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12호>선교학 자료-지아니 콜차니 신부

2002. 6. 7. 오후 1:59:38

글자

선교학 자료

 

    지아니 콜차니 신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선교 신학

 

   최근 수십년 동안의 선교 신학의 발전을 이해하려면 공의회의 가르침을 준거로 삼는 것이 좋다. 선교 교령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공의회는 교회의 선교 활동을 다루면서, 선교를 교회론의 전망 안에 포함시켜 선교와 교회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수립하였다. 선교는 하나의 은혜로서, 거룩한 삼위일체의 세 위격의 사랑에 기초해서 설명된다. 한편 선교는 교회의 직무(munus ecclesiale)로서, 말씀과 성체성사로 자양분을 얻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도적 임무를 펼치는 공동체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선교 사이에는 깊은 상호 관계가 있다. 교회는 본성상 선교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선교 실천에서 선교 이론으로 넘어가고자 했던 20세기 초, 수십년에 걸쳐 시작된 오랜 과정의 결말이었다. 공의회의 이러한 신학은, 선교를 단지 선교사의 일로 보거나 선교 명령을 고취시키는 법률적 용어들 안에서만 이해하였던 제한된 접근 방식을 뛰어넘어, 선교 명령에서 교회의 보편성과 사도 전래성으로 되돌아갔다. 곧 선교는 교회의 보편성과 사도 전래성에 봉사하기 위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개념은 선교를 구원의 보편적 성사의 특성인 역사적 형태로 볼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선교 활동을 교회가 생활하는 신비적 배경의 관점 안에 놓음으로써 선교는 파견된 공동체의 형태로 현실에 그 의미와 충만함을 부여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성서적 교부학적 쇄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와 세계, 그리고 평신도의 역할에 관한 콩가르의 생각을 활용한 것이다. 이는 또 라너의 「안내서」 (Handbuch)의 특성인, 선교를 교회의 자기 완성으로 보는 개념 안에 놓여 있었지만,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반적 시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였을 뿐더러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들의 역사적 행위를 충분히 서술해 주지도 못하였다. 공의회 이후 선교와 선교의 정체성, 그리고 선교 방법과 관련하여 명백한 위기가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개신교 선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종말론의 중요성에 관한 재발견이었을 것이다. 선교 분야에 종말론을 이용하는 것은, 선교를 사회 발전의 한 측면으로 보면서 그리스도교를 서구 사회의 팽창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로 삼았던 사회학적 접근의 모든 잔재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비록 선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선교를 이러한 식으로 해석한 적은 없지만, 서양의 이러한 선교 의식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선교가 종말론으로 돌아선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신학적 사실이기 이전에, 그것은 각자 자기 위치에 너무도 확고하였던 교회들에게는 예언적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선교는 교회를 살아 있게 하는 누룩이었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선교

 

   종말론이 무엇에 관한 재발견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선교의 중심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첫 번째 선교사’이시며, 선교라는 위대한 활동을 통하여 중개를 하신다. 그러므로 강력한 의미에서, 선교는 하느님의 활동(actio Dei)이다. 선교를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며, 또한 예수님의 하느님이시다. 이 하느님의 선교는 바르트를 선두로 G. F. 바이스돔, W. 프레이탁, H. J. 마굴이 내세우는 개념이다. 하느님 선교의 전형적인 요소는 그것이 갖는 삼위일체적 토대를 강력한 사도직 신학을 통하여 교회의 영역에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선교는 인간의 일이거나 교회의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를 위하여 당신 백성을 모으시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활동이다. 선교는 하느님께 달려 있으며, 매순간 하느님께 속해 있다. H. 크래머와 W. 홀스텐 같은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에 따르면 사도직은 말씀을 선포할 의무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능력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A. 래티프, J. 두르느, J. 마센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에 따르면 사도직은 말씀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고무하시는 교회의 봉사(diaconia)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교회는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령의 고무를 받아 자기 주님(Kyrios)의 계획, 곧 세상에 대한 주님의 통치 계획을 이행하고자 세상에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구원이 역사 속에 들어옴으로써 일반적인 역학이 흔들리는 한편, 그 역학은 그것을 완성시켜 주는 근본이라 할 하느님의 활동에 열려 있는 깊고 새로운 화해의 차원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급진적으로 밀고 나간 사람은 다년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복음화 담당 총무였던 네덜란드 신학자 J. C. 헤켄딕크였다. 헤켄딕크에 따르면, 사도직은 열두 제자나 교회의 사도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도직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에게는 후계자가 없다는 개신교의 명제가 절정에 이르는 것도 바로 이 점에서이다. (그에 따르면) 선교의 주체는 “우리 신앙의 사도이시며 대사제이신”(히브 3,1) 예수님이시며, 선교의 내용도 언제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1고린 15,58). 그에 따라 교회의 임무가 과감히 축소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활동 안에서(in actu Christ)만 존재하므로 언제나 사도들의 활동 안에(in acti apostoli) 있다. 따라서 교회 중심주의를 비판하였다.

곧 선교에 힘입은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활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들은 교회와 세상 사이에 어떠한 분리도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목적이라는 인식과 결부된다. 그럴 때 온 세상은 교회와 세상을 끌어안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통치권, 곧 평화(shalom)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도직의 내용이 된다. 사도직은 메시아의 평화를 확립하려는 활동들, 곧 평화를 제시하고 선포하는 신앙 선포(kerygma), 평화에 참여함으로써 평화를 실천하는 친교(koinonia), 평화에 이바지하는 봉사(diaconia)의 핵심인 것이다.

메츠의 제자인 가톨릭 신학자 L. 루티도 다른 방식 - 신앙의 개인화에 반대하고 신앙의 대중성을 다시 한 번 선언하는 정치 신학 방식 - 을 통하여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루티는 교회 활동을 크게 특징지어 왔던 이중의 목적인 자연적 목적과 초자연적 목적, 그리고 교회 중심주의를 모두 비난한다. (그에 따르면) 언제나 역사적 실재와 관련하여 육성되어야 하는 ‘종말론적 유보’에 대한 비판적 예언적 경향이 우리에게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의 징표를 단번에 인식하도록 촉구한다. 교회는 역사 안에 있고 역사와 함께 약속된 미래로 나아가므로 자신이 하느님 나라와 중심을 완전히 달리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 의제를 정할 때 그 출발점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선교의 본질을 더 이상 성서나 교의적 사실에 두어서는 안 된다. 세계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 안에 희망을 전해 줄 책임이 있는 선교는 모든 실질적인 목적을 위하여 교회를 완전히 배제하는 어떤 특별한 실험을 특징으로 한다. 인류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장막인 교회는 세상을 향한 이 근본적인 탈출을 통하여 거의 소멸되므로, 교회는 그 자체로는 아무 중요성도 없다. 이러한 종말론적 주장은 선교의 그리스도론적 기원, 선교와 역사적 예수의 관계를 잊어버린 듯하다. 메츠 자신은 이러한 세계 신학을 그리스도의 기억(memoria Christi), 곧 파괴하면서 동시에 해방을 주는 기억과 더욱 잘 통합시키게 된다.

   선교 신학의 윤곽 아래 교회론이 이처럼 완전히 결여된 데 대하여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교회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든 교회론을 파괴시켜 버렸다. 제도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떠나서 교회 없는 선교가 과연 구체적일 수 있는가?M. 스핀들러와 L. 뉴비긴은 그리스도의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이러한 주체가 결여된 관점을 극복함으로써 이 이론의 그리스도론적 기원을 진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명에 결합시키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교회 선교의 그리스도론적 본성을 보증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교회의 은사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곧 선교하는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교회의 성령과 창조의 성령을 동일시함으로써 뒤이어 다른 문제들이 야기된다.

 

2. 교회를 성장시키는 선교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의 개념은 의심할 여지없이 선교의 실재를 명확히 하였다. 이 개념은 한편으로는 선교를 모든 사회학적 관계에서 정화시켜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에 처음으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결과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숨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역사를 더욱 유리하게 이용함으로써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나타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역사를 올바로 평가해 보면 하느님의 선교에서 교회의 선교로 되돌아가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교회 중심주의라 비판받아 온 이식 방식이 아니라, 1961년에 ‘교회 성장 연구소’의 설립과 함께 파사데나에서 시작된 교회 성장 운동이다. 이 단체는 D. A. 맥그라반의 기초 작업을 토대로 하여 ― 나중에 A. F. 그라서, C. P. 와그너, A. 티펫도 이 작업에 합세하게 된다. ―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근본 요소라 여겨지는 교회들의 수를 늘릴 것을 제안한다. 신학자들과 교회들은 선교를 교회간 원조 또는 교회간 협력으로 묘사할 만큼 이 명제들에 동의하게 된다.

교회 성장 개념은 그것이 나타내는 교회의 개념에서 교회 이식과는 다르다. 성과와 교계 제도에 대한 가톨릭적 개념은, 있는 그대로 또 가진 힘만큼 성장하면서 선교를 정당화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교회의 생명력이나 자발성과는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교회 성장 개념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개념이다. 교회에 대한 가톨릭적 개념 뿐만 아니라 선교에 대한 다른 모든 설명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선교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어떤 토대도 필요가 없다. 복음주의 세계 안에 특히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시각이 지지를 얻은 것은 선교의 의미를 더 잘 설명하려고 성서를 근본주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토대를 둔 파견에 대한 강조,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는 말씀에 대한 의존, 사도행전 1장 8절과 일치하는 증언에 대한 강조는 이러한 흐름에서 나온 주된 반응들이다.

성서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중요하긴 하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W. 클라이버와 J. 월리스는 회개를 강조하는 반면, D. 보슈는 변화하는 선교의 새로운 전형의 토대를 성서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을 배경으로 해석학적 문제가 부각된다. 성서는 하나이지만, 각기 나름의 양식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여러 문맥들이 선교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그의 명예 교수인 H. W. 겐지헨은 여기에서 세 방향의 긴 논고를 시작하기 위한 토대를 발견하는데, 곧 성서, 역사적 상황, 증언과 관련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분명한 것은 다른 여러 상황들이 성서 해석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힌두 박티 문학에 비추어 본 A. J. 아파사미의 제4 복음서의 신비주의 연구는 민중의 관점에서 출발한 J. 메스터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신비주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차이 안의 일치는 창의성과 실험의 여지를 끌어들이므로 공감과 더불어 식별력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말씀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인정하여야 한다. 이는 D. 시니어와 C. 스툴뮐러가 그랬던 것처럼 단지 선교 방법의 지표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D. 보슈처럼 오히려 선교를 이해하는 방법의 토대를 찾아야 한다. E. 테스타와 L. 르그랑, F. 한 그리고 케르텔쥬와 같은 전문가들이 기울인 노력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영감을 받아 쓰여진 성서와 문화 사이의 관계에 내포되어 있는 이론적 문제들이 몇몇 작가들에 의하여 깊이 연구되고 있다. 샤네크와 더불어, E. A. 니다 주위에 모인 집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니다는 토착화 분야에서 말씀의 번역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더욱 정확히 말하면 신앙의 전달을 강조하였다. ‘미국 성서학회’ 번역 담당 총무인 니다는 언어학적 인류학적 문제들로 되돌아가, 이러한 특별한 관심으로 선교 잡지들의 탄생을 촉진하였다. 이러한 시각이 중요한 것은 ― 위에서 말한 사도직 신학이 존재 신학을 극복하여 ― 신앙의 토착화 작업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는 선교가 지탱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3. 선교의 새로운 전형에 대한 추구

 

   D. 보슈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선교가 깊은 변화의 시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뒤에 남겨야 할 전형을 다시 세운 방법 너머로, 다른 시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으며,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선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설명하고 방향을 잡아 줄 새로운 전형과 새로운 모형에 대한 추구는 신학적으로 바르트 주의를 뛰어넘음으로써 역사적 구원의 측면을 발전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구원에 대한 성찰, 특히 그것의 그리스도론적 토대와 교회론적 차원에 대한 성찰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미 1972년에 J. 암스투츠는 명시적 구원과 암묵적 구원의 차이를 소개하였다. 그는 명시적 구원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그리고 교회들과 함께 또 교회들을 통한 하느님의 활동 안에서 요약하였으나, 교회 밖에도 암묵적 형태의 구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구원의 보편적 성사인 교회의 명제를 더욱 발전시킨 이러한 시각에 헤켄딕크에서 루티에 이르기까지, 라너에서 슈레트에 이르기까지, 큉에서 반 엔겔렌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집중하게 된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이러한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에 중심을 둔 형태일 것이다. 하느님 나라와 그 가치를 구별하면서 교도권도(「교회의 선교 사명」, 20항; 「대화와 선포」, 35항 참조) 교회 밖의 하느님 나라의 ‘불완전한’ 현존을 인정하지만, 교회와 관련하여 그것을 주장하는 데에는 신중하다. 교회가 사회 안에 새롭게 해방을 가져다 주며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명제들에 동의한다. 예를 들어, 교회 성장 운동의 글라서는 하느님 나라는 모든 선교 담화의 일치된 원리라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일관성을 가지고 이러한 명제들을 발전시키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하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메시아 신앙은 그리스도론적 메시아 신앙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교부학의 표현인 ‘quod non est assumptum non est sanatum’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이 중심이 아니라, 설교와 실천이 중심이다. 따라서 부활 이전의 예수님의 삶이 선교의 지배 원리가 된다. 그럴 때 하느님 나라의 개념은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도식이 아니라 역사 안에 구체적이고 자유로이 존재하는 전(全) 존재(pro-existence) 방식을 환기시킨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선한 의향들의 총체가 아니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물론 예수님의 활동과 그분의 인격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에 대한 적절한 설명만이 그분의 활동에 확실한 근거를 부여해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P. 니터에게서 보듯이, 신 중심주의나 구원 중심주의로 돌아가려는 어떠한 시도도 실패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아버지께 되돌아가실 때(요한 16,28 참조) 그 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모일 때까지 그분의 제자들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러한 복음은 세상 권력에 대한 대안으로서 또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원의 선물로서 세상 앞에 놓여 있다. 하느님 나라는 임금이신 하느님의 통치권이 온 세상에 실현되는 것이므로, 이 문제에 대한 선교학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과 그것이 지닌 변화의 힘을 선포하는 일은 선교학의 중요한 한 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므로 M. 아리아스와 E. 카스트로, C. L. 미톤, J. 셔러, 그리고 우리 가운데는 J. 뒤퓌 같은 선교학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부여해 온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상기시키듯, 하느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여러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사회적 역사적 배경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힘이 사방으로 뻗어나갈 때 다양한 방식으로 선교를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M. 스핀들러가 선교를 세상 구원을 위한 투쟁으로, 뉴비겐은 땅 끝까지의 원정으로 인식하였다면, 해방 신학은 다른 점들을 강조한다. Lexikon Missions-Theologischer Grundbergriffe 안에 선교를 표제어로 싣고 있는 Th. 선더마이어는 이러한 생각들을 잔치의 형상으로 집약한다. 곧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당신 나라의 식탁에 맞아들이시는 그리스도야말로 선교의 진정한 표상이시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선교가 세상 안에서 선포하고 완수하는 하느님의 정의는 종말론적이 아니면서도 종말론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 종교간 대화인 선교

 

    다른 문화들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또 그 문화에 소속된 사람들과 나누는 실질적인 연대의 표현으로 출발한 대화의 주제는 다종교적이고 다문화적인 우리 시대의 다원주의 안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J. 힉은 대화는 건너는 데 용기가 필요한 일종의 ‘신학의 루비콘 강’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필자는 회칙 Ecclesiam Suam이나, 비그리스도교를 위하여 ‘구원의 길’(Heilswege)이라는 개념을 채택하였던 봄베이 신학 심포지엄(1964년 11월 25-28일),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화의 초기 단계를 상기시키고 싶은 의도는 없다. 또한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J. 쉬넬러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류법을 통하여 그리스도 중심적 배타주의, 그리스도 중심적 포용주의, 다양한 흐름으로 다시 세분화되는 신 중심적 다원주의로 구분되는 대화의 여러 형태들을 소개할 의향도 없다.

문제의 신학적 요지를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으로 나타내든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으로 나타내든 그 요지는 명백하며,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사이의 완전하고 상호적인 일치와 관련된다. 이러한 일치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경우에는 적어도 최소한의 역사적 명제들, 곧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거부당하실 것이라는 계시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신앙이 정당화될 것이라는 계시를 연결시켜 주는 명제들을 기본적으로 반드시 선교 선포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복음 선포를 위한 다른 길들이 열린다.

몇 가지 생각과 몇 가지 이름으로 축소하기에는 논쟁이 너무 방대하므로, 여기서 필자는 예수님 사건의 유일성과 특이성이 의미하는 바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의 교회 사이에 중요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임을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고자 한다. 특히 예수님 사건의 보편성과 궁극성은 가톨릭의 보편성(catholicity)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사건의 보편성과 궁극성은 말하자면 가톨릭의 보편성의 근원이며 토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신원과 활동은 주님의 활동에 봉사하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실상의 다원주의는 그 자체로 필요한 반면, 원리에 대한 다원주의는 문화적 이유가 아니라 신학적 이유에서만 지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규범화하려는 시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있어 왔다. J. 힉은 그리스도론 교의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그것이 갖는 나름의 가치는 제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전달하는 데 있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론을 하나의 신화로 축소시킨다. P. 니터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의 규범화는 감성적이고 매혹적인 언어 안에 용해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는 유일한 분이시며 어느 누구도 그러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스 큉도 선교 선포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이바지하는 것이며, 인류의 선익을 위해서는 세계 윤리(Weltethos)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톨릭 신학자들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존재한다. J. 뒤퓌와 M. 아말라도스를 포함한 많은 저자들은 다른 종교들도 각자의 길을 따라 구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대화가 복음화의 실질적 형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주 예수님 안에서, 곧 계시의 충만함 안에서 구원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여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의 화해 직무에 맡기신 성사의 도구들과 함께, 다른 종교들의 긍정적 가치들 안에 이미 작용하고 있는 주님의 진정한 구원의 현존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적인(asarkos) 말씀과 영적인(ensarkos) 말씀을 구별하고, 하느님 진리의 빛 또는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비추는”(요한 1,9) 영적인 말씀의 능력을 간직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피조물 안에서 활동하시며 생명과 진리와 성덕의 길을 따라 또는 다른 수단들을 통하여 피조물을 인도하시는 바로 그 성령이시다.  

쪹 원문 : Fr. Gianni Colzani, “Theology of mission after Vatican Ⅱ”, in Omnis Terra, N. 313, January 2001, 10-16면 (번역 - 권정애)

 

참고 문헌

아래에서 필자는 본문에 인용했든 안 했든 가장 중요한 신학자들의 선교 신학에 관한 주요 저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 문헌으로 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1. AA. VV., 「교회와 선교」(Chiesa e missione), Urbaniana University Press, Roma, 1990년.

2. AA. VV., 「현대의 선교학」(Missiologia oggi), Urbaniana University Press, Roma, 1985년.

3. AA. VV., 「현대의 구원」(La salvezza oggi), Urbaniana University Press, Roma, 1989년.

4. J. AMSTUTZ, 「민중 교회. 선교 신학의 개요」(Kirche der V쉕ker. Skizze einer Theologie der Mission), Herder-Hill Book, Freiburg, 1972년.

5. G. H. Anderson,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아시아의 목소리」(Asian Voices in Christian Theology), Orbis Books, Maryknoll, 1976년,6. M. ARIAS, 「하느님의 통치에 대한 선포: 복음화, 예수님에 대한 파괴적 기억」(Announcing the Reign of God: Evangelization and the Subversive Memory of Jesus), Fortress Press, Philadelphia, 1984년.

7. K. BARTH, 「현대의 선교 신학」(Die theologie der Mission in der Gegenwart「1932」), 같은 곳의 “신학적 질문과 응답”(Theologisches fragen und Antworten) III, Evangelischer Verlag, Zollikon-Z웦ich, 1957년, 100-126면.

8. D. J. BOSCHE, 「변화하는 선교: 선교 신학의 변화된 전형」(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 in Theology of Mission), Orbis Books, Maryknoll, 1991년.

9. H. B웂KLE, H. 「선교 신학」(Missionstheologie), W. Kohlhammer, Stuttgart, 1979년.

10. E CASTRO, 「선교의 자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 초 교파적 연구」(Freedom in Mission: The Perspective of the Kingdom of God. An Ecumenical Inquiry), World Council of Churches, Geneva, 1985년.

11. A. D. CLARKE, B. W. WINTER, 「종교 다원주의 세계의 한 분이신 하느님, 한 분이신 주님」(One God, One Lord in a World of Religious Pluralism), Bater Book Housse, Cambridge,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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