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2일 한가위
제1독서 요엘 2,22-24.26ㄱㄴㄷ
제2독서 로마 14,13-16
복음 루카 12,15-21
이 학생은 신학교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의 예상대로 낙방이었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성적뿐만 아니라 인성검사에서도 사제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답니다. 신학교 불합격 후, 이 친구와 만났는데 크게 실망을 했더군요. 더군다나 성소국장 신부님으로부터 사제로 살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면서, 자신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도 될 수 없다는 생각. 이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지요. 오히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우리들은 더 큰 찬사를 보내며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오히려 훌륭함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의 말, 별 생각 없이 내미는 따뜻한 손, 스치듯이 짓는 작은 미소 속에 훌륭함이 숨어 있어서 세상을 더욱 더 의미 있는 곳으로 그래서 진정한 행복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훌륭함은 사제에게서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 각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가위를 맞이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훌륭함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주님과 조상님들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감사의 마음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더 많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고 또한 남들에 비해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며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습니다. 나의 일상의 삶 안에서 훌륭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불평불만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 안에서 나의 훌륭함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는 순간, 우리들은 나의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그래서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훌륭함 들을 발견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도전하고, 도전하라. 도전하는 자리마다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나폴레옹).
살아가면서 알고 지내는 세 부류의 사람들
장영희 교수님의 책을 보다가 살아가면서 알고 지내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이라 그대로 옮겨봅니다.
첫째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만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둘째는 사랑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내게 손을 내민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함께 일어난다.
셋째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되어 있다. 숨소리 하나까지 나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 언제나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 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
“내게는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서 있는가?”라는 의문도 동시에 간직해 봅니다. 부끄러운 부분이 많았고, 또한 잘못된 부분이 많았음을 반성하게 되네요. 내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내 근처에는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이 확신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오늘을 만들어 봅니다.
첫째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만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둘째는 사랑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내게 손을 내민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함께 일어난다.
셋째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되어 있다. 숨소리 하나까지 나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 언제나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 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
“내게는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서 있는가?”라는 의문도 동시에 간직해 봅니다. 부끄러운 부분이 많았고, 또한 잘못된 부분이 많았음을 반성하게 되네요. 내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내 근처에는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이 확신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오늘을 만들어 봅니다.
