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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장중한 표현의 관용구인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이 복음의 앞뒤를 장식하고 있어 말씀을 대하는 순간부터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은 주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나의 삶에 관여하시려나?’ 우리의 스승 예수님은 유다교의 라삐나 율사와는 달리 가르침에 앞서 행동으로 먼저 본을 보여주시는 분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런 스승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우리를 향해 하신 말씀이지만 먼저 당신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신 분이셨다(필리 2,7 참조). 그러기에 그분의 가르침은 힘이 있고, 곁에 머물수록 그 인격에 매료되는 것 같다. 그런 분께서 오늘은 ‘성경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제자단 형성에 실패했던 체험담을 담담하게 털어놓으신다. 마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데 그 실패가 필연적인 조건이라도 되는 양. 그분의 자유로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실패를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고 구원의 역사로 엮어가시는 빛나는 지혜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장자」에 장천하 어천하(藏天下 於天下) 곧 ‘천하를 천하에 감춰둔다’라는 말이 있다. 천하를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손을 대지 않고 그냥 거기 둔다는 뜻이다. 예컨대 물고기를 그릇에 담아두면 그 물고기는 그릇에 갇힌 것이 되지만, 바다에 집어넣는 순간 더 이상 갇힌 신세가 아니라 넉넉한 바다의 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가 되듯이. 이처럼 가장 큰 대상, 곧 절대자에게 매일수록 사람은 다른 속박에서 풀려나고, 그분께 대한 순종이 철저할수록 인간은 더욱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리라.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그분 말씀에 철저히 예속된 분이셨다. 크신 하느님께 매인만큼 그만큼 자유의 깊이와 너비가 한량없는 분이셨다. 마음에 평화가 사라지고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성찰해 보면 영락없이 주님 이외의 것에 매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이런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양한 모습으로 간섭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나의 일상 안으로 누구를 보내실 것이며,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실까? ‘진실로 진실로’ 깨어 귀기울일 일이다.
박아미 수녀(성바오로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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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 Mundi Spes Maria-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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