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루카복음 22,1-71

2011. 12. 9. 오후 12:37:34

글자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루카복음 22,1-71

 

루카복음 10장에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통하여 이웃 사랑을 설명하시고,
마리아의 예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시고 ,
세리의 기도와 자캐오의 나눔을 통한 이웃 사랑을 설명해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수난 받고 죽고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을 계시해 주시는데,
말씀을 읽고 말씀의 열매인 사랑이 극치에 도달하면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데 죽을 때까지 말씀 순종하게 되며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님 자신을 파스카의 희생 제물로 내어 놓으심으로써
구원의 완성과 천국의 완성을 이루시는데,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 같지만
하느님 차원에서 볼 때는 승리하는 것이며,
수난 받고 죽으셨지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켜 천국을 완성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부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매일매일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여
주님과 함께 부활 승리에 참여합시다.
 
예수님 죽일 음모를 꾸미다
(마태26,1-5; 마르14,1-2; 요한11,45-53)
 
파스카는 과월절 또는 유월절이라고 하는데,
출애급기 12,1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어린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어린양의 피를 문의 상인방과 양 문설주에 피를 발랐던 집안에서는
살육의 천사가 지나갈 때 맏아들을 죽이지 아니 했으나, 
 
 
피를 발라 놓지 않았던 이집트 사람들의 집안 큰 아들은
다 죽었던 예화는 예표이고 그림자이지만
 
신약에 와서
과월절에 어린양으로 예표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제물이 되고
예수님의 피로써 원죄 중에 있는 모든 인류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 시키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하여
구원의 완성이며 천국 완성과 부활 영광을 이루기 위한 수난 시작되는데
 
구약에 과월절은 그림자이며 예표이지만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십자가상 제사에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고 자신이 대사제가 되어
구원의 제사를 바치기 위하여 수난이 시작되는 것이며 
이미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구원 계획을 하시고
실제로 실행하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즉 원죄가 있는 인류는 반드시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극형인 사형을 받아 목숨의 값으로
인류 모든 사람들의 원죄를 대신 갚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으로 요구할 수 없으며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아
신앙 생활함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며
율법의 완성이 사랑입니다.
 
1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2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백성이 두려워,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 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마태 26,14-16; 마르 14,10-11)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대표로 한 예화이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회개한 사람들에 대표로 예화가 나오는데
카리옷 유다의 마음 안에 사탄이 들어가 사탄의 조정을 받아
예수님을 유대교의 제사장들에게 은전 30전에 팔아 넘기고
죽일 음모에 가담하는 것은
이스카리옷 유다의 마음 안에 말씀이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때부터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순절 첫 날의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여
재의 수요일부터 40 일 간을 사순시기라고 말하는데
 
요한복음 8,31~32에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들 안에 자리 잡으면 나의 제자가 되며
진리가 자유케 한다." 라고 했으며,
우리들도 우리들 안에 말씀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우리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고 죽이게 되는 일을 하며,
 
 
말씀을 읽고 말씀화가 되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자녀들이 되고 제자들이 될 수 있지만,
말씀하고 멀어지면
이스카리옷 유다가 사탄의 종이 되어 죄를 지은 것처럼
우리들도 죄를 지을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말씀화가 되어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갈 때
우리들도 주님을 배반할 수 있지만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하며,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회개는 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예화에서 베드로 사도처럼 살아갈 것인가?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살아갈 것인가?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하나는 멸망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반드시
사도 베드로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면서 신앙생활을 합시다. 
 
3 그런데 사탄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이스카리옷이라고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4 그리하여 그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길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
5 그들은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6 유다는 그것에 동의하고,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마태26,17-18;마르14,12-18)
 
주 예수 그리스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천국가는 길을 만들어 놓기 위하여
최후 만찬을 준비해 놓고 가시는데,
천국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성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끝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양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이라고 하셨고
"내 살과 내 피를 먹어야 영원한 생명이 온다."고 말씀하셨으며,
 
이 빵은 마태복음 4,4에서 레마 말씀이라고 말씀 하셨고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하셨고,
"내 살과 피를 먹어야 영원한 생명이 온다."고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내가 식인종이란 말인가?
어떻게 사람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 가겠느냐?"고 말했을 때
베드로 사도가
"선생님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데(요한6,68)
선생님을 두고 어디로 떠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였는데 ,
 
빵이 생명의 말씀이며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인데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님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먹어 예수님과 한 몸이 되고
예수님과 한 몸이 된 사람이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된 우리들이
진리 성령을 통하여 성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에
최후 만찬은 아주 중요하며
미사 성제 때 말씀의 잔치와 성찬의 잔치를 통하여
매일 매일 새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7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8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
9 그들이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거라.
11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2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놓은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3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14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설명:
파스카는 과월절 또는 유월절이라고 하며
출애급기 12장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문설주와 상인방에 생명을 상징한 피를
야훼 하느님께서 바르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발랐던 집은 건너 뛰고
생명의 피를 발라놓지 않았던 집의
장자와 짐승의 맏배들은 다 죽었던 것처럼,
 
신약에 와서도 성만찬에 참여하여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고
말씀의 전례에서 말씀의 옷이며 그리스도의 옷으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성도들이 구원 받게 되는
기쁜 성찬에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사 때 기쁜 마음으로 잔치 분위기로 미사에 참여합시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설명:
생명의 양식인 레마말씀으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즉 성체가 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드시겠다는 것이며
미사 중에 성체를 모실 때는 
세례를 받고 원죄의 사함을 받은 사람으로서 
대죄가 없는 사람이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설명:
새 계약은 아가페 사랑의 계명인데
아가페 사랑은 생명의 말씀과 관계를 맺어 살아갈 때
말씀의 열매로 아가페 사랑이 오는데
새 계명은 사랑이며,매일 매일 미사 성제 때
피흘리지 않는 미사 성제 때 새 계약이 이루어지며
새 계약은 사랑이기 때문에
옛 계약인 율법에 의한 십계명도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데
사랑하며 하느님을 흠숭하고 주일을 지키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사랑하며
살인하지 않고,간음하지 않으며 즉 사랑이 오면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베드로 사도는 육에 있을 때
예수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안겠다고 맹세를 하지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배반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육에 있을 때는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도
원죄의 여독인 선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순간 순간 육의 속성은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못지키지만
말씀화가 되고 진리성령이 오셔서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대신 사랑의 하느님이 일하게 하시며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데,
 
베드로 사도도 아직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잘못을 범하지만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갔기 때문에 초대 교황이 되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와 천국 열쇠를 맡기고
양들을 먹이고 기르고 인도하게 하시며
교회를 베드로 사도께 맡기는 것이며,
 
 
우리들 인성은 약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아흔 아홉마리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믿고 회개합시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못을 박는 행위를 하고 있음을 회개합시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23 그러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마태 20,24-28 ; 마르 10,41-45)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
우리 마음을 완전히 죽이고 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즉 우리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예수님 마음으로 변화 되었을 때 섬기는 사람이 되는데
이런 사람이 평신도 왕직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데,
 
 
이 왕직이라는 것은,
세상에서는 명령하고 권세를 누리는 사람이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한테 봉사하는 사람인데
 
마태복음 25장에서
목 마르고 배고프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주고 병을 치료해 준 것이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만난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 형제로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24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시다(마태19,28)  
 
28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30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32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33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예수님 상징)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3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나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다.’는 말씀이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된 일이 이루어지려고 한다.”
38
그들이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말씀 상징) 두 자루가 있습니다.” 하자, 그분께서 그들에게 “그것이면 넉넉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겟세마니(기름)에서 기도하시다 (마태 26,36-46 ; 마르 14,32-42)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43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
4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설명:
성경에서 잠 잔다고 할 때
복신앙으로 기도를 드리거나 삶으로 살아갈 때
잠든 자라고 말하며,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달아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갈 때는
깨달은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47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라고 하는 자가 앞장서서 왔다. 그가 예수님께 입 맞추려고 다가오자,
48 예수님께서 그에게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9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주님, 저희가 칼로 쳐 버릴까요?” 하고 말하였다.
 
설명:
칼은 율법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칼로 치지 말라는 말은
율법으로는 다 지키다가도 하나만 못 지키면 심판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칼로 치지 말고 율법의 완성을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며,
 
 
우리들도 사랑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상대방이 변화되기 때문에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해 주고 사랑으로 대해 주었을 때 변화가 오며,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5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 그 사람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설명: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귀를 치료해 주시며
우리들에게도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52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단 말이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는 너희가 나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54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55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56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57 그러자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하고 부인하였다.
58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하였다.
59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하고 주장하였다.
60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예수님 상징)이 울었다.
61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62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예수님을 조롱하다 (마태 26,67-68 ; 마르 14,65)
 
63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64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65 그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퍼부었다.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
 
66 날이 밝자 백성의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여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가서,
67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68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69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이다.”
70 그러자 모두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 하시자,
71 그들이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


<루카 복음서 22장 1절-36절>

 

<1절-2절 :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1절..<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파스카, 즉 과월절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

    념하는 축제입니다(탈출 12장). 시기는 니산달(3월-4월) 14일-15일입니다. 무교절, 즉 누

    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도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인데 과월절에 이어서 니산

    달 15일에서 21일까지 지냈습니다. 두 축제는 사실상 같은 축제로 간주되었습니다.

 

2절..<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백성이 두려워,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 방

    법을 찾고 있었다.>--앞의 19장 47절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

    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를(죽

    이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과월절이 다가왔

    고, 예루살렘에 많은 백성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을 지지하고 있는 사

    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 모르게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백성이 두려워' 라는 말은 백성들의 소요 사태를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3절-6절 :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3절..<그런데 사탄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이스카리옷이라고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배반자 유다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고민을 덜어주었습니다. 앞의 4장 13절에

    서 사탄은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에게서 떠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탄이 예수님

    에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하느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탄이

    한 몫을 맡은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사탄이 언급된 것은 예수님의 수난 사건에 인간 세

    계를 초월하는 어떤 힘이 작용했음을 나타냅니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는 말은 유다

    가 악령에 들렸다는 뜻은 아니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라는 말은 제자였으면서도 배반자가 되었음을 강조하

    는 것입니다. '이스카리옷이라고 하는 유다' 라는 말의 원문은 '이스카리옷이라고 불리는

    유다'인데, 새번역 성경은 원문대로 번역했고, 공동번역 성서는 '가리옷 사람 유다' 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이스카리옷'이라는 말은 '가리옷 사람'으로도 해석되고, '거짓말쟁이, 배

    반자, 자객'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말입니다.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배반자가 된 것이나 예수님이 그런 사람을 사도로 뽑은 것

    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스테리입니다. 예수님이 유다에게 배반자 역할을 맡기기 위해 그

    를 사도로 뽑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면 유다에게는 배반의 책임이 없게 됩니다.

    또 예수님이 유다라는 인물을 잘 몰랐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을 꿰뚫

    어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하느님의 섭리

    와 신비에 속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유다는 사도로 뽑힐 만했으니까 뽑혔다는 것입니다. 9장의 '열두 제자의 파

    견' 때 유다도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했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배반자 유다를 사도로 뽑았는가?"

    가 아니라, "사도였던 유다가 왜 배반했는가?" 로... 이것은 "왜 유다인가?" 라는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열두 사도 중에 누구라도 배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

    른 열한 명은 예수님을 배반하려고 하지 않았고, 모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유다만 혼자

    서 다른 길을 갔습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

    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유혹이 왔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고 결국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하여간에 예수님

    의 수난의 전 과정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된 일이라고 해도 배반자 유다의 책임이 줄어들

    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유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고 해서 사탄에게만 배반의 책임이 있고 유다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혹자는 유혹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에게는

    유혹에 빠져서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배반자와 순교자의 두 가지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믿음과 의지의 문제이고, 선택의 책임은 항상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4절..<그리하여 그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길 방

    도를 함께 의논하였다.>--사탄의 유혹에 빠진 유다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

    찾아가서 백성들 모르게 예수님을 넘길 방법을 의논합니다. 유다가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도 간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할 때 필요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5절..<그들은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그들이 기뻐한 것은 유다의

    제안 덕분에 그들이 바라던 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합의

    를 보았다.' 라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약속하였다.'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대로 '합의하

    였다.' 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이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합

    의를 했다고 되어 있지만 유다가 먼저 돈을 요구한 것 같지는 않고, 유다의 제안이 돈으

    로 보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주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다가 돈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유다가 도둑이었다는

    말과 돈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가로채곤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

    님을 배반한 것도 아니고, 먼저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탐욕스럽

    고 돈에 관해서 무절제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마태오복음 26장 15절을 보면 유다가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

    겠느냐?' 라고 묻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보

    상이나 대가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6절..<유다는 그것에 동의하고,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유다가 그것에 동의했다는 말은 사제들과 유다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맺어졌

    다는 것을 뜻합니다. '군중이 없을 때에' 라는 말에는 '사람들 모르게' 라는 뜻도 들어 있

    고,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 염려가 없을 때'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

    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은 만일에

    그 음모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군중의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라는 말은 유다가 직접 예수님을 붙잡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소재를 알려주고, 그곳까

    지 길안내를 하고, 누가 예수님인지를 지목하는 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넘길 적

    당한 기회'란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기에 적당한 기회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7절-13절 :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7절..<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과월절(무교절)의 첫째 날은 유대 달

    력의 니산달(3월-4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을 잡는 것은 그 전날, 곧 14일 오후입

    니다. 유대인들 시간 계산으로는 저녁부터 다음날이 시작되지만 로마인들은 자정을 기준

    으로 하루를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방식으로는 어린양을 잡는 날과 무교절 첫날

    이 다른 날이지만 로마인들 방식으로는 같은 날이 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모두 고려해서 예수님의 수난 날짜를 계산하면, 예수님은 니산달

    14일 밤(목요일 밤)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체포당한 뒤에, 금요일(안식일 전날) 오후 3시

    에 돌아가셨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 이른 아침 이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

    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과월절 첫날과 금요일이 겹치는 것은 세 번인데, 가장 유력한 것

    은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이 목요일 밤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

    활하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요일은 정확한데, 연도와 날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드디어 무교절의 첫 날이 왔다.'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에는 '첫 날'이

    라는 말이 없습니다.)

 

8절-9절..(8)<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 (9)<그들이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베드로

    와 요한은 사도단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도를 미리

    보내서 과월절 만찬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과월절 식사를 하려면, 방을 준비해야 하고, 어

    린양과 누룩 없는 빵과 다른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그 음식을 요리할 사람을 정하는 등

    의 일을 해야 합니다.

    과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과월절 음식은 반드시 도성 안에서

    먹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리 방을 준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우선 예수님께 '어디에' 차려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19장의 예루살렘 입

    성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나귀를 찾아서 끌고 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지금 두 제자가 어디에 음식을 차리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은 나귀의 경우처럼 예수님께서

    어딘가에 방을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묻는 것입니다.

 

10절..<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거라.>--'도성'은 예루살렘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 밖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는 두 제자에게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남자를 만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남자

    가 물동이를 메고 간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당시에 물동이를 메는 것은 여자들

    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사람'으로 번역했는데, '남자'로 번역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미리 준비한 상황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 두 제자가 만나게 될 시간도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

    마도 그 남자와 마주치는 장소도 대강은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남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준비된 집을 가르쳐 주지

    않고, 중간에 다른 사람과 접선하도록 하셨을까? 이것은 유다에게 만찬 장소를 미리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서, 즉 만찬 전에 체포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마치 첩보영화 같은 상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1절..<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

    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제자들이 집주인에게 할 말을 예수님이 미리

    일러주시는 것은 그 방을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말하자면 지금

    의 상황은 예약해 놓은 방을 미리 가서 확인하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볼 수도 있고, '내

    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라는 예수님 말씀을 글자 그대

    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집주인에게 방을 준비하라고 시키기만 하고 어디에 어떻게 준

    비했는지를 제자들에게 가서 확인하라고 지시하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서 '스승님께서... 하고 물으십니다.' 라는 제자들의 말은 집주인도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물론 사도는 아니었을 것이고.) (공동번역 성서에는 '스승

    님께서' 라는 말이 빠져 있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여기서 '방'의 원문 단어는 '손님방'

    인데, 여관방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2,7).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일반 가정집의 손

    님방을 뜻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는 마르코였고, 집주인은 마

    르코의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12절..<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놓은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큰 이층 방'은 흔히 옥상 위에 부속으로 지은 방인데, 상당히 넓었고 일반적

    으로 방석을 깔았습니다. 대개는 손님을 접대하려고 마련한 방입니다. '이미 자리를 깔아

    놓은'이라는 말에서 '이미' 라는 말은 삭제해야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자리가 다 마련

    되어 있을 터이니' 라는 말도 원문과는 거리가 먼 번역입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제자

    들에게 집주인이 보여주는 방에다 과월절 음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십니다.

 

13절..<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

    식을 차렸다.>--제자들은 모든 일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과월절 만찬 준비를 합니다.

 

<14절-20절 :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14절..<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

    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과월절 만찬 식사를 하기 위해 함께 모여 앉았습니다.

 

15절..<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고난을 겪기 전에' 라는 말은 식사 뒤에 수난이 온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너희와 함께' 라는 말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친교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파스카 음식

    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라는 말은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지금의 식사는 글자 그대로 최후의 만찬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잔치

    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16절..<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

    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한

    다는 뜻입니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라는 말은 '파스

    카 축제의 정신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완성될 때까지' 라는 뜻입니다.

    파스카 축제는 해방과 구원을 상징하고 경축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는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미완성 상태입

    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새로운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면 파스카 축제가 완성될 것

    입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완성된 파스카 축제'는 성체성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글자 그대로 종말의 하느님 나라에서의 잔치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파스카 축제가' 라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과월절 음식의 본뜻이' 라고 번역했

    는데,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것이'입니다.)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라는 말은 곧 죽음이 닥칠 것이라는 뜻이고, 지

    금 이 만찬이 죽음 전에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

    니다. 여기서 '파스카 음식'은 어린양을 가리킬 것입니다.

 

17절..<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유대인들은 과월절 식사를 하는 동안에 잔을 네 번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기에 앞서서 이집트에서 해방된 일을 감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축복

    과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직은 성체성사가 아닙니다. 성체성사 설정은 19절에서, 과

    월절 식사 후에 이루어집니다. 잔을 들어 함께 마시는 것은 식탁에 모인 이들이 서로의

    친교를 나누면서 일치하고자 하는 행동입니다.

 

18절..<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18절은 16절과 같은 뜻의 구절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가 올 때까지' 라는 말은 16절의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라는 말은

    16절의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파스카 음식을

    포도주로 바꿔서 표현했을 뿐입니다. 어떻든 이 말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면 예수님

    께서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음료로 새로운 잔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19절..<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

    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

    라.">--과월절 식사에 이어서 성체성사의 설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빵'은 과

    월절의 누룩 없는 빵이었을 것입니다.

    감사를 드렸다는 말은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말에는 '특별한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떼어' 라는 말은 한 개의 빵 덩어리를 여

    러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동작을 뜻하는데, '빵을 떼어 나누어 주다.' 라는 말은 나중에 성

    체성사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서 사도들에게 주시면

    서 특별한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체성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 요소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이 말은 '이 빵은 너희를 위해, 너희들 대

    신에, 너희들의 구원의 대가로 넘겨질, 곧 죽어야 할 내 몸이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

    해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빵이라는 형상 안에 당신을 담아서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말씀을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이 말은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이 예식을 행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

    이고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들 이후 사제들은 미사에서 제물을 바칠 때, 예수님의

    말씀과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예식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로 그 희생 제사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20절..<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만찬을 드신 뒤에' 라는 말은 지금의 '잔'은 과월

    절 만찬 중에 마신 잔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라는 말

    은 19절의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린 것과 같은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잔'은 성체

    성사 성혈의 잔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죽음을 뜻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라는 말은 '인간을 위해 속죄의 제물로 바쳐진 예수님의 죽음으로'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옛 계약'(구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입니다(탈출 24,8). 그 계약

    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고 백성들은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성실하게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 계약을 맺을 때의 제물은 '소'였습니다. 소를 잡아서

    피를 백성에게 뿌린 것은 계약을 어기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라는 상징적인 예식입니다.

    '새 계약'(신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계약입니다. 이것은 옛 계약을 확인한 것

    도 아니고 갱신한 것도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계약입니다. 그리고 계약의 제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계약의 내용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사람 쪽에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21절-23절 :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21절..<"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여기서

    '그러나'는 앞의 내용을 강하게 반대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

    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새로운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배반할 자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그런데'는 '그러나'로 바꿔야 합니다.)

    이 '그러나' 라는 말은 배반자가 방금 전에 맺은 계약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

    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찬의 식탁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보증 받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라' 라는 말은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을 강조하기 위한 관용어입니다.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라는 말을 원문대로 직역하

    면, '나를 넘겨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식탁 위에 있다.'입니다. 이 말은 배반자가 예수

    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손'은 사람을 뜻하고 배반자의 손이 예

    수님의 손과 함께 식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

    서의 '나를 제 손으로 잡아 넘길 자가' 라는 번역은 원문과는 거리가 먼 번역입니다.)

    여기서 '팔아넘길 자' 라는 말보다는 '넘겨줄 자'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넘겨줄 자' 라는 말은 배반자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배반자가 식탁에 함께 앉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도들 중에 배반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식사 공동체를

    배반하는 그 배반자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식사 공동

    체란 단순히 음식을 함께 먹는 공동체가 아니라 거의 가족과도 같은 친밀한 공동체를 뜻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것은 유다를 회개시키려는 마지막 노력입니다.

 

22절..<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정해진 대로 간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정하

    신 대로 간다.', 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간다.' 라는 말인데,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반자의 책임이 없어지거나 그

    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

    람!'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되는 일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배반

    하는 그 사람은 불행하게(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과 그

    의 멸망을 예고하시는 것은 배반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말씀을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3절..<그러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

    로 묻기 시작하였다.>--제자들은 아직 유다의 음모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였고,

    배반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마태오복음 26장 22절과 마르코 복음 14장 19절에서는 제자들이 걱정하는 말투로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묻습니다. 사도들 모두 자신들이 배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배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하

    느님의 계획이라고 해도 배반자가 될 것이냐, 순교자가 될 것이냐는 자신이 선택하는 일

    입니다. 인생은 매순간 순간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늘 자

    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24절-27절 :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명예나 특권에 대한 세속적 욕망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이 대목은 마르코복음 10장 35절-45절의 내용을 루카가 요약해서 기록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요한복음 13장 1절-17절의 내용과 비슷한 전승 자료를 기록한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21절-23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신 뒤에 바로

    제자들이 누가 더 높은 사람이냐고 다투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이 내용은 복음서에 기록된 순서와는 다르게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

    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24절..<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

    다.>--'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라는 말은, 사도들 중

    에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는 뜻도 들어 있지만,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누가

    제일 높은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이 다툼은 겉으로 드러

    나는 서열에 관한 다툼이었을 것입니다.

    (만찬의 자리 배치에 관한 말다툼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누가 더 윗자리에 앉을 것이

    냐, 누가 예수님의 옆자리에 앉을 것이냐? 로 다투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

    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과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라는 말은 로마 황제들을 가리킵니

    다. '백성 위에 군림하고' 라는 말은 독재자나 폭군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라는 말은 로마 황제들을 비롯해서 당시의 통치자들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하고, 은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싶어 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당시 황제들의 화폐나 비석에는 '구세주' 또는 '은인'이라는 칭호가 새겨졌습니다.

 

26절..<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

    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그러나 너희는 그렇

    게 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은, 제자들은 세속의 지배자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란 교회에서(또는 하느님 나라에서) 직책이 가장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가장 어린 사람'은 가장 낮은 직책을 맡은 사람, 가장 낮은 사람을 뜻

    합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은 교회에서(또는 하느님 나라

    에서) 지도자는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섬기려고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처럼'이

    라는 말이 사용되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겉으로만 그렇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섬기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봉사'와 '겸손'입니다. 다스리고 지도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

    의 기본자세는 봉사와 겸손이어야 합니다.

 

27절..<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

    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이 구절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라는 가르침입니다.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시중들면서 섬기는 사

    람보다 더 높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만찬 식탁의 주인으로서 제자들보다 더 높은 분이

    었지만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요한 13장). 그래서 '섬김'의 모범을 제자들

    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28절-30절 :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시다>

    앞의 27절에서는 겸손과 섬기는 자세가 식탁에서 시중드는 일로 표현되었는데, 이제 여기

    서는 제자들이 얻게 될 특권과 보상이 식탁에 앉아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

    니다. (이 세상에서 성실하고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자세로 일한 충실한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먹고 마시는 특권과 보상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8절..<"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들이다.>--여기

    서 '너희'는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입니다.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이라는 말은

    그동안의 예수님의 활동과 이제 곧 겪게 될 수난을 모두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들이다.' 라는 말은 사도들이 예수님 곁에 남아서 충실하게 예수님

    을 따랐다는 뜻입니다. 지금 유다는 만찬 장소를 떠나고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

    는 사람들은 그동안의 선교활동 때에 충실한 제자들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충실한 제자로

    남아 있게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29절..<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내 아버

    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의 왕권

    을 주신 것처럼, 이라는 뜻입니다.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라는 말은 제자들이 예

    수님의 왕권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그 나라

    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받게 될 상입니다.

 

30절..<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

    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라는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왕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함

    께 식탁에 앉아서 먹고 마신다는 말은 대등한 지위와 권한을 얻는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

    입니다. 여기서 '옥좌'는 왕의 권위와 권한을 뜻합니다. 옥좌에 앉는다는 말은 왕이 된다

    는 뜻이 아니라 왕의 권위와 권한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모든 시민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심판할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그 심판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판은 예수님만이 하시게 될 일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직접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

    니라 예수님의 심판 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31절-34절 :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

    앞의 28절-30절에서 제자들에게 보상과 특권을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기 전에

    먼저 제자들이 겪어야 할 시련이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특별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사도단 안에서 베드로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31절..<"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예수님께서

    '시몬아, 시몬아!' 라고 베드로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시는 것은 이제부터 하실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지어주신 베드로라는 이름이 아니라 원래 이름인

    시몬으로 부르신 것은 베드로도 다른 사도들처럼 나약하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

    됩니다. '보라' 라는 말은 지금 하시는 말씀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관용어입니다. (공동번

    역 성서는 '들어라.'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대로 하면 '보라' 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겪게 될 시련은 우선 먼저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

    다고 나섰다.' 라는 말은 사탄이 제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나섰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제

    자들 모두를 가리킵니다. 원래 밀을 체질하는 것은 쭉정이나 이물질을 걸러내고 알곡만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원래는 거짓 신자들을 버리고 참 신자들만을 남겨

    서 구원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탄이 제자들을 심하게 공격

    하고 유혹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에게서 오는 유혹과 시련이 결과적

    으로는 참된 제자와 거짓 제자를 분리시키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공격은 사실 예수님에 대한 공격의 일부이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방해하

    기 위한 공격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

    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예수님에게만 의지한다면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32절..<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

    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

    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라는 말은 사탄이 베드로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도록(믿음을 완

    전히 잃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이미 힘을 쓰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힘은 사탄

    의 거센 공격도 물리칠 수 있는 큰 힘입니다. 따라서 사탄은 예수님을 이길 수 없고 제자

    들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곧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겠지만 그

    것은 공포와 나약함 때문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 자체를 잃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믿음을 잃지 않게 된 것은 예수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 때문에

    제자들에 대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이라는 말은 공포와 나약함 때문에 일시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했

    던 베드로가 다시 충성스러운 제자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믿음

    을 잃고 떠났다가,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해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긴 했지만 믿음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라는 말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베드로가 해야 할 일

    은 형제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사도들과 신자들에

    게는 큰 의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확신과

    힘을 주실 것입니다.

 

33절..<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

    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베드로는 다혈질적인 성격이었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가거나 죽을 준비가(각오가) 되어 있다고 금방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거짓 장담은 아닙니다. 이 순간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

    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예수님의 수난 때에 자신의 장담을 지키려고 노력하긴 했습니다.

    칼을 빼서 휘두르기도 하고, 붙잡혀가는 예수님을 뒤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장담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 후에는 그 장담을 실제로 지키

    게 됩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위해서 감옥에 갇혔고(사도행전 12장), 순교했습니다.

 

34절..<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

    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예수님께서 여기서 '베드로야' 라고 부

    르시는데, 그가 '베드로' 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교회의 반석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깨닫게 하시려고 시몬이라는 이름 대신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

    님은 베드로의 믿음과 충성심을 알고 계셨고,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바로 눈앞의 일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

    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할 때의 관용어입니다.

    '오늘'은 유대인들의 날짜 계산 방식에 따른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날이 저물면서 하루

    가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요즘 방식으로는 다음날 새벽이 되지만 유대인들 방

    식으로는 '오늘'이 됩니다. '닭이 울기 전에'는 '밤이 새기 전에'입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예언은 글자

    그대로 실현됩니다. 이것은 31절에서 말한 대로 사탄이 제자들을 밀처럼 체질하듯이 공격

    한 일입니다.

    베드로는 예언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32절) 곧바로 돌

    아올 수 있었습니다.

 

<35절-38절 :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믿음만으로도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던 초기의 선교활동 시기와는 달리 이제 상황

    이 바뀌었고, 제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35절..<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신 내용은 9장 1절-6절의 '열두 제자의 파견'에도

    있고, 10장 1절-12절의 '일흔두 제자의 파견'에도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이 회상하시는

    내용은 10장의 일흔두 제자의 파견입니다.

    열두 제자가 일흔두 제자에 포함되었거나, 아니면 일흔두 제자의 파견 때 하신 명령도 원

    래는 열두 제자에게 하신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대

    답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제자들의 답변이 36절에 있습니다.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35절에 있어야 합니다.)

 

36절..<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나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

    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은 이제 상황이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평화로운 시기는 지나

    갔고 이제는 위기 상황입니다. 돈주머니와 여행 보따리는 원래는 여행을 할 때 챙겨야 할

    물건들이지만 여기서는 칼을 살 수 있는 여유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돈주머니와 여행 보

    따리가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칼을 사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 당시 겉옷은 밤에 덮고 자는 이불 역할도 했기 때문에 꼭 필

    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칼을 사기 위해서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시기

    가 닥쳐오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칼을 사라고 하신 것은 사도들에게 폭

    력을 쓰라고 하신 뜻은 아닙니다.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맞이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것

    이고,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칼을 준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신약성경해설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