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월요일]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 (마르12,1-12)

2020. 6. 1. 오전 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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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일 월요일

[연중 제9주간 월요일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 (마르12,1-12)

 

1독서<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1,2-7)

사랑하는 여러분, 2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5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6 앎에 절제를절제에 인내를인내에 신심을, 7 신심에 형제애를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91(90),1-2.14-15.15-16(◎ 2ㄴ 참조)

◎ 저의 주 하느님제가 주님을 신뢰하나이다.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속에 사는 이전능하신 분의 그늘에 머무는 이는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나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나 그분을 신뢰하노라.”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리라.” 

○ 그를 해방하여 영예롭게 하리라내가 그를 오래 살게 하여 흡족케 하고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리라.”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 (마르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저자를 죽여 버리자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제1독서 (2베드1,2-7)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의 영적 삶에 필요한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3)을 주셨을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또한 주셨다이처럼 3,4절에서는 동일하게 '주셨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된다이에 해당하는 동사의 원형 '도레오마이'(doreomai)는 명사형 '도레마'(dorema)가 '선물'이라는 의미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사하다'는 뜻을 지닌다그리스도께서 주고 싶은 마음이 흘러 넘쳐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광과 능력으로'는 본문에 '디 혼'(di hon; 이로써)으로 나오며, '그것들을 가지고'라는 뜻으로 쓰여앞절의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라는 의미이다. '독세 카이 아레테'(doxe kai arete; 영광과 능력)는 당시 희랍 작가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진 관용화된 문구로서어떤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릴 때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칭용하는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의 현시즉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업과 부활에 기초한 은총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약속을'에 해당하는 '에팡겔마타'(epanggelmata)는 '에팡켈마'(epanggelma)의 복수형으로 '약속된 것들'(the thing promised)미래에 대한 약속을 강조하는 본 서간의 전반적인 문맥으로 볼 때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일들인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2베드3,4.9.12.13)


이 약속은 신도들에게 매우 큰 가치와 은혜가 되기 때문에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귀중하고뿐 아니라 '위대한'(메기스타; megista)이란 최상급의 표현을 쓰고 있다사실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큰 가치가 무엇이 있겠는가?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그 약속에 힘입어 신도들이 하느님의 본성(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또한 신도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주셨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본문에서 '히나(hina)가정법 구문'이 사용되어영어의 'in order that' 의 번역처럼목적이나 결과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고귀한 약속을 가진 자는 당연히 옛 본성의 욕망(정욕)에서 나오는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한다여기서 '욕망으로'에 해당하는 '에피티미아'(epithymia)는 '욕망', '탐심', '욕심', '정욕'으로 번역되는 '에피티미아'의 여격이다.


이 단어는 좋은 의미의 열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에피포테시스'(epipothesis)나 '에피포티아'(epipothia)와는 달리항상 인간을 지배하는 죄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기술한다. '에피티미아'는 하느님을 떠난 인간 존재 속에 있는 열정적인 힘으로서육체의 욕심을 추구한다이것은 자기 생의 중심을 하느님이 아닌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자신을 신뢰하며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죄스런 인간 내면에 뿌리내린 성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욕망은 모든 방면에서 나타나는데부정한 성적 욕망하느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물질적인 욕심타인의 재물을 탐내는 것들이다따라서 자기 자신을 욕망의 충동에 내어맡긴 사람은 이미 죄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고이러한 사람은 궁극적으로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빚어진 멸망에 해당하는 '프토라스'(phthoras)의 원형 '프토라'(phthora)는 '썩어짐', '썩은 것', '부패', '멸망등으로 번역되는 명사인데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육체적 썩어짐 뿐만 아니라정신적도덕적 부패까지도 모두 포함한다신도는 마땅히 이러한 것들로부터 피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로 번역된 '아포퓌곤테스'(apophygontes)는 '~로부터 멀리 떨어져라는 의미의 전치사 '아포'(apo)와 그 자체로 이미 '피하다', '도망하다'란 뜻이 있는 동사 '퓨고'(phygo)의 합성어로서, '~로부터 피하여 도망하다라는 매우 강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특히 부정(不定)과거 분사 능동태로 쓰였으므로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피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지니고 있는 자는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는 한편중립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본성(성품)에 참여한다만일 썩어질 것을 피한 후에즉각적으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지 않고오랫동안 중립 상태로 남아 있게 되면거기에 잡초가 돋아나고 엉겅퀴가 우거져다시 옛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따라서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난 자는 밭을 일구고 잡초를 뽑아낸 후에곧바로 곡식의 씨를 뿌리고 유실수를 심는 것처럼즉각적으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해야 한다.


본문에서 '본성에에 해당하는 '퓌세오스'(physeos)의 원형 '퓌시스'(physis)는 '본성', '본질', '성품'등을 뜻하는 말로서, '어떤 인격체를 다른 이로부터 구별해 주는 본유적(本有的특성과 속성의 총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즉 이것은 하느님께서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에 해당하는 '테이오스'(theios)는 그리스 사상에 따른 이교적 표현이다. '신기한 능력'과 '신의 성품'이라는 그리스 표현은초기 그리스의 철학적종교적 관용어였다베드로 사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런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그의 서간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것은 이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이것을 잘 개발하면 성인이 되고거스르게 되면 악인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자율적 인 힘이 아니라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와의 참된 일치를 통해서 성령의 친교로 하느님의 본성(성품)에 참여하게 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앎에 절제를절제에 인내를인내에 신심을신심에 형제애를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5-7)

5-7절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할 신도들이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에 대한 권면이다이중에 가장 기초적인 덕목은 '믿음'이다믿음(pistis; 피스티스)은 전적인 하느님의 선물이며(에페2,8.9) 우리를 기꺼이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되며세상과 썩어질 것을 피하고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따라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이 된다.(로마1,15 ; 히브11,11)


베드로 사도는 이 '믿음'에 ''을 공급하라고 말한다여기서 ''에 해당하는 '아레텐'(areten)의 원형'아레테'(arete)는 3절에도 나오지만, '도덕적인 탁월성을 말한다이것은 그리스도의 덕을 말하는 것으로서(3),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음으로 도덕적 탁월성을 배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그러니까비그리스도교 그리스문헌에 등장하는 인간 본연의 성품인 미덕과는 다른 것이다덕행실천에 있어서 인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의 인간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덕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인간이 성령의 능력으로 닦게 되는 성령의 열매이며(갈라5,22), 상호간의 사랑에 공헌하는 것이며,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즉 신약에서의 덕은성령으로 거듭(새로다시)하느님의 형상을 되찾은새로운 피조물의 행동들이며 특징들인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실제 생활에 있어서 실천적 덕이 부족함으로 인해타인에게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덕목으로 믿음을 요구한 이후에이에 더하여 덕을 강조하는 것이다.


'덕에 앎을 더하여'

본절에서 말하는 ''(지식그노시스 ; gnosis)는 2절에 나오는 '지식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에피그노시스'(epignosis)와는 달리, '덕스러운 생활에 필요한 하느님의 뜻과 목적에 대한 식별력즉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나하나 터득해 가는 '실제적인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 높은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이러한 지식이 요구된다이 지식이 결여되면맹목적인 신앙인이 되기 쉽고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앎에 절제를'

'절제곧 '엥크라테이아'(engkrateia)는 '~안에'를 뜻하는 전치사 ''(en)과 '', '능력'등의 의미를 지니는 명사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내부적으로 향하는 힘', '즉 '자제력'을 의미한다이것은 그 성격상 하느님을 향한 것도타인을 향한 것도 아닌자기 자신을 향한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에 속하는 것으로(갈라 5,23), 그리스의 윤리학에 있어서도 등장하는데모든 문제에 있어 오감에 영향을 주는 자기 훈련을 의미한다또한 무절제한 육체적 방종을 삼가는 것을 의미한다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는 자들(갈라5,13)은 성령을 따라 절제의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이 덕목을 택하여 주지시킴으로써교회내의 이단자들의 방종(2 베드 2,2; 3,3)에 대해 일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지식을 가진 자 가운데 그 지식을 자기 방종의 기회로 삼는 자가 많다지식 그 자체에는 어긋나지 않으나믿음 약한 형제를 고려하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이 타인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따라서지식()이 있는 자에게는지식을 넘어서 스스로 절제함으로써 덕을 세울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베드로 사도가 지식()에 있어서절제의 미덕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절제에 인내를인내에 신심을'

'인내곧 '휘포모네'(hypomone)는 '아래에'(under)를 의미하는 전치사 '휘포'(hypo)와 '머물러 있다'(remain)라는 뜻의 동사 '메노'(me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힘들고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피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에서도 인내를 중요한 미덕으로 보나그들이 말하는 인내는 맹복적으로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굳은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이것은 믿음을 지속하는 능력이며세상의 핍박과 시련에 저항하는 능력이다.


특히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핍박과 시련에 당면하여 보여 주어야만 하는 미덕을 주지시킨다뿐만 아니라주님 재림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교설에 의해(2 테살 2,3) 그 믿음이 흔들리며심지어 그리스도 신앙에서 떠나는 자들까지 있었으므로이것은 이들에게 더욱 역설되어야 할 덕목이었다앞서 나온대로자기를 스스로 통제하는 절제력이 있다 하더라도이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인내가 없으면 결국 실망하고 절제력을 상실하기 쉬우므로베드로 사도는 절제에 뒤이어 인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신심'(경건곧 '유세베이아'(yusebeia)는 이미 3절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일반적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그의 뜻 아래 겸손하게 복종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취해야 할 올바른 관계를 나타낸다.


인간은 하느님 대전에 자신을 낮추고오직 그의 뜻에 집중하여 그의 뜻을 실천하며 공경하고 살아야 한다그렇지 못한 사람들은자신이 하느님과 비기려고 하거나 하느님보다 높아지려 한다하느님과의 관계를 본래 궤도에서 철저히 이탈시켜 버리는 것이 경건치 않음의 증거인 것이다특히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여하느님께 대하여 공경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을 위험성이 있으므로베드로 사도는 인내에 뒤이어 신심(경건)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심에 형제애를형제애에 사랑을'

'형제애에 해당하는 '필라델피안'(philadelphian)의 원형 '필라델피아'(philadelphia)는 '사랑'을 뜻하는 명사 '필리아'(philia)와 '형제'를 뜻하는 명사 '아델포스'(adelphos)가 합성된 단어로서, '형제에 대한 사랑'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포스'는 원래 '하나', '동일함'을 뜻하는 접두사 ''(a)와 '자궁'을 의미하는 '델퓌스'(delphi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문자적으로는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혈육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믿음을 가진 지체를 가리킨다.(에페4,3)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을 향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신심'(경건)에 뒤이어 '형제애'를 말하는 것은 '신심'에 지나치에 치중하여형제 사랑의 덕목을 무시하는 자들이 초대교회 당시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믿음'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사랑'으로 완성된다여기서 말하는 '사랑곧 '아가페'(agape)는 친구들간의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philia)나 남녀간의 애정을 뜻하는 '에로스'(eros)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가페'는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태도를 반영한다.

즉 '아가페'는 우리들의 인격에 의하여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인간적인 사랑하느님의 위격에 의하여 우러나오는 것이다.(신적인 사랑이 사랑은 사랑의 본체이신 하느님께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보여주신 것으로서 전적인 희생을 내포하며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속에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다.(로마5,5)


베드로 사도는 이 신적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란 단어로, 5절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본성(성품)에 참여한 자들이 맺어야 할 미덕의 열매들의 목록을 마감함으로써신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임을 알게한다.


 



연중 제9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12,1-12)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0~11)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12장 10~11절에서 시편 118장 22~23절을 인용하셔서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시켜 예언하신다.

원래 시편 118장 22~23절은 곤경 속에 있었던 다윗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추정된다자신이 버려진 돌과 같이 사람들의 멸시를 받지만하느님의 자애로 다시금 돌아와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모퉁이의 머릿돌'에 해당하는 '케팔레 고니아스'(kephale gonias; the head of the corner; the capstone)은 줄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히브리 어법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마치시며당신 자신을 새로운 성소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버린 돌이라고 말씀하신다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성전보다 더 크시고 높으시다(마태12,6).


사도행전 4장 10절과 11절의 '버림을 받음'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심'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도 역시 시편 118장 22절에서 찾는다.

그리고 베드로1서 2장 7~8절은 시편 118장 22절을 이사야서 8장 14~15절과 관련시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머릿돌'이 아니라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리게 하는 바위'가 됨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돌에 걸려 넘어진다.


한편 '내버린'에 해당하는 '아페도키마산'(apedokimasan; rejected)의 원형 '아포도키마조'(apodokimazo)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시험하다', '분별하다', '증명하다'라는 뜻을 지닌 '도키마조'(dokimazo)의 헙성어로서, '완전히 시험한 후에 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집짓는 이들(건축자들; the builders)과 포도밭의 소작인들로 비유된 산헤드린의 종교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숙고하고 철저히 검증하며 시험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었고그러면 포도밭이 자신들의 것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더 이상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고 이권을 유지하며(마르11,15참조), 종교적 위선을 숨기고 무지한 백성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결국 포도밭 주인의 아들곧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

 20160530 연중 제9주간(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19,25-34)


1독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87(86),1-2.3과 5.6-7(◎ 3)

◎ 하느님의 도성아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네

○ 하느님의 도성아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복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창세3,9-15.20)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5)


'나는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원문의 '웨에바 아쉬트'(weebah ashith)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증오를 놓을 것'(And I will put enmity)이다여기서 '증오'(에바 ; ebah)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적대자에게 품은 삭힐 수 없는 깊은 원한과 적개심(민수35,21.22)을 의미한다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문장의 서두에 위치시켜 적개심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놓다'는 가슴에 '품다', '품에 안다'(룻기4,16), '갇히다'(시편88,9)로도 번역되는 '쉬트'(shith)의 미완료형으로서적개심(증오)을 가슴 속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이처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함으로서 비참한 운명 가운데 처하게 된 인간은 사탄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와 그 여자 사이에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너와 그 여자 사이에'로 번역된 원문은 '뻬네가 우벤 하잇샤'(beneka uben haisha)인데직역하면 '너 사이에 그리고 그 여자 사이에이다이처럼 본문에는 '~사이에'를 뜻하는 ''(ben)이 2번이나 등장하며여자와 사탄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장 형식은 이어 나오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에서도 동일하다즉 하느님께서는 뱀과 여자그리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앞에 모두 ''(ben)이라는 전치사를 넣어인간이 영원히 뱀 즉 사탄을 멀리하고 적대시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으로 번역된 '자르아흐'(zarah)는 '씨를 뿌리다'(파종하다레위25,22)라는 뜻이 있는 '자라'(zara)에서 유래하며일차적으로는 ''(창세4,25)를 가리키나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후손'(창세12,7), '자손'(레위20,2) 등으로 더 널리 번역되는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단수형이다.

여기서 단수형이 사용된 것은히브리인들이 ''나 '자손'은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출발한 동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단수로 표기된 '여자의 후손'(her seed)은 이어 나오는 뱀의 후손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한 사람즉 장차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여자의 후손'(자르아흐)을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마어가 붙은 단수형이므로성모 마리아에게 적용해왔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라4,4)

첫 에와와 첫 아담의 하느님께 대한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남용으로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왔다그리하여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과 축복과 생명의 구원사로 바꾸시기 위해둘째 에와이신 성모 마리아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의지의 선용과 협력이 하느님 아버지께 필요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로 번역된 '에슈페카 로쉬'(yeshupeka rosh)에서 '상처를 입히다'(상하다;슈프; shup)는 '때리다', '타박상을 입히다', 혹은 '눌러서 뭉개다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리고 '머리'(로쉬; rosh)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또한 각 개체를 대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머리를 뭉갠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회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이와같이 사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분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 승리하셨다이로 인하여 사탄은 머리가 상한 뱀과 같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사탄의 모든 세력을 불과 유황 못에 던짐으로써(묵시20,10.15) 완전한 승리를 이루실 때까지상한 머리를 감싸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머리가 상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이미 사탄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을 때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상처를 입히다'(상하게 하다)의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그 상하게 하는 일이 계속 지속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실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으며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군사인 성도들에 의해 계속 패배당하고 있다이와같이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이루어지는본절에 나오는 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언을 우리는 원시 복음(原始 福音;첫 복음; Proto Evangelium)이라고 부른다.

원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 위해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셔서,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게 하셨다.


장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를 담아야 할 거처는 하느님처럼 거룩해야 하므로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사업 공로를 미리 앞당겨 입게 하여원죄로부터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해방되게 하셨는데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피와 살을 빌려드려야 했던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사건(무염시태)이다.

성모님의 무염시태(어머니 안나에게서 수태되는 순간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것)는 죄를 지을 수도 없고죄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도 없으며,죄의 결과로 죽을 수도 없는 인간 본성에 과분한 은혜인 '과성(過性)은혜의 회복'이다.


죄 뒤에는 반드시 사탄이 있으므로하느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첫 단추를 승리로 장식하신 사건이 바로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사건이다원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빼앗긴 피조물 가운데에서는 있을 수 없으며감히 사탄이 넘볼 수도 없고사탄이 감히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영혼이며하느님 아버지께서 첫번째로 완전히 해방시킨 영혼이 바로 이 성모 마리아이시다.

바로 이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이러한 방법으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화(강생: incarnation)되심으로성모님은 사탄을 상징하고 있는 뱀의 머리를 밟고 계시는 것이며, '여인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업적인 자모이신 성교회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에게도 적용시키는 것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여기서 '상처를 입히리라'로 번역된 '테슈펜누'(theshuphenu)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슈프'(shup)와 동일한 단어이다그러나 앞 문장에서는 '머리'가 상하게 하는 대상인 반면에여기서는 '발꿈치'(아케브; aqeb)가 그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머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가장 중요하며상처를 입을 때 치명적이지만반대로 발꿈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부위를 상징하며,상처를 입어도 치명적이지 않다사탄의 공격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며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중단케 하지 못했으며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서 그 발꿈치의 상처마저 완전히 치유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상하게 하는 역사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왜냐하면,'상하게 하다'(슈프; shup)는 히브리어는 집요하게 공격하여 상처를 남긴다는 의미이며또한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사탄은 상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묵시20,10.15;1베드5,8).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요한19,25-34)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6~27)


요한복음 19장 25절과 19장 27절에는 '어머니'라는 뜻의 '메테르'(meter)가 사용되었다. 19장 25절에서는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과 마리아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고, 19장 27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하면서 당신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뜻의 정감있는 '메테르'(meter)란 표현을 했다.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는 '메테르'를 사용하지 않고셈족 계통의 언어로서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인 '귀나이'(gynai)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여인', '부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어떤 여인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장 4절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해 '귀나이'(gynai)라고 불렀고지금 자신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십자가 형틀 위에서도 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느님의 계획하에 치밀하게 이루어진 구원 사업 안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둘째 하와이신 마리아의 성소와 역할을 규정지어 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피와 살을 나눈 혈육적 관계 안에서의 모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공적으로 첫 기적을 베풀어 당신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야 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자리와인류 구원 사업이 완성되는 십자가의 형틀의 자리와 거기에서 모든 은혜가 내려져서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와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자리가혈육과 육정의 관계를 넘어 각자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자신의 성소와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약 성경을 통틀어 첫 복음이라고 불리워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에 해당하는 '잇샤'(isha)는 70인역(LXX)에서는 '귀네'(gyne)로 번역되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여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맡기기 위해 부르는 호칭으로만 '귀네'(gyne)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여자의 후손'이라는 모티프(motif)를 사용한 것이다.


루카복음 1장 38절에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교회의 모친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수락하셨는데그 수락한 모성이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서 인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를 상징하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중에서 루카복음 23장 34루카복음 23장 43절에 이어서 세번째 말씀인 요한복음 19장 26~27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도들의 어머니교회의 어머니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심으로써 이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시는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오는 것이 가장 구원과 완덕에 이르는 쉬운 길이며 빠른 길이고가장 완전하고 완벽하며 안전한 길이라는 말이다.


마리아론 학자들은 이 길은 바로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는 것과철저히 그리스도 중심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신 마리아의 성덕(聖德)을 본받는 것그리고 묵주의 기도로서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와 전구에 의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완전한 하느님이셨지만(요한1,1), 보통 여느 사람들처럼 이성과 감정을 지니신 온전한 인간이기도 하셨다.

자신의 손과 발이 못박혀 몸이 찢기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요한19,18.28)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눈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을 낳고 길러준 육신의 어머니요하느님의 아들이신 무죄한 당신이 고통받고 죽어야만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에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는(요한19,25) 아들로서의 심리적영적 격정은 그의 온 심장과 오장육부를 파고들어 타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이 되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이 친어머니처럼 섬겨주기를 바랬던 마리아는 바로 자모이신 성교회죄인들의 피난처이신 교회를 상징하는데(십자가의 길 13), 주님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는 믿음의 모델이며 은총의 전구자이시고예수님의 첫 제자이기도 한 마리아를 통해 구원과 성화와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이다.

 2020년 6월 1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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