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노래 : Magnificat (루가 1,46-56)
이 부분을 우선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인격적인 감사(46-49). 이 부분에서는 모든 구절이 구약성서의 한나의 노래와 일치한다.
2) 마리아에 대한 하느님의 처신에 관한 묘사(50-53). 즉 가난한 자 작은 자를 향하고 계시는 하느님.
3) 약속이 마리아에게서 이행됨을 묘사(54-55). 즉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했던 것이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
신앙의 관점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을 구원 역사의 주인이요, 안내자로 이해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건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 마리아는 자신을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여종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니피캇은 오직 하느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영광은 오직 하느님께만”이라는 표현은 사도 바오로에게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로마 3,27; 1 고린 1,29-31; 2 고린 10,17; 에페 2,9 등).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마리아의 노래」를 두고 마리아의 가장 뛰어난 기도, 메시아 시대를 위한 가장 훌륭한 노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한 백성 전체의 노래가 마리아 개인의 기도로 나타나고 있다. 마니피캇은 백성전체를, 백성의 전 역사 안에서 생각하고 묵상하며 선택 받았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노래에서 제기될 수 있는 두 가지 문제;
첫째로 노래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둘째는 노래의 성격은?
어떤 라틴어 번역본에 의하면, 46절에 마리아 대신에 엘리사벳을 표기하고 있다. 사실 내용상 엘리사벳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본래는 이 노래의 주인공은 표기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많은 학자들은 한나의 대응인물로서 마리아 대신 엘리사벳을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엘리사벳의 찬미가였으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점에서 마리아보다 엘리사벳이 더 적임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또 한편 마니피캇의 축복은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아가 말하고 있는 축복과 병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1,38의 종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마리아를 한나의 대응인물로 만들고 있다. 1,48에서 이 말의 반복은 이 마니피캇이 마리아의 노래임을 확인해 준다.
이 마니피캇은 결코 루가의 창작이라고 할 수 없다. 히브리詩의 평행법의 형식을 지닌다. 꿈란의 노래 형태와 병행되는 점도 없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노래가 유다적 정황에서 생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혹자는 마카베오 전쟁의 상황을 채택하였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1세기 정도 이전에 독립적으로 저술된 것을 약간 수정하여 채택된 것에 룻기 1,20; 2,10의 주제를 가미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색채가 뚜렷하지 않은 사실은 이 찬미 노래가 마리아 자신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마니피캇은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마리아 공경신심의 발전을 증언해 주는 것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