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착한 목자(牧者) (요한10,11-18)

2023. 5. 1. 오전 5: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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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일 월요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착한 목자(牧者) (요한10,11-18)

 


1독서<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사도11,1-18)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화답송시편 42),2-3; 43(42),3.4(42,3ㄱㄴ참조)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복음<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10,11-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1,1-8)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4~15)


사도행전 11장 1절부터 18절까지는할례받은 신자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과 함께 식사했다는 데 대한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 및 베드로의 변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의 계기가 된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까지 복음이 증거되며 교회가 확장되는 역동적인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 안에서도이방인 선교의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회심 사건과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폐쇄적인 유대적인 전통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방안의 선교의 물꼬를 터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사도행전 10장 전체를 코르넬리우스의 회심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사도행전 11장 전반부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다시 한번 베드로의 변론을 통해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도 이방인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이방인의 선교의 길이 더 환하게 열렸음을 보여 주려는역사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선교사이기도 한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적인 기술이다.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4)


본절은 병행 구절인 사도행전 10장 30~33절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그러나 이것이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전한 말이었음은 분명하다코르넬리우스가 천사로부터 받은 말을 베드로에게 그대로 전한 말인 것이다.


여기서 '너의 온 집안이'에 해당하는 ('파스 호 오이코스 수'; pas ho oikos su)는 '집의 거주자들', '한 집안 식구'라는 뜻이다즉 구원의 범위가 코르넬리우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미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를 만나게 하신 하느님의 목적은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그 온 집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또한 본절의 코르넬리우스의 이 진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이방인이라면 누구나 할례를 받은 후에야 구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하지만이방인 코르넬리우스는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러한 절차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따라서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는 자라면누구나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15)


본문을 직역하면, '성령이 떨어졌다'(epepesen to pneuma to hagion; 에페페센 토 프뉴마 토 하기온; the Holy Spirit fell)이다이것은 마치 어떤 무거운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덮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도행전 10장 45절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표현했는데본문의 '에페페센'(epepesen)은 성령의 주도적 역사를 더 강하고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그리고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령께서 임하신 시기를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라고 언급했는데사도행전 10장 44절을 보면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왜 이렇게 다르게 언급하고 있을까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사도10,34) 임하였을 것이다그리고 성령 강림의 결과는 신령한 언어(방언)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 나타났는데이 표징은 베드로가 설교를 다 마치는 때에 맞추어 일어났을 것이다(사도10,46).


그러니까 본절인 사도행전 11장 15절은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될 때부터 각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심령과 영혼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사도행전 10장 44절은 베드로의 설교 말미에 신령한 언어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써 성령 받은 사실이 외적 표징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본절에서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가리킨다이것은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서 성령께서 유대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 부어진 것처럼이제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도 부어졌다는 것을 말한다즉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면카이사리아에서 있었던(사도10,1)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성령 강림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이란 표현을 통해유대인과 이방인을 성령께서 동등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믿는 자들에게 말함으로써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행위가 전혀 비난 받을 것이 아님을 힘 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230501일 월요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제 잇속만 챙길 뿐 그들을 돌보지 않는 임금과 사제들을 거짓 목자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당신 양 떼를 찾아 돌보시겠다고,

착한 목자를 세우시어 당신 백성을 구원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예레 23,1-8; 에제 34; 즈카 10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 약속된 착한 목자가 바로 당신이심을 밝히십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의 진실한 관계가 참된 에서 시작되며,

그 앎은 성부와 성자 사이 일치의 관계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을 사랑한다고, 그분께 온 생을 걸어 희망한다고 말하는 믿음은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목자들은 복음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힘 있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목자들을 신뢰하며,

미사 참례에서 나아가 성경과 교리를 공부하고 함께 나누면서 참목자이신 주님을 더 알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아는 만큼 믿게 되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종한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던 사도들과 유다계 신자들이

한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모아들이시는 주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목자 베드로가 있었고 또 그 목자의 말에 양들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었습니다(1독서 참조).

목자와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주님을 더 알아 갑시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의 수많은 삯꾼과 도둑의 소리를 걸러 내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착한 목자의 목소리를 참으로 알아들으며,

영원한 천상 목장으로 향하는 그분의 사랑 받는 양 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0,11~18)

"나는 착한 목자다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1~12)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11절과 동일한 '나는~이다'에 해당하는 '에고 에이미'(ego eimi; I am)라는 양식을 사용해서 당신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밝히셨는데여기서는 '착한 목자'로 밝히신다이것은 '양의 문'과 '착한 목자'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짐을 보여준다.


여기서 '착한'에 해당하는 '칼로스'(kalos; good)는 '도덕적으로 선한', 혹은 '모든 면에서 흠잡을 것이 없는', '칭찬할 만한등의 의미를 전달한다즉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흠잡을 것이 없는 목자이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윗은 주님을 가리켜서 '나의 목자'라고 하였다(시편23,1). 히브리어 '야훼로이'(yaheh roi)는 새 성경이 번역한 것처럼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뜻인데, 70인역(LXX)은 이것과 다르게 '주님께서 나를 먹이신다'(kyrios poimainei me'; '퀴리오스 포이마이네이 메')로 번역했다.


'먹이신다'에 해당하는 '포이마이네이'(poimainei)는 '포이마이노'(poimain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이며목자의 직분을 잘 나타낸다말하자면양을 인도하고안내하고다스리며보호하고 양육하다는 뜻이 이 동사 안에 함축되어 있다또한 이 동사가 현재 시제로 되어 있어주님께서 자신을 이처럼 계속적으로 돌보고 계심을 다윗은 증거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너무나 유명한 시편 23장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 속에 담긴 목자의 의미를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그리고 착한 목자의 특징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다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에 해당하는 '텐 프쉬켄 아우투 티테신'(ten psychen auteu tithesin; lays down his life; gives his life)는 능동형으로서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이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일치하는 선언이다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오셨다(1요한2,2).


죄 중에 있는 인생들을 속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오신 것이며많은 이들의 죄를 대속하는 몸값은 예수님 당신의 목숨이셨다(마르10,45). 예수님께서 의인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경건치 않은 불경한 자곧 죄인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죽으신 사실(로마5,6~8)을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당신 목숨마저 양들을 위해서 내놓으시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악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된다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점을 물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았으며(마태23,4), 사람들을 모두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마태23,15).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만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었던 것이다(마태7,15). 오늘날도 역시 가장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노략질하는 이리가 있을 수 있다.


사탄은 위장술의 대가이기 때문에 자신을 빛의 천사로 위장하며사탄의 졸개인 마귀들도 자기들을 의로움의 일꾼으로 꾸미는 특성이 있다(2코린11,13~15). 착한 목자와 같은 일꾼과 마귀의 일꾼을 분별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과연 그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는지의 여부에 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삯꾼'에 해당하는 '미스토토스'(misthotos; the hired hand)는 '고용하다', '일을 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미스토오'(mistho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주인이 아니라 돈 때문에 고용이 되어 일하는 사람이다. 70인역(LXX)에서는 주로 '품꾼'을 뜻하는 히브리어 '싸키르'(sakir)의 번역어로 나타난다(탈출12,45; 레위19,13 ).


이 사람들은 양들을 돌보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보수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참된 목자와는 대조를 이룬다이들은 비록 외형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참된 목자는 아니다그들의 관심은 그들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영혼이 아니라자신에게 주어질 물질에만 있기 때문이다.


'목자가 아니고'에 해당하는 '카이 우크 온 포이멘'(kai ouk on poimen; is not the shepherd)에서 ''(on)은 '에이미'(eimi; is)의 현재 분사인데부정어 ''('ou'; 모음 앞에서는 'ouk')가 분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강한 어조나 대조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여기서는 목자가 아니라는 확실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또한 현재 시제가 진행 중의 동작이나 지속적인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는 점을 감안하면이들은 앞으로도 도무지 목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요한10,1; '도둑이며 강도다'; 로마2,21.22; 마태21,12.13; 마태23,16~19).


착한 목자들은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양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소유가 아닐지라도자기 양처럼 여기고 보호한다하지만 삯꾼은 다르다그는 다만 품삯을 위해서만 일하는 사람이어서 양들을 돌보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이들은 주인 의식이 없기 때문에 양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오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와 대조적인 모습이다여기서 '보면'에 해당하는 '테오레이'(theorei; sees)는 '테오레오' (theoreo)의 단수 3인칭 현재 시제이며, '응시하다', '감지하다'는 기본적인 뜻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즉 이것은 양을 노리는 이리가 접근하는 것을 현재 감지하고 있는 긴박한 상태를 나타낸다그리고 양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인 '이리'로 번역된 '뤼콘'(lykon; the wolf)의 원형 '뤼코스'(lykos)는 성경에서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 (마태10,16)고 말씀하신 것과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감독들에게 사나운 이리들이 들어와 양 떼를 해칠 것(사도20,29)에 대해 경고한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그들의 위험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제에브'(zeeb)의 번역어로 나오는데, '제에브'(zeeb)는 개과로 알려진 육식성 포유동물로서 혼자서혹은 떼를 지어 사냥을 하며용감하고 난폭하며 탐욕적이어서 보통 먹을 수 있는 분량 이상을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리가 접근한다는 것은 양들에게 위험이 임박했다는 징조인데이때 삯꾼은 양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위험에 맞서는 대신에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고 만다.

'버리고 달아난다'에 해당하는 '아피에신~카이 퓨게이'(aphiesin ~kai pheugei; abandons~and run away)는 모두 단수 3인칭 현재 시제로서위험을 감지한 삯꾼이 취하는 약삭빠른 행동을 실감나게 보여 주며이 두 동사가 모두 현재 시제라는 점은 삯꾼들이 늘 이와같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밝히십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자기 탐욕의 도구로 삼거나, 

늑대와 이리의 공격에 나 몰라라 하며 자기 살 궁리만 하는 나쁜 목자와는 다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과 소통하는 목자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서로를 안다는 말은 성경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 신뢰 관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착한 목자는 양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만큼 양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 자신의 관계를 예표 하시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받는 새로운 생명의 권한을 강조하십니다. 

그 권한이란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까지 데려오려고 하시는 사랑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출신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일로 질타를 받자,

 환시를 통해 깨우쳐 주신 하느님의 새로운 뜻, 

곧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이 

유다인만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도 펼쳐졌음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인간의 잣대로 가로막은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목자와 양의 비유는 넓게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 

좁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에 자주 쓰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세상에 선포하며, 

모든 민족들에게 열린 하느님의 구원을 전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들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며, 

같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고유한 소명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펼쳐야 합니다. 

그것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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