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글방/ 하쿠나 마타타 (걱정거리가 없다) (로마4,1-8)

2021. 10. 15. 오전 5:10:42

글자

(공동번역성서2021. 10. 15.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도란도란글방

 

하쿠나 마타타 (걱정거리가 없다

 

(로마4,1-8)

우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 만도 합니다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3 성서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6 그래서 다윗도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7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8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예전에 아프리카 케냐 사람이 이런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케냐 사람은,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그 케냐 사람이한국 사람으로부터 제일 먼저 배운 말이, ‘빨리빨리였습니다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입에는, ‘빨리빨리란 말이 습관처럼 붙어 있더란 거죠음식을 씹으면서계산하러 나가는 사람은한국 사람밖에 없다 그래요.

그러나 아프리카 케냐 사람들의 입에서는, ‘빨리빨리가 아니라, 하쿠나 마타타가 습관처럼 튀어나온다고 그래요. ‘하쿠나 마타타는 스와힐리어 구문입니다말 그대로 옮기면, ‘걱정거리가 없다는 뜻이에요‘No Problem’. ‘어차피 되어질 일이면 되어질 것이다는 거죠.

재미있는 건, ‘하쿠나 마타타를 입에 달고 사는 민족이나 국가들이전부 가난한 아프리카나안와트 같은 남태평양에 사는 가난한 나라들이라는 거예요반면에문명(文明)이 발전하고문명의 혜택(惠澤)을 크게 입고 있는 나라들일수록빨리빨리’, ‘hurry를 입에 달고 산다는 거죠그래서 가난한 거지라고 속으로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영국의 신경제재단이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순위표를 보면, ‘하쿠나 마타타를 입에 달고 세월아네월아 하면서그렇게 사는 가난한 나라들이상위 순위에 올라 있고방글라데쉬가 1위입니다. ‘빨리빨리, hurry’를 외치면서분주하게 뭔가 성취하며 살고 있는 강대국들이하위권에 랭크(rank)가 되어 있어요참고로 세계 178개국 중에미국 국민의 행복지수(幸福指數), 150위입니다그리고 러시아가 170위예요한 때 세계를 양분하여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닌 두 나라가최고 꼴찌라니까요한국이 102!

저는 아프리카 케냐에도 가 봤고안 와트에도 가봤어요비위가 약한 저는요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었어요다 재래식 화장실이니까그리고 잠자리도 너무 불결하고 불편해서꼬박 며칠을 뜬 눈으로 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저도 이미 문명의 이기(利器)에 중독이 되었다는 증거겠죠.

당시 저에게는그러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세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참 의문이었어요도대체 행복이 뭐 길래그 사람들은 그 상황 속에서 행복하다고 그러는 걸까?

그렇게 그 나라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것이 알려지자전 세계에서 이민자(移民者)들과 투자자(投資者)들이몰려들었습니다아무 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그 가난하고 평화로운 나라에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고돈이 물밀 듯밀고 들어왔어요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고선풍기에어콘핸드폰, TV가 들어왔습니다그러한 문명을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해 교육열이 높아졌고요사람의 구도가 하쿠나 마타타에서경쟁구도로 바뀌어 갔습니다.

수많은 신종 직업이 창출(創出)이 되고소득(所得)이 높아졌어요국민소득이교육을 받은 원주민들이더욱 더 예의 있는 쿨(cool)한 사람으로 변했고공중도덕(公衆道德)이라는 게심지어 법에 의해 규정되기까지 했습니다싱가포르처럼어떻게 됐겠어요?

그 나라의 행복지수가급속히 추락을 해버렸어요환경이 나아졌고원주민들이 그나마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發揮)하기 시작했는데정작 행복이 날아가더라는 것입니다진짜 행복했던 사람들이이 인류의 역사가 생산해 낸그런 문명의 이기와본인들의 열심과 노력을 버무려서먼진 인간적 성숙과환경의 진보(進步)를 이루어냈더니불행(不幸)이 찾아오더라는 겁니다.

하쿠나 마타타!’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더 나은 삶과 미래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 때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석회가 가득한 물지저분한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어요그런데 보다 나은 ’, ‘지금보다 나은 미래라는 목표(目標)가 생기자희망이 생기자현재의 굉장히 불편하고창피하고심지어 불쾌해지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희망(希望)이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희망이라는 게 생기자인간들이 그 때부터, ‘빨리빨리가 어디로 분주(奔走)하게 달리기 시작하더라는 거요그리고 그렇게 달리는 만큼행복이 떨어져 나가요원래 희망(希望)이라는 단어의 자는바랄 ()’자죠그러나 옛날에는 이 바랄 자와 드물 ()’자를 혼용해서 썼어요.

드물 자는 바로 옆에 벼화가 붙으면드물 자거든요그래서 희망이라는 건 성취하는 이가 드문 거예요희망은요그저 희망이에요바라는 거죠그럼에도 인간이 보다 나은 ’, 보다 나은 미래라는 희망을 향해죽어라고 달리고 있는 거요로또 한 번 맞아보겠다는 그런 마음으로그러면서 행복을 잃어가는 거죠.

그렇게 아담 안의 모든 인간은지금보다 나은, ‘하느님처럼의 삶을 향해 달려요발전 없는 인생은게으른 인생이 되고심지어악한 인생으로 평가받아요오죽하면 유치원 애들도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그 캐릭터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表出)하더랍니다어린 왕자가 자라지도 않고성숙해지지도 않고힘도 세지지도 않고그 상태로 죽는 게 못 마땅한 거예요애들이요이런 시대가 된 거죠.

인간은 발전(發展)해야 하고성숙(成熟)해야 하며그러한 발전과 성숙을 에너지로 삼아서역사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아담적 사고가아이들에게서까지 보이더라는 거요그게 바로 인간의 자존심(自尊心)을 세우는 길이고그러한 인간의 주체성(主體性)존재성(存在性챙기기에서인간의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착각(錯覺)을 하는 거요아이들뿐만 아니라우리도 지금 그렇잖아요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면굉장히 행복해질 것 같죠?

그런데 하느님은선악과 따먹은 아담들이자신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건설하고 있는이 역사와 인생의 결국이파멸(破滅)! 파괴(破壞)불살라짐이라고 말씀하세요그 말은인간들이 역사를 통해서 건설(建設)해 놓은보다 성숙한 인간상과보다 발전된 세상이결국 하느님의 빛아래에서 불살라지도록계획이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말라기 3:19-21) 19 보아라이제 풀무불처럼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날이 다가왔다그 날이 오면멋대로 살던 사람들은 모두 검불처럼 타 버려 뿌리도 가지도 남지 않으리라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20 그러나 너희는 내 이름 두려운 줄 알고 살았으니너희에게는 승리의 태양이 비쳐와 너희의 병을 고쳐 주리라외양간에 매여 있던 소가 풀려 뛰어 나오듯너희는 밖으로 나와 21 나쁜 자들을 짓밟으리라내가 나서는 그 날이 오면나쁜 자들은 너희 발바닥에 재처럼 짓밟히리라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마지막 때가 되면이 세상 모든 것들이, ‘풀무불(검불)’같이 된다는데이 풀무불이라는 단어코쉬라는 단어가 말라비틀어진 짚이에요역사가 역사 내내 건설한 이 집이그 나라가말라비틀어진 코휘이라는 건데고거 다 태워버리겠다는 거예요그런데 똑같은 불이 성도에게도 떨어지는데그 불은 치료(治療)하는 광선(光線)이 되더라는 거죠성도(聖徒)는요,

그 마지막에 떨어지는 불을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받게 돼요이게 불같은 시련(試鍊)이에요베드로가 이야기한 불같은 시련!’ 그래서 그들이 세우고 있는육의 집역사라는 집을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계속 불사름을 당해요이걸 고난(苦難)’이라 그래요.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역사(歷史)라는 집과자아(自我)라는 집이그의 인생 속에서 불태워진 자들에게는이걸 자기부인(自己否認)이라고 해요. 인생 속에서 불태워진 자들에게는마지막에 내려오는 성령(聖靈)의 불이치료하는 광선즉 그들을 성도로 완성하는 광선이 될 것이지만왜냐하면그게 다 타요.

고린도서에 나오는 불 가운데서 얻는 구원이 그거란 말이에요공력을 다 태워 버리고예수라는 기초와 예수라는 집만 남긴다는 게바로 그 이야기잖아요그래서 그 불이 내려와서 완성시키는 거예요완성!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면서전혀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자신의 나라육의 나라세상 나라를 열심히 건설한 건축자(建築者)들은그 나라와 함께영원히 불타게 된다는 말이에요.

 

(베드로후서 3:7) 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심판(審判)과 멸망(滅亡)의 날까지 이 세상이 보존(保存)되어 있어요말씀에 의해서그런데 그 심판과 멸망의 날에뭐 하기 위해서간수(看守)해 두신데요불사르기 위해서그러면 첫 창조(創造)라는 건불사름을 목적으로 창조가 된 거죠하느님이 바보예요불태울 걸 왜 만드시냐 말이에요거기에서 성도에게뭔가 가르치실 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옛 하늘과 옛 땅은그것을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被造物)의 역사를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태초에이 천지는 불사르기 위해 창조가 된 거예요이 역사는불살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지금 그렇다면 왜 불살라버릴 걸 창조하셔서왜 당신의 백성들을 넣으시는가?

 

(시편 28:4-5) 4 그들의 행실 따라그들이 저지른 죄악 따라그들의 소행 따라 마땅히 갚으소서. 5 야훼께서 하신 일손수하신 일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짓부수어 주소서!

 

요걸 알게 하기 위해불태워버릴 첫 창조를 창조해 놓고결국 마지막까지 열심히뭘 하게 만들어요그 다음에 하느님나라를 옆에다가 딱 세워버리는 거죠그러면 아방궁(阿房宮옆에 개미집 같은 것이 생기는 거예요인간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것이이걸 불사른다 하는 거예요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무슨 영화처럼 불타는 게 아니라이게 불사른다는 이야기예요빛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역사는하느님을 떠난 인간들이 열심히 자가발전을 해서자체 발광(發光)을 하도록 놔두시는 하느님의 시험장인 거예요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건설하라는 거예요그리고는마지막에빛이신 주()님이그들을 빛을 확 비추어 버리심으로 말미암아태양 앞에서의 그 화려한 네온사인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거예요.

라스베가스 가 보셨죠휘황찬란한 그 멋진 네온사인이해가 살짝 뜨기 시작하면쓰레기처럼 더러운 것으로 드러나 버리잖아요그런 거예요그건 이 밤에는 멋있어요밤 같은 세상에서는 멋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태양을빛을 요만큼 경험(經驗)한 사람들에게는쓰레기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하느님은 이 역사 내내인간들의 자가발전을 허락하세요어디까지 쌓아 올리나 보시겠다는 거죠하는데 까지 해 보라는 거예요그리고는 당신의 건축물하느님의 성전(聖殿)이에요그것이인간들은 자기들이 왕이 되어자기들이 있을 자기들의 성전을 건축하는데하느님이 하느님의 성전을 건축해서그 옆에다 꽝하고 세워버리는 거예요어떤 게 천국인가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이 역사는인간들의 나라는하느님나라 앞에서 민망(憫惘)하고 무색(無色)해지게 되는 거예요거기에서 진정한행복이 나오는 거고진정한 순종(順從)과 연합(聯合)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죽어라고 열심히 했는데역사 내내 열심히 했는데, ‘아니네!’를 보게 되는 거죠그래서 역사가 존재하는 거요불살라지기 위해서.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같은 로마서에서하느님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열심을, ‘자기 의()’라고못을 박는 거예요.

 

(로마서 10:2-3) 2 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자기 의()’가 바로 죄의 본질(本質)이에요열심히 뭔가를 하는데인간들이 인간들을 위해서인간들의 가능성(可能性)과 능력(能力)을 드러내기 위하는 열심이게 자기 의()’거든요그게 죄()예요.

라는 건원래 없음이었던 자들이하느님이라는 존재 이외에는 존재가 없었으니까여러분들은 진화론자가 아니죠그러니까 하느님이 창조하시기 전에는, ‘없음이란 말이에요다 하느님 밖예수 밖모든 게 없음인데이 없음이었던 자들이 있음의 흉내를 내면서자신을 있게 하신 이의 은혜(恩惠)와 공로를찬송(讚頌)하지 않고자랑하지 않는 모든 게()예요단순히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 사회법으로 금한 어떤 걸 하는 게 죄가 아니라제발 좀 알아먹으시란 말이에요죄는, ‘없음이란 자들이, ‘있음의 흉내를 내는 고게죄란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자신을 있게 하신 하느님 앞에서, ‘저는 원래 티끌이었습니다.’ ‘아다마이란 말이에요. ‘인간은 원래 없는 존재다라는 걸히브리 사람들이 알아먹는 개념, ‘티끌이라는 걸, ‘이라는 걸 동원해서 설명하는 거예요사람이 진짜 흙을 막 이렇게 주물러서어떤 교사 말대로 젓가락으로 푹 찔러봤다이게 아니라없었던 거라는 걸어떤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하는 거예요그래서 티끌’ ‘이란 말예요.

 

저는 원래 티끌, ’없음이었습니다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원래 티끌’, 즉 없음일 수밖에 없는 제가이렇게 하느님의 은혜로 있음이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지 않고자신의 존재됨에자신의 가능성이 일조를 했다고 믿는 모든 존재의 자기자리 이탈요걸 설명하기 위해마귀가 동원되는 거고요.

그 마귀는 자기 자리를 처음으로 이탈한 천사라고 하잖아요요걸 설명하기 위해그 마귀이러한 죄악 된 세력의 총화인그 마귀라는 실체가동원이 되는 거란 말예요마귀는 실재하는 존재지만그걸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이란 말이죠그 자기 자리 이탈과그 자기 자리 오해가다 죄란 말이에요그게 죄란 말이에요.

하마르티아’, ‘과녁을 벗어나다’, ‘휘브리스’ 이건 교만(驕慢)이죠이것도 자기 자리를 벗어나다예요교만하마르티아히브리스이게 다 제 자리를 벗어나는 거란 말이에요이게!

원래의 자기 처음 자리를 잊고아니 생각하지도 않고원래 자기는 있음이라고 우기는 것요게 마귀란 말예요그건 바로 란 말입니다그러한 오해(誤解)에서는반드시 자기 주체성 확립(確立)이라는 시도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그리고 그러한 자기 주체성 확립의 과정에서,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야라고자존심을 챙겨 가면서고게 행복이라며 착각하고 사는 게역사예요. 우리는 그렇게 살았잖아요나를 증명(證明)하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죽어라고 돈 버는 거죠그걸 벌어서 하루 네 끼 먹는 사람 있어요다섯 끼 먹는 사람?

난 재벌 회장들의 일과를 보면서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있나하루 세 끼 중에두 끼를 차 안에서 먹더라고요그렇게 하려면 뭐 하러 그 것 해요? ‘’ 자랑하고 싶어서다른 사람들이 어디 가면 굉장히 부러워 해 준다고착각(錯覺)하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아담무리)들은, ‘빨리빨리를 삶의 모토(motto)로 해서역사 속 바벨탑을 쌓으며스스로의 복을 찾아가고 있는데하느님나라의 백성들은, ‘하쿠나 마타타하면서하느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요그분이 끌고 가시는 곳으로 나는 반드시 갈 거니까! ‘하쿠나 마타타’, ‘될대로 되라’, ‘케세라 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게 하느님이 끌고 가시는 데에내 몸을 맡긴다는 뜻이에요하느님이 끌고 가시는그 이끌리는 삶에나를 맡긴다는 뜻이에요그게 하쿠나 마타타’ ‘No Problem.’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 가치를 챙기려고 하지 않아도하느님이 이미 묵시(黙示속에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No Problem.’ 내가 조금 실수하고실패(失敗)해도 괜찮다는 거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옆에 달린 강도에게 그랬잖아요? ‘주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 좀 기억해 주세요!’ 그랬을 때강도가 얼마나 면목 없겠어요죽을 때까지 강도짓만 했는데그 때하느님이 말씀하셨다니까요. ‘No Problem,’ ‘하쿠나 마타타.’ 그랬단 말입니다.

오늘 본문 6절 이하를 보면바울로가사람의 참된 행복을 이렇게 정의를 해요.

 

(로마서 4: 6-8) 6 그래서 다윗도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7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8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복은, ‘빨리빨리, hurry up’ 하면서자아 성취(成就)와 자아 주체성 확립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하쿠나 마타타’ 하면서, ‘하느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서일한 것이 없이하느님께()로 여기심을 받는 게 행복이다.’ 그래요세상 나라그 자아라는 나라의 건축을 멈추고하느님께서 주시는하느님나라를 덧입는 게행복이라 그래요.

건축자(建築者)들은 항상 예수라는 모퉁이 돌을 울타리 밖으로 집어 던지죠그거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인간들행복의 정의(定義)완전히 잘못 내리고 있는 거예요행복은인간이 노력하고 발전시키고성취하여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하느님 앞에서완전히 빈 그릇이 되어서하느님이 주시는 은혜를감사함으로넙죽 받아 챙기는 거이걸 행복이라 그래요.

이 구절은다윗의 시()시편 32편을 인용한 구절인데요다윗은 충신(忠臣우리야의 아내를 겁탈(劫奪)해서 임신을 시켜놓고그 사실이 탄로가 날까봐사람을 시켜서우리야를 교살(絞殺)했습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나단을 시켜서그 실체를 보게 만들었죠다윗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의 다윗의 자의식(自意識)원수를 두 번이나 살려준 사람아무도 대항하지 못한 골리앗을 물맷돌 5개로 물리친 용감한 사람이게 다윗의 자의식이었습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그의 실체를 그냥 폭로시켜버리는 거예요그렇게 해서 껍데기를 확 벗겨 봤더니자신은 말할 수 없이 추악(醜惡)한 죄인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시편 51편에서나는모태 중에서도 죄인이었습니다지금은 어떻겠습니까죄인 맞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그러한 자신의 구원(救援)을 위해서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돌이킬 수가 없어요부정해진 밧세바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능력도 없고이미 저질러졌어요.

죽은 우리야를 살려낼 방법도 없어요어떻게 해야 돼요그러면큰일 났네일은 벌어졌네그 때 유일한 방법이하느님이 덮어주는 거예요가려 주는 거예요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시편 32편은나단이 와서다윗의 죄를 확 폭로(暴露)한 다음에, ‘그런데하느님이 용서해 주신답니다.’까지 이야기했어요. ‘이게 뭔 일이냐!’ 그걸 듣고 쓴 시가 32편입니다.

 

본문7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그러죠거기에서 덮어주시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에피칼립토예요그 단어는덮다숨기다라는 뜻이죠바울로는 의도적으로그 아피칼립토란 단어와바로 그 앞에, ‘용서해주다’, ‘아피헤미를 동의어로 채택하여 쓰고 있어요. 7절을 잘 보면!

그러니까 죄를 용서받는다는 건그가 지은 죄가 다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물론 그거는 묵시 속에서 완료될 성도의 현실이에요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는죄를 용서 받는다는 게여전히 죄만 생산해내는 나를하느님께서 가리고 덮는다가용서받은 죄인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이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데성경은여러분을 의인이라 그러죠그런데 여러분이 의인이 된 게 아니라다윗은이 이후에도 여전히 죄를 지었어요마지막에는 더러운 배설물처럼 살다 갔어요그런데 다윗이 안 거예요. ‘ 느님이 덮으시면 된다.’ 안거예요.

그래서 바로 밑에 있는 본문 8절로 가면,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라고 하는 거요거기서 인정(認定)하다라고 번역이 된헬라어 로기조마이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기록할 때 사용되는 단어예요가계부 쓰는 사람들 계시죠여기그 가계부 쓰는 사람을 너무 너무 존경해요보질 못했기 때문에! (하하하하가계부 쓰면차변과 대변을 기록하는데차변에는수입을 기록하고대변에는지출을 기록해요.

하느님의 장부 차변에는우리의 선과 의가 기록이 되고대변에는 우리의 죄가 기록이 된다고 가정(假定)해 보자고요성경이 의인은 하나도 없다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했으니까당연히 차변에는 기록될 게 없어요하나도 없어요대차대조표의 대변에는칸이 모자라죠?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그 전체 내용이 다 들어가야 돼요그거 우리 거거든요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대차대조표의 대변 항목을하나도 기입하시지 않는다.’ 이게 로기조마이예요죄가 없어서가 아녜요수많은 항목이 있어요여러분은 앞으로도 거기에대변에 적힐 수많은 일들을 할 거란 말입니다그런데 하느님이 안 적으신다이게 메 로기세타예요. ‘죄를 인정치 아니하신다죄를 대변 항목에 안 적으신다.’라는 뜻이에요없는 게 아니란 말예요안 적으시는 거예요이게 덮으심이에요그래서 복음이라는 거예요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버린 거예요그것을 경험하고 실감하는 게역사이며인생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쏟아내고자신의 영광과 가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데하느님께서, ‘끝까지의 사랑!’ 그 끝까지의 사랑으로계속 우리의 발을 씻기고 계시는 거예요매 순간 당신의 피로 우리를 덮어버리시는 거요아침에 일어나면예수의 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하는 거예요. ‘피 한 잔 마실래요?’ 이렇게!

사망 직전의 죄인들에게계속해서 예수의 피를 부어 먹이시는 거예요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예수의 피와 ,십자가의 필연성(必然性)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과 8절에도똑같은 로기조마이,’ ‘여기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거예요다시 6절로 가보세요오늘은 제가밑에서부터 올라가며 설명해 드리고 있어요.

 

(로마4,6) 6 그래서 다윗도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느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이란 어구에서, ‘여기심을 받다라는 단어가똑같은 로기조마이예요하느님께서 하늘의 대차대조표의 차변 항목에전혀 기록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의인은 하나도 없고선한 일을 행하는 자도 없고생각하는 자도 없다.’ 그랬으니까차변 항목에 전혀 들어갈 게 없는데당신이 준비하신 ()’차변 항목에 로기조마이,’ ‘임퓨트(impute)’하신다는 거예요그걸 바울로가 행복이라고 표현하는 거고그러한 복된 소식을우리는 복음(福音)’이라 하는 거예요. 그게 안 좋으면 할 수 없는 거고.

 

 로기조마이’, ‘여기다라는 단어가로마서 이해(理解)에 아주 중요한 (key)’예요수없이 나와요로마서에이 로기조마이라는 단어는어떤 팩트(fact)를 근거로 해서 판정(判定)을 내리고 기록을 하는 게 아니라판정권자의 권한으로그냥 그렇다고 인정해 주는 거예요이게 로기조마이예요그래서 복음이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팩트(fact)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말이에요그걸 임퓨테이션(imputation), 전가(轉嫁)’라고 하잖아요하느님이 팩트(fact)가 없는데그냥 자기가 만들어서우리 걸로 여겨 주는 거예요이게 전가(轉嫁)’란 말입니다그걸 이해하기 위해선반드시 자신의 실체 파악(把握)이 먼저 되어야 되는 거예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이 실체 파악자아 인식그런데 인간들이 그걸 안 하는 거예요심지어 교회라는 사람들도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실체를애써 외면(外面)하려고 하지, ‘제가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라는 고백(告白)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도저 사람보다는 조금 낫죠?’라고 우기고 싶어 한다 말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전가가 실제로 효력(效力)을 발휘한다는 걸 인정하고 수긍(首肯)하는 걸, ‘믿음이라 그래요물론 그 믿음은하느님의 믿음에서 격발(激發)되는 우리의 주관적 믿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래서 일한 것이 없이예요. 일한 것이 없이본문 4절과 5절을 보세요.

 

(로마서4: 4-5) 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구절을조금 더 원어에 맞게 제가 풀어서 번역(飜譯)해 볼게요일을 하는 사람은그가 받는 품삯을 은혜로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당연한 보수(報酬)로 생각합니다그러니까 나중에 심판대 앞에서염소들이 그러죠내가 언제 안 했습니까일 했으니까 달라는 거예요내가 언제 안 했습니까?

 

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요게 이거예요. ‘나는 흙이었어요그냥 흙이었는데먼지였는데하느님이, ‘너 의롭다존재 되라!’ 창조의 말씀이 떨어져서창조물이 되었을 때이걸 맞아요그렇게 된 거죠!’ 인정하는 것요게 일한 것이 없이예요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제발 그렇게그냥 유아적으로 생각 좀 하지 마시란 말이에요.

그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 여겨주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그 믿음이 의로움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셨고하느님이 다 하셨습니다.’를 인정하는 그 것이게 역사의 목적이란 말이에요그래서 이 역사가 그 목적을 다 수행(遂行)하면불살라 없어지는 거예요.

보시다시피 사도 바울로는보편적(普遍的아담 무리들의 을 아주 경계(警戒)하고 있어요여기에서 공로로 번역이 된 단어는엘가조마이인데이건 노력(努力)하다예요노력하다그렇다면 사도 바울로는인간들의 자기 자존심 챙기기자기 존재성 챙기기자기 주체성 챙기기에모든 노력을폭격(爆擊)하고 있는 거예요. 노력을! ‘빨리빨리’ 이걸 폭격하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혜가 배제(排除)된 상태에서인간들의 그러한 노력은혹 그러한 일은 없겠지만그가 은혜를 입는다고 해도그걸 자기가 일한 대가(代價)로 여기지은혜의 선물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이게 4, 5절이에요.

 

인간들은 절대로자기가 한 일을 들고,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을 못하는 족속들이라는 거예요그런데 자기가 한 일이라고는죄지은 거 밖에 없다는 걸 아는데하느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하늘 소망(所望)을 품게 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자들은하느님의 주()되심과하느님의 은혜와자비만을 찬송하게 되기 때문에그들을 가리켜, ‘의롭다’ 한다 말이에요. ‘()’가 뭐라고 했어요? ‘디카이오수네!’ ‘짜다크!’ 라 그랬죠.

히브리 사람들의 원래 ()’의 개념은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의 개념과 달라요성경이 기록될 때아리스토텔레스나소크라테스나플라톤이나이런 헬라의 철학자들이, ‘()’의 개념을 버츄(virtue), 미덕(美德)’이란 걸로 번역했는데이 영향을 받아서, ‘()’가 지금까지도 그렇게 전해져서, ‘의롭다하면대단한 의인!’ ‘착하게 잘 산 사람!’ ‘정의로운 일을 한 사람!’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아니란 말입니다.

원래 히브리 사람들의 의 개념(槪念), ‘관계의 개념이란 말이에요하느님과 인간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런 관계(關係)를 맺고 있는 두 존재가그 관계가 요구하는 의무(義務)와 책임(責任)을 성실하게 수행해내는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그걸 성실하게 수행해내는 상태를, ‘디카이오수네,’ ‘짜다크라고 이야기한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과 우리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그 는 뭐겠어요하느님은 창조주로서의 역할(役割)을 계속하는 거예요계속 붓는 거예요생명력을요그리고 인간은피조물은그 생명력을 받아 존재하는 거예요이게 의존성(依存性)’이라 하는 거예요.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그런데 얘가 고만고만나도 내가 힘이 있는데왜 자꾸 먹여주려고 해엄마고만 좀 먹여줘내가 알아서 먹을게.’ 이런 어린아이처럼, ‘그만나도 할 수 있다니까요.’ 요게 선악과 사건이었잖아요그게 불의(不義)’란 말입니다그리고 그걸 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공로도 없고일한 것도 없습니다내가 죄인 중에 죄인 맞습니다더스트(dust) 맞습니다먼지가 맞습니다먼지가 무슨 선한 일을 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하느님의 그 만을 꼭 붙드는 자믿는 자그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이것이 4, 5절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구약 때나신약 때나율법(律法)이 있기 전이나율법이 주어진 이후나모든 하느님의 백성이다 은혜로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게로마서 전체의 진술(陳述)이에요. 잘 보면로마서 1장 17이게 코어 키(core key)’예요로마서 전체의 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이게 로마서 전체의 핵심 열쇠(core key)이고그걸 중심으로그 이야기를 죽 설명해내는 게 로마서예요.

유대인이건이방인이건율법 있는 자건율법 없는 자건전부 다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그래서 하박꾹의 그 말씀을 들어서바울로가 계속 반복하여 설명(說明)하는 거예요너희들이 뭐가 잘 나서가 아니라율법이 있어서가 아니라제사를 지내서가 아니라착하게 살아서가 아니라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율법 이전의 사람인 아브라함과율법 이후의 사람인 다윗이 등장(登場)하는 거죠율법 이전의 사람의 대표아브라함믿음의 조상율법 이후의 우리의 대표다윗이 두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그러면 뭐예요율법 전이나 후나구약이나 신약이나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로마서3,25)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 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여기서 과거에 지은 죄십자가(十字架이전의 구약 세대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어떤 개인의 예전에 지은 죄가 아니라원어로 보면이게 십자가 서기 이전의 그 모든 죄()! 그리고 그 이후의26절에 지금 이시대에는’, ’오늘날에 와서는라고 나오죠그때에도이때에도 십자가예수 그리스도라는 화목제물(和睦祭物)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다를 설명한다 말이에요.

거기에 대한 확실한 예가 율법 이전시대 사람인 아브라함이죠또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거예요또 아브라함지겨워요이제 아주!

 

(로마서4,1-3) 1 우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 만도 합니다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3 성서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는 로마서 3장 21절부터 31절까지에서하느님의 백성이 의롭게 되는 길은하느님이 준비하신 또 다른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웅변(雄辯)하죠그리고는 그런즉하고 4장 1절을 시작하는 거요. ‘그런즉!’ 거기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예()로 등장하고 있다 말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이야기는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느님의 ()’의 이야기여야 되는 거예요그래서 첫 구절부터 원색적(原色的)이며 강력해요유대인의 조상인데아브라함이 그의 육신으로 얻어낸 게 뭐가 있냐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祖上)이 되고, ‘()’의 조상이 된 것에아브라함이 그의 육신으로 보탠 게 뭐냐이런 뜻이에요.

육신으로서의 아브라함은, ‘쓰레기다라고 선언(宣言)해 버리는 거예요아브라함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거예요아브라함은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게 아니라하느님이 선물(膳物)해 주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거예요여기에도 인정해 주셨다,’ ‘로기조마이가 나와요.

아브라함이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계속해서 마누라 팔아먹고애굽으로 도망가고그러는데하느님이 로 로기조마이’ 여겨주시는 거죠차변 항목에아브라함의 인생의 차변 항목에하느님이 를 죽 기입(記入)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그 믿음의 선진(先進)들의 면모(面貌)를 보면다 자기 인생이 아니죠아브라함사라 마찬가지예요그런데 아브라함이 무슨 갈대아 우르를 떠났어요사라하느님이 이사악 주신다 했을 때 비웃었잖아요그런데 그걸 믿었대요모세사람 죽이고 도망간 거지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라 여겨줌이 별로 달갑지 않아서간 게 아니잖아요우리가 알잖아요?

 

그런데 그러한 대변 항목을하느님이 싹 지우개로 지우더니차변 항목에다가그는 파라오 공주의 아들이라 여김을 거절하고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陵辱)을 받는 걸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낫게 여기고언제 그랬냐고요그런데 하느님이 차변 항목에자기가 기록해 주시는 거예요이게 여겨주신다예요. 로기조마이이걸 구원이라 한다 말이에요이게 덮으심이라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처럼각기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창세기 26장으로 가 보세요거기엔 또 다른 말이 나와요지금 바울로는 분명히 아브라함이 한 게 뭐가 있느냐? ‘아브라함은 쓰레기다!’ 그러는데하느님은 다른 말을 하세요.

 

(창세기 26:4-5) 4 그리고 네 자손을 하늘에 있는 별만큼 불어나게 하여 그들에게 이 모든 지방을 주리라땅 위의 모든 민족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따라 내가 지키라고 일러 준 나의 계명과 규정과 훈계를 성심껏 지킨 덕이다.

 

바울로는분명히아브라함이 뭐 한 게 있느냐 하는데하느님은 계명과 규정과 훈계를 지켰다 그래요누구 말이 맞아요여기에 계명과 규정과 훈계라고 번역이 된히브리어 토라후카미스바는 다 율법(律法)을 가리키는 단어예요아브라함 때 율법이 주어졌어요헷갈리죠아브라함모세다윗 어떤 시대 사람인지이거 다 율법이란 뜻인데아브라함 때 율법이 주어졌어요아브라함은 BC 2000년 사람이에요.

율법은 시나이 산, BC 1500년 무렵에모세에게 주어진 거란 말이에요그럼 이때는 율법도 없었는데하느님이 내 아들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 그래요아브라함에게만 몰래 살짝 율법을 줬는데아브라함이 그거 다 지킨 거예요여러분 율법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시야에 관한 하느님의 창세전 약속이에요. ‘그래서 너희에게 메시야가 필요하단다!’ 이게 율법이 가리키는 거예요아브라함이 그걸 믿었다는 거예요이게 율법을 지켰다.’예요.

 

율법이 의미하고 상징(象徵)하는 게 따로 있었는데그 진의를 알아들은 걸율법을 지켰다라고 하지그런 어떤 구체적 세목 몇 개를 지키고안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하여왜 예수 그리스도가 너를 살려야 되는지를 알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이사악에게 찾아가서 똑같은 일을 행하시는 거예요그리고는 또 야곱에게 찾아가서 똑같은 일을 행하시고그리고는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셔서또 똑같은 일을 행하시는 거예요왜 예수가 와서 너를 구원해 줘야 되는 줄 알아?, 이렇게! ‘왜 죽어야 되는지 아니?’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느님과의 동행(同行)을 통해서 하느님의 언약(言約)하느님 홀로 이루시는 것이며 그 언약 성취의 방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의 십자가가 사용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그건 마치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여인의 후손(後孫)에 의해서아담과 하와가 살게 될 거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구원을 얻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같은 거예요여인의 후손에 의해서 사는 거구나!’ 이거아브라함은 그걸 알았다는 거예요.

 

담과 하와는 죄가 없었는데에덴동산에서선악과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천국은 죄가 없어서 가는 게 아니라, ‘가 덧입혀져야 가는 곳이란 말이에요그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지, 뭐 아담과 하와가 왜 지옥가요천국 갔어요알아들었다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산 자의 어미라고 이름을 지은 거 아녜요? ‘산다우리는.’ 그래서 신약에서도계명을 지킨다율법을 지킨다말씀을 지킨다요런 개념과예수를 믿는다는 개념을 같은 걸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요한일서 3장 22절로 가보세요.

 

(1요한 3:22-24) 22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다 받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3 우리가 명령받은 대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24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게 예수를 믿는 거라 그러잖아요예수를 믿는 게계명을 지키는 거예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그 이름 앞에서 자신들의 처음 자리를 확인(確認)하여다른 이들을 외모(外貌)로 판단(判斷)하지 않는다른 말로사랑하는다른 이를 외모로 판단하는 거이게 미워하는 거예요.

그런데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당신이나 저나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 아니면다 그냥 쓰레기이며죽은 흙에 불과합니다이걸 인정하면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걸, ‘사랑이라 그래요그게 바로 계명을 지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지킨다말씀대로 산다는 말의 의미는성경(聖經)에 나오는 하라하지마라의 명령(命令)을 잘 분별하여 지켜내고수행한다는 말이 아니라성경에 나오는 하라하지마라의 명령은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똑같이 나오고불경(佛經)에도 똑같이 나와요.

그러면 그 사람들도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말씀대로 사는 게 뭔지잘 생각해 보세요그게 아니라말씀이신 예수를 아는 거예요말씀이신 예수가 창조해 나가는새 창조의 과정(過程)에 들어가 있는 그게말씀대로 사는 거예요말씀에 의해 끌려가는 거새 창조의 자리로,‘

 

주여 왜 당신의 때가 아닌데 벌써 와서 우리를 괴롭히나이까?’ 누가 한 말이에요귀신이 한 말이에요. ‘이 돌들로 빵을 만들어라’ 누가 한 말이에요마귀가 한 말이에요. ‘나에게 경배하면이 세상 모든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리라!’ 이거 누가 한 말이에요마귀가 한 말이에요이거 말씀이에요마귀가 한 말인데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말씀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지킨다는 게 뭔지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보란 말이에요마귀가 한 말도 지켜야 되는 거예요말씀대로 산다는 건이 말씀 자체가 예수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그걸 계시역사라 해요예수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그 예수가 나의 구원자(救援者)이며 주()라는 걸아는 자리로 내가 말씀에 의해 끌려가는 그 걸말씀대로 산다그러는 거예요말씀대로 끌려가며 산다고 하는 거예요.

 

말씀을 지킨다는 건그 말씀을 내가 장악(掌握)하여사유(私有)한다는 뜻이잖아요그래야 지키죠그런데 하느님이신 말씀이어떻게 우리 같은 인간에게 장악이 됩니까포착(捕捉)이 돼요? 말씀이 우리를 포착하고 장악하여당신이 이끄는 곳으로 끌고 가죠이걸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서 어줍지 않은 도덕윤리의 수준을 갖고 끌고 들어와서교회에서, ‘왜 말씀대로 안 사느냐고?’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당신들 말씀이 뭔지는 아느냐고말씀에 대한 정의죄에 대한 정의구원에 대한 정의죄인에 대한 정의이런 것도 하나도 세워지지 않은 인간들이어줍지 않게 훈계(訓戒)하고 돌아다녀요.

하느님의 말씀은하느님을 그려내는 하느님이에요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그 분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배우고예수를 의지하고예수를 의존(依存)하면 되는 거예요그리고 거기서하느님을 보면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을 하나하나 지켜내는그 세목을 지켜내는 게우리의 본무(本務)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율법과 계명을 지켜서의롭다 하심을 얻고 복을 받았다는 창세기의 말은그의 처음 자리를 자각(自覺)하고,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 이렇게처음 자리를 자각하고하느님이 선물해 주신 믿음에 의해서자신을 완전히 부인당하고오직 어린 양 예수만 믿는 자가 되어의롭게 되었다는 그런 말인 거예요.

이제 왜 로마서에서는믿음으로 구원 받은 대표적(代表的인물(人物)이 아브라함으로 등장하는데야고보서에서는 행함으로 구원 받은 이의 대표로아브라함이 동일하게 등장(登場)하는지 아시겠죠?

루터가 잘못 본 거예요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 아닙니다로마서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 하는 행함은믿음이 격발해내는자기부인인 것이지, ‘우린 아니구나!’라는 이런 자기 부인인 것이지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도 열심을 부려서 행할 수 있는 도덕적윤리적 착한 행위 정도가 아니란 말이에요.

성도에게 요구되는 행함은다른 종교인들이나무신론자들이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행함(行爲)이어야 돼요그래야 믿음으로 하는 행함일 거 아녜요?

야고보서에서 이야기하는믿음과 행함은 뗄래야 뗄 수 없다면서요야고보가 이야기했잖아요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행함만성경이 요구하는 행함이잖아요그런데 믿음이 없이도 할 수 있는 그 행함은성경이 요구하는 행함이 아니란 말이에요믿음으로만 나오는 행함그게 뭐냔 말예요야고보서로 가서야고보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그 행함이 뭔가 한 번 보자고요.

 

(야고보서 2:17-24) 17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행동이 있소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 줄 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오. 19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그것은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20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 입니다. 23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 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대요바울로와 야고보가 싸우고 있는 것 같죠마치어떤 토론의 석상에서바울로는 아니다무슨 행함이냐?’ 야고보는 행함이다!’ 그러잖아요그래놓고아브라함의 예를 드는데아브라함이 무얼 했느냐아들을 바치지 않았느냐그래요.

그래서 혹자(或者)들은 자식을 바쳐야 된다자식까지도 바칠 수 있는 헌신(獻身)을 해야 행함이다그래요오늘 맏아들 다 잡을까요오늘 그냥? (하하하하그건 몰렉에게 제사지내던우상숭배(偶像崇拜)자들이 했던 일이에요맏아들 잡아서자기 복을 구했다니까요행한 거예요그거맏아들 잡았잖아요신에게몰렉이라그러니까어디 딴 곳에 가서우상 섬겼는 줄 아시는데성전 안에 그 제단이 있었다 말입니다.

여러분이 야고보서의 시작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야고보서 2:1) 1 나의 형제 여러분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여기서부터 오는 게믿음과 행함의 이야기예요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예수를 믿은 믿음을 받은 자들아선물 받은 자들아너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누가 잘 나고누가 못 나고가 어디 있니?

그런데 믿음을 받았다고 하면서어떻게 다른 이들의 됨됨이나성숙의 정도나성취의 정도이런 걸 갖고저 사람은 신앙(信仰)이 좋은 사람저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사람은 부자니까 축복 받은 사람구약 때는 부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여겨졌거든요이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 받은 사람저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詛呪받은 사람어떻게 그렇게 판단을 할 수가 있니여기부터 시작하는 거요.

너희들이 진짜 그 자비를 안다면믿음을 받은 자로서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걸 안다면어떻게 사람을그들의 됨됨이나그들의 성취한 성숙의 정도나그들이 한 착한 일이나나쁜 일이런 외모를 갖고그들이 구원을 받았느니안 받았느니축복 받았느니저주 받았느니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이거예요.

그거 안 하는 걸행함이라 그런다니까요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는 거예요오늘날 개혁주의(改革主義)는 야고보서를요!

 

지금 야고보가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어강조하고자 하는 행함은하느님의 자비를 입어서믿음을 선물 받은 자들이그 자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함부로 겉으로 나타난 증상(症狀)만 갖고사람들을 판단하는못된 행위들을 지적(指摘)해내는 거요.

그래서 갑자기 귀신이 등장하는 거예요귀신이 가진 믿음귀신들도 하느님을 알아보고하느님이 한 분이신 줄도 안대요그리고 그 앞에서 두렵고 떤대요. ‘귀신들도 두려워 떱니다.’

그러면 적어도 귀신들이 우리 믿음보다 나은 거죠여러분하느님의 이름 앞에서하느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떨어본 적이 몇 번이니 있어요귀신들은 계속 두렵고 떨어요우린 귀신보다 못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뭘 하겠다는 거요귀신들은적어도 하느님이 언제 오는 지도 알고그분 앞에서 우리는 두렵고 떨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알아요인간들만 몰라요성도(聖徒)라고 하는 인간들만 몰라요그러면 어떻게 해아 되느냐고요덮어야죠!

 

그런데 귀신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어요귀신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지 않아요원래 마귀사탄귀신이건 예요마귀사탄귀신이란 존재가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도, ‘있음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 모든 존재의악마적 속성의 총합(總合)으로 상징적(象徵的)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진짜 그 존재가 있긴 있지만.

그걸 모형하여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귀신은 절대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아요나도 내 주체성과존재성을 챙기겠다고 튀어나온 게마귀거든요고걸 설명하기 위해자기자리를 이탈한 루시퍼가 등장한 거니까절대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하지 않아요귀신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홀려낸신앙지상주의 빌리비즘(Believism)이 바로 그러한 거예요지옥 가기 싫어서천국 가고 싶어서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그분의 은혜와 자비 앞에서완전히 빈 그릇이 되는 건자존심이 상해서 싫다는 거예요천국은 가고 싶어요그런데 내가 주인공인 천국이어야 돼지옥 가기 싫어요역시 내가 주인공이에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헌금(獻金), 선행(善行), 구제(救濟), 기도(祈禱), 전도(傳道), 예배(禮拜)할 수 있어요이거 다 불교에도 있는 거예요이슬람교에도 다 있는 거예요우리보다 헌금 더 많이 하고우리 보다 기도 더 많이 합니다그들을 포탄박격포 탄이 날아와도 하루 다섯 번씩 꼭 기도해요.

예배우리는 골프 약속만 있어도 빠지지만그 사람들은 목숨 걸고 안 빠져요그러면 믿음 없이도이건 다 할 수 있는 거예요그죠그런데 성령 받은 자들에게서만믿음을 받은 자들에게서만나올 수 있는 게 있는데그게 바로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거예요.

헌금을 하면서도, ‘하느님어떻게 이걸 하면서도여전히 손이 이렇게 벌벌 떨리죠역시 저는 하느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네요.’ 헌금은 똑같이 하는데믿음을 받지 못한 자들은그걸 자신의 자랑으로 챙겨 갖게 되고성령을 받은 자들은, ‘역시저는 쓰레기네요.’로 가는 거예요구제착한 일선한 일마찬가지예요.

뭘 그렇게 대단하게 진심어린 구제와 선한 일을 합니까다 나의 면()을 위해서 하는 거지그러면서 성도는예수께로 가요믿음이 없는 자들은그걸 자기 자랑으로 다 챙겨 가지면서,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못해!’라고 지적(指摘)을 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걸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녜요어떤 일을 하든 그 속에서 자비를 구하느냐하느님의 그 탯줄나에게 꽂혀 있는하느님의 생명선(生命線)이 떨어져 나가면난 죽는다는이 자각(自覺)이 있느냐없느냐이게 문제란 말이에요그러면 죄인 됨의 자각(自覺)이 맨 먼저 있어야 되는데이게 없단 말이에요이게!

여러분 예수 왜 믿으세요천국 가려고 믿으세요아니면 병 걸릴까봐마음의 평안(平安)을 위해서안타깝게도 우리 교회에 오면평화가 아니라부아가 치밀죠이거는 질병이 낫는 게 아니라감기가 걸려서 왔더니독감이 되고 막 그러죠그렇게 여러분의 천국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믿었어요.

그런데죽고 나니까천국이 없어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괜히 믿었네그럴 거 아녜요목적이 그거였다면그러면 예수님은 얼마나 불쌍한 분입니까잘 생각하세요내 천국내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예수 믿는 게잘하는 걸로 알고 있었죠그건 예수님을 모독(冒瀆)하는 거예요여러분천국구원 이런 거 없으면쓰레기 되는 거예요이게 좋은 믿음이에요?

여러분은 그 예수를 사랑하는 분이에요그 예수와 함께라면 초가삼간도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면서이거는 그냥 립서비스(lip service)입니까내가 어떤 존재인지내 처음 자리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그걸 자각하는 게성도의 본무라는 걸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믿음은예수가 믿게 하셔서 믿는 거예요.

 

예전에 그 80년대 하이틴 스타였던 박미령이라는 탤런트가 무당(巫堂)이 됐어요그렇게 예쁘고 똑똑했던 여자가갑자기 신()이 내린 거예요받기 싫어요자기는뭐냐고요자기는 잘 나가던 탤런트가 무당이 됐다이거는 아니잖아요그래서 울고불고 매달렸어요제발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그런데 안 돼요건강이 나빠지고 사고(事故)가 생기고받아야 돼.

어쩔 수 없이받았어요무당이 됐습니다그 즉시 기적(奇蹟)을 일으켰어요작두(作頭위에서 뛰는데머리카락도 잘라지는 작두 위에서 맨 발로 뛰는데사람이 하나도 안 다쳐그리고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기 시작해서그걸로 구제착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모든 걸 털어 착한 일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성령 받아 예수 믿고 착한 일 하는 사람과이 사람과 뭐가 달라요우리의 목적이 그겁니까믿음이 그렇게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으로 뚫고 들어오는 건똑같아요맞아요. ‘아이괜찮다니까예수 믿는 거매일 지고 살아야 되고당해야 되고모함(謀陷)당해야 되고아이 싫어요.’ 그런데 성령이 들어와 버렸어!

그런데 끌고 가는 방향이 달라요. ‘나는 내 믿는 신을 의지하여 이렇게 착하게 산다.’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제가 이 꼴이라 그냥 뚫고 들어오신 거군요’ 이렇게 우리를 몰고 간다니까요우린 무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돼요그런데 그 무당이 사는 삶을 쫓아가려고 하는 거요우리가요내가 모신 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만들어 줬다는 거죠거기에는 그 일을 하는내가 주인공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야고보서 1장 10절에서, “부요한 형제는 하느님께서 낮추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시오아무리 부요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거요모든 게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서 경륜(經綸)이 되는 거고모든 게 예수의 계시(啓示)를 그려내는 도구라면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어차피 자비로평등하게 된 자들이고이 땅에서의 역할은그냥 하느님이 맡긴 거니까없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많이 가졌다고그 사람 부러워할 이유도 없다는 거요.

낮은 자야너희들은 구원 받았잖아너희의 높음을 자랑하라!’ 그러는 거예요. ‘높은 자들아부요한 자들아너희는 너희의 낮음을 자랑할 수 있어야 된다.’ 그래요그 말은많이 갖고그리고 이 땅에서 훌륭한 인격적 성숙과선한 일의 행함이런 것들이 나의 가치(價値)를 높여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네자비(긍휼)로 구원 받는 거네.’

그 때에 이걸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하느님이, ‘그거 아니라니까!’라고 가르쳐 줄 때그 낮아짐을 맞네요하느님.’하고자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성도는요야고보서의 내용은전부 그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웃을 외모로 판단하느냐그 얘기잖아요아브라함이 바로 그 행함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뜻이에요그래서 야고보서에서 그게 나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자기 자식의 심장에 칼을 꽃을 수 있었던 건, ‘하느님의 언약(言約)제가 도와준다고 성취되는 게 아니네요얘가여기서 죽어도하느님은 내 후손(後孫)을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게 만드실 걸 저는 이제 믿습니다제가 안 도와드려도 되네요!’

그전에는 도와드렸잖아요내가 죽으면 안 되니까그 언약이 성취 안 되니까와이프도 팔아먹고애굽으로 도망도 가고내가 살아야 되니까그랬는데 모리아산에까지 가보니까 하느님의 언약은 하느님이 성취하시는 걸 알게 된 거예요그래서 하느님이 죽여!’하면죽이는 거예요.

난 몰라요어차피 살려내시든지아니면 딴 놈을 데려다가 또 만드시겠죠.’ 자기부인의 자리지거기는나는 내 아들까지도 바쳤습니다가행함이 아니란 말이에요이해가 가세요?

라합마찬가지예요내가 속해 있던 나라를 나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그 이스라엘에게 팔아먹어 버리는 거예요. ‘이 나라 아니구나난 저 나라에 속해야 사는 구나!’라고 내 인생 전체를 팔아버리는 거예요이게 라합이에요그래서 야고보서의 행함이아브라함과 라합으로 등장하는 거지그 사람들이 행한 행함을 본받아서 하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고걸 본받는 자들이 우상 섬기는 자요몰렉에게 아들 바치는 자!

 

그리스도교는하느님에게 아들을 바쳐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아니라하느님이 날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나에게 주는 거예요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잖아요야고보서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누가 친구라 그래요예수님이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가 친구라 그래요.

우리는 안 되잖아요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림으로우리의 친구가 된 거란 말이에요그 이야기예요아브라함의 이야기는그런데 전부자기들이 뭘 해서예수님께 가겠다는 거예요아브라함은하느님의 약속을 믿은 거예요하느님 앞에서 없음으로 내려가는 거예요우리는요.

결국에는그게 자비를 구하는 자어머니의 탯줄의 소중함을 아는 자. ‘이거 끊어지면 안 되는구나!’ 끊어지면 유산(流産)되는 거예요여러분그때 세상 사람들이 가치로힘으로규정(規定)해 놓은 것들이모두 은혜의 산물임을 알게 되어서나눔과구제와선행의 삶이문득 문득 나오는 거예요지속적(持續的)이지도 않아요문득 문득 나와요.

그러다가 또 아까워서 또 주머니 움켜쥐고또 말씀과 나의 접촉점이 생기면그 때 또 그렇지이게 진짜 가치가 아니지!’ 하면서그러한 변화(變化)가 나오는 거지요그러나 그 변화 또한나에게 사유(私有)가 되는 게 아녜요사유된다는 건계속 지속된다는 뜻인데그거 안 되잖아요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로가, ‘무슨 행함이야믿음으로 구원 받는 거야’ 그랬다가다른 곳에서는 이 새끼들아 어떻게 그렇게 사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도대체 무슨 말을 들으라는 거예요사도 바울로가요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마시고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디서는 고린도교회 같은 곳에 편지한 거 보세요. ‘이 도둑놈들아너희들이 예수 믿고 어떻게 그렇게 사냐?’ 다른 곳에서는 자유해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거야!’ 이런 모순(矛盾)되는 설교(說敎)를 저만 하는 게 아니라사도 바울로성경이 했단 말입니다예수님도 똑같이 그렇게 설교하다가 가셨다니까요뭐예요어떤 일을 통해서도하느님의 백성(百姓)은 예수의 자비를 붙들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 도둑놈의 새끼들아!’ 그러면 맞습니다.’로 가게 되는 거고. ‘구원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얻는 거야.’ 그러면 그렇죠제가 이 모양이니까예수의 자비로 저는 구원받는 거죠.’ 어떤 설교를 해도예수의 자비로 가게 되어 있어요뭐가 옳은 설교고뭐가 그른 설교라고그 사람이 진짜 예수와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면여러분이 함부로 판단(判斷)하면 안 되는 거예요거기서 내가 예수를 붙드는 가를 봐야지.

 

그래서 초대 교회 사람들이하느님의 복음(福音)을 알게 되고성령이 임하자자기 걸 다 내놓아 버린 거예요헌금정도가 아니라십일조 정도가 아니라재산 전부를 내놓은 거예요. ‘아 역사는우리의 행복과 구원에 전혀 기여(寄與)가 안 되는 구나!’하고 버린 거예요그건요착한 일을 한 게 아니라.

만일 성령 받은 자들은 전부 그렇게 살게 된다면그게 지속적으로 이어졌어야 돼요그런데 안 이어졌어요여러분성령 받은 자들은 전부 그렇게 산다가 아니라하느님나라가 그런 나라인데그러한 모습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지향성(指向性)으로 나타나고문득 문득 하느님의 은혜와 우리의 이 접촉점이 형성될 때 나타날 텐데그 때 우리가 요리로 가는구나!’를 알라는 거예요집 팔아서 헌금하고 같이 모여 살라가 아니라니까요.

마케도니아 교회를 보세요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니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바울로 말만 듣고그 가난했던 사람들이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어요그 사람들은요! ‘우리 제발 헌금 좀 하게 해 주세요.’하고 쫓아 다녔어요사도 바울로를뭐예요? ‘이게 우리 살리는 거 아니다.’라는 것을 복음을 아는 자들이 알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마지막 남은 빵 덩이를헌금봉투에 넣어 버리는 거예요그러나 이게 지속되지 않아요.

보세요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과 의 이야기가 창세기 15장이라 그랬죠그 창세기 15장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아세요그 믿음과 ()’의 이야기지금 사도 바울로가 로마서 4장에 인용해 쓰잖아요지금어떻게 시작 되죠아브라함이 무서워하더라.’에서 시작 돼요.

 

(창세기 15:1, 6)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야훼께서 환상으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라아브람아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 주며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 6 그가 야훼를 믿으니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요 이야기거든요아브라함이 뭘 무서워하고 있었을까요이때에그런데 이 무서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뭘 보고도대체 너는 의롭다넌 믿음이 있다’ 했을까요요 때는아브라함 네 개국 연합군(聯合軍)을 318명을 데리고 가서 완전히 박살내고개선행진(凱旋行進)한 바로 그 다음이에요마치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00명을 다 참수(斬首)해 버리고로뎀 나무에 머리 박고, ‘나 좀 살려주세요아니 무서워요죽여주세요.’ 했던 엘리야와 똑같은 모습이에요.

이겼어요. 318명을 데리고 가서 이겼는데금방 무서워 떠는 쓰레기가 되어 있는 거예요하느님이 함께 하셔서 이긴 거라고 멜기세덱이 이야기까지 해 주었는데그러면 다시 그 4개국 연합군이 쳐들어와도하느님이 함께 하시면이길 거 아녜요그런데 또 믿음 없는 아브라함이 되어 있는 거예요무서워 떨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오셔서, ‘내가 네 방패(防牌)!’ 무슨 말이죠방패는 공격을 가리는 거예요감추어주는 거예요당신의 백성을! ‘내가 네 방패야걱정하지마너는 이런 사람 맞아맞아그러나 내가 네 방패란다.’ 그래놓고는 너는 의롭다!’하는 거예요아브라함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맞네요금방 제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4개국 연합군을 이기고 왔고멜기세덱이이거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이기게 한 거라고얘기를 했는데도저는 여전히 덜덜덜덜 떨고 있는 이런 인간인데하느님이 덮으시다니하느님 도와주세요.’ 요걸 ()’라고 한다니까요.

 

여러분우리는 그렇게 하느님께 뭘 해 드려서 의로운 자’ 받는 자들이 아니라하느님이 덮으셔서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란 말예요절대 그거 잊지 말란 말입니다여러분은 신앙생활 속에서혹은 가정생활 속에서혹은 직장생활 속에서승리(勝利)와 패배(敗北)의 삶을 번갈아가며 살면서하느님의 주체되심하느님의 그리스도 되심을배우고 인정(認定)하면 되는 거예요헌금을 하면서나 대신 먼저 헌금그 속전(贖錢)으로 드려지신 예수를 찬송하다가도때로는 그것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역시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의 은혜를찬송(讚頌)하면 돼요구제를 하면서 예수의 자비를 조금 맛보다가그러한 구제 속에서도 나의 안일(安逸)함과 편안함을 챙기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그러한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께 또 가면 되는 거예요.

성도는 그 어떤 삶 속에서도예수의 은혜를 깨닫고발견하고인정하게 되는 복된 삶을 살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노 프라블럼(no problem),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로 가는 거요이걸 행복(幸福)이라 그래요이거 행복하지 않으세요이게 굳 뉴스(Good News) 아녜요이게 왜 안 행복하냐고요그 은혜 앞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그 은혜를 자랑하고 찬송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양식 안 주실 수도 있어요그죠날마다 우리가 원하는 거 다 주세요안 주세요그런데 날마다 우리에게 당신의 피는 먹이세요예수의 살과 피는 먹이세요그걸 감사할 수 있는 자가 성도예요그렇게 우리는 늘 예수를 떠나아사(餓死직전의 상태로 자꾸 달려가려고 하는데하느님이 쫓아오면서당신의 피를 마시게 하고 있는이 상태가 어찌 행복한 상태가 아니겠느냐고요?

그러니까 하쿠나 마타타케세라 세라가 나오는 거예요그냥 막살라는 게 아녜요끌려가는 삶그 속에서 이 현실(現實)을 수긍하고 인정(認定)하며행복(幸福)해 하시라는 거예요일한 것이 없이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영생을 선물 받는 자그들이 복된 자다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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