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돌로로사....고난의 길
미국오페라가수 Sandi Patti가 불렀고,전에 KBS드라마(종합병원)에서.
O.S.T로 "혼자만의 사랑"이란 (김태영 노래)제목으로 불려졌던 애절한
멜로디가 있었다,
Via Dolorosa (고난의 길) *
스페인어 Via Dolorosa via는 (큰)길을, dolorosa는 "고난의, 고통의"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Down the Via Dolorosa in Jerusalem that day The soldiers tried to clear the narrow street But the crowd pressed in to see The Man condemned to die on Calvary 예루살렘의 고난의 길을 따라 내려가시던 그날 병사들은 좁은 길에 몰려든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였지만. 군중들은 더욱 더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갈보리에서 죽음의 운명을 맞이할 한 남자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He was bleeding from a beating, there were stripes upon His back And He wore a crown of thorns upon His head And He bore with every step The scorn of those who cried out for His death
그는 구타당하여 피 흘리고 있었고, 등에는 수많은 채찍 자욱이 선명하였습니다. 게다가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으며 그분은 고난의 발자국을 내딛으시며 참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죽이라고 악쓰는 군중들의 멸시에 찬 조롱을
Down the Vi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고통의 길이라 부르는 삐아 돌로로사를 따라 걸으시는 메시야로 오신 왕이신 그리스도는 한 마리 양 같았습니다. 그 길은 그분이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과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갈보리까지 이어지는 그 고난의 길로
* 같은 내용인데, 스페인어로 다시 부름 Por la Via Dolorosa, triste dia en Jerusalem Los saldados le abrian paso a Jesus Mas la gente se acercaba Para ver al que llevaba aquella cruz Por la Via Dolorosa, que es la via del dolor Como oveja vino Cristo, Rey, Senor Y fue El quien quiso ir por su amor por ti y por mi Por la Via Dolorosa al Calvario y a morir The blood that would cleanse the souls of all men Made its way through the heart of Jerusalem.
모든 인류의 영혼을 깨끗케 할 그분의 피가 예루살렘 심장부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Down the Vi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고통의 길이라 부르는 삐아 돌로로사를 따라 걸으시는 메시야로 오신 왕이신 그리스도는 한 마리 양 같았습니다. 그 길은 그분이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과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갈보리까지 이어지는 그 고난의 길을 By Billy Sprague and Niles Borop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tyle="font-size:9pt;">라틴어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는 '고난의 길'이라는 뜻으로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시던 약 800 m 의 길, 그리고 골고다에서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 까지의 전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시스컨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 마련된 14개 장소는 18세기에 와서야 확정된 것이며,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일부는 확정되기도 하였다.
제1지점 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다.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정 (Praetorium, 마 27:11 ~ 14)으로부터 시작되며 예수께서 사형이 확정된 곳이다. 헤롯 대왕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며,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선고교회 (Church of Condemnation)가 서 있다.
제2지점 은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하셨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였다. 빌라도는 십자가를 메고 나오시는 예수를 보고 "보라 이 사람이로다" (Ecce Homo, 요 19:5) 라고 했다. AD 135년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세운 에케호모 아취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제3지점 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다.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가 서 있다. 십자가의 무게와 모양에 관하여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제4지점 은 슬퍼하는 성모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 은 구레네 사람 시몬 (Simon of Cyrene)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시몬의 아들들은 '알렉산더와 루포 (막 15:21)로 알려져 있으며,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 " (롬 16:13)라 부르고 있다. 1895년에 세워진 프란시스칸 교회가 있다. 이곳으로부터 계속되는 비아 돌로로사는 비교적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올라간다.
제6지점 은 성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성베로니카(St. Veronica)가 예수님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드렸는데 돌려 받은 손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1882년에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제7지점 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1875년에 두 개의 예배실이 세워졌다. 이 곳은 예수 당시 성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cf 히 13:12 ~ 13)
제8지점 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라고 말씀하신 곳이며,(눅 23:28)
제9지점 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곱틱교회가 서있다.
제10지점 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요 19:23 ~ 24)
제11지점 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눅 23:33)
제12지점 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마 27:45~ 51)
제13지점 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후,(마 27:59) 제14지점 에서 그가 자기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마 27:60 ~ 61) ※ 제10지점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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