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성당
| 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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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주소 |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 259번지 (#415-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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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성인 |
매괴의 모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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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전화번호 |
사무실 : 031-983-8811 / 팩스 : 031-983-8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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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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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수도회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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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관할 면적 |
16,99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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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관할 지역 |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 북변동 전역/ 감정동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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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수 (세대수) |
6,806명 (2,579세대) |
인천교구 김포본당 ‘옛 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
- 1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된 김포본당 구 성당 모습.
인천교구 김포본당(주임 백순기 신부) 구 성당이 18일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에 의해 국가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됐다. 김포본당 구 성당은 미국의 구호물자와 해병대의 지원, 신자들의 노력 봉사로 1956년 12월에 준공됐으며, 신자 수 증가에 따라 1999년 벽돌조의 새 성당이 건립되면서 현재는 교육이나 피정, 매주 토요일 중고등부 미사와 성령기도회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구 성당은 김포·강화지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에 건축된 석조 성당의 전형적인 의장적 특징(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과 화강석을 쌓아 올리는 건축방식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어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건축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특히, 2009년 당시 본당 주임이던 신교선 신부와 김영호(암브로시오) 사목회장이 문화재청에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한 이후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의 현장 실사와 문서 검토 등을 거쳐 4년 만에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신교선 신부는 “구 성당이 김포 지역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큰 건물이고 문화재 이정표가 세워지면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성당을 더 많이 찾을 것”이라는 취지로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인천교구와 김포본당, 경기도, 김포시 등과 협력해 구 성당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인천교구에는 김포본당 구 성당 이외에 답동성당이 1981년 9월 국가 문화재인 사적 제287호로 지정돼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4월 28일, 박지순 기자]
인천교구 김포성당,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
문화재청, 1950년대 대표하는 석조성당 건물로 보존가치 높아
- 국가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된 김포성당.
인천교구 김포성당(경기도 김포시 북변동 261-3)이 국가 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8일 6ㆍ25 한국전쟁 직후 미국 구호물자를 지원받아 해병대와 신자들이 합심해 지은 김포성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1950년대 석조성당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종교사적ㆍ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1956년 지어진 김포성당은 과거 어렵던 시절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열두 칸 초가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은 1년 동안 곡괭이로 땅을 일구고 무거운 돌을 직접 날라 성당을 지었다. 신자들의 피와 땀으로 지은 김포성당은 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 등 전형적인 의장적 특징과 단일 홀로 구성된 강당형 평면의 공간적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울러 신자들이 직접 벽돌 등을 쌓아올린 화강석 조적구법(組積構法) 또한 건축학적 가치가 크다. 1999년 새 성전이 옆에 지어진 이후부터는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김포본당의 옛 성당과 새 성당은 과거 신자 100여 명에서 출발해 현재 7000여 명에 이르는 공동체로 성장한 본당의 생생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인천교구는 문화재청ㆍ경기도ㆍ김포시 등과 협력해 성당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관리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28일, 이정훈 기자]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인천교구 김포 성당
땀방울 스며있는 옛 석조 성당 그대로 보존
- 김포본당은 99년 지금의 성전(왼쪽)을 세우면서 신자들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옛 석조 성당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 지난 99년 새로 단장한 성당 내부.
- 1930년대 걸포리공소 교우들.
성당 외형은 물론 신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오늘날엔 본당마다 지닌 고유한 역사는 외형에 가려 한 발짝 밀려나 있는 게 사실. 그만큼 신앙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값진 정신이 어린 '믿음의 고향'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마주하게 되는 인천교구 김포성당(주임 박복남 신부)은 신앙 선조들의 숨결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믿음의 고향'과 딱 어울리는 곳이다. 인천교구에서는 주교좌 답동과 소사 이어 세번째로 1948년에 설립된 세번째 본당이기도 하지만 5년 전에 지은 새 성전과 1956년에 완공한 옛 석조성당을 함께 지니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만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지어진 성당을 향해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보면 철콜 콘크리트조의 웅장한 새 성전과 오른쪽 언덕 위 옛 성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 성당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오를 때는 한적한 시골 공소에 와 있는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인 새 성전은 5년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새 것' 같다는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탁 트인 성전 내부와 완만한 굴곡으로 천장은 세련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구조이면서도 형형색색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 뒷켠에 앉아 양쪽 벽 창문으로 내려비치는 햇살 속에 제대 뒷벽에 걸린 십자가와 그 아래 감실을 바라보노라면 양쪽 벽 창문으로 내려비치는 햇살이 마치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처럼 와 닿는다.
김포본당 역사는 1930년대 걸포리 공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포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걸포리공소는 1946년 11월 본당으로 승격, 초대 주임으로 김병호(베네딕도, 1946~1950) 신부가 부임했다. 그 후 본당 소재지가 걸포리에서 현재 위치인 김포면 북변동으로 옮겨지면서 '김포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가 1948년이다.
본당 개명 후에도 걸포리본당의 12칸 초가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신자들은 3대 주임 신원식(루가, 1955~1960년) 신부 부임 후 새롭게 성당 터를 닦기 시작, 신축 석조 성당 건설에 힘을 모았다. 지금에야 굳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포크레인 등 기계가 알아서 척척 건물을 지어내지만 곡갱이나 가래 등 농기구가 전부였던 당시에는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성당 공사를 해야만 했다.
신 신부와 남성 신자들은 계양산 중턱에 올라 직접 큰 돌을 나르고, 여성 신자들은 곡갱이로 땅을 일구거나 근처 개울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날랐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인 데다 신자 대부분이 농민이어서 농업 활동을 끝낸 저녁 때가 돼야 모두 모여 일을 시작한 탓에 일을 하다 새벽을 넘길 때가 잦았다. 그러나 신자들은 한창 바쁜 농번기에도 자기 생계보다 성당을 짓는 일이 항상 먼저였다.
"경사가 가파른 산에 올라가 직접 돌을 나르다 보니 한번은 손수레가 뒤집혀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신자들 모두의 땀이 배 있는 만큼 요즘 지어지는 성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당시 석조 성당 건설에 참여했던 본당 사목부회장 김상렬(베드로, 68)씨의 회고다.
1년여간 신자들이 손으로 직접 지은 99평 석조 성당은 1956년 12월 노기남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이옛 성당은 지금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리실로 사용되면서 신자들에게 옛 향수를 선물하고 있다.
김포본당의 옛 성당과 새 성당은 신자 수 100여명에서 출발해 이제는 7600여명에 이르는 공동체로 성장한 본당의 산 역사를 대변해 주는 두 나무다.
1만여평에 달하는 성당 부지는 피정의 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넓은 야외 십자가의 길과 야외 미사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특히 조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봄·가을이면 도심 속 공원처럼 꽃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당으로 탈바꿈, 지역 주민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성당을 지으면서 옛 석조 성당에 있던 종을 그대로 새 성전 종탑에 옮겨와 옛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김포본당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 예수부활 대축일 전야미사 때와 새로운 한해를 맞는 12월31일 자정에는 신자들이 직접 종을 울린다.
김포본당 신자들은 특히 지역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근처 복지관은 물론이고 지역 홀몸 어르신 가정이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비신자 가정을 방문,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김포본당이 지역 주민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다.
박복남 신부는 "앞으로 기존 신자는 물론 쉬는신자 회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본당 공동체 활성화에 더욱 노력해 김포본당이 김포 지역의 신앙 고향으로 계속 자리잡아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04년 3월 7일, 백강희 기자]
[가톨릭 성물 이야기] 55. 인천교구 김포성당 이콘화
사실적 표현 · 화려한 색감 · 금칠 …전통 속에서 창작 매력 발산
- 김포성당에 있는 조광호 신부의 ‘주님 공현’ 이콘 작품. 80×60㎝, 2005.
인천교구 김포성당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성지 규모는 될법한 넓이와 뛰어난 자연경관에 우선 감탄하게 된다.
특히 신자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곳은 동산이다. 옛성당 뒤쪽으로 자리 잡은 숲속 동산은 고요하게 십자가의 길을 묵상할 수 있는 기도터로 잘 알려져 있다. 1956년에 세워진 옛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도 꼭 한 번 둘러볼만한 성미술 작품이다.
그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은 현재의 성당. 최근 이곳 성당에서는 새로운 기법으로 창작된 이콘화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성당 입구 양쪽 성수대 위쪽에 각각 걸린 작품은 조광호 신부(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장)의 이콘화다. ‘주님 공현’과 ‘제자 선택’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들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이콘과는 확연히 다른 보다 사실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화려한 색감과 금칠도 작품의 위용을 더하고 있다.
이콘은 ‘위대한 종교화’로 불리며 작품 그 자체가 “하느님의 현현”으로 정의될 만큼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꼽힌다. 따라서 정해진 규칙 외의 형태나 방법을 개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이다.
조광호 신부는 “이 위대한 전통에 이의를 제기할 것도 아니지만 서방교회의 전통 속에서 창조적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로서 새로운 창작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특히 조 신부는 “동방교회 이콘화에 대한 전통과 서방교회의 성화들, 평면과 입체를 가릴 것 없이 위대한 종교화의 전통에서 주어진 ‘주제와 그 제작 방법’을 섭렵해 오늘 우리 시대, 지구촌 그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로 적응하고 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역설한다.
본당에서는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새로운 이콘화를 보다 가까이에 두고 감상할 수 있도록 작은 액자 형태의 복사본을 특별 제작, 성물방에서 판매한다. 일체형 특수유리 액자로 제작해 작품의 색감도 고스란히 살렸다. 또한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가로 세로 약 10cm 크기의 작은 장식용 액자부터 2호와 10호 크기의 복사본도 제작비 수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예정이다.
[가톨릭신문, 2010년 12월 12일,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