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태 5,1-12; 루카 6,20-26)

2015. 9. 8. 오후 7: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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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행복과 불행선언



행복하여라 (마태 5,1-12; 루카 6,20-26)

-유 광수신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이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니. 행복하여라, 온유한 이들! 그들이 땅을 차지하리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에 따르면,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 첫째는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고, 둘째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고, 셋째는 비록 행복이 찾아지는 곳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다. 이것이 원죄 이후의 인간의 상태이고 조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잘못된 곳 즉 탐욕을 쫓아가고 있으며 비록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알면서도 우리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주 넘어진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행복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러 오셨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제시하셨고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셨다. 즉 오늘 복음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약도로서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행복에로 초대받은 이들이며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예수님 한테 배우는 사람이고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예수님이 제시하신 행복의 비결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을 배우고 그렇게 생활하도록 노력하자.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은 즉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덟 개의 길이 있다. 그 중에 어느 한가지 길만이라도 제대로 간다면 행복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여덟가지 길은 서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첫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이란 말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자서전과도 같은 말이다. 즉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얼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시다. 마음이 가난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실 수 있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코전 8,9)

그래서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tu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5-7)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둘째, 슬퍼하는 이들이란 하느님이 누구이신가?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똑같이 우리의 죄 때문에 슬퍼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불행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인간이 지은 죄를 보시고 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아무런 슬픔이 없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셋째, 온유한 이들이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온유한 그분의 모습이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온유한 마음만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은총으로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가장 큰 불행은 완고한 마음이다.


넷째,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만이 거짓과 불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다.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른 사람만이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 예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의 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인간을 찾아 나섰듯이.


다섯째, 자비로운 이들이란 하느님의 공동체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고 말씀하신 것 같이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공동체이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란 현실의 진리를 밝히신다. 즉 이 세상 종말에 가면 현재의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마지막 날에 승리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다. 그들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 가지 몫하고 흉칙한 짓과 거짓을 일삼은 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뿐입니다."(묵시 21, 27)


일곱 번째,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란 자기 신원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할 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평화를 가져다 주러 오셨다.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폭력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사랑의 방법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산 위에서 가르쳐주신 산상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약한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생활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진복팔단은 병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시켜주는 약이며 거짓과 탐욕과 불의로 병든 우리의 마음을 낫게 해주는 진리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행복관을 생활하는만큼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며 우리 자신이 될 것이며 잃어버렸던 우리의 참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행복의 길은 행복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이다.  


참된 행복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루가 6, 20-26)


오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인가를 말씀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늘 우리에게 빛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되고, 불행하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계시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이 밝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느님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주는 복음을 알아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반드시 모든 인간이 알아야 할 진리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고, 그 진리의 길을 살아갈 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모르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신앙인들은 이런 새로운 진리를 알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행복한 곳으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인지를 잘 모르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알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참된 인생의 길을 안내 해주고 보여주는 빛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을 증거하는 증거자들인 것이다. 

하느님이 밝혀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신비를 깨닫지 못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혀 낮선 삶이며 새로운 길을 걷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일반인들의 가치관과 행복관은 인간적인 사고, 인간적인 지식과 이 세상에 국한된 사고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 행복관은 하느님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깨닫게 된 새로운 세계요, 새로운 가치관이요, 행복관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五福)이라는 것이 있다.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이다.
수는 장수하는 것이요, 부는 재물이 풍부한 것이요, 강녕은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요,유호덕은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이요,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행복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재물을 축적하려고 하고, 장수하기 위해서 몸에 좋다는 약이나 건강 식품을 찾아 먹는다. 몸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관도 시대에 따라서 변화한다. 요즈음은 도덕을 지키는 유호덕이나 제 명대로 사는 것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며 사는 삶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아무튼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인생관도 변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시한 행복한 이와 불행한 이에 대한 가르침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큰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한 이들 즉 가난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 우는 이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을 당하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신 부유한 이들, 배부른 자들, 웃는 자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불행하다고 말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왜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고 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가치관이나 행복관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관과 불행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관 즉 많은 재물, 우리의 건강, 장수 등일 것이다.


또 우리가 기도를 하더라도 그 목적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서, 재물을 풍부히 갖을 수 있도록, 출세를 위해서, 편한 마음으로 오래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예수님이 제시한 복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간단하게나마 예수님은 왜 가난 이들, 굶주린 이들, 우는 이들, 모욕을 받는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셨는가?.

"행복하여라"는 말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냥 행복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한 이들"이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이 행복한 이들인지를 지적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제시한 행복관은 영적인 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즉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지 그 방법을 제시해준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려면 무엇보다도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란 나약한 사람, 청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의탁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적인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영적인 것 즉 하느님의 것을 청하고, 하느님께 의탁해야한다. 부자는 이런 것을 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부르기 때문에 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굶주리는 이들이란 영적인 것, 즉 하느님의 것에 굶주린 사람을 말한다. 우는 이들이란 영적인 것을 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고 자기의 잘못된 삶에 대해서 뉘우치고 우는 이를 말한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쫓아냄과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란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편 불행한 사람이란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칸트는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비가인 에카르트는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라고 했고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말했다.    

-유 광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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