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일
[연중 제4주일 (주님 봉헌 축일)] 정결례 (루카 2,22-40)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주님의 길을 닦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 (말라3,1-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에 유혹을 받은 이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히브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 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반대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루카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 봉헌 축일 제1독서 (말라3,1-4)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1ㄷ,ㄹ)
하느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님이 홀연히 그의 성전에 올 것을 예고하신다.
여기서 '주님'과 '계약의 사자'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과 '계약의 사자'가 동의어로 됨으로써, 계약의 사자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느님은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같은 사실은 요한 복음 1장 1절과 필리피서간 2장 6절에서도 유사하게 제시되지만, 삼위일체의 진리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사자'에 해당하는 '우말르아크 합베리트'(umallak habberith;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로 표현된 것은 그가 성부 하느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자, 곧 하느님의 계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파견된 분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이란 옛 시나이산 계약(옛 계약; 구약; 舊約)과 대비되는 '새 계약'(the new covenant)이다.
이 새 계약(신약; 新約)에 대해서는 과거 이사야 예언자(이사55,3; 61,8), 예레미야 예언자(예레31,31-34), 에제키엘 예언자(에제16,62; 37,26)등에 의해 이미 예언된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 자신이 흘리신 피가 바로 새 계약을 이루시는 피임을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선언하셨다(마태26,28).
그런 점에서 말라기 예언서 1장 1절ㄷ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한 피를 흘려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를 새 계약으로 일치시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너희가 찾던'에 해당하는 '앗템 메바크쉼'(athem mebaqshim)은 히브리어에서 사용을 안해도 의미가 통하는 2인칭 복수 대명사와 '구하다', '추구하다', '찾다' 등의 의미를 지닌 '빠케쉬'(bakesh) 동사의 강조 분사형이 사용되어, 직역하면 '바로 너희들이 간절히 구하고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너희가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앗템 하페침'(athem hapetsim)은 '바로 너희가 몹시 기뻐하는'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사실 동의적 대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메시야를 갈망한 것은 메시야가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은 영광을 누리는 시대를 도래케 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 하느님께서 계약의 사자, 곧 메시야가 '홀연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실 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피트옴'(pithom)은 '갑자가', '놀랍게', '예기치 않은 때에'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메시야가 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온다는 의미,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메시야가 오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차 메시야의 재림 때의 상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야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의 사자가 '자기 성전'에 오실 것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해당하는 '헤칼로'(hekallo)는 '그의 성전'(his temple)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의 궁전'(his palace)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가 머무는 처소인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전이 바로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탄생하신 지 여드레 만에 성전을 방문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지 40일 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었고(루카2,22-39), 마지막 수난 주간이 시작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던(마태21,12-17)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헀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메시야가 오시는 성전을 '그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자리, 곧 메시야께서 당신 스스로 자원하여 이루실 구원사업으로 말미암아 세우실 당신의 몸인 교회, 당신의 인류구원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 한 가운데 영신적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통치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3)
'깨끗하게 하고'에 해당하는 '웨티하르'(yethihar)의 원형 '타헤르'(thaher)는 어원상 육체적, 도덕적으로 불결하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나타낸다 (창세35,2; 레위12,7; 민수8,21; 에례33.8).
이 단어는 구약에서 78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정결례 의식을 주로 다루는 레위기에서 무려 35회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제사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합당한 백성들로 세우기 위해서 그 선택한 백성들을 영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 즉 성화(聖化)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말라기는 이러한 사실을 보다 힘주어 강조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마치 금과 은을 정련하듯이 그들을 정련하신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정련하여'(단련,연단)에 해당하는 '웨직자크'(yeziqaq)의 원형 '자카크'(zaqaq)는 광석을 정련할 때에 불순물을 용해시켜 버리고 순수한 금속만을 추출해 얻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욥28,1).
여기서 이 단어는 메시아께서 레위 자손으로 표현된 신약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거룩한 고난, 시련과 환난 등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의 불로 그들의 죄악을 사를 때에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들의 인격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고 연마할 때 아픔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정금같은 순수한 면모를 갖춘 참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 성도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거룩한 신앙의 인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욥23,10; 야고 1,4)
특별히 오늘 2월 2일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하고 있기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들의 거룩한 정결, 봉헌된 정결, 성결(聖潔)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중요한 단어들을 묵상해 보았다.
주님 봉헌 축일 복음 (루카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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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4~35)
시메온이 축복하는 대상을 '그들', 즉 요셉과 마리아로 밝히고 있다. 당시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꽤 오랫동안 안고 있었으며,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하여 축복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시메온은 자신이 감히 구세주 예수님을 축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부모들만을 축복했다고 본다.
이제 아기 예수님의 부모를 향해 시작된 시메온의 축복은 곧 마리아에게로 이어진다. 이것은 아마도 마리아가 요셉보다 더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을 받는 당사자가 마리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즈음에 일찍 죽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리아는 그 이후까지 살아 예수님께 대한 온갖 비방과 더불어 십자가 처형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많은 사람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의 지대함과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이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쓰러지게도 하고'로 번역된 '프토신'(ptosin; falling)의 기본형은 '프토시스'(ptosis)이며, 그 뜻은 '무너짐', '넘어짐'을 뜻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지게 될 자들은 교만하여 꼿꼿이 서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비참하게 넘어질 것이다.
반면에 '일어나게도 하며'로 번역된 '아나스타신'(anastasin; rising)의 기본형 '아나스타시스'(anastasis)는 '일어서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니스테미'(anistemi)의 명사형으로 '일어섬'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비참한 죄의 상태(예레17,9)로 인해 절망하여 넘어져 있던 자들은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 은총으로 말미암아 일어설 것이다.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루카 복음 2장 12절에서도 나오지만, 예수님 자신은 '표징'(sign)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표징이 되기 위해서 '정해지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반대를 받는'으로 번역된 '안틸레고메논'(antilegomenon; which will be spoken against)는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lego)의 합성어로서 '반대하여 말하다', '적대적으로 말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는 수동태 현재 분사로 쓰여 '적대적인 말을 듣는', '비방을 받는' 이라는 뜻이며, 이 상태가 예수님께는 항상 현재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항상 반대를 받으신 예수님의 공생활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와 비방의 최고 절정은 인류 구속을 위한 성혈의 제단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자 되심을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멸망'의 표징인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여기서 '칼'로 번역된 '롬파이아'(romphaia; a sword)는 전쟁 때 살상용으로 사용되는 '큰 칼', '긴 창'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여기서 비유적으로 영혼을 가득 채운 '큰 고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당신의 피'로 번역된 '수 ~아우테스'(sou ~autes; your own)는 고통을 당하게 될 대상을 강조하는 표현이며, 직역하면 '너 여자 자신의' 이다. 마리아의 영혼에 칼에 찔린 듯한 아픔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루카 복음 2장 34절 후반절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생애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드러내 단죄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배척과 수난과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영혼을 뒤흔들 듯한 고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이 땅에서 수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세사의 섭리 안에서 이미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여기서 '생각'으로 번역된 '디알로 기스모이'(dialogismoi; the thoughts)는 '마음속의 궁리', '뒤틀어진 생각'등을 의미하는 '디알로기스모스' (dialogismos)의 복수이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대체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루카5,22; 6,8).
여기서도 이 단어를 사용해 장차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실제로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실 것이 예언되고 있다(마태23,25~27; 마르7,20~23). |
2020년 2월 2일
연중 제4주일 (주님 봉헌 축일) 지금 걱정이십니까?
(루카 2,25-35)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ㄱ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 성령께서 시메온을 통해 일을 하시려 하십니다.
27ㄴ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죄로 가득한 세상에 오신 아기입니다. 그 죄를 없애시려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을 쓰러지게 하고 또 사람들은 왜 그분을 반대하게 될까요?
오늘은 그 죄가 무엇인지 정확한 성경적 의미를 찾아볼까 합니다.
죄(罪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느님 자리에 앉는 것) 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조건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에 의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 의해 지탱이 됩니다.
죄는 그러한 기본 됨의 조건을 모르거나 훼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위해 신을 만들려는 그 뒤틀린 인간의 의지를 칭하는 단어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나쁜 행동을 가리키는 도덕적 용어가 아닙니다. 죄는 하느님을 거부한채 자기가 神인냥 행세하는 것을 가리키는 영성적 용어입니다.(피터슨)
인간이 인간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이 하느님처럼의 그 하느님 자리에 앉은 罪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느님처럼 착하게, 의롭게, 명예롭게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열심한 신앙을 삽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의로움, 그 영광으로는 절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가 없기에 ~ 아기 예수님께서 그 인간들의 의로움, 영광을 부수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의 반대를 받으실 수밖에 없지요. 인간의 善,惡의 구조가 하느님의 선과 악의 의미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선, 악이 아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善. 惡입니다.(창세2,9)
그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그릇된 것임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다. 하십니다. 그리고 그릇된 것, 죄란~ 선(예수)이 악(죄인)을 덮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악인들 대신 죽으신 그 십자가의 의로움,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16,8~참조)
창세2,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 선이 악을 위해 대신 죽어 생명을 주는 나무, 십자나무입니다. 그 선과 악의 둘이 아닌 생명나무 , 그 하나로 더러운 마음에 받아 깨끗해지는 것, 그것이 하느님나라에 계명, 법(탈출15,25) 하느님나라에 원리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
히브2, 14ㄱ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 惡- 그 더러운 죄의 몸에~ 善- 깨끗하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한몸, 더러운 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 저주받은 죄인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없애주셨습니다.
14ㄴ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 의롭다. 하는 것입니다.(로마3,24참조)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먼저 인간들 스스로의 의로움이 구원에 가치 없음을 깨닫는, 인정하는 그 버림. 그 부서짐. 쓰러짐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35절에서 성령께서 시메온을 통해 마리아에게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하셨는데 ~~~
마리아-쓴물(더러운 마음) 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를 성모님만으로 생각하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마음인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의로움은 쓴물로 더러운 오물 일뿐이라~~(이사64,5 57,12 30,22참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것이니 僞善의 우리 마음이 칼에 찔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게 우리의 더러운 속마음을 찔러서, 죽여서 깨끗한 마음을 넣어 주시려구유~~ 그러면 사는 거래유. 성령께서 살리십니다. 일으켜 주십니다.
요한3, 3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믿음을 위한 삶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삶에 묶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아멘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