

회화를 완성하였답니다.


 

안제리코가 그린 최후의 심판입니다.  

역시 중앙엔 천사들에 둘러싸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왼쪽엔 천국 

이, 오른쪽엔 지옥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아래 앞쪽에 보이는 게 관으로 보입

니다.

죽은 뒤 관에서 나와 심판을 받나 봅니다.

 

이 그림은 16세기(1551) 네델란드 화가 포르부스(POURBUS, Pieter)

가 그린 최후의 심판이랍니다.

왼쪽으로 천국을 오르는 사람들은 서로 끌고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이그림은 1525년 프로보스트(Jan Provost (1465-1529))라는 화가가

그린 최후의 심판

 

그리고 이 그림은 라파엘(Raphael Coxcie)이 1600에 그린 최후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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