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0일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밀알 한 알 (요한12,24-26)
제1독서<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9,6ㄴ-10)
형제 여러분, 6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잠언11,24)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12(111),1ㄴㄷ-2.5-6.7-8.9(◎ 5ㄱ)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복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코린9,6ㄴ-10)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 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9)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시편 112장 9절을 인용하고 있다.
'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치켜들리리라.'
시편 저자가 여기서 찬양하는 의로움, 즉 '디카이오쉬네'(dikaiosyne;righteousness)는 '동료 인간들을 향한 올바른 행동, 친절, 은혜를 베푸는 의로움'이다.
이 단어는 마태오 복음 6장 1절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선의 의미이다.
신명기 15장 7~11절이나 레위기 25장 35절 등에서 나타내는 대로 이러한 자선과 구제는 단순히 선민으로서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분명하게 '명령' 되고 있는 '필수'사항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자는 불의한 자인 반면에,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자는 의로운 자인 것이다.
한편, 자선과 구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탁월한 가르침은 마태오 복음 10장 8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를 무상으로 거저 받았으며,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선과 구제, 그리고 의로움(의)의 가장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동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본절의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존속하리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케이'(echei)가 아닌 '메네이'(menei)이므로 '머물러 있다'(remain)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근본적으로 그 자선을 행한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에 종속되는 현세가 끝나고 영원이라는 세계가 펼쳐질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의로움을 온 우주 앞에 드러내고 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로움을 기려주실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이다.
궁핍한 자,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의로움을 그리스도께서는 곧 당신께 행한 것으로 인정하시는다는 것(마태25,40)과 그 자선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으실 것이라는 사실(마태6,4)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4ㄴ)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즉 당신 자신의 대속(代贖)적 죽음이 갖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이러한 관용구를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이 가져오게 될 놀라운 결과(結果)에 대해 씨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알게 하신다.
여기서 '맺는다'에 해당하는 '페레이'(pherei; it produces; it brings forth)는 '페로'(pher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땅에 떨어져 죽은 씨앗에서 열매 맺는 것은 불변(不變)의 진리(眞理)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 세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轉換點)이 되는데, 그것은 '많은 열매'로 언급된 영혼(靈魂) 구원(救援)의 역사이다.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의 속박(束縛)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 이 말씀 속에 함축(含蓄)되어 있다.
또한 '열매'로 번역된 '카르폰'(karpon; fruit)은 '카르포스'(karpos)의 단수 목적격인데, 나무의 열매나 자손(子孫)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결실(結實)', '산물(産物)'이라는 뜻으로도 좋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페리'(pheri)의 번역어로 나타난다.
'페리'는 '자손'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행위의 열매'를 나타낸다(예레6,19; 호세10,13).
그래서 여기서 '많은 열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상 죽음으로써 온 세상에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게 될 것이라는 뜻이 전달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요한11,52).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갈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全)인격을 본받게 되기에, 그들을 통해서 일어날 새로운 변화들이 기대된다(마태5,13~16).
2021년 8월 10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교회(敎會)는 부자(富者), 신자(信者)들은 가난(家難), 그러나 괜찮다.
제1독서(2코린9,6-10)
6 형제 여러분,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 무엇을 뿌리나, 사도(使徒)는 다른 지역 교회를 도울 구제금(救濟金)을 말하고 있다.
앞-(2코린9,1.5) 1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관해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글을 또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5 그래서 나는 이 형제들에게 부탁하여, 먼저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이 이미 약속한 축복의 선물을 미리 갖추어 놓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것을 억지 선물이 아니라 축복의 선물로 준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恩惠), 곧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그 십자나무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새 계약으로, 불타는 지옥(地獄)에 들어가야 할 죄인(罪人)인 우리가 그 그리스도의 피(血)로 거저 거룩하게, 의롭게 되어 영원한 평화(平和), 안식(安息)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깨달았다면(믿는다면)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구제금을 축복(祝福)의 선물(膳物)로 내야 한다는 말이다.
억지로, 마지못해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恩寵)인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의 복음을 모르는 것이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행(先行)은 하느님의 복음(福音)에 의한 선행이라는 것이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 성경(聖經) 시편112,9절을 인용한 말씀이다. 그런데 앞112,1절 ‘할렐루야!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로 큰 즐거움을 삼는 이! “로 시작되는 말씀이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계명(말씀)을 주는 의로움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 사랑을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善), 의로움인 것이다. 다른 민족, 사람들의 자기 의로움과 다름을 놓치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도 진심(眞心)에서 나오는 구제금, 선물을 내 놓는다. 믿는 우리보다 더 많이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은 이 땅에서만 유효(有效)할 뿐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그 선(善), 의(義)도 당연히 해야 한다.)
곧 구원(救援)의 힘, 가치(價値), 능력(能力)이 없다는 말이다. 왜? 인간의 의로움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 명예, 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사64,5 로마10,1-3참조) 의로움은 이타적인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로만 받는다.(로마3,21-25)
요점(要點)은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둬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둬들입니다.’ 가 십자가(十字架)의 복음, 그 말씀(씨)을 많이 뿌려야 많은 사람이 하늘의 의로움으로 구원(救援)을 받는다는 예기다.
10 씨(말씀)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 씨(말씀)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말씀)과 먹을 양식(말씀)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말씀)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깨닫게), 또 여러분이 실천(實踐)하는(전(傳)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씨)은 이미 성경(예수)을 마련해서 우리에게 주셨고 하느님의 영(靈), 성령(聖靈)을 보호자로 보내시어 그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요한14,26 참조) 그 하느님의 말씀(씨)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요한1,4.14) 4 그분(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복음(요한12,24-2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예수님께서 밀알(씨) 하나로 땅(흙-사람)에 내려와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죽으셔서 많운 사람을 하늘의 생명으로 살리시는 열매를 맺으셨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 우리도 땅의 목숨, 육(肉)을 위한 삶으로 하늘의 생명, 삶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육(肉)의 목숨을 위한 삶을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라는(버리라)는 말씀이다. 육의 삶이 하찮다는 말씀이 아니다. 육의 삶도 하느님께서 주신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육의 목숨을 위한 삶에 만족(滿足)하느라 하늘의 생명에는 관심(關心)도 없다면 그것이 헛된 삶인 것이고 죄(罪)라는 것이다. 땅, 육, 세상의 양식, 노동(勞動)은 하느님 나라의 양식, 말씀(씨), 구원의 일을 모형(模型)하고 있는 소중(所重)한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땅, 육을 위한 세상의 길(道), 방법(方法)이 구원의 힘, 가치 없음을 깨닫고 인정(認定)하는 그 마음의 가난으로 지금까지 그 세상의 원리를 살았던 자신을 부인(否認)하고(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길을 구원, 생명의 진리로 믿고 의지하는 삶이다.
(마르8,35)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오늘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사제의 묵상글 참으로 감동적이다. ‘가난한 이가 교회의 보물(寶物)’이라 하셨다. 그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교회의 보물이다.
(마태5,3) 3 “행복하여라,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그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늘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기에 보물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 하느님의 말씀, 복음이 자신의 뜻, 입에 맞지 않기에 먹지 않는다. 미워한다. (1코린1,23-24참조)
*사제의 묵상글 중에서~ 황제가 교회재산을 노리고 교황과 라우렌시오 부제를 죽였다고 하는데, 교회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 두었길래 황제가 그 돈을 노렸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분들의 그 엄청난 순교가 예수님 때문에, 복음(福音)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모아놓은 돈 때문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지금의 우리 교회도 엄청난 부자(富者)라 하는데 그 돈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이 어려운 힘든 상황에 신자들에게, 어렵고 힘든 나라를 돕자, 사랑을 베풀자고 코로나19백신 값을 내 놓으라 할 것이 아니라 교회(교황청)가 가지고 있는, 움켜쥐고있는 돈을 풀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베푸는데 만족(滿足)할 것이 아니라 또한 땅(인간)의 뜻을 위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십ㄷ자가의 복음을 하늘의 양식,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는데 더 힘써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恩寵), 사랑을 아는 교회(敎會)라면 말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마음의 가난으로 하늘의 부자로 살도록 하늘의 양식(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이자 말복(末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