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

2011. 11. 26. 오후 1:18:34

글자

 

1)서는자세

서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기도의 자세이다. 까따콤바의 벽화조각이나 초세기의 저서를 보더라도 당시 신자들이 서서 기도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사도교회에서부터 서서 기도하는 전통이 전해 내려왔다. 이러한 결과들로 인해 325년 니체아공의회에서는 서서 기도하는 것을 법으로 정하기까지 하였다. 또 동방교회에서는 서서 기도하는 자세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와 죽음에서 부활하여 일어선 해방된 자녀의 자세로 숭상하여 왔다. 그러나 서 있는 자세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면서 단지 ‘주의와 존경’을 표시하는 기도의 자세만이 아닌 다른 의미들을 지니고 있는데 대표적인 의미들을 몇 가지 살펴본다면, 부활적인 의미에서 선다는 것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얻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자유를 상징한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끄럽지 않은 자만이 서 있을 수 있고, 히브리인들이 에집트를 탈출하기 직전에 서서 급히 음식을 먹었기에 구원되었고 묵시록은 승리자들의 감사의 자세를 서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례 중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분의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설 마음의 자세를 나타낸다. 신앙을 고백하거나 기도드릴 때 또는 복음을 들을 때 취하는 자세이다. 하느님 앞에서 취하는 여러 태도 가운데서는 서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자세를 가다듬는 것을 말하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무릎 꿇는 자세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고요의 자세인 반면 서있는 것은 깨어 활동하는 자세이다. 그것은 주인 앞에 준비된 종의 자세, 무장한 병사가 갖추는 경외 및 충성의 자세이다.

2)무릎꿇음

  두 발로 서는 존재인 인간의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작게 만드는 겸손의 몸짓이자 상대방에게 존경을 드러내는 동작이다. 하느님은 더 없이 높으시고 거룩하시며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먼지에 불과한 인간이 그분 앞에 나설 때에는 자연히 경배의 자세로 무릎을 꿇게 된다.3)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또한 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수도 있다. 하느님은 우리를 그분 앞에서 미소한자로 굴복시키지도, 무릎을 꿇도록 강요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무릎을 꿇는 자세가 속죄, 통회라는 배타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 안에는 모든 기도가 내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내면의 깊은 겸손을 표현하는 것이다. 겸손과 통회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무릎을 꿇는 동작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보다 심오한 ‘흠숭’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첨가되어 있다. 특히 교회 전례안에 있어서는 성체에 대한 흠숭을 나타내는 자세로 받아들여졌다. 미사의 총지침서 21항에서는 성체축성 때에 자리가 좁거나 너무 사람이 많거나, 무슨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을 경우가 아니면 무릎을 꿇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성당의 좌석을 보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궤틀을 없애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례본래의 의미를 보아 장궤틀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앉음

인간의 몸은 구조상 오래서 있거나 꿇어 앉으면 쉽게 피로를 느끼는 반면, 앉으면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즉 올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은 바른 몸가짐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전례에서는 가르치거나 경청의 자세로 앉는 자세를 취한다.

전례 중에 복음을 제외하고 성경을 봉독할 때에나 사제나 부제의 강론 때 교우들은 앉아서 경청한다. 소년 예수께서도 성전에서 학자들 가운데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다(루가 2,46).또 다른 의미는 권위를 나타낸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그 사람이 앉는 ‘자리’(의자)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틴어의 주교좌(Cathedral)는 Cathedra에서 나온 말인데 이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주교가 공적으로 앉아서 가르치는 장소로 주교의 법적 권위와 그의 기능을 상징한다. 그래서 지금도 주교는 서품식이나 직수여식 때 훈화 또는 견진예식 중에 앉아서 훈화를 하는 것은 가르치는 스승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앉아서 가르치는 자세가 주교만의 고유한 자세로 간주되었지만 현행 전례서에서는 신부 각자에게도 이러한 자세를 권장하고 있다.7)

미사 때 독서와 응송, 강론, 봉헌, 영성체 후에는 앉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안정된 상태에서 조용히 듣고 묵상하는 자세이다. 주의깊게 듣고, 들은 것을 탐구하며 깊이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삶에 옮길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앉는 것이 좋다. 성당에서 자리에 앉는 것은 편히 쉰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을 귀담아 듣고 묵상하는 자세이다. 예수께서 첫째가는 계명을 가르치실 적에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마르 12,19)라고 말씀하셨다. 듣는 자세는 단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열어 놓으며(사도 16,14) 또한 말씀을 실행하고 복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4)십자성호를 그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자성호의 형태는 교회 또는 서방교회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서방 십자성호’, 또는 ‘라틴 십자성호’라고 한다. 또 다른 형태는 주로 동방 전례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동방 또는 희랍 십자성호라고 한다. 이 양식은 이마에서 시작하여 가슴을 거쳐 먼저 오른편 어개를 지나 왼편 어깨 순으로 십자가표를 하는 형태이다. 서방측과 다른 것은 어깨에 손을 대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서방교회 중에서도 로마에서는 13세기까지는 희랍식을 사용하였으나 그 후에 차츰 서방식으로 돌아섰다.

십자성호는 기도문화 합쳐짐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전례기도와 신심 기도의 시작기도가 되었다. 또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과 일치하기 때문에 생활의 모든 부분에까지 활용되고 그토록 널리 보급된 것 같다.

십자성호의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되어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이 하셨다(골로 2,14~15). 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갈라 2,19). 이렇게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무한한 자비의 증거이고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하느님의 힘의 상징이다.

이렇게 십자가가 우리 신앙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만큼 십자성호를 그을 때의 우리의 자세도 보다 신중하고 경건하여야 하겠다.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개달아 진정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자주 반복하는 행위는 쉽게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되도록이면 우리는 이러한 습성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기계적이고 습성적인 십자성호의 횟수를 대폭 줄이게 하였다.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우리는 세례 때에 고백한 신앙을 재삼 기억하고 확인하며 새롭게 해야 함을 상기할 것이다. 십자성호는 그 자체로 가장 짤막하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아을 대변하는 신앙고백문이다. 십자성호가 형식적인 요식 행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끄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이 될 때에 우리의 생활 자체가 그대로 십자성호가 될 것이다.

 

 

5)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힘

하느님을 직접 향하여 서는 겸허한 봉헌과 최상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며, 인간과 사물을 향하여 서는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찬양과 강복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를 때 존경과 흠숭이 그것이며, 하느님의 일꾼들과 성인들의 이름을 부를 때 존경을 표현하는 것과 거룩한 물건에 대한 특히 제단과 십자가에 대한 존경이 그것이다. 머리를 숙이거나 상반신을 굽혀 절하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행위요, 손윗사람, 상관에 대한 존경과 인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또한 요청과 보호의 뜻도 있다. 특히 신앙인에게는 경외, 참회, 기도의 자세이다.


6)손을 모음․올림․벌림

현재 우리의 전례를 보면, 팔을 벌리는 자세는 주로 사제가 취하는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팔을 벌리는 자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매달리실 때의 자세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중세 때 미사를 신비적으로 해석하면서 각 동작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던 관행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해석이라 할 것이다. 팔을 벌리는 자세는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을 들어올리는 자세이다.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추정되어 왔고, 따라서 팔을 벌리는 자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세이다. 따라서 초기 교회 때는 사제뿐만 아니라 신자라면 누구나 하느님께 기도를 바칠 때 팔을 벌리는 자세로 하였다. 일부 본당에서「주의 기도」를 바칠 때 신자들이 사제와 더불어 팔을 들어 기도하는데,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한 방식으로 권장될 만한 것이라 하겠다.

또 기도 전에 손을 모으는 것은 분심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며 혼잡한 세속 일에서 고요한 휴식을 마련해 준다. 손의 합장은 나의전존재를 걸고 내 마음의 하느님과 대화를 시작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구원의 제사를 함께 올리고자 준비를 할 때에 외부의 소란함의 문을 닫고 빗장을 질러서 나를 보호해 주는 행위이다.


7)안수

이 동작은 교회의 성사적 행위에 있어서 본질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것이 성사적 역할 외에 용도로 널리 사용되기는 했어도, 이것의 특별한 중요성과 권위는 이 행위의 사용이 항상 주교나 사제에게만 엄격히 제한 되었고, 평신도는 이를 행하지 못하게 한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안수는 안수를 받은 사람에게 특별한 권리와 능력 및 자격을 수여하는 상징이다. 옛날부터 손은 축복을 이끄는 신체부위로 일반인들에게도 존중되었다. 구약성서에는 장자권 상속, 육체의 건강적 기원, 직권의 양도, 죄의 이전에 안수가 행해져고,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성령수여, 직위 수여, 병자 치유, 축복에 안수를 했다. 현대 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에게 악마를 내쫓을 때, 사죄를 할 때, 병자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에서 안수를 한다. 또 사람이나 사물의 축복에도 안수를 한다. 안수는 직위와 권능의 수여와 직위 계승의 의미가 강하다.

 

 

8)침묵

침묵은 기도, 성가, 동작 등과 같이 예식의 한 부분이고 거룩한 예식이며 전례의 영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현행 미사에는 예식 자체가 반성․묵상․하느님과의 내적 대화를 요구하는 부분에 흔히 침묵이 들어 있으며, 침묵의 성격은 예식에 따라 다르다. 참회와 기도 권고 다음은 자신을 반성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침묵이다. 독서, 복음, 강론 등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매번 또는 그 중에서 한 번 침묵을 할 수 있는데, 이 침묵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침묵이다.  강론 후 침묵은 말씀의 전례중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이고, 영성체 후의 침묵은 자신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사랑의 대화를 나누면서 기도하는 침묵이다.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예배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침묵, 듣는 것, 기다리는 것도 포함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교회가 침묵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해 온 이유는 침묵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고, 또한 하느님과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고, 또한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에 말과 말 사이의 정적이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침묵은 우리의 말이 살아있도록 해 주는 정적일 수도 있고, 또 우리 삶의 행동적인 부분들을 의미하도록 해 주는 삶의 여백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밖을 지향하고 있다면, 침묵은 우리의 내적인 부분을 지향하고 있다. 말이나 행동이 상태를 향하여 행하여지면서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침묵은 자기 스스로를 지향하여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때문에 침묵은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하는 데 있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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