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7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나병(癩病) 치유 (루카5,12-16)
제1독서<성령과 물과 피>(1요한5,5-13)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루카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 공현 후 금요일 제1독서 (1요한5,5-13)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5~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5)
'누구입니까'로 번역된 '티스 에스틴'(tis estin)에서 의문 대명사 '티스'(tis)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매우 구체적이며 개인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원리와 수단이기는 하지만(1요한5,4),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니콘'(ho nikon)에서 '니콘'(nikon)은 현재분사로서 계속적으로 '쳐부수는 자','정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속임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나감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인 메시지와 함께 당시에 있었던 이단들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6)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1서 5장 6~9절에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물'로 번역된 '휘다토스'(hydatos)와 '피'로 번역된 '하이마토스'(haimatos)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첫째는 물과 피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써 수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절의 물과 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세째로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실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이라는 견해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물세례(수세; 水洗)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인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활 활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활 활동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란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행하신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성경은 '오신'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오신 분'(호 엘톤; ho elthon)이다.
'엘톤'(elthon)의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는 기본적으로 '오다'(come), '가다'(go)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부정 과거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이미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이 세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not~but'의 용법과 같이 전자를 부정함으로써 후자의 긍정적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우크~알르'(uk~all)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만이 아니라'에서 '만'(only)에 해당하는 '모논'(monon)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물' 단 하나와만 연관시키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잠시 동안만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사도 요한은 '단 하나 그것만'이란 매우 강한 배타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이단 사상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우크'(uk)란 부정어를 사용하여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특히 후반절의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로 번역된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en to hydati kai en to haimati)에서는 '토'(to)란 정관사와 더불어 '~안에'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엔'이 '물'과 '피'란 단어 앞에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뿐 아니라 '피'도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둘 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됨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증언하시는 분'으로 번역된 '토 마르튀룬'(to martyrun)의 원형 '마르튀레오'(martyreo)는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사도22,5; 1코린15,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곧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튀룬'(martyrun)은 현재 분사이므로, 그 증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요한15,26; 16,13.14).
'성령은 진리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테이아'(hoti to pneuma estin he alletheia)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Spirit is truth)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며, 그가 진리 자체이시므로 그가 증거하는 내용 역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역시 진리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다(요한14,17).
한편 본문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그리스어에서 직설법 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변치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이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치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오늘 나병환자 처럼 예수님을 찾은 것이다.
(루카5,12-16)
12ㄱ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 온몸이 썩어 들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문둥병)이다. 곧 자신의 죄로 영이 죽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그 영적 병이다.
(묵시3,1)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12ㄴ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자신의 얼(영)이 병(죄)이 들어 티끌(없음)일 뿐임을 인정하는 낮은 자세다. 자신이 찾아간 예수님이 자신의 나병을, 곧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으신 그리스도임을 아는 병자다.
(잠언31,20) 2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 그의 더러워진 죄의 얼이 깨끗해 졌다. 그것이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일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육의 치유로만 받는다면 헛된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그것보다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다.’ 가 문맥상 맞지않나? 그것은 나병환자- 그간 손으로 지은 죄를 용서하시려는 것이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다시,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깨닫지 못해 인간들의 선악의 계명으로 받아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한, 그것이 모든 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창세3,22)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 반드시 죽어야 할 나병환자다. 그런데 죽어야 할 그 죄인을 오늘 살려주신다. 회개도, 그 어떤 행위도 없이 그냥 용서하셨다. 그 안에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 진리가 숨겨져 있다. 그 이유도 진실도 모르면서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라고만 말하면 안 된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 모세의 명령, 사제가 한 그 일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예물을 바칠 수 있다.
레위기 14장,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 법(1~32절) 중에서 ‘사제는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끌어다, 그 피를 깨끗하게 되려는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린다.’ 그렇게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12-16절)
(레위14,19-20) 19 곧 사제는 속죄 제물을 바쳐,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하게 되려는 이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 그러고 나서 번제물을 잡고, 20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제단 위에서 바친다. 이렇게 사제가 그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분의 피로 깨끗해진 것이다. 율법(선악)의 모든 잘못을 씻어주는 구원의 새 계약의 피다.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히브10,18.22)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나병 환자가 예물도 없이 깨끗해진 구원의 신비,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로 드리는 우리의 창조의 목적인 그 삶을 살게 된 것이다.(이사43,7)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물을 드리는, 곧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거룩해진 자신을(히브10,14) 깨끗한 예물로 가사로이 바치는 하느님의 듯인 예배의 삶인 것이다.
(로마12,1)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겨 깨끗해진, 그래서 제사 예물이 필요 없게 된 그 진실은 모르고 그냥 치유의 예수님을 전하면 큰일 나는 것이다. 큰 잘못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진실, 그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전하면 모두가 제사 예물 드리는 그 종교행위의 신앙으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그 이타(利他)의 사랑, 그 은총, 은혜를 몰라 신앙의 열매인 죄에서의 해방(자유, 쉼)이 아닌 두렵고 무거운 짐 같은 구원 없는 그 헛된 신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 사람의 잘못, 죄를 드러내시어 그 죄를 용서로 살리시는 것이 말씀이시다.(히브4,12참조) 그러나 그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이 아닌, 인간들의 입(맛)에 맞춘, 그 소문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육신의 병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온 것이다. 곧 육신의 만족을 위해 온갖 종교행위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이 손을 내밀어 하느님의 계명으로 따먹은 죄의 습성인 것이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 예수님은, 말씀은 그런 곳을 떠나신다.
(이사1,14-15)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제물의 피, 제사행위)로 가득하다.
오늘독서(1요한5,5-11)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 손을 내밀어 따먹은 그 세상의 선악의 법으로 드러나는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다 갚으시고 자유를 주셨음을 믿는 것, 그래서 그분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의 진리임을(요한14,6) 믿음으로 고백하며 의탁하는 삶, 그리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하는 삶,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 피(제사)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대속)을, 물(생명수)은 구원을 다 이루시고 새 생명을 주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성령께서는 그 모든 것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셨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하느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이루셨고, 성령께서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신 것, 세위가 하나의 뜻으로 하나로 있는 것, ‘삼위일체’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 말씀으로 오셨으니 그 구원 말씀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말씀에 더욱 맛 갖은 삶,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천주의 성령님! 티끌일 뿐인 저희를 하늘의 존재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아멘.

2022년 01월 07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예수님께서 어제 복음에서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오늘 한 나병 환자의 치유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당시 나병 환자는 피부병으로 생긴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일상과 인간관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정신적 고통도 함께 겪어야 하였습니다.(레위 13―14장 참조).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는 메시아시라면,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병의 치유’와 정신적 ‘관계의 회복’이 모두 가능하실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 환자의 청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치유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를 끄는 예수님의 행동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병 환자에게 ‘당신의 손을 내밀어 대셨습니다’.
말씀만으로 충분히 병자를 치유하실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어떠한 접촉도 없이 살았을
그 나병 환자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율법에 따르면 정(淨)한 사람도 이러한 접촉을 통하여 부정(不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율법의 준수보다, 나병 환자의 치유가 더 중요합니다.
율법의 본디 정신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치유와 더불어 정신의 치유,
곧 관계의 회복을 선사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선포하신 것처럼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하느님의 증언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생명을 선물하는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복음 (루카5,12-16)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3)
루카 복음 5장 12절부터 15절까지는 나병환자 치유 기사이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산상설교를 마치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의 제1차 갈릴래아 활동 기간 가운데 산상설교가 주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다(마태8,2~4; 마르1,40~45).
그리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라고 되어 있고(마태8,2), 마르코 복음 역시 '와서'라고 되어 있다(마르1,40).
이것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서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레위13,45.46)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본문은 마치 나병환자가 동네 안에 있다가 예수님을 보고 다가와 엎드린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서와 같이 그 정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 있다가 예수님이 계시는 동네에 들어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당시 사회적 통념이나 정결례법으로는 나병환자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은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병환자에게 몸소 손을 대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셨다는 것은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마르1,41), 즉 측은지심(연민의 정)과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그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동 가운데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깨끗하게 되어라'에 해당하는 '카타리스테티'(katharistheti; be clean)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 '카타리조'(katharizo)의 과거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런데 '깨끗하게 되다'라는 말 속에는 깨끗하게 되는 대상의 상태가 불결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 불결함의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병'이 전염성이 강한 불결한 병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이러한 표현가운데에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병은 레위기의 정결에 대한 규정(레위기13장과 14장)과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나병(악성 피부병)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죄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카 복음 5장 13절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셨다는 뜻과 더불어 그 나병환자의 영적 질병인 죄의 문제까지 해결하셨다는 뜻까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만이 이러한 전인적 치유가 가능하며, 예수님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온전한 치유를 베풀 수 없다.
2022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은총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독서(1요한5,5-13)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 세상을 이겼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분 아드님이신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세상이 말하는 심판(審判),의(義), 욕망(慾望)이 ‘그릇되다, 악하다’고 말씀하시며 그 악(惡)을 십자가의 대속으로 없애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것이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7,7) 7 “세상이 너희(형제)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 기적(奇蹟)의 예수님의 힘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형제(兄弟)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보호자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세상의 악, 그릇됨을 알 수 있다.
(요한16,33)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사도(使徒) 바오로의 권고(勸告)~
(사도17,30-31) 30 “하느님께서 무지(無知)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하마트리아-돌아옴)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 율법(律法)으로 세상과 하나 되어 사람의 열성인 자신의 의(義), 돈(錢), 명예(名譽)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삶에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곧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대속(代贖)으로 죽으셨고 부활(復活)하심으로 의롭게 해주신 단 한사람인 예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사도4,12 참조)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 중, ‘예수님 안에서는 평화(平和)를 얻을 것인데 세상에서는 고난(苦難)을 겪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고난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왜?
앞에서도 확인 했듯, 예수님은 ‘세상이 그릇되다’하시고 세상은 ‘예수님이 그릇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인(人)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즉 세상을 이기신 그분 말씀 안에 늘 머물러야 한다.
그러니까 고난(苦難)은 우리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計劃)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히브12,7-11 참조)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물-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죄인들의 구원(생명)의 말씀이 생명수(生命水), 물이다. (요한4,14) 예수님께서 그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대속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고, 그 물과 피를 성령께서 구원의 진리로 증언(證言), 완성하신 것이다.(로마8,1- 참조)
‘셋은 하나’ - 구원의 일치(一致)인 ‘삼위일체(三位一體)’인 것이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ㄱ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 *물(구원의 말씀)과 *피(이루신 십자가)를 진리로 증언한 *성령, 셋은 하나로 우리의 구원(救援)을 완성(完成)하신다.
(로마8,10) 10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이 말씀을 믿지 않는 것, 하느님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다.
10ㄴ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증언은 자신을 두고하신 맹세다.(히브6,13-17 참조)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아멘)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아멘)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
(루가1,31)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구원자)라 하여라.
(마태1,23)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세상을, 사람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인 우리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사는 것,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된다. 세상(사람)을 의지(依支)하려 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상처(傷處)만 받게 된다. 그래서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挫折)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증언(證言)인 말씀을 되새기는 기도(祈禱)를 한다.
그랬을 때 이기적인 우리를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은총(은혜)이신 주님과 하나가 된다. 우리의 피난처(避難處)이신 주님이시다.(이사야25,4) 그래도 힘들다. 그래서 ‘인내(忍耐)하라’ 하신다.(야고1,2-5 참조)
사도(使徒)의 권고(勸告)와 고백(告白)~
(1베드2,19-21) 19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은혜)입니다. 20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을 때에는, 견디어 낸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명예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갈라2,20) 20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하늘의 맹세(증언)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늘을 향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