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육.재교육에 대하여.

2012. 1. 6. 오전 11: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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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교육.재교육에 대하여.

손두수(andang37 
2012-01-06

매주 발행되는 주보를 보면 많은 생각들이 교체한다.
총세데 1933, 활동세대 839, 신립세대 441 ...

그러면서도 수많은 신자들이 입교를 하고,
또 냉담자들이 재차 교회를 찾는 선교활동에 올인을 하고 있어서
선교모범교회표창을 받을 정도이다.
이제 그 힘든 여정을 잠시 뒤로하고
안식년을 떠나시는 신부님을 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지난해 가톨릭신문 8월12일자에 의하면
가톨릭교계는 신앙정체성 확립과 구원관을 강화하는 교리교육과
신자 재교육의 당위성을 제기하고 있다.
차제 신앙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정체성 확립에 반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곳에 오기전만해도 신자재교육이 영성적인 면을 강조하여
성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지나치게 소흘한 곳을 많이 목격했다.

한자를 바탕으로 도덕경에서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우선
자의적인 해석과 설명을 통하여 인간의 지적인 이해를 하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의미를 강화하고
나아가 일상의 실천을 통한 내면화하는 과정은 오
늘날 교육심리에서 말하는 학습의 원리인
자극-반응-강화- 내면화에 일치된다.

그럼에도 이론적이거나 학문적인 판단을
하나의 교만으로만 치부하여 무조건적인 믿음이나
영성적 믿음 만 우선 강조하는 것은 인간학습의 이치에 어긋나며
신앙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미사 강론 에서도
구약이나 4복음은 물론 서간경이나 가장 난해한 예언서나
계시문학에 대해서는 장절 하나 하나를 풀이하는 노력과
여러 번 반복되는 암송에 가까운 반복활동 없이 의식위주의 전례문제는
가톨릭신자들의 성서 빈약증에 걸리게 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몇 가지 예로,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의 뜻을 질문하면
글자 그대로 믿으라는 식이다.
이는 ‘엄위하고 높은 존재의 하느님,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같이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쳐야 하고,

‘예수님이 사도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시다.’는 승천기사도
‘사라지다’ 또는 ‘하느님의 본체로 복귀하시다‘로
해석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하늘나라' 또는
'
하느님 나라'도 하늘 위에 있는 나라의 뜻이라기보다는
’사랑과 정의, 평화와 진리가 충만한 나라‘로,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성서해석을 위해 다양한 방법적인 교육은 물론
특히 아람어나 희랍어가 지닌 문학적 표현기법이나
당대의 관습, 지리, 풍토, 문화 등 광범위한 이해자료를 제공 해 주어야 한다.


많은 신자가 입문 후에 냉담한 이유야 여러 가지 이지만
이러한 성서의 내용이 단순한 지식이나 이해의 전달로서는 어렵다.
지식과 이해부분도 있지만
어려운 신비의 부분 많은 행동화가 요구되는 부분을
어떻게 지도하고 몸으로 체득하게 하느냐가 어려운 문제이고
고민 할 문제가 아닐까?

오늘날 도덕윤리가 해이한 것이 여러 가지 문제이지만
도덕윤리교육이 아는 지식교육이고
행함이 없는 교육의 결과라는 점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교리교육이나 신자 재교육이
보다 확실한방법적인 개선과 연구위에서 재고되어야만
신앙의 정체성이나 구원의 확신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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