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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티끌이며 먼지였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저는 티끌이며 먼지였습니다.>
때로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너무나 덧없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지고 질긴 것이 사람 목숨이라고 하지만, 때로 파리 목숨과도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병고나 난 데 없는 환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끔찍한 죽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우리 삶의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다가온 크나큰 시련 앞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입니다.
먼저 강하게 반발하는 형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암담한 현실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거부합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밤잠을 못 이룹니다. 길길이 뜁니다. 하느님을 원망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충격적인 상황 앞에 크게 기가 한풀 꺾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지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부, 명예, 자리, 지식...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느님께서 거두어가시면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구나, 하며 순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윽고, ‘이제야 제가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티끌이며 먼지였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그랬습니다.
그는 회당장이라는 직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꽤나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별로 아쉬울 것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무릎 꿇을 일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난 데 없이 다가온 충격적인 사건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딸이 갑작스럽게 죽음 앞에 선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간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믿었는데, 세상만사가 다 내 뜻대로 돌아가는 줄 알았었는데, 크게 한번 날개가 꺾인 것입니다.
극진히 사랑하는 딸이 저리 죽어 가는 데도 아버지란 사람이 그냥 손을 놓고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한심하고 또 비참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살만큼 산 나를 데려가시지. 차라리 내가 딸 대신 아팠더라면!”
결국 회당장 야이로는 ‘인간이란 것이 이렇게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구나’,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도 다 있구나’를 깨달은 그는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회당장 야이로의 내면 안에서는 급격한 회심의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너무나 깊고 커서 좁은 우리 인간들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상처나 고통 앞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일입니다. 그 어떤 이해하지 못할 열악한 상황 앞에서도 긍정적 측면을 찾아나가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 고통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질 하느님의 자비는 필설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풍성할 것입니다
편한사람 = 완전(?)한 사람
10여 년 전에 저의 작은 형이 ‘투다리’라는 닭 꼬치 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일을 좀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거의 항상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는 매우 잘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도와주다보니 가게가 매우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쾌쾌한 냄새는 둘째 치고, 이제야 밝히는데, 주방 여기저기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형은 그것들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죽였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미식거립니다.
한 번은 쥐를 잡으려고 약을 천정에 올려놓았는데 고양이만한 쥐가 그 약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한 여자 손님이 소변을 보고 있는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그 앞에서 손님을 쳐다보며 눈싸움을 하다가 시간이 꽤 흘러 쓰러져 죽었습니다. 손님은 나오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그 쥐와 눈싸움을 해야 했던 입니다.
저는 가게를 좀 더 깨끗하게 하자고 했지만 형은 너무 깨끗해지면 손님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것이 가게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손님을 포함해서 많은 손님들이 이 지저분한 가계를 계속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하나 완전한 사람이 없고 그 부족함 때문에 완전한 사람 주위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편한 것입니다. 어차피 술을 마시고 조금은 망가지는 사람들이기에, 너무 깨끗하여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형은 가게도 조금은 망가진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저도 고해성사를 볼 때 매우 무서운 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미사 빠진 것 때문에 그렇게 야단을 맞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분은 고해 중간에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하고, 대죄가 어떤 것들이 있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는 다시는 그 분께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신부님들이 대부분 좀 무서운 분들 같아서 청년 때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학 가서 저의 지도 신부님을 만나고는 ‘사제가 저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너무 겸손하고 가난하시고 농담도 잘 하셔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팬티가 보이도록 다 뜯어진 바지를 입고 오셔서 저희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옷을 입으시면서도 꼼꼼히 살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부족한 면이 저희가 편하게 그 분께 다가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성으로나 학적으로나 굉장히 뛰어나고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편하시면서도 배울 것이 많아서 그런지 저를 포함해 너무 많은 학생들이 그 분께 논문을 쓰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시나이 산에 거하시는 줄은 모두가 알았지만 그 주위의 불과 구름, 천둥과 번개 때문에 무서워 감히 범접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로지 모세만 시나이 산에 올라가 그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조차도 그 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거룩하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분께 어떻게 다가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분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이 피조물의 옷을 입으신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분께 몰려들고 또 하혈병이 걸린 여인까지 겁 없이 그 분의 옷을 만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혈병이 걸린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도 안 되는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왜 예수님께서 이 일의 증인이 될 제자 셋만 데리고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들어가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또 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목숨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밖에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예수님을 또다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가다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까지도 같이 다니면서 그 분께 말 걸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사람들이 쉽게 다가와 죄를 용서받고 병을 고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가오기 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에 무리가 되는 것들은 감추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한 사제로서 가끔은 신자들이 저를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선교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다가오기 편한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편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하느님=제로(0), 나+하느님=모두
2012.1.31 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
사무 하18,9-10.14ㄴ. 24-25ㄱ.30-19,3 마르5,21-43
믿음은 나+하느님=모두
어제 면담 성사 중
어느 수녀님의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고백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지낸 것 같습니다.
하느님과 관계없이 살아왔습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살다보면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무관하게 살아가는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아침 성무일도 독서 시 사도 바오로의 말씀도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서 배웠고 또 배운대로 살고 있습니다.’(1테살4,1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바로 이게 믿음이고 우리 삶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은 주로 믿음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 살레시오회 창립자인 성 요한 보스코를 생각하다
문득 재작년에 타계한 살레시오회 수도사제 이 태석 신부의 임종 전
감동적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대로 인용합니다.
‘2010년 1월 13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한 병실,
많은 이들이 이태석 신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두 손을 모아 “돈 보스코!”를 크게 외치더니
크게 십자가를 그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축복했다.
톤즈에서 아이들에게 하던 행동 그대로 였다.
그는 발치에 있던 동료 수사에게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1월14일 새벽 5시35분, 이태석 신부는 떠났다.’
온갖 시련과 고통 중에 진주처럼 영근
영혼의 사리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모두가 좋다는 Everything is good!입니다.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 나오는
임종전의 시골 신부의 Everything is grace! 모두가 은총이라는 고백을
연상케 합니다.
참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1독서의 다윗이나 복음의 야이로 회당장 역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온실 속 믿음이 아니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정화된
아래로 부터의 믿음입니다.
다윗의 고통이 참 처절합니다.
극한 상황에서의 한계체험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다윗입니다.
일상의 모든 어려움을 믿음의 계기로 삼을 때
정화되어 순순해지는 믿음이요 온전히 보호되는 영혼과 육신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 대신 차라리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합니다.
이런 처절한 고통을 믿음으로 겪어낼 때 깊어지고 순화되는 믿음입니다.
아마 다윗은 이런 인간의 처절한 비극과 온갖 악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 빠진 나-하느님=제로(0)의 공허와 허무, 무의미한 인생을
속속들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성인들은 그대로 나-하느님=제로(0)의 삶임을
또 나+하느님=모두의 삶임을 통감했고 또 이대로 살았던 분들입니다.
우리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 역시 절절히 체험하는 믿음의 진실입니다.
반면 나-하느님=나 이거나 나+하느님=나처럼 하느님이 있으나마나 한,
하느님과 무관한 액세서리 껍데기 믿음을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야이로 회당장이나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믿음의 여인은
모두 믿음으로 나+하느님=모두를 성취했던 분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되어라.”
여인의 믿음에 더하기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 구원 받아
모두가 된 여인입니다.
야이로를 믿음을 격려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역시 회당장의 믿음에 더하기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 난 그의 딸을 통해
모두의 구원을 체험한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나+하느님=모두의 구원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아멘.
믿음의 힘
믿음의 손
사랑이 지겨울때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사랑이라는 것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좀 지겹다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고 있을 때 마침 어느 가수가 갑자기 그 노랫말을 뱉어내자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 놓은 비밀을 들켜버린 듯 당황스런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눈 안 가득 그렁그렁해 진 것이다. 의당 사랑이 삶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해야 할 신부가 사랑이 지겹다니 이게 웬 말인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요즘 사랑이 지겹다. 사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도 지겹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지겨워진 이유는 내가 그 동안 사랑에 대해서 떠들어 댔던 언어들이 실제 사랑이 피고 지는 현장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힘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만 거듭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결국 사랑 앞에 서서 매번 사랑을 배신하는 내 생각과 말과 행위가 지겨워졌다는 뜻이리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리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표현해 놔도,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리 몇 날 며칠을 고뇌한 끝에 답이라 내 놓아도 그 놈이 가지고 있는 관계적 주관성 앞에서는 아무런 맥을 못 춘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은 어차피 ‘너’라는 타자他者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주관적인 행위이다. 사랑은 ‘너’와 ‘나’가 살아서 움직이듯이 똑같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만약 ‘너’라는 대상이 바뀌기라도 하면 그것은 그 이전의 것과는 전혀 색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의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사랑의 본질이 또한 나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말도, 생각도 이제는 지겹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사랑은 ‘너’와 ‘나’라는 두 개의 세계가 만나서 하나의 관계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어느 한 쪽이라도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려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한 쪽의 지향과는 상관없이 과정 전체가 멈춰버린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의 지속을 위한 생명력은 바로 ‘너’와 ‘나’의 서로를 향한 ‘자기 개방 (self-opening)’과 서로를 위한 ‘자기 수여 (self-impartation)’에서 나온다. 이렇게 생명력을 잃고 멈춰버린 관계는 곧 지겹게 느껴진다. 지겨워진 관계는 온기를 잃고 서서히 식어간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 같은 관계 앞에서 아무리 후회를 하거나 화를 내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 지겹지 않으려면 너와 내가 똑같이 살아서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스스로를 개방하고 스스로를 내어주어야 한다. 결국 사랑이 지겹다는 말은 서로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지도 않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도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느껴질 때 쓰는 말이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하나의 관계를 이뤄가고자 동의하는 첫 순간부터 그 이후에 따르는 일치의 전 과정에 걸쳐 양쪽이 함께 개방과 수여의 과정을 끊임없이 주고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려는 대단한 희생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관계를 이루어가려는 자기의지의 표현으로서의 사랑은 비단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도 공동체도 모두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현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개방과 자기 수여의 행위들을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한다. 이러한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공동체 일수록 개인은 건전하고 건강한 분위기의 공동체 안에서 또 공동체는 충실한 개인들로 인해 서로 발전을 거듭해 나갈 수 있다.
사랑의 그 대상이 한 개인이나 하나의 공동체와 같은 특정의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의 다수 혹은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불특정의 다수를 향한 보편적인 사랑이거나 신을 향한 초월적인 사랑은 내가 상대를 향해 개방하고 수여하는 만큼 상대 역시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내 사랑의 행위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편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람들과 세상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건강하게 개방시키고 나 자신을 용기 있게 내어놓는 행위를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한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과 세상 그리고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 안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정성스런 시선으로 사람들과 세상 그리고 하느님을 관찰해야 한다. 그런 존재와 행위와 대한 응시와 자각이 모든 공부의 시작이 된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이 곳 중국에 와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마치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과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닫고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 속에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고 자기 혼자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그리운 사랑이 남아있을까. 혼자 지내는 일에 적응하는 일도 벅차다 핑계 삼으면서 사람들과 세상에 나를 나누어주려는 행위라고는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요즘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에 대한 생각들도 지겹다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런 내 마음 속에 저 노랫말이 울려 퍼진 것이다. 친구들과 세상에 부끄럽고, 하느님께 죄송스런 마음에 가슴이 그토록 매어지듯 아팠다. 내 맘에 내가 너무 흘러넘칠 때 사랑이란 건 이토록 지겨울 때도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마음 다스리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폭풍 속에서 마음 다스리기>
요즘 각 교구나 수도회에서 인사이동이 한창입니다. 여러모로 힘겨운 곳으로 발령받아 떠나가는 형제에게 한권의 책을 권했는데, 제목이 정말 멋있습니다.
‘폭풍 속에서 마음 다스리기’(에크낫 이스워런 저, 도서출판 바움)
저자는 한 평생 자신의 내면에 깊은 저수지 하나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는 오랜 수련 끝에 강한 확신과 함께 이렇게 외칩니다.
“진정으로 고요한 마음은 어떤 폭풍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저자가 한번은 구식 여객선을 타고 큰 바다를 건너갈 때였습니다. 사흘내리 불어오는 강한 비바람에 그 여객선은 끊임없이 요동쳤습니다. 계속되는 풍파에 승객들의 고초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고생 끝에 어느 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퀸 메리’호라는 좀 더 나은 배로 바꿔 탔습니다. 놀랍게도 구식 여객선과는 대조적으로 아무런 동요도 없이 거친바다를 늠름하게 해쳐나가더랍니다.
저자는 한 선원에게 물었답니다. “왜 이 배는 큰 파도 앞에서도 요동치지 않는 것입니까?” 그 선원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답니다. “평형장치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설치했는데, 이젠 거친 파도에도 끄떡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요동치는 우리네 인생, 큰 시련의 파도에 보다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평형장치가 필요합니다. 그 평형장치는 우리의 신체 어딘가에 설치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에,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설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폭풍이 부는 곳은 우리의 내면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우리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중요한 곳은 외부의 혼란이라기보다 우리 내면의 날씨입니다.
우리 내면만 잘 정리정돈하고 있다면, 우리 영혼만 늘 푸르고 당당하다면, 우리 안에 하느님의 영이 굳건히 자리하고 계신다면 그 어떤 외부의 자극, 혼돈, 폭풍 속에서도 잠잠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사람, 내면이 흔들리는 사람, 영혼의 빛이 바랜 사람은 작은 외부의 자극에도 민감하게, 까칠하게 반응합니다. 별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마음을 크게 상합니다.
마하트마 간디 같은 분은 얼마나 내면을 잘 갈고 닦았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폭풍을 좋아합니다.”
여객선이 출항한 후 갑판위로 올라가보면 ‘난간’이란 것이 있습니다. 배가 심하게 요동칠 때 꽉 붙들라고 여기 저기 설치해놓았습니다.
인생의 폭풍을 헤쳐 나가는 우리에게 고맙게도 든든한 난간이 하나 있습니다. 흔들릴 때 마다 꽉 움켜쥐고 의지해야 할 난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것 놓치면 죽음이다, 이것 놓치면 끝이다, 하는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잡아야 할 난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4,35-4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받고 이 곳 중국 스자좡에 도착한지 어느 덧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와 ‘짜이찌엔’ 정도를 겨우 알고 시작한 이 곳 생활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 져서 가끔씩은 뜨개질을 하며 햇볕을 쬐고 있는 중국 할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되지도 않는 중국말로 할머니들을 웃겨드리는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가끔씩은 번거롭게 여겨지는 세상과의 인연 때문에 항상 분주하게 보내야만 했던 서울 생활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기도를 하고, 혼자 미사를 드리고, 혼자 음식을 준비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빨래를 하고, 혼자 청소를 하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돌아다니다, 혼자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요즘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모습이다. 이렇게 혼자 하루를 보내는 일이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어떤 면에서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서 더 깊이 묵상하면서 성숙해 질 수 있다.
이렇게 혼자 지내는 일을 제법 잘 즐기는 편이면서도 혼자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싫은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혼자 미사를 드리는 일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려 주님의 평화를 나누려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 짧은 고요가 내게는 아직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무슨 신비의 공간인양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있는 선교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제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하고 하느님께 여쭙고는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한다. 이곳 중국에서 선교사제로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익숙해 져야 하는 일이 이렇게 ‘혼자 미사 드리는 일’이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만에 어느새 미사봉헌을 ‘일’이라고 말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구나.
이곳 중국으로 떠나오기 바로 전에 4박 5일 간의 짧은 일정으로 대만에서 활동하는 동료 신부님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곳에서 만난 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요즘 많이 생각난다.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최근 몇 주 동안 주일 미사에 나오는 본당신자 수가 절반으로 확 줄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목하는 데 있어서 본당 신부가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걱정하는 내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다 내 부덕의 소치지 뭐. 주일 미사에 보통 4명 정도는 나왔는데 최근 몇 주 동안 2명밖에 안 나오고 있어. 여름이라서 어디 놀러들 가셨나봐. 하하하”
그때 그 친구는 어느 막노동꾼보다도 더 그을린 구릿빛 피부 속에 감춰진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소탈하게 웃었다. 주일 미사가 그 정도니 평일 미사는 당연히 텅 빈 성당에서 혼자 봉헌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빈 본당을 충실히 지킴으로 신자들이 없는 대만의 한 작은 본당에서조차 하느님께 바쳐지는 주님의 희생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기적에 놀라워하며 만족한다고 말했다. 몇 년 만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자기가 맡고 있는 본당이 낡아서 할 일이 많다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참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게는 아직 그런 본당도, 한 두 분의 신자도 없지만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건강하고 성스럽게 맞이하고 싶다. 작은 옷장 속의 제대가 나의 본당이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항상 함께 길을 걸어가는 나의 모든 친구들이 내 본당신자들이니 사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봉헌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친구들이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또 그들은 그곳에서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이 삶의 여정의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가장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눈을 감은 채 미안한 마음, 용서를 청하는 자세로 나의 신자들과 함께 영적인 미사를 봉헌한다. 한국에서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본당 전체를 가득 메운 신자 분들을 대하면서도 그 분들이 이렇게까지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 분들이 계시기에 나와 같은 사제, 그리고 사제들의 직무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도 뼛속 깊이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달 만에, 이렇게 아무런 응답이 없는 미사를 봉헌한지 단 한 달 만에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제들에게 있어서 신자 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록새록 깨우쳐가고 있다. 신자들이 없다면 도대체 교회는, 또 사제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참 용하시다. 신자 한 분 없는 이곳에서 살게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께서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하느님은 참 용하시다. 아직 욕심이 많고 철없는 사제를 신자 한 분 없는 이곳으로 불러 주심으로 오히려 신자 분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씩 사제로서 철들게 하시니 하느님은 참으로 용하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가까운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열심히 찾아보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사랑의 박사>
매해 첫날엔 습관처럼 산에 오릅니다. 왜 새해벽두부터 사서 고생이냐 하시겠지만 한번 올라가보시면 의외의 소득이 주어집니다. 우선 강추위와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연말연시에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을 되잡기에 참 좋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보면 하느님의 체취와 손길이 좀 더 가까이 느껴지곤 한답니다.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평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는 얼마나 다르던지 깜짝 놀랄 지경입니다. 멀리 좀 떨어져서 바라보니 지저분한 것들도 그런대로 봐줄만 합니다. 밑에서는 별 것 아닌 것들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워 보입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그리도 위풍당당하던 인간들, 그렇게 떵떵거리며 위세를 떨던 인간들도 개미새끼보다 작아 보입니다.
지난 한해 돌아보니 얼마나 큰 부끄러움이 앞서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목숨 걸었던 일들, 산 위에서 생각하니 정말 별 것 아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 정말 이것만은 양보 못한다고 했던 것들, 산위에서 돌아보니 정말 허망한 것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나 자신뿐만 아니라 생채기를 주고받았던 사람들, 허세를 부리는 꼴불견인 사람에게 조차 갑작스런 연민의 마음과 측은지심이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그리도 괴로워했던 상처와 실패, 죄와 부끄러움조차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신 새로운 한 해 동안에는 동료 인간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열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내가 부족하듯 그들도 당연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사랑을 갈구하듯 그들도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들도 나 못지않게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진리를 마음속에 각인시켜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심성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모릅니다. 그가 얼마나 인내롭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덕스러웠으면 사람들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와 같은 지방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 성인은 얼마나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을 존경하였으면 수도회를 창립하면서 성인의 이름을(살, 혹은 살레시오)수도회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돈보스코 시대 당시(1815-1888)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에 대한 호감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은 이탈리아와 인접한 프랑스 남동부 사보이아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프랑스 파리와 안시에서 그리고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제로 서품되어 캘빈 교도들의 땅 샤블레로 파견되어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고 혁혁한 업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후에 제네바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지요. 샹탈을 만나 그녀의 영적지도자가 되어 방문 수녀회를 창립합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온유, 자비에 관한 많은 저작들을 우리에게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심생활입문’과 ‘신애론’입니다.
사랑의 박사, 착한 목자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성인께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일생 전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따뜻하신 하느님, 온유하고 친절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권위나 힘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겸손과 희생으로 한결같이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섬겼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온유하고 겸손했던 사랑의 대가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천사처럼 태어났을까요? 그의 혈관 속은 우리와는 다른 천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실 그도 우리와 사정이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뜨거운 피가 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야심도 많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캘빈교도들의 지역 샤블레에서 선교할 때는 일이 여의치 않자 무력까지 동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인간적 약점이 많았습니다. 이웃과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또 실천했습니다. 이웃들의 결점을 참고 또 참고, 이웃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또 용서했습니다. 그 결과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사랑의 박사인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운수대통, 의사소통, 만사형통, 쓰레기통입니다.
하느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에 응답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이웃과도 잘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밤새도록 되새기는 사람, 그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더러운것, 이런저런 소리를 들어도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남 흉보고 욕하고 모함하는 소리도 다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통통통 복받으십시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요즘 많은 어머님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편감’ ‘나의 로망’으로 뜨는 한 인물이 계신답니다.
그분은 바로 수십 년 째 서민들의 일요일 아침을 기쁘게 해주고 계신 ‘전국 노래 자랑’의 사회자 송해 선생님이시라고 하네요.
이유는 다른 남편들은 40대 초반에 벌써 실직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하는데, 이분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아무 걱정 없이 ‘쭉’, 꾸준히 출근하고 계시지, 남들은 일 년에 몇 번 못가는 지방 출장을 매주 어김없이 한번 씩 다녀오시지, 다녀오실 때 마다 지방특산물 들고 들어오시지...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가만히 송해 선생님 생각하면서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84세의 연세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십니다. 최고령 MC이자 최장수 프로그램 MC 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계십니다.
준비성이 얼마나 투철하신지 대본 한 구절, 한 구절, 사람 한명 한명을 꼼꼼히 챙기신답니다. 지방으로 촬영을 가시면 꼭 그 동네 목욕탕엘 가신다더군요. 함께 목욕을 하면서 그 지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프로그램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신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땅에서의 삶을 정말 충만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가장 바람직한 응답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목숨 다하는 날 까지, 하느님께서 마지막으로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충실히 살아내는 삶,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가장 적절히 대응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스승님, 참 진리의 선포자이신 스승님의 부르심 앞에 그간 간직해왔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가족, 생계도구였던 배와 그물, 그간 추구해왔던 가치관, 인생관...
그 결과 더 큰 인생, 더 풍요로운 삶, 더 빛나는 생애를 선물로 얻었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들 못지않게 여러 차례, 여러 측면의 하느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이것 정말 보통 부르심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인데, 세례성사로 또 부르셨군요. 뿐만 아니라 견진성사에로, 신품성사에로. 뿐만 아닙니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교사로, 봉사자로 부르셨습니다. 또 회갑에로, 칠순에로, 80의 나이로, 100세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새롭게 주어진 이 한해는 하느님께서 아직 우리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시고 다시 한 번 부르셨다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이 ‘하루’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는 표현이 확실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다시 눈뜬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거룩한 부르심이 분명합니다.
‘이 나이에 무슨’이란 말은 절대 금물입니다. ‘나는 이제 끝났어’란 말처럼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무책임한 말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마운 내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한 해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항상 감사하고 늘 깨어 준비하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평상시에는 자신이 얼마나 자유롭게 살며, 또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잃어버린 후에는 뒤늦게 이제까지 행복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지요.
지금의 자리가 가장 행복한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기 위해 더욱 더 철저히 준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늘 행복 속에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미 와 있는 행복. 이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신자라면...
누가 아기예수님을 알아 보았을까요?
주말 아침의 묵상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